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영산강가의 가야산에서 개산천제開山天祭를 올리다.
병오년 가을인 2026년 가을 10월 10일 나주 영산창에서 나해철 시인과 나주에 대한 토크쇼를 마치고 하룻밤 머문 뒤 구름 자욱한 하늘을 바라보고 어두컴컴한 가야산을 올랐다.
천천히 오른 가야산 정상에서 바라본 나주, 전주와 나주를 합쳐서 전라도가 된지, 천여 년, 그 나주가 어둠 속에서 하나 둘 살아나는 불빛에 의해 살아나고 있었다.
후백에의 견훤의 왕건과 사투를 얼렸던 나주, 킹메이커였던 정도전이 9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나주, 김시십과 황진이, 백호 임제의 이야기가 서리서리 서려 있는 나주를 바라보며 영산강을 걸었던 그 2000년 대 초를 생각했다.
상사바위의 전설
나씨촌羅氏村으로 알려져 있는 택촌마을은 안영산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나주 나씨 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일군 마을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조선조 때 김좌근金左根의 첩인 나합이 태어났다. 강 건너 진포동津浦洞에 상사바우가 있었다. 상사바우는 일명 아망바우, 암암바우, 엄앙암이라고 불리는데, 진부촌 동쪽 영산강(도산천) 가의 가야산(시 산천)에 있는 바위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인 이곳에 옛날 가야산 건너 삼영동 택촌에 사는 아랑사阿郞蛇라는 총각 어부에 얽힌 전설이 남아있다. 하루는 총각이 고기잡이를 하는데, 건너 쪽에서 어떤 여인이 슬피 울고 있으므로 가보았다. 그는 아비사阿비蛇라는 처녀로서 홀로 된 아비를 모시고 있는데, 물고기를 먹고 싶다하므로 강가에 나왔으나 고기를 잡을 길이 막막하여 울고 있다 하였다. 총각은 자기가 잡은 고기를 다 주었는데, 이들은 이 인연으로 가깝게 되어 저녁마다 이 바위에 와서 만나므로, 진부촌 청년들이 훼방을 놓아 아랑사가 이 바위에서 떨어져 주었다. 그 뒤에 아비사가 저녁마다 이 바위에 나와 구렁이와 노는 것을 보고, 또 마을 청년들이 훼방을 노니 아랑사마저 그 구렁이와 함께 빠져죽었다. 그 뒤에 이 마을 청년들이 시름시름 병으로 죽어가고, 두 구렁이가 밤마다 나타나므로 마을에서 매년 씨김굿을 지내어 화를 면했다 한다.
상사바우는 바라만 보아도 너무도 경치가 빼어나다.
상사바우 앞에 가자 낚싯대 몇 개가 드리워져 있는데 주인은 점심을 먹으러 갔는지 기척이 없다. 그럴 것이다. 고기도 물리지 않는 한낮 영산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면 몰라도 무엇 하러 강을 지키고 있겠는가?
영산강 삼백 오십리 길에서도 절경 중의 절경이 이곳 상사바우가 아닐까? 이곳 삼영동의 염창이 있던 영창호 옆에는 불이 자주 난다는 불난산(121m)이 있고 염창굴까지 영산강 물길이 들어왔다고 한다.
상사바위 뒤쪽에 있는 가야산 중턱에는 창랑정滄浪亭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버드나무가 있던 진부촌 앞에는 삼영동 택촌으로 건너던 창랑진 나루가 있었다.
그런 역사가 서린 가야산 산 정상에서 몇 사람 보여 천제를 지내고 나해철 시인이 고천문을 낭동했다.
”나주 영산포,
개산 높은 곳에서
하늘에 고합니다.
오늘 영산강가 사람들이 그 옛적 선조들을 따라 개산 천제단에 올랐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1980년대에서 1920년대까지 무수히 올렸던 수많은 씻김굿을 떠올렸다.
덕진공원에서 견훤대왕 씻김굿, 진안 죽도에서 정여립 장군 씻김굿, 1899년 황토현에서 동학농민혁명위령자들을 씻김굿, 지리산 토벌대와 빨찌산을 위한 지리산 씻김굿, 변산에서 용왕 굿, 그 때 함께헸던 무수한 사람들ㅇ, 60여명의 무당들,
그리고 황토현문화연구소의 거성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세월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 언젠가 개산 천제를 보냈던 이 시간들도 추억이 되겠지.
이 행사를 주관한 나주학교 홍양훈과 함께 했던 모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2026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