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의 전설
김정자
“500년 묵은 버드나무를 살려주세요.”
란 제목으로 이원종 충청북도 지사님께 인터넷으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청원군 가덕면 병암리 '평바위'란 동네 마을 앞에 버드나무 5그루가 의좋
은 형제처럼 의젓하게 마을을 지키고 서 있다. 1982년 11월 11일 마
을의 보호수로 지정되었고 1999년 12월9일 보호수해제조치가 되어 마
을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그해 5월6일부터 2001년 12월31일 까
지 공사기간이 계획된 지방도로 32호선의 4차선 도로확장 공사로 인하
여 마을의 지킴이 버드나무들이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어느 아낙
의 이야기이다. 몇 백년 전부터 그 마을 건너편에는 넓다란 평바위가 놓
여져 있는데 달 밝은 밤이면 소복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 동네 쪽에 앉
아서 평바위를 마치 거울삼아 긴 머리를 빗어 내리곤 하였다한다. 그런데
해마다 젊은 청년이 한 명씩 알지 못하는 병으로 죽어 갔다는 전설이다.
어느 날 그 마을을 지나던 스님께서 사연을 듣고 동네 앞에다 버드나무를
심어 평바위를 가려놓으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한다. 그
이후에는 동네가 평화로워 졌다고 하였다.
버드나무의 위협을 느낀 주민들은 방송국 그리고 신문사는 물론 나무
를 자식만큼이나 사랑하고 계시는 우리 수필창작교실 지도 교수님께 까지
알리게 되었다. 전 회원이 합심하여 K교수님을 선봉으로 버드나무 다섯
그루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교수님께서는 마침내 이원종 도지사님의
2000년도 중요한 도정 시책의 하나인 '손자 숲 가꾸기'운동은 500년이나
묵은 버드나무를 없애는 일이 도정시책과 너무도 어긋나는 시책임을 말씀
을 드리고, 우리들도 끈질지게 간청의 요지가 담긴 서신을 도의회․ 군 의
회 등 관계부처에 가리지 않고 제출하였다.
얼었던 땅속 깊은 곳까지 훈기가 스며들고 냇가에 버들개지가 함초롬
연녹색으로 피어날 무렵 기쁜 소식이 전하여졌다. 우리들의 염원이 이
루어 진 것이다. 문제의 버드나무를 그대로 보존하고 한층 더 푸르고 아
름다운 공원을 만들어 확장공사의 기존에 삭막하기만 했던 설계보다 한층
더 운치 있는 도로가 설계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고 ‘역시 우리 도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계신 도백'의 선처에 비록 지
사님이 앞에 계시진 않았지만, 수필 반 전원은 환호성과 함께 고마운 마
음의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수양버드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건축할 무렵 몇 백년 묵은 그 나무를 베었을 때 용만큼이나 커다란 구렁
이가 나왔다하였는데, 운동회나 소풍 때는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내 어린
마음이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버드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그처럼 많은 전설을 지니고 있어 함부로
베거나 없앨 수 없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어릴 적, 이른봄이면 동네아이들과 냇가에 나가 털이 복실복실 난 버
드나무의 겨울눈을 버들강아지라고 부르며 하나 따서 작은 손바닥에 놓고
‘오요 오요’하며 강아지 부르듯 노래하며 움찔 움찔 움직이면 마치 살아
있는 강아지 털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다. 봄꽃이 피기 전 제일먼저 봄을
몰고 오는 봄의 선구자처럼 싱그러움을 안겨주는 버들개지를 나는 참 좋
아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버드나무를 언제나 여자에 비유하고 모친상을 당하면
버드나무로 지팡이를 짚는 것도 나무의 재질이 연하여 마치 어머니의 사
랑만큼이나 부드럽고 온유하다는 뜻이라 한다.
근래에는 버드나무가 큰 공해를 갖고 온다는 지적도 있다. 봄철에 눈처
럼 날리는 버드나무 씨앗이 눈병을 일으키고 기관지를 상하게 하며 알레
르기성 비염을 일으키는 주범이라 한다. 또한 버드나무의 암꽃에는 남자
의 기력을 감퇴시키는 성분이 들어있다고 어느 문헌에 적혀있다.
버드나무의 종류만 해도 수양버들. 능수버들. 호랑버들. 떡버들. 콩버
들. 눈 갯버들. 수양벚나무, 왕벚나무 등. 60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보
통 버드나무는 우리 나라. 일본. 만주일대에 자생하는 나무이며 20미터
-80미터까지 자랄 수 있다.
호랑 버들은 산중턱에 서식하며 낙엽활엽소교목으로서 6미터까지 자
라며 줄기가 자라면서 가지가 굵게 발달하여 겨울눈은 붉은 색으로 뚜렷
한 광채가 있다.
요즈음은 정원수나 꽃꽂이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눈 갯버들은 중부 북부에서 자라고 3월-4월 사이에 개화되며 1미터이
내의 낙엽관목으로 냇가에서 흔히 자란다.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지표면
가까이에 퍼져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떡버들은 5미터내외의 낙엽관목으로 산지정상부근에 자라며 주로 제주
도에 많다고 하였지만 광주 무등산에도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꽃
은 황색으로 잎보다 먼저 묵은 가지에 달린다. 종기, 수검, 황달, 치통,
지혈 등에 약재로 많이 쓰인다고 하였다.
능수버들을 생각하면 충남 천안삼거리란 노래를 흥얼거리고, 눈에 보
듯 춘향이를 생각나게 한다. 그 시절, 오월이라 단오 날 방초는 푸르른데
버들가지 축 늘어져 나풀거리는 사이로 흐늘흐늘 춤을 추는 자태로 그네
를 탈 때, 광한루 이도령 눈에 박 속 같은 하얀 살이 살짝살짝 비추었다
하던 그 날의 그네 줄을 맨 나무도 몇 백년 묵은 버드나무가 아니었을까?
어디 그뿐인가 평양기생 계월이는 속절없이 떠나가는 야속한 님을 보고
시를 읊었다 한다.
「대동강 저문 달에 고운 님 보내올 제
천만사 고이고이 늘어진 실버들은
가는 님 얽을 체 않고 휘놀기만 하느니.」
님을 보내기 싫어하는 애절한 여인의 정이 담긴 사랑의 시가 아닌가.
그 시절 평안도 사람들의 기질이 너무 강인하고 곧으며 부드럽지 않은 성
품 때문에 정서 유화를 시키려고 평양에 수양버들을 많이 심었다한다.
그 무렵부터 평안도에 풍류객이 많이 나왔다고도 하며 평양을 버들이
많은 곳이라는 뜻에서 유경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한다.
버드나무는 옛부터 우물가에도 심어져 있었다. 우물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무성하게 뻗은 버드나무의 잔뿌리가 우물의 물을 정화해주는 작
용도 한단다. 조상 님들의 지혜가 놀랍지 아니한가. 신라시대 목이 마른
젊은 화랑 김유신이 우물가에서 처녀에게 물을 요구하자 바가지에 물을
며 물위에 버들잎을 몇 잎 띄워서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질녘 버드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노을에 젖은 여인을 언제나 연상
하게 된다. 가늘고 부드럽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는 날씬한 허리를 생
각하게 한다. 여자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손가락은 버드나무 잎과도 같아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운 음률이 울려 퍼질듯하여 춤을 추고 싶어진다.
지난 3월에는 북경엘 다녀온 일이 있었다. 그곳 자금성. 이화원등 관광
지마다 버드나무들이 늘비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수공예에 능수
능난한 중국여인들의 솜씨로 만들어진 공예품들이 눈길을 끌기도 했었다.
광주리. 채반. 키등. 버드나무로 만든 채반에 부침이나 튀김 등의 음식을
담아놓으면 수분과 기름기를 모두 채반이 흡수해서 음식 맛이 좋아진다.
중국의 화려했던 문화들을 그대로 우리 나라에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부
끄럽게 느끼면서 그들의 역사와 우리 나라의 역사를 비교해야하는 인연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올해도 들녘 개울가에 버들개지 소식이 있더니 어느새 벚꽃과 개나리가
제철을 만나 흐드러졌다. 진달래가 피고 목련이 만개하여 한쪽에선 꽃잎
파리가 휘날리고있다. 버드나무 가지를 닮아 좀더 부드럽고 연한 여인이
되어 나의 몸가짐이 좀더 덕스러워 보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뇌 세포 속
에 노폐물처럼 끼어있는 앙금들을 우물가에 심겨진 나무들의 정화로 말끔
씻어내어 내가 사는 날까지 산뜻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2000. 7집
첫댓글 버드나무 가지를 닮아 좀더 부드럽고 연한 여인이
되어 나의 몸가짐이 좀더 덕스러워 보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뇌 세포 속
에 노폐물처럼 끼어있는 앙금들을 우물가에 심겨진 나무들의 정화로 말끔
씻어내어 내가 사는 날까지 산뜻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김춘자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