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방여기요에 의하면 광령은 후위 때 고려에게 빼앗겼다가 당 대에 들어서 다시 그 땅을 다시 찾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광령은 현재는 북진으로 불리며 후연과 북연 때는 숙군성으로 불렸으며 광개토태왕이 후연을 공격할 때 일시적으로 점령했던 곳이기도 합니다.북중국에 북위가 있을 무렵 고려에서는 장수태왕~안원태왕 초까지인데, 장수태왕 때부터 문자명태왕까지 북위와 마찰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채적으로 활발히 교류를 하며 그럭저럭 북위와 잘 지내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499년에는 북위가 의현에 만불당 석굴을 조성할 정도로 요서에 세력을 뻗쳤기 때문에 이 시기에 고려가 북위를 침공해서 북진 지방을 빼앗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안장태왕 대에 와서는 대체적으로 잘 지냈던 북위와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안장태왕 5년인 523년에 단 한 차례의 교류만 있을 뿐입니다. 이는 북위가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한기 묘지명에 의하면 안장태왕은 북위가 혼란한 틈을 타서 효창 연간인 525~528년 사이에 속민이었던 거란을 시켜 영주의 용성현을 공격하고 평주사마자의참군이었던 한상 일가를 고려로 납치해왔다고 합니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당시 영주 일대는 524년 10월에 취덕흥이란 인물이 반란을 일으키고 연왕을 자칭했다가 529년 11월 2일에 북위 중앙정부에 항복할 때까지 북위의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었습니다. 취덕흥은 526년에 평주(현 하북성 노룡현 일대)를 함락시키고 평주자사인 왕매노를 죽일 정도로 북위의 동북방에서 나름 큰 세력을 형성했었는데, 그랬던 그가 529년에 다시 중앙정부에 항복했단 것은 효창 연간에 있었던 안장태왕의 영주 공격이 주원인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장태왕의 영주 공격 전후로 고려가 북진 일대를 점령했기 때문에 독사방여기요와 같은 기록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북위 이후 시대를 기록한 사서인 주서와 북사에서는 고려의 서쪽 경계를 요수 건너 2천 리라고도 합니다.이 북진에는 高麗坂城이라는 고려의 성터도 있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 성이 삼국사기에서 1차 고당전쟁 때 당이 고려에게서 빼앗은 성으로 나온 마미성(磨米城: 磨米州)과 동일한 곳으로 생각되는 고자 묘지명에 나온 요서에 있던 마미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성경통지에는 광령(현 북진)과 의주(현 의현) 일대가 수 대에 가서야 고려에 속했다고 하는데, 언뜻 봐서는 앞서 거론한 독사방여기요의 북위 때 광령을 고려가 빼앗았다가 당이 이를 다시 찾았다는 기록과 비교해볼 때 어긋나는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차 고수 전쟁 때는 별동대의 보급기지를 했던 4차 고수 전쟁 때는 수양제의 회군장소였던 회원진이라는 수의 요서 일대의 기지가 있었는데, 이곳 역시 현 북진으로 비정되는 곳입니다.
독사방여기요와 성경통지의 광령 관련 기록을 절충한다면 최소 2차 고수 전쟁 이전에 수양제가 고려에게서 북진 일대를 빼앗고 그곳에 회원진을 설치했다가 4차 고수 전쟁인 614년 이후 어느 시점에 고려의 반격을 받고 북진 일대가 다시 고려에 속하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평환우기에 의하면 2차 고수 전쟁이 있던 612년에 수양제는 요서군을 설치하고 돌지계를 태수로 삼고 영주 동쪽 2백리의 여라고성을 다스리게 했는데, 이 여라고성은 615년에 遼寇로 폄하 된 고려의 공격을 받고 이에 돌지계는 영주성에 의탁합니다. 615년은 4차 고수 전쟁이 있던 614년의 다음 해로 이때 영양태왕이 수에 반격하면서 북진 일대를 수복한 것은 물론 대능하 이서, 영주 이동인 의현 일대까지 점령했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양당서에서 고려의 서쪽 경계를 요수 건너 영주와 접한다고 한 것이나 영주에 이른다고 한 기록과도 부합됩니다. 배구는 고려를 두고 옛 고죽국이라고 한 바 있는데, 고죽국은 대능하 일대를 지배한 고대 국가로 배구의 이 같은 발언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던 발언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위지경덕 묘지명에서는 1차 고당전쟁을 두고 문죄백랑이라는 표현을 하여 대능하 유역을 고려 정벌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으로 보기도 했으며 고감 묘지명에서는 1차 고당 전쟁 때 낭천 즉 백랑수에서 고려의 여러 진들을 격파했다고 합니다.
1차 고당 전쟁 중 당이 함락한 성 가운데 마미성이 있는데, 이 마미성은 고려가 초전에 백랑수 일대에서 패배하면서 당에 함락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당서와 자치통감 등에서는 645년 전쟁에서 고려와 당이 대능하 일대에서 싸운 기록을 찾기 힘든데, 아마도 작은 규모의 전투이기 때문에 기록에 없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