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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산책하는 길옆에, 벽을 따라 버닝부쉬가 소담스러운 모양새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초록색은 역시 언제 보아도 안정감을 주며 신선한 희망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러나 그 초록색이 억지로 안정감을 주기위한 거짓 색깔이었다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가을날이었다. 버닝부쉬 초록색 잎사귀들 속으로 시뻘건 색소가 자리 잡으며, 검붉은 잎사귀들로 바뀐다. 진한 초록색과 진한 빨강색이 함께 들어박혀 어우러진 색깔은 보기에도 섬뜩할 만큼 공포를 자아낸다.
강한 개성으로 일사천리 출세한 오만한 며느리와 평생 피나는 노력으로 결국 성공을 쟁취한 시어머니의 한판승부를 바라보는 것 같다. 대원군과 민비를 옆에서 지켜보던 대신들도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 신앙심이 탁월한 종교 지도자의 심장에 혹독한 악마가 침투하여, 깊숙이 뿌리박고 앉아있는 형상 같다.
여름 내내 기다리던 임은 가을이 되어도 결국 나타나지 않았던지, 버닝부쉬가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초록색 평화로 가장하며 봄여름 견디어왔던 임을 향한 붉은 색소, 더는 참을 수 없어 속을 드러내기 시작하나 보다. 초록색 이파리마다 붉은 색깔이 우두둑 툭툭 튀어나온다. 짙은 초록색과 짙은 빨강색을 함께 끌어안고, 괴로워 뒹굴며 가을을 맞는 버닝부쉬는 그 동안 얼마나 갈등해 왔으며 오죽 아파 왔으랴? 시뻘겋게 점 박히는 버닝부쉬가 보는 이의 가슴에 잠자던 예님을 불러내고 있다. 그리움도 야속함도 퇴비 속에서 진토화한 지 오래됐단다. 버닝부쉬야, 그 기억에 불씨 당기지 말아다오. 젊은 날의 꿈과 사랑은 해묵은 열정인데, 네 고뇌 앞에서 보는 이의 아픔 고개 들게 하는구나. 아, 긴긴 여름동안 얼마나 홀로 애타게 기다리다 지쳤으면, 버닝부쉬는 가을이 되면서 서운함을 온 세상에 검붉게 공개하고 마는가? 울어라, 버닝부쉬야. 괴로우면 울어라. 서러우면 울어라. 눈물은 울고 싶을 때 울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인간들은 ‘남자는 울지 않는다,’ 는 족쇄를 채우고, ‘어른이 울면 천박스러워 보인다,’라는 동아줄로 스스로를 묶어, 스트레스를 자초한단다. 너는 목청 높여 실컷 울어, 온갖 고뇌를 모두 토해 내거라. 지켜보는 이의 가슴속에 굳어진 앙금, 네 울음 타고 씻어낼 수 있도록 네가 큰소리로 울어다오.
버닝부쉬의 아픈 가슴은, 기다리던 임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남아있던 초록빛도 함께 놓아버린다. 놓임 받은 초록색이 서서히 증발해 버리면서 빨간색이 그 자리를 잽싸게 점령한다. 울면서 토해낸 고뇌 속에 섞여 초록색이 없어지니, 붉은 색은 더욱 붉어진다. 가을은 깊어가고 검붉던 잎사귀가 빨갛게 더 빨갛게 버닝부쉬의 본마음을 드러낸다. 더 이상 속마음을 감출 필요도 없고 참기도 싫은 모양이다. 그리움이 상처 되어 검붉게 멍들었던 심장은 새빨갛게 밝아지며, 애타던 마음도 누그러지는가 보다. 기다리던 임을 완전히 포기했는지 서서히 생기가 도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움을 훨훨 불살라 소각시키며, 마음을 정리하고 가슴 깊은 부분까지 깨끗이 비우고 있는 것일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버닝부쉬는 그리움을 모두모두 태워 없애며 가슴속의 그 임을 온전히 잊어가고 있다. 그래 버닝부쉬야. 잘 하였구나. 깨끗한 마음에서 아름다운 색깔이 나오며, 순수한 마음에서 고귀한 인격이 숨 쉬게 된단다. 원래 네 색깔이 붉은 색이었으니, 더욱 붉게 빛나라. 앞으로는 초록색인 척하지 말고, 괴로워하지도 말아라.
놓지 못하던 임 생각이 완전히 불타서 소멸돼 버린 뒤에야, 그 아프던 가슴은 루비처럼 아름다운 색깔로 승화하게 된다. 이제야 그 순수한 빨간색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고, 아름다움의 절정임을 버닝부쉬 스스로도 인식하게 된다. 더 아파할 필요가 없으니 버닝부쉬의 가슴으로부터 사출돼 나오는 기쁨은 보는 이를 만족하게 한다. 정령 아름다움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지켜보던 이에게도 알려준다. 진주가 고통과 인내로 얻어지듯, 이 빨간 아름다움은 목 터지는 기다림, 원망, 가슴 찢어지는 포기 뒤에 오는 안정에서 얻어진다.
이제 가을이 기울어, 눈과 된서리 자주자주 스쳐 가면, 보석 같이 빨갛게 빛나던 이 잎사귀는 연한 분홍색으로 세련되어 가리라. 더 이상 애타게 기다리다가, 속병 생기는 일도 없을 것이며, 아름다운 루비 빛으로 행인의 눈길을 낚아채고 싶은 욕심도 사라지리라. 그때는 인생에 도통한 듯, 환하게 분홍색 미소를 지으며 젊었던 날들을 회상하리라. 그립던 임은 영영히 만날 수 없었지만, 그 임이 찾아왔다손 치더라도 인생의 행로가 바뀌지는 않았었을 것임도 알 것이다. 어차피 최후는 동일한 것이다. 일생이 여물어 배어 있는 분홍 잎 하나하나를, 하얗게 쌓인 눈 위에 똑똑 떨어뜨리며, 버닝부쉬는 아름다웠던 생의 흔적 담담히 보여주리라.
1). 순수문학 소설 당선으로 등단(2006년)
2).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당선(2007년)
3). 한국산문 수필공모 당선(2010년)
4). 경희 해외동포 소설 우수상(2010년)
5). 서울 문예창작 소설 금상(2013년)
6). 재외동포 소설 우수상(2014년)
7). Chicago Writers Series에 초청되어 소설 발표 Event 개최(2016년)
8). 국제 PEN 한국 해외작가상(2016년)
9). 해외 한국소설 작가상(2023년)
10). 제 4회 독서대전 독후감 공모 선정 소설(2023)
11). 한국문협 회원, 국제 PEN회원, 한국 소설가 중앙위원
12). 시카고 문인회장 역임.
13). 시카고 문화회관 문창교실 Instructor
14). 현 미주문협 이사
저서: 단편소설집---“발목 잡힌 새는 하늘을 본다” “소자들의 병신춤” “달 속에 박힌 아방궁”
중편소설집---“나비는 단풍잎 밑에서 봄을 부른다”
수필집---“여름 겨울 없이 추운 사나이”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눈물 타임스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