<그람시, 레닌, 오드리 헵번...>-최유성님 소개 글
"우리는 이 위험한 두뇌가 이탈리아를 물들이지 않도록 이탈리아 인민들과 격리시켜야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이 위험한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그람시에게 20년형을 선고한다. " 이 유명한 말은 이탈리아의 사법부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출한 사상가이자 불굴의 사회주의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에게 사형선고와 다름 없는 20년형을 선고할 때 한 말이다.
그람시의 자서전에 이런 고백이 있었다. "내가 사회주의혁명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목숨을 건 것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고통받고있는 이태리 민중들에 대한 사랑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혁명을 선택한 것은 나 자신도 거역할 수 없었던 내 온 몸을 휘감고있는 반역의 피 때문이었다."
그의 고백을 보면서 그렇다면 그가 거역할 수 없었던 반역의 피는 무엇 때문일까?하는 무거운 생각이 들었고 그가 말하고 있는 반역의 피는 그의 치명적인 아픔 때문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척추 장애인(꼽추)이었다......
complex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복합성' 또는 '종합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몇 해 전에 친구와 함께 이탈리아의 명문팀인 AC 밀란과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를 보기 위해 잠실 종합운동장에 간 적이 있다. 경기장 입구에 있는 종합운동장의 영문표기가 Sports Complex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컴플렉스라는 말의 의미가 열등감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컴플렉스라는 말은 열등감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단선적이고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복합성 혹은, 종합성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의해서도 알 수 있듯이 무엇인가를 지향할 수 있는 힘. 즉, 입체적인 능동성에 더 가까운 말이다.
사마천이 죽음보다 더 가혹한 궁형을 당하지 않고 한비자가 지독한 말더듬이가 아니었고 안토니오 그람시가 꼽추가 아니었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절름발이가 아니었고 오드리 헵번에게 잔디뿌리까지 먹어야만 했던 참담한 유년시절이 없었고 레닌에게 레닌이 제일 좋아했던 그의 형이 교수형으로 삶을 마감하는 슬픔이 없었고 전봉준에게 그의 아버지 전창혁이 조병갑에게 장살 당하는 처참한 일이 없었고 제갈공명에게 조실부모라는 그늘이 없었고 미셀 푸코와 프레디 머큐리에게 동성연애자라는 마이너리티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들의 이름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전봉준에게 그의 아버지 전창혁이 학정에 저항하다가 조병갑에게 맞아 죽는 일이 없었다면 전봉준이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갑오농민전쟁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수 있었을까? 레닌에게 레닌이 제일 좋아했던 그의 형이 데카브리스트 반란에 가담하여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가혹한 상실이 없었다면 레닌이 죽음을 무릅쓰고 혁명의 길로 뛰어들 수 있었을까? 오드리 헵번에게 2차대전 때 잔디뿌리까지 먹어가며 배고픔을 견뎌야만했던 굶주림에 대한 처참한 기억이 없었다면 오드리 헵번이 대장암 말기의 거친 몸을 이끌고 소말리아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갈 수 있었을까......
참고로, 오드리 헵번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던 두 권의 책 중에서 한 권은 안네 프랑크의 일기라고 한다. 이하의 사진은 내가 본 오드리 헵번의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스물 네 살 때쯤이었을까..... 나의 방 한 귀퉁이에는 오드리 헵번의 이 사진이 나침반처럼 서 있었다.
그람시의 척추장애와 사마천의 궁형이라는 치명적인 마이너리티와 상실감은 슬픔과 열등감이라는 바리케이드를 극적으로 횡단하여, 컴플렉스로 진화한 경우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예컨데, 컴플렉스라는 말은 슬픔에 갇히지않고, 꿈을 향해 길을 떠나게 하는 한 줄기 바람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바람없이 항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