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서 잤고 우리는 많이 사랑했다 신비로움에 대해 말해 봐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숙희는 말했다
눈이 내렸을까 모르겠다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른다 두부 속에 눈이 멈춘 풍경이 있다고 두부 한 모에 예배당이 하나라고
사랑하면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야 집에 두부가 없는 아침에 우리는 이별했다
숙희도 두부를 먹었을까 나는 두부를 먹었다
몸 깊은 곳으로
소복소복 무너지는
이별은 다 두부 같은 이별이었다 예배당 종소리 들으려고
멈춘 풍경이 많았던
사람이 죽을 때
눈이 몰려가느라 몸이 하얗다면
죽어서도 두부 속을 걷는 사랑이라면
눈이 가득한 사람아 눈이 멈춘 눈사람 예배당 종소리 퍼지는 지극히 아름다운 눈사람아 그러나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르고
두부는 생으로 썰어 볶은 김치와 먹어도 좋고
된장 조금 풀어서
끓여내는 이별
-『이별의 수비수들』 중에서-
<시작노트>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두부 속을 걷는 일일 거라고 생각해요. 두부 속을 걷는 일이란 두부처럼 희미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눈보라 속을 걷는 일처럼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겠죠. 두부 속이 어쩌면 눈 내리는 풍경일 수 있잖아요. 눈이 멈춘 풍경일 수도 있죠. 사랑이 그런 풍경이라고, 이별한 후에 돌아보면, 그 시간은 요점 정리가 안 되는 흐린 시간이면서 아름다운 시간이기도 하잖아요. 요점 정리가 안 되는 시간을 뭐라고 말할 수 있나. 숙희라고 말해보는 거죠. 희미한데 아름답고 아름다운데 희미한 두부 속. 그 시간을 `숙희`라고 말해본 거예요.
여성민
2010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이,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이별의 수비수들』 『에로틱한 찰리』, 소설집 『부드러움과 해변의 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