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추운데 서울역에 도착을 하였다. 나주의 촌놈이 서울역에 내리니 내온
싸인이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도로의 중앙에는 전차가 달리면서 대중교통의
주요 역활을 한다 . 요금은 2원 5십전 뻐스는 3원, 만원 뻐스에 차장아가씨는 자기
몸으로 달리면서 오라이를 하면서 달리는뻐스에 메달려 손님들을 안으로 들어
내밀며 달린다.
가깝게는 남산이 있고 멀리는 북한산 도봉산 남쪽으로는 관악산 한강의 물은
얼어서 빙히를 이룬다. 거리에는 숨가쁘게 차량들이 질주를 하고 전차 택시 등이
달리고 있다 그때 택시는 '시발택시'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에서는 시골에서
올라온 농촌사람들이 살아 보겠다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와서 지게품팔이 아니면
구두닦이, 신문 배달로 연명을 하고 있다.
60년대 농촌에서 살기 힘들어 야반도주를 한 시골의 사람들은 어느 산꼭대기의
판자촌이나 경기도 시흥 2동의 집단이주촌, 상계동의 수재민의 집단 이주촌 한강변의
제방촌에서 서로 이웃끼리 살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들 ......
박태원의 '천변풍경;처럼 청계천의 주변에는 서울의 가난한 서민들이 집단적으로
마을을 형성하여 어려운 공동생활을 하는 모습들이 보인데, 부유한 세검정 마을
사직동의 마을 성북동의 마을 ......
서울은 부유층과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삶으로 혼잡하기 그지없다. 구로공단
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골에서 올라와 박봉의 직업으로 가리봉동의 쪽방 반지하
에서 생활을 하며 가난을 이기고져 고향산천을 뒤로 하고 살구꽃이 피고 복숭아꽃이
피는 아름다운 고향산천을 등지고 서울로 서울로 젊은 청년들은 아가씨들은
해태껌 ,롯대껌 회사에 취업을 하여 돈을 벌어 고향의 부모님들의 손에 놓아주는
건전한 젊은이들이었다.
저 같은 경우에도 먹고 살기 위하여 항상 공부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복장은
미군들이 버린 군용 복장에 검정물을 드린 군용 복장으로 겨울이나 여름에도 이
옷을 입고 다녔다 둘째누나가 하도 보기가 싫었던지 하루는 을지로 2가에 가서 상의 컴비를
사주어서 입어보니 겨울에 따듯하고 보기도 좋아 여자들이 따르기도 하였다.
대학교의 책을 살길이 없어 청계천의 헌책방의 책들을 사기도 하고 말만 대학생이지
이거 말이 아니다. 어린초등학생들이나 가르쳐서 용돈이나 벌고 ....
어느지대나 고지대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무허가 판자촌을 이루고 수도물은
지게로 공동수도로 아침일찍 일어나 차례데로 물을 길러다 먹었고 고지대의 도로에는
겨울철에 연탄제로 도로에 바려서 미끄러움을 막았다 고지대의 쓰레기는 버리지 못해
산더미 처럼 쌓이고 겨울철에 연탄 2백장과 쌀 한 가마만 있어도 부자다 .
한강물은 여름이면 홍수에 수재가 나서 이재민들을 초등학교 교실로 이주를 시키고
구호품으로 생활을 하게 큼한다. 이러한 고생을 하며 살아온 시민들이 오늘날의 우리
세대들이다 . 격세지감이 있다 고생을 낙으로 삼았던 우리의 역군들이여 .......
이제는 찾아온 노후의 생활들 , 행복하시기 바람니다
첫댓글 이글을 보면서 그시대가
보이는거 같이 그려지네요 잘봤습니다
해방이후의 어려운 고비를 잘넘겼습니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두마리토끼를 쫓아서
감사합니다
60년대 국민들의 척박한 삶의 모습을 아주 리얼하게 묘사하셨네요.
마치 그 시대에 다시 돌아 온 느낌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950년 6.25 10년후의 서울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얼마나 발전을 하였습니가까? 우리국민들은 우수한 민족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70년에 서울로 이사해서 그 시절을 서울서 살아보진 못했지만,
눈에 그려집니다.
참 힘든 시절이겠죠.
특히 12월 겨울은 더더욱
50년대 6.25이후 10년후의 서울의 풍경이니 얼마나 힘든 삶들이
이어 졌겠습니까? 페허에서 일어선 국민입니다 농촌도 말할수가 없고요
1966 년 12월의 겨울?
그당시 겨울은 너무 추웠었습니다
고등학생인 나는 교복위에 외투 입는것두 허용하지 않아서 더 추웠습니다
그리고 너무 가난했었습니다
판자집 루핑지붕에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당시 보다는 다들 잘 살지만 그때를 잊지맙시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산꼭대기는 판자집과 루핑집이 대명사였습니다
서울은 어찌나 혹독한 칼바람같은 추위 혼났습니다
고맙습니다
시골로만 살아서 서울은 늘 소문으로만 듣던 과거 서울로의 꿈은 정말 꿈이 였지요 서울 서울 이란 노래도 있을 정도 ㅎㅎ
운선작가님 , 성탄의 메세지가 아름답습니다
Thank you very much, merry christmas to you happy new year
한때는
전투복 바지를 검정 염색해서 입고다닌적이 잇지요??.
추운 겨울은 군용 파카만입고다니면
부자된 기분도 나고요
참 어여운 시절 입니다
50년도애 6.25가 일어나고 53년도 휴전 약10후의 서울의모습입니다
많이 발전을 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1966년이면
다섯살?
여섯살 꼬마였네요.
^^서울 불광동에서
꼬물꼬물 놀았을 시절.
이제 고향으로 낙향을 하니 서울이 그립습니다
불광동도 많이 지났지요 감사합니다
초등학교때
서울로 와서
학교 다닐때
겨울은
정말 추웠습니다..
방은 냉골이어서
따스한 기운은
아무데도 없는
너무나 추운겨울 이었어요..
오죽하면
다리미를 꽂아놓고
거기다가
손을 녹인적도 있어요..
서울거리의 칼바람이 살을 에이는듯
썰렁한 군복으로 나주에는 매형의 오바를 얻어서 입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운 시절에 이야기이네요..
추억속에 잠기다가..
머물다가 갑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가서의
모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강원도 산골짝에서
69년에 가족모두 상경
했습니다
고생좀 하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