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전설 - 마을 지킴이, 당나무
농촌 마을의 입구에는 거의 예외 없이 노거수가 있다. 마을 사람의 쉼터가 되어 있지만 동제를 지내는 산성한 장소이기도 하다.
팔공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서 삶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의 터전인 팔공산 아래 마을에도 우람한 둥치를 자랑하는 나무가 마을 지킴이의 임무를 맡고 있다. 이 나무들은 오래 동안 마을 사람들과 고락을 같이 해 오므로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슬플 때나 괴로울 때마다 찾아와서 넋두리도 하고 하소도 하였다. 나무는 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은 자신이 겪은 일이 되었고 마을 사람의 슬픈 사연은 자신의 사연이 되었다. 마을의 일들은 세월이 흐르면 전설이 되어서 나뭇가지에 잎이 메달리듯 하나씩, 하나씩 품어 안았다. 마을의 역사가 스며있는 나무는 어느덧 마을을 지켜주고 감싸주는 지킴이가 되었다.
경산군 와촌면 동강 2동 마을 앞에는 수령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 된 느티나무가 있다. 약 200년 전 쯤의 어느 날 밤에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워서 밤을 꼬박 지셌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은 마을 앞 빈 터에 모여 들었다. 이처럼 심한 풍우를 겪어보지 못 하였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산신령이 노하여서 마을에 재앙을 내린 징조라고 두려워하였다. 두려움은 현실로 나타났다. 마을에 살고 있는 노부부의 세 살짜리 아들이 지난밤에 산짐승에 물려 갔다고 하였다.
산신령의 노여움 때문에 마을에 나쁜 일이 생겼다면서 사람들은 두려워서 떨었다. 그때 아이를 잃은 노부부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났다. 마을 앞에 느티나무를 심어서 그 나무에 빌어라고 하였다. 이 부부는 마을 앞에 느티나무를 심고 정성을 다하여 가꾸었다. 나무를 돌볼 때는 언제나 마을에서 재앙을 거두어 가 주십사 하고 빌었다. 다시 마을에 평화가 왔다. 이후로는 해마다 마을 사람이 이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 이 제사는 1972년까지도 계속되었다.
팔공산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조그만 일도 산신령이 일으켰다고 믿었다. 마을의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바로 당수나무에게 일어난 일이 되었다. 팔공산을 기대어서 살고 있는 사람은 팔공산과 더불어 숨을 쉬며 살고 있다.
당수나무는 신목이기 전에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징표이다. 농경민에게 자연의 변화는 바로 농사를 짓는 지침서이다. 충북 음성에는 ‘개나리가 피면 보를 보수하고 못자리를 만든다.’라고 한다. 전남 고흥 지방에서는 ‘오갈피 나무에 잎이 피면 보리밭 김을 메야 한다.’라고 한다. 자연의 변화를 나무의 변화를 통하여 알고 농사를 짓는다.
마을의 촌노들은 오래 동안 나무와 생활하다 보니 동네 앞에 있는 당수나무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고 농사를 짓는 방법까지도 알아낸다. 나무의 잎이 꼭지부터 피는가, 아래 가지에서 먼저 돋는가를 두고 농사짓는 방법까지도 예견한다. 말하자면 천수답과 수리답의 물관리를 예측한다. 장주근은 말하기를 잎이 피는 양상은 물이 풍족한가와 부족한가에 따라서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촌노들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것을 촌노들은 자신의 지식이라 하지 않고 당나무가 예시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당나무에 동제를 지낸다.
팔공산 아래 마을에는 수도 없이 많은 당나무가 있다. 칠곡군 가산면 학산동에는 마을 소유의 느티나무가 당산목 역할을 한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동제를 지낸다. 칠곡군 동명면 구덕동의 구지마을에는 수령이 300년은 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도 당산목으로 정월 보름이면 마을 사람이 모여서 동제를 지낸다. 칠곡 동명면의 남원동 당산나무, 영천 화산면의 용평리 가죽나무, 영천 신령면 부산동의 느티나무도 당산목으로 동네에서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팔공산 아래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수령이 오래 된 노거수를 당산목으로 정해 두고 동제를 지냈다. 지금은 제사를 지내는 것을 중지하였더라도 마을의 쉼터가 되어 있다.
신성이 깃든 나무는 마을에 우환이 생기거나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미리 예고를 해준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신의 영역이다.
영천의 신령면 부산동에 있는 느티나무는 임진왜란 때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1910년에 한일합방 때도 울었다. 6.25 전쟁이 일어날 때도 크게 울었다고 함으로 나무의 신성은 오늘기지도 줄어들지 않았다.
왜군들이 경주성을 함락하고 영천을 거쳐서 신령으로 북상한 길이 왜군의 진격로이다. 신령 지역에 왜란과 관련이 있는 전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어쨌거나 신령은 왜란으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재앙을 몸으로 겪으면서도 신령님을 원망하지 않고 미리 예고를 해 주었는데 방비를 하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신령님은 예고를 해 주었는데도 어리석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였다며서 스스로를 질책하였다. 이것이 마음 편할 날 없이 살고 있는 대중들의 자기 치유법일 것이다.
나무의 신령함을 나타내는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살아나서 잎이 피더라는 유형의 전설이다. 아마도 재생과 부활과 관련 있는 전설일 것이다. 재생과 부활은 농경생활에서 생겨난 전설 유형이다.
은해사 운부암의 대웅전 앞 산의 기슭에 큰 보리수가 한 그루 서 있다. 전설에 의하면 운부암을 창건한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에ㅓ 잎이 돋아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무이다. 노거수는 원시시대 이래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전설을 남기면서 신성함을 지키고 있는 수목신앙의 보기이다.
아주 옛날부터 나무는 우주의 상징으로 여겼다. 나무의 뿌리가 박고 있는 땅의 세계와 나무의 둥치는 땅 위에 살고 있는 지상 세계 즉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상징한다. 저 위로 한껏 팔을 벌리듯이 하고 있는 가지에서는 싹이 피어난다. 잎이 무성하게 피는 가지는 하늘의 상징이다. 이것은 고대인들이 우주를 하늘(天), 땅(地), 사람(人)의 삼계(三界)로 나누어 본 사유세계를 반영한다.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삼재사상(三才思想)을 반영한다.
봄에 싹이 돋는 것은 우리의 태어남을 상징하고, 여름의 무성한 잎은 우리의 현존세계를 뜻한다. 겨울이면 잎이 떨어지므로 죽음의 세계를 의미한다. 봄이 신기하게도 다시 싹이 돋는다. 다시 여름, 겨울이 반복하여 돌아온다. 이처럼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이다. 자연만이 아나라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도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한다.
나무는 우주의 한 가운데에 우뚝 서서 지하세계와 현존세계와 죽음의 세계로 오르내리는 통로가 된다.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우주목의 상징이다.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는 성소의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전래 동화에는 호랑이에게 쫓기던 오누이가 나무를 통하여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해돠 달이 된다.
이처럼 영혼이 오르내릴 수 있는 통로의 개념은 무당의 ‘신내림’ 나무가 된다. 신내림의 뿌리를 찾아보면 단군신화는 천상의 신이 지상의 태백산 정상에 있는 신단수로 내려온다는 이야기이다. 신단수는 바로 성스러운 나무가 있는 곳이다. 신단수(神壇樹)는 신을 모시는 단이 있고, 당나무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마을 입구에 있는 당나무는 신수이다. 당나무 아래에 쌓여 있는 돌탑은 신단이다. 이곳은 신이 하강하는 곳이기도 하고, 또 영적 존재가 하늘로 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피어난다. 인도는 나무 신이 바로 풍요의 신이 된다. 잎이 무성해지는 것이 이유이다. 또한 여성의 출산성 때문에 약시라는 여신이 풍요의 신이기도 하다. 풍요를 상징하는 도상에는 약시상이 나무의 가지를 잡고 있는 것으로 하였다. 약시상이 불교에 들어와서 관음보살이 되었다고 한다. 불교의 보리수도 인도에서 풍요를 상징하는 나무에서 유래하였다. 마을 앞의 당산목에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살펴 본 것에 의하면 나무는 이 세상을 하늘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이다, 풍요와 다산을 주재하는 신적 존재이다. 생명의 태어남과 치유의 능력도 가졌다. 이런 이유가 나무가 기도처가 된 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행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승이나 솟대, 막돌탑의 경우는 신앙의 표시로 금줄을 드리우므로 기도처임을 금방 안다. 당산나무는 조금 다르다. 평소에는 마을 사람에게 그늘이나 드리워주는 마을 쉼터이다. 음력 정월 보름이나, 동제를 앞두면 나무에 금줄을 두른다. 이때는 일상적인 나무의 의미를 벗어나서 신령한 나무가 된다. 이른바 동네의 당수나무로 전환한다. 그러나 동제 기간이 끝나면 나무의 종교성은 없어지고 다시 동민들의 친근한 이웃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정자나무로 돌아가서 마을 사람의 쉼터가 된다.
당수나무를 베는 일은 크나 큰 금기가 되어 있다. 신을 모욕하는 행위이므로 신의 보복을 당한다는 사상이 팽배해 있다. 나무를 해치는 사람이나 베는 사람은 신령의 벌을 받아 죽는다는 전설이 많다. 이러한 금기는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아들로 이어진다. 금기는 마을에 전설을 만들어서 후대 사람이 더더욱 나무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한다. 특히 일제 시대에 미신타파라면서 당수나무를 베어낸 일본 순사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일본인이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우리읜 전통 민속을 많이 말살하였다. 그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심이 이런 유형의 전설을 만들었을 것이다.
전남 광양군 장동리에 있는 느티나무도 신령의 부산동 나무처럼 임진왜란 때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에 들어온 왜군이 나무에 올라가서 가지를 잘랐다. 그때 갑자기 나무 아래에 있던 왜병이 피를 토하면서 모두 죽어 버렸다. 그 후로는 다시 왜군이 마을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이처럼 나무가 울면서 예고를 한다든지, 금기를 어기면 벌을 준다든지 하는 여러 이야기는 결국 마을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귀결된다.
지금은 민간 신앙의 자리를 대신하여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지배한다. 그러나 우리의 토속 신앙은 여전히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안동댐으로 들어가는 길의 한 복판에 당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교통사고도 여러 번이나 있었다. 댐을 준공할 때부터 베어내려 하였으나 나무를 베는 일군을 구하지 못 하여 최근까지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몇 년 전에 그 나무를 베어냈다. 당신의 보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많다. 옛 문헌의 기록처럼 북치고, 노래하고 충을 추면서 의례를 올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동제는 유교식 의례로 바뀌었다. 제사 의례도 동네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러나 거의 공통적인 점이라면 제물로 돼지머리를 바치는 것이다. 돼지머리에 대한 문화적 전통을 찾아가면 5000여 년 전의 중국 홍산문화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밥보다는 떡이 더 우위이다. 산신제를 지낼 때는 밥보다 떡을 올린다. 떡 중에도 흰색이 나는 백설기를 쓴다. 이것은 백산(白山)을 상징한다. 떡도 3의 의미를 숭상하여 3되 또는 세 홉의 멥쌀로 만든다. 떡을 쌓는 것도 다섯 켜, 일곱 켜, 아홉 켜로서, 반드시 홀수 층으로 쌓는다. 동리에 따라서 천신제는 백설기를, 지신제에는 시루 떡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마을 굿이나 동제는 제사 의례로 끝내지 않는다. 음복을 하여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풍물놀이를 하면서 그 날 하루는 축제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