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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mjJLtqN8W88?si=fMS4N1ZlC5_dXaMj교만
옷을 제비 뽑는 로마 군인들 15:24~28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끝까지 조롱하고 욕하는 무리 15:29~32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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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제삼시에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제비 뽑아 그 옷을 나눕니다. 죄 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썼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희롱하는 말을 합니다. 주님의 좌우편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까지 그분을 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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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제비 뽑는 로마 군인들 15:24~28
로마 군인들은 눈앞에 계신 생명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 옷에 집중하며 서로 그것을 자기 몫으로 차지하기 위해 제비뽑기합니다(24절). 예수님이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알지 못하면 눈앞의 이익에 골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죄 패가 히브리·로마·헬라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26절; 요 19:20). 조롱의 의미로 기록한 글이지만, 그것은 진실입니다. 예수님 좌우편 십자가에는 강도 두 명이 달려 있습니다(27절). 누가복음에서는 한쪽 강도가 마지막 순간 극적으로 회심해 하나님 나라를 약속받은 일을 기록합니다(눅 23:39~43). 예수님은 십자가 고통 중에도 한 영혼을 살리시는 구원자입니다.
●더 깊은 묵상
예수님 옷을 제비 뽑는 로마 군인들 모습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나는 눈앞의 작은 이익이 아닌 진리이신 예수님을 추구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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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조롱하고 욕하는 무리 15:29~32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성령의 은혜입니다(마 16:16~17; 고전 12:3).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여러 번 행하셨고, 광야에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이적으로 수많은 무리에게 양식을 제공하셨습니다. 수많은 병자를 치유하셨고,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무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심을,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부터 구원해 ‘왕과 그리스도’임을 증명해 보이라며 모독합니다(30~32절). 오만한 눈으로는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를 결코 알아볼 수 없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지나가는 자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어떻게 모욕했나요?
고통당하는 이를 모욕하는 사람의 심리는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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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승리자
네로 황제는 로마에서 대화재가 일어나자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뒤집어씌워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을 콜로세움에 몰아넣고 사자 밥이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의 수는 줄어들기는커녕 핍박이 심해질수록 오히려 더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네로 황제는 증오심이 불타올라 그리스도인은 무조건 잡아서 사형에 처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때 한 신하가 반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순교를 영광으로 생각하니, 그들을 죽이면 역효과가 날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하는 그리스도인을 사형에 처하기보다는 잔인하게 고문해서 그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다시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신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들은 고문을 당하면 하늘에서 상급으로 쌓인다고 믿어서 오히려 고문의 흔적을 자랑하고 다닐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그리스도인을 없앨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진 핍박을 견딜 수 있었음은 죄인을 위해 목숨을 내주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제자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고난 끝에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네로 황제와 같은 세상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오늘을 만족하라 / 한기홍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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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마가복음 15장 29~30절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자기가 울음을 증명하는 데 힘씁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비참한 저주와 패배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자기 판단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자기 옳음에 갇히면, 자신의 무지와 욕망과 잔인함이 드러날 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불신자에게는 '끝'이지만, 성도에게는 승리의 '시작'이며 구원의 '근거'입니다.
부활과 심판만이 누가 최후의 승자이고 패자인지 보여 줄 수 있다. - A.W. 토저
오늘의 기도
주님! 저항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으심은, 택하신 백성을 살리시려는 주님의 사랑 때문임을 믿습니다. 저의 구원을 위해 고난과 모욕을 당하신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며, 주님을 불신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하게 고백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87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오늘 본문은 예수그리스도의 처형장면을 그리고 있는 내용으로, 주님은 한 밤중 기소되어 이른 아침에 사형선고를 받고는 오전 아홉 시에 사형집행 됩니다. 십자가 밑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유대종교지도자들이 희롱하고 있었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힌 자도 같은 말로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제비 뽑는 군인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십자가 위의 두 강도, 많은 사람들의 조롱 등입니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 예수그리스도는 아침 아홉시에 십자에 못 박혔다는 기록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그렇게 간략히 기술합니다. 십자가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것은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그것에 익숙한 로마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형은 즉시로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고통이 계속 되어 결국 2~3일 후에 죽는 것으로, 사인은 결국 질식사입니다. 몸 안에 있는 모든 수분과 피를 쏟아내게 하고, 끝내 혼절하여 호흡을 멈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아무리 악한 자라도 로마시민은 예외로 합니다. 그 만큼 잔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사도 바울도 참수된 것입니다.
당시 관례에 따르면 재판관이 죄수의 이름과 그 죄목을 목판에 써서 죄수의 머리 위에 매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죄패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것입니다. 실은 예수님을 조롱하는 말인데, 또 다른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즉, 유대인들의 독립에 대한 소망을 좌절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에게 유대인의 왕은 그렇게 무능력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이지요. 두 강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고정되어 있었지만 예수님의 죄명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주님과 함께 재판을 받을 때 안 것 같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 중에 한 명은 회개하고, 주님께 구원을 간구합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 십자가 밑에 있던 자들이 그리스도를 조롱하는 말로, 왕이면 왕답게 능력을 행하면 믿겠다는 독설입니다. 곧 먼저 자신부터 구원하여 구원자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체포당할 때 ‘열두 군단도 넘는 천사를 아버지께서 보내주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익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능력자가 되십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성자하나님일지라도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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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 예수그리스도가 입었던 옷을 군인들이 제비뽑기를 하여 얻었다는 기록입니다. 이때의 옷은 복수형이므로, 필경 망토 형의 겉옷과 속옷(일반복) 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옷들을 군병들이 제비를 뽑아 가진 것을 보면 그리스도는 벌겨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십자가 처형은 알몸의 상태에서 집행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처형방법은 로마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페르시아 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카르타고인 들이 발전시켰으며, 로마인들이 완성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는 아주 흉악한 강도나 특히 반역자들을 십자가에 답니다. 로마에 반항하는 자들에 대한 일종의 본보기로, 일반 잡범 같은 경우에는 십자가에 달지도 않지요. 그런 까닭에 학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달린 두 강도도 정치범, 즉 유대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자들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이후 십자가형은 지속됩니다. 3C 중엽 로마에서 가장 심한 기독교 탄압이 있었습니다. 그 때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많은 신자들이 십자가에서 처형되어 순교합니다. 교회 내에서 그들은 영웅이 됩니다. 그러자 당시 데키우스 로마황제는 기독교인들을 그런 영웅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특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투옥된 신자들을 믿음을 포기할 때까지 고문하는 것입니다. 그 고문은 살아 있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고문입니다. 그 때 주님을 끝까지 부인하지 않고, 고문을 견뎌낸 사람은 ‘고백자’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목숨을 구하기 위해 타협한 사람은 변절자가 되고 맙니다. 특별히 기독교 지도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악랄하게 고문합니다. 그들이 변절을 하면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덩달아 주님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때 당대의 최고의 신학자이며 저술가인 맨발의 성자 오리겐도 고문을 당합니다. 로마당국은 숨만 붙어있게 하고 최고의 고통을 주는 고문을 노령인 그에게 자행합니다.
하지만 오리겐은 견뎌냅니다. 물론 그 후유증으로 박해가 끝난 뒤 결국 죽었지만 영광스럽게도 그는 ‘고백자’로 남습니다. 그가 그렇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백에 의하면 바로 주님의 십자가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직 자신을 구하기 위해 피와 물을 쏟으시며 주께서 그 모진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주님은 그것까지도 본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쏟으신 주님의 사랑은 그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그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이 귀한 생명을 결코 경시할 수 없습니다. 죄와 타협할 수도 나태할 수도 없고, 무기력 할 수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 겁날 것도 없고, 두려워할 사람도 없다고 봅니다.
초대교회 믿음의 선배들에 비하면 우리의 문제는 사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과 발에 박힌 대못을 생각한다면 그것 이상 어떤 고통이라도 우리는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초기신앙의 선배들처럼 그렇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십자가로 얻은 귀한 생명! 고귀한 삶으로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며 소리질러 조롱을 쏟아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막15:29~32)
그들은 왜 이렇게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시끄럽게 한 걸까요?
본래 겁 먹은 개가 시끄럽게 짖는 법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발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잠잠하셨습니다
본래 승리자는 평화로운 법이고, 구원은 조용하고 잠잠한 중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사30:15)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성취하여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조용히 잠잠히 참으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마26:53~54)
그래서 예수님은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와 스스로를 구원하실 수 있으셨지만,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갈1:4~5)
그들은 삯꾼이라 자기들 습관대로 십자가를 버리고 빨리 도망하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댔지만, 예수님은 선한 목자시라 자기 양 떼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2~15)
그러므로 우리가 두렵다고 시끄럽게 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용히 잠잠히 주의 구원을 바랄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4)
그리하면 당신을 위해서는 조용하셨던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는 떨쳐 일어나사 원수들을 멸하시고 온 세계에 지존자로 나타내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그들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하사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시83:1~18)
십자가로 향하는 그 길에 구레네 시몬과 함께 여자들의 큰 무리도 함께 했습니다(눅23:27).
그들이 슬퍼 우는 것을 돌아보시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에도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준엄하고 두려운 심판임 임할 것을 증거하십니다.
그 옷은 벗겨져 수치를 당하고 십자가 못 박혀 고통받고 있을 때에 많은 이들이 욕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고 스스로 구원하라고 희롱했지만 주님께서는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 그 죄를 용서해달라고(눅 23:34)”고 부르짖으셨습니다.
하지만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번의 말씀 중 자신의 고통을 표시한 것은 오직 “내가 목마르다(요 19:28)”고 하신 것뿐일 정도로 그에게 맡겨주신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들의 반역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삼키시고 그 심판받아야 죄인을 대신하여 자신의 몸으로 내어주시며 그 죄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좌우에 매달린 죄인 중 한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의 의로우심을 고백하며 그 나라가 임하실 때에 기억해달라는 간청에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1~43) 하시며 마지막 한 영혼까지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진정한 증인의 삶은 주님과 같이 두렵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고 유혹이 있을지라도 그 약속을 배반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사랑의 삶은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며 그 몸을 대신 내어주시는 온전한 섬김입니다. 온갖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삶을 흔들고, 악한 영이 그 진리를 가리려 애쓸지라도 오직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안전히 거하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4-32절 십자가에 달려 조롱당하십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 제비뽑아 나누고(시 22:18), 머리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달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는 것은 사탄이 주님을 광야에서 시험할 때 한 말이기도 합니다(참조. 마 4:5-7).
끝까지 사탄은 십자가의 길을 훼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실 수도 있지만, 그 모든 희롱을 다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31절)다는 희롱의 말은 역설적으로 주님의 사명을 드러냈습니다. 그분은 다른 이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죽이신 분입니다.
기도
저희를 구원하시려고 온갖 조롱을 견디신 주님의 큰 사랑을 잊지 않게 하소서.
2월19일 동인천 지하상가
1.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22-25절)
예수님께서는 해골이라고 불리우는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못박는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분인줄 모르고 그분을 자신들의 손으로 못박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가지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예수님의 옷을 가져 갈 사람을 결정하는 일을 행하였습니다. 아무런 죄 없이 우리의 구원주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벌레만도 못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장 낮은 자리인 십자가의 자리까지 내려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인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묵상하기
내가 받은 구원의 가치를 세상의 하찮은 것과 바꾸고 살지 않는가?
2.깨닫지 못하는 사람들(26-32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현장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고 3일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한 말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그들은 지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보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 건물을 헐겠다고 말한 그 말로 인하여 주인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실수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혹시 이들과 같은 실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헐어버리고 싶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실수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서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께서 헐어버리고 싶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말씀요약
군인들이 제삼시에 예수님을 못 박고 제비 뽑아 그분의 옷을 나누고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씁니다.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모욕하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그가 남은 구원하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며 희롱합니다. 양편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예수님을 욕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15:24~28)
예수님은 부당한 십자가형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아무 저항 없이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로마 군병들은 서로 예수님의 옷을 차지해 작은 이익이라도 얻으려고
제비뽑기를 합니다. 예수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죄 패가 달려 예수님이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됨을 알립니다. 또 악한 죄를 지은 강도들이 의로우신 예수님 좌우편에 나란히 못 박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과 오류의 연속입니다. 어떠한 정당성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잠잠히 순종하고 인내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십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부당한 십자가를 잠잠히 받아들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 죄를 대속하시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묵상할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예수님을 향한 조롱과 모욕(15:29~32)
완악한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보고 안타까움이나 연민 대신 멸시와 분노를 드러냅니다.
무기력하게 매달려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착각하며,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모두 부정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라며 십자가에서 당장
내려와 보라고 조롱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주님을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신은
구원할 수 없는 자’라고 규정하며, 능력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라고 비난합니다. 양쪽에 함께 못 박힌 강도들조차 예수님을 욕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무지와
시기심과 잔인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극악한 인간의 죄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무효화하지 못합니다.
- 묵상 질문: 십자가 주변 사람들은 각각 어떻게 예수님을 희롱했나요?
- 적용 질문: 믿음 때문에 조롱이나 공격을 받고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십자가 현장 속에서
잠잠히 인내하셨던 주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모욕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답게 말씀대로만 살아가도록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입니다(24~32절).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가지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제 삼시에 강도 두 명과 함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조롱이 섞인 죄패도 붙여집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욕하며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로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이스라엘 왕아,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우리가 보고 믿도록 해 보아라...’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에 매달린 두 사람도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십자가는 당시 가장 극악한 죄를 범한 자들에게만 행해졌던 사형 도구입니다 그런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사람들의 희롱과 모욕이 이어지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난과 조롱을 모두 감당하심으로 죄인 되었던 나와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내가 받는 조롱과 모욕은 나의 죄와 욕망과 욕심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받는 조롱과 수치를 기꺼이 받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구원을 완성하신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나의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 십자가를 통해 베푸신 주님이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하므로 진정한 왕이신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과정 속에 당하는 고난을 온전히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막 15:16~32절)..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그 구원의 계획을 온전히 그 육신으로 이루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새 생명을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흔들림 없는 그 구원의 반석 위에 온전한 믿음을 세우고
세상을 향해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하늘의 창고를 열어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치유와 회복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여호와의 사랑과 공의를 바로 세워주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모든 악독과 거짓을 버리고
지금까지 허락하신 그 은혜에 합당하게 쓰임 받는
거룩한 통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