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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고구려 중흥의 군주 미천왕(1)
세머리매 추천 0 조회 426 10.06.06 17:23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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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6.06 18:44

    첫댓글 여는 글에서 평소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광개토왕의 연군 공격을 소개한게 인상적이네요..^^

  • 작성자 10.06.06 18:48

    첫 댓글, 감사합니다.^^

  • 10.06.06 18:51

    그런데, 연군의 위치는 널리 알려진대로 요서지방이라 하고 베이징 부근 설은 주석에서 언급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요서지방 설이 통설의 위치에 있는듯 하더군요. 모용선비사에 통달한 지배선 교수가 요서지방 설을 따르다가 최근에 연군 공격 이유가 모용황 사당 파괴라는 주장을 하며 연군의 위치가 베이징 부근이라 언급하는걸 보면 베이징 부근 설도 타당한 근거가 있긴 한 모양인데 해당 논문을 확인해보지 못해서 모르겠네요.

  • 작성자 10.06.06 19:04

    일단 베이징설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본문에서 언급했어요. 님이 말씁대로 지배선님이 견해를 바꾸었고 이인철님의 견해나 곽말약이 주편한 지도책에도 연군을 베이징으로 표시한 것 등으로 해서 본문에서 언급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 10.06.06 19:12

    아.. 그렇군요, 좋은 취지입니다. 모용황 사당 파괴 설을 소개하신 것도 그렇구요.^^ 지배선 교수가 모용황 사당 파괴설을 주장했단 것을 보고 흥미가 가 논문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만 복잡한 사정으로 결국 읽지 못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모용황 사당 파괴설의 대강의 근거를 알려주실수 있으신가요?

  • 작성자 10.06.06 19:25

    아쉽지만 지배선님은 논문에서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배선님은 전연이 모용황의 사당을 단 두곳, 법양과 연군에 설치했다는 사실에서 연군 공격이 모용황의 사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추론하고 있습니다.

  • 10.06.06 19:28

    그렇군요. 그정도면 그런 가설을 생각해보는것도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 10.06.07 07:27

    지배선 교수가 작년에 백산학보에 올리신 논문은 꽤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논문을 읽어본 것이 아니라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신지는 짐작이 가질 않는데 그에 대한 반론입니다. http://cafe.naver.com/booheong/37637

    대략 보면 396년 북위와 후연간의 전쟁으로 이미 병주를 상실했고 399년에 연군태수가 주민들을 이끌고 북위에 투항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이 사실이 북위의 연군 점령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고 하기에는 좀 미약할 수도 있습니다. 땅을 점령한게 아니라 이주 투항을 한 것일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본다면 말이죠.

  • 10.06.07 07:28

    하지만 북위 침공의 결과로 모용희는 유주자사를 영지에, 청주자사를 신성에, 병주자사를 범성, 영주자사를 숙군성, 기주자사를 비여에 각각 교치했습니다. 유주에 속했던 연군 역시 북위에 의해 점령당하여 대릉하 어딘가에 교치되었다고 봐야하는 것이 맞지요. 광개토태왕이 연군을 기습했던 404년 때라면 말입니다.

  • 작성자 10.06.07 15:20

    일단 당시의 지명이 잦은 교치로 언제나 논란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연군태수의 투항과 진소의 이동이 어느정도의 영토변화를 초래했는가 또한 확실하지 않습니다. 유주를 옮긴 영지는 난하 유역이고 난하는 베이징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후연의 영토는 당시 하북성 일부를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연군이 옮겨갔다고 해도 그 지역이 대릉하유역이다 단정할 근거는 없다고 봅니다. 대략 하북성 북경 일대라는 표현이 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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