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yilbo.com/sub_read.html?uid=341543§ion=sc30§ion2=
어느 날 땅에 떨어져 있는 종잇조각을 줍다가 허리가 삐끗해서 2주일간 꼼짝 못하고 고생을 했다. 칫솔로 이빨 닦다가 고개를 핑 돌리는데, 목이 삐끗하여 이틀 동안 중병환자 노릇을 했다. 재미있으라고 계단에서 폴짝 점프를 해 본다.
“으흐, 이게 뭐니?”
높은 데서 뛴 것도 아니고, 한 단계 계단 위에서 단지 두발을 함께 짚었을 뿐인데, 왜 공연히 발목이 이렇게 시고 아플까? 뭐가 잘못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몇 주 동안 쩔뚝발이 행세를 해야만 했다.
아내가 부엌에서 “꼭 나는 당신이~ 꼭 나는~” 노래를 부르며, 내가 필요하다고 애타게 찾는다. 나는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서라도~” 응답 송을 부르며 부엌으로 내려간다. 김치 병을 열어 달란다.
“그럼. 이런 일은 내게 맡겨.”
힘껏 연다. 기를 쓴다. 고무 밴드를 병뚜껑에 감아 가지고 악을 쓰고 돌린다. 진짜 꽉 잠겼다. 늙은 신랑은 김치 병 열어 달래려고 밥 먹여 준다는 말이 있다. 이거 못 열면 진짜 무용지물이다. 결사적으로 연다.
“으라싸싸, 야아악~~. 아갸갹!”
김치 병은 열렸지만, 이거 정말 큰일 났다. 김치 병뚜껑 돌릴 때, 허리가 삐끗했다. 2~3주 동안 길길 대며 엉길 생각을 하니 울고 싶다.
혹시 누가 늙어 보인다고 말할까 봐, 도서관에 갈 때, 젊은 색깔의 샤쓰에 슬림 청바지를 입었다. 젊은 척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체구가 크고 당당한 젊은 동양인이 반대 방향으로부터 다가온다. 웃으면서 “하이” 라고 말하려 하는데, 그 젊은이가 먼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절을 한다. 나는 깜짝 놀라서 대답도 못 한 채, 덩달아 나도 얼렁뚱땅 허리를 숙이며 지나간다. 분명히 처음 본 젊은이다.
“화아, 신기하네요. 이 미국사회의 온갖 인종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저 녀석이 나를 늙은 사람인지 금방 알아 볼 수 있었을까?”
나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늙음을 감추려는 행위는 합법적이고 무죄이건만, 상대방을 기만하려 들었던 것 같아서 부끄럽다. 젊은이들은 정말 신기하게 늙은이를 구분해 낸다. 놀아 주지도 않고, 상대해 주지도 않는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니 젊은 숙녀가 이미 타고 있다.
“참 날씨 좋습니다. 그렇잖아요?”
“네.”
“오늘 70도 이상이나 된다고 예보되었습니다.”
“맞아요.”
“이런 날은 야외로 나가야 좋겠지요? 하다못해 만추로스 공원으로라도 말예요.”
“네.”
나는 세 번이나 대화를 시도하려고, 그 젊은 여자에게 힘들여 말을 걸었다. 그 여자는 소극적 대답을 극소화시켜, 예의를 지키면서도 나의 대화시도를 배척한다. 그 여자가 내리면서 어떤 할머니가 타신다. 할머니가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로 밝은 미소를 제조하여 나에게 살그머니 넘겨준다.
“따뜻하죠, 오늘?”
“바른 말하셨어요. 정말 따뜻하고 훌륭한 날씨예요. 하늘은 또 얼마나 청명한지 몰라요. 산들바람도 즐겁게 해 주고요. 내 친구 앨리스는 데스플레인 살거든요. 자기 남편하고 오늘 호숫가에 낚시질 간대요. 오늘 아침에 내게 전화해서…….”
나는 움찔 후퇴하며 수다스런 할머니의 주름투성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참 신기했다.
“아, 그래요?”
“그렇고말고요. 그뿐인 줄 아세요? 내일은 그랜트 공원에서…….”
이 할머니는 내가 자기 또래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말로 미칠 노릇이다. 실제로 운전 면허증을 비교하면 나나 이 할머니나 비슷한 나이일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동양 남자이고 미국사람들은 내가 늙은 사람인지 젊은 사람인지 몰라야 될 것 같다. 염색을 하긴 했지만 나는 머리칼도 검다. 주름살 보일까봐 웃지도 않았기 때문에 여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내가 늙은 사람인지 젊은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이 할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내가 늙은 사람인 걸 감 잡았을까?
오래전에 어떤 한인 미혼여성에게 실수로 “아주머니”라고 불렀던 적이 있다. 그녀가 너무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스러워 하였기 때문에 나는 백배사과를 했다. 나중에 그녀가 8살 먹은 애의 엄마라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었을 때, 나는 의미 있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처녀로 착각해 주기를 원했던 것은 그녀가 아주머니이었기 때문이었다.
1). 순수문학 소설 당선으로 등단(2006년)
2).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당선(2007년)
3). 한국산문 수필공모 당선(2010년)
4). 경희 해외동포 소설 우수상(2010년)
5). 서울 문예창작 소설 금상(2013년)
6). 재외동포 소설 우수상(2014년)
7). Chicago Writers Series에 초청되어 소설 발표 Event 개최(2016년)
8). 국제 PEN 한국 해외작가상(2016년)
9). 해외 한국소설 작가상(2023년)
10). 제 4회 독서대전 독후감 공모 선정 소설(2023)
11). 한국문협 회원, 국제 PEN회원, 한국 소설가 중앙위원
12). 시카고 문인회장 역임.
13). 시카고 문화회관 문창교실 Instructor
14). 현 미주문협 이사
저서: 단편소설집---“발목 잡힌 새는 하늘을 본다” “소자들의 병신춤” “달 속에 박힌 아방궁”
중편소설집---“나비는 단풍잎 밑에서 봄을 부른다”
수필집---“여름 겨울 없이 추운 사나이”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눈물 타임스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