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임 선교사님의 글 공감이 되어 공유합니다.
저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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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인지,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강박에서 인지, 기분이 언짢아졌다고 표현하는 걸 두려워했었다. 당연히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심호흡을 하고 상대방은 어떤 상황이었는가를 먼저 생각하곤 했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으로 인해 상대방은 내가 화가 났는 줄도 눈치채지 못했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으로부터 내 감정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 조차 간과하고 살아왔다. 내 감정을 존중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노하는 법을 배우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착취의 대상’이 되기 쉽다.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People Pleaser)의 회복 여정에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는 적절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의 안위를 염려하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보다 타인을 배려하고 살아온 삶에 길들여진 까닭이다.
상대방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바래서 상대방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주고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고 살아온 삶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살아온 관성을 거스르고 화가 났다는 마음을 표현할 때마다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한 마음이 언제쯤 편안 해질지 모르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언짢은 마음’을 정중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길들여진 관성을 거스르는 것은 불편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 성장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다. 타인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어떻게 존중하는 것인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괜찮지 않은 마음을 외면한 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를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은 화 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내 감정을 수용해 주고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적절한 화를 표현함으로 상대방 마음이 불편해 지는 것을 감수하는 마음 근육을 키워야 한다.
민찬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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