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나 스스로의 삶을 정함에 있어서 직접
부딛고 땀흘려 체험과 경험을 정직하게 해온
사람이 아니면 그런 사람들의 억지나 거짓 모션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앞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고
화려하고 삐까삐까한다 해도 무엇으로든 첫발부터
제대로의 올바름으로 배우고 걷고 해온 자들이 아니면
그 속에 더 깊이 들어가보면 가볼수록 아무리 긍정으로
봐주며 대해주려 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온갖 불의와 모순으로 도배가 된 연속만을 봐왔기에,
현제는 더욱 그런 차원에서 일정한 시간동안을
순도 높은 쌍안경과 가슴으로 더 신중하고도 세세하게
지켜본다. 단순히 일확천금을 노릴수도 없고 온갖
속임수나 어거지 조작과 휘두름만 휘두르며 가서 되는
그런 일로 온게 아니었기에 아마도 은연중에 이런
조금은 별난 잣대를 지니게 되었으리라. 그래서 또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의 일들은 모두로 힘이든다. 더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을 타인이나 무엇에 불평이나
하소연이나 하고 있다고 해 어떤 해결과 답도 결코
나오지 않는다는 걸 최소한 지금은 안다. 그만큼
나역시 직접 부딪고 당코 체험하며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해답에 허실이나 거품이 전혀
없다. 나는 그래서 적어도 내가 해온 일에서만은 허황
함이나 부끄러움을 달지 않았음을 전해줄 수 또한
있다. 이런
나의 일들로 어언 사십년 가까운 시간을 모든걸
바쳐 온몸으로 비와 태풍 그리고 눈보라 속을
뒹굴었다. 날마다 그날이 그날인 듯 보이고
똑같은 옷을 걸치듯 같은 모양과 모습으로만 온듯
보이는 그 세월이 실제로는 무엇 하나도 전혀 같지
않은 모든 순간에서 가능한 그 답과 문제를 날마다
스스로 부딪고 마주치며 찾으려고 한다. 이직도 나는,
그래서 최근엔 아주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마주하는 모든 문제와 일들에 어떤 면역성과
스스로 곪은 부분을 개복해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더하여 그 분야 마다와 그런 저런 사람들 모두의
특성과 전반을 차라리 빤히 알면서도 그냥 무디게 바라
봐주는 한층 '맹'한 사람의 여유와 빈 공간까지를 여기
저기에 달게 되었다.
이렇게 바라보게 되니 편하다 매사가,
열흘 전쯤 사온 책속의 주인공들 역시 그 직업도,
특성도, 스스로 지향하며 살아온 삶도 모두가 달랐다.
성공에 이르기까지 그들도 거의 반세기를
출발에서 마무리까지에 이르는 그 과정과 완성까지의
모든 삶을 하나의 책속에서 마치 일주간이 듯
한 7명 정도의 시작과 마무리 단계까지를 바라보다가
보니 확실히 저마다 죄다가 다르단 걸 어느만큼은
궤게 되었다.
이번의 대상지는 (나호미)씨로
20대에 연주단 단원으로 입단해 활동해오다
다국적 요리점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리에
관심을 가져 (요리 연구가)까지를 겸하며 살게된 또
다른 한 여성의 의식과 스타일의 얘기를 옮겨보고자
한다. 어차피 100세 시대에 접어든 현대인에게
아름다운 성공과 서로 다른 삶의 이해와 서로 배움은
누구나 모두 필요할 것이기에,
그녀는 더할나위 없이 홀가분하게 인생을 살아가길
원하던 발랄하고도 묶임을 싫어하는 매우 활동적인
여성이였다. 책 (소소한 기분과 소소한 레시피) 며
(오늘도 평범하게 밥을 먹는다) 등 레시피부터 에세이
끼지 다수의 저서와 공저를 펴낸 이다.
내가 그녀에게 좀 다른 각도로 매력을 느낀데는
이유가 있다. 살아가는 자세와 그 의식수준이다.
상세한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서두로
그녀는 어린 10세 때부터(세상사의 근본을 생각하자)
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으며 그 생각은
(제롬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ㅡ호밀밭의 파수꾼)의
영향을 받아 대학에서 영미문학을 선택했지만 어느 날
학생운동 여파로 인해 대학이 봉쇄되고 말았다는 것.
특히 친구들중에는 (기성사회의 통념과 제도를 부정하는
히피들이 많았고 12년간이나 알며 지낸 남자친구 또한
그런 쪽 삶을 택한 사람이였다는 것. 이 무렵의 히피문화
(그 중에서도 그런 사회체제에 얽메이지 않고 지구 전체의 삶에 눈을 돌려서 가자는 사상이
그녀(에다모토)씨의 삶에 큰 뼈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친구들의 권유로 연극을 시작한것은 대학 3~4
학년 때인데 그 때부터 즐곧 연극의 길을 걸어 20대
중반 이후에는(전형극장 : 転形劇場)의
단원이 되었다고. 또 같은 무렵 도쿄 나가노(中野) 구에
있는 다국적 레스트랑(다양한 국가와 지역의 식문화
요소를 조합한 요리를 내는 음식점-카르마)의 주방에서 그런 여러 음식들을 배우며 일하기 시작했다른 것.
이렇게 연극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생활을 무려
8년 이상을 했을 무렵 (극단이 해체되고 말았는데)
바로 직전 지인의 소개로 어느 (잡지사)일을 맡게되어
그 인연으로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무언갈 시작한적은 없다고 한다. 연극 또한 큰
뜻을 두고 했던것도 아니고 또 어떤 목표가 있어 요리
또한 한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
우연히 흘러가는대로 했을 뿐인데 (실은 그래서 외려
계속 하게된것인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이상(理想)이
있으면 현실과 격차가 생기기 마련이기에 그러면 부딛는
것마다 금새 모두가 괘로워져서 차례차례로 그만둘 것
같았는데 그런 모든것에 지나치게 안달과 집착을 않고
그냥 순리로 해가다보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커도)
차츰 어느 쪽 일이든 스스로 할 수있는 일과 없는 일을
알게 됨으로 어느날엔 결국 그런 일들에 정확한 판단과
함께 잘 할 수있게 되더라는 것이죠.
아마 과정과 경험을 통해 점차 노련해져가며 생각으로든
일의 성숙으로든 스스로 깊은 성찰을 하게된것은 아닐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만, 더구나 그렇게 해 자리 잡아간
일들은 거듭 더 반복을 해가면서는 은연중에 잘할 수
있는 일로 잘못 할 것 같은 일까지가 뒤섞혀 조금씨
굴러가더라는 거죠. 마치 (말똥구리)처럼 '으샤' 하고
굴리면 밑에 있던것이 위로 나오고 '영차'하고 다시
굴리면 위에 있던것이 다시 밑으로 가는데 그러다보면
어쨌거나 한쪽 방향으로는 조금씩 나아가 지더라는 거죠
가만히 보니 그녀는 매우 냉철하고도 정확한 삶을 가려내어 밀며 가는 사람으로 상당히 지혜롭고 학구적인 구석이 많다는 걸 켓치하게 되었지요. 사실 그녀 말처럼
(인생이라는 게 스스로가 정한 꿈까지 일직선으로 가기는 거의 불가능 함을 미리 궤고있는 사람인 듯.
굳이 단번에 한 방향으로만 정히지 않고 자신에게 맞게
조금씩 나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그녀는 당차게 말한다
또 그녀는 사람들이 미리 길을 정해놓고 그 길을
가려고만 기를 쓰기 때문에 만족도와 자궁심이 외려
낮아지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저도 아주 좋은 발견을
이 얘기에서 하였는데? 그녀의 말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아이가 시험에서 50점을 받아오면 엄마는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하고 그 다음 70점을 받아오면 아직 부족해 조금만 더 하고 말하는데 이 착한 아이가 노력해서
80점이 90점이 되고 마침내는 100점을 받아오면
이번에는 반에서 100점 맞은 애가 몇명이나 되니?)
하고 묻는다는데
이래서는 자궁심이나 행복은 영원히 결코
올 수가 없다는거죠.(무엇보다 모든것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삶) 그러니까 (자기다운 삶)을 살려고
한다면 지나치게 타인이나 세상에 끌려다니지 않고도
개성있는 삶과 홀가분하고도 자유로운 삶으로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차분하고도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거죠.
그녀는 종종 텔레비젼에 자신의 일로 자주 출연하는
편이지만 거기에 매달려 자신의 정체성을 그곳에 두지않으려 조심한다고 하네요. 언젠가 그렇게 가던 일이
갑자기 멈추어 서게 되었을 때 공허나 허무가 들지않게 미리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는 언제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칭찬이나 질타, 이들 어느
쪽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오직 본질과 내용에 기쁨을
두면 누가 뭐라든 늘 편안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일리있는 말입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면 만사는
마음 가짐과 순리의 삶으로 다져가는 일인 듯
보입니다. 또한 여기에도 욕심을 비우고 스스로
내려서있는 삶이 아주 작은 것과 단순하고 기본인
것들속에서 더 큰 행복과 편안함을 주며
알게 하고 있는 듯 보이니
참으로 신비스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