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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비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행마다 열자씩 4행 40자의 이 분장(分章) 가요. 이 노래를 우리는 아리랑이라고 부른다. 아리랑…. 이 노래만큼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 온 노래도 없으리라. 슬플 때도 아리랑, 기쁠 때도 아리랑….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역사와 함께 민족의 한과 기쁨을 노래해 온 단 하나의 노래이다.
최초로 아리랑을 양악보해 세계에 알린 구한말 한국에 온 미국인 선교사 H.B. 헐버트는 아리랑은 조선인에게 쌀과 같다고 하였다. 한국인은 아리랑을 부를 때 저절로 흥이 난다.
기쁜 자리 슬픈 자리 없이 언제 어디서나 불러서 기쁘고, 들어서 정다운 노래…. 무슨 이유로 아리랑은 한국인의 마음에 그토록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일까? 아득한 옛날부터 남녀노소 상하귀천 없이 입을 모아 불러 온 노래…. 반복해서 들어도 싫지 않은 이 노래는 과연 언제부터 무슨 연유에서 불려지기 시작한 것일까?
현재까지 그 근원에 대한 연구는 해방 후만 해도 경복궁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이 힘들어 부른 노래라던가 단순한 후렴구라던가 라고 하면서 약 300여 학자가 해왔으나 시원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97년 경 아리랑 연구가 김원갑 씨가 전국을 다니면서 오래된 아리랑을 수집하던 중 소위 계룡산 도사들에게서 오래된 아리랑 후렴구의 단서를 찼었는데 이조 순조 때에 부엌에서 나온 어머니들의 노래를 청석거사(?)란 분이 언문으로 필사본 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아리 아리랑 수리 수리랑 아라리가 났네” 였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근거로 이 노래가 이조 순조 때 여인들이 처음으로 언문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때, 즉 언문(한글)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시중에서 읽혀지기 시작한 1824년경 어머니들의 입을 통해 부엌에서 나온 노래로써 문자의 지평을 넘어 온 노래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 시원은 언어의 시원과 함께 하고 7천년-1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김원갑씨는 당시 진도아리랑, 평양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경성아리랑 등 전국에 걸쳐 아리랑의 흔적을 찾아다녔는데 서울에 와서 사물놀이 패에서 굿거리 마당 씻김굿의 3-4마당 사이에서 “아리 아리 수리 수리”가 나오는 것을 찾았다고 한다. 저자의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태조가 침공한 후 장안에 유행된 노래 성주풀이 맨 뒤 후렴에 “에라 대신(하나님)이여”라고 했던가? 아리랑은 하나님의 후손인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들이 추위를 피해로 이동할 때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을 넘어 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다(창 10:21~30).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랑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모든 종류의 아리랑 노래에서 변하지 않고 쓰이고 있는 후렴구가 아리랑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아리랑이라는 말은 특별한 뜻과 사연이 배어 있다는 증거다.
실지로 우리 한국인은 아리랑이라는 말 자체에 친근감을 느끼며 흥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리랑 연구가는 아리랑은 뜻이 없는 단순한 후렴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흥을 돋우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무 뜻도 없는 말이 한국인의 마음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사로잡아 왔단 말인가? 당치도 않은 소리다. 만에 하나 그의 주장대로 아리랑이 단순히 흥을 돋우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아무 뜻이 없는 말이라고 치자.
그럴 경우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이면 그것이 아리랑인가? 꼭 그렇게 소리 내야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아리랑은 끝까지 해명이 필요한 어떤 특별한 뜻이 있는 말로 간주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더욱이 아리랑은 후렴구이다.
후렴(refrain)이란 노래 곡조 끝(때로는 앞)에 붙여 반복해 부르는 짧은 가사를 말한다. 아리랑이 노래의 후렴구라는 사실은 오히려 아리랑이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대부분 후렴은 그 노래의 중요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아주 귀중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아리랑은 제사장 한민족의 키워드(keyword)이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이다(알이랑→아리랑).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글이 없는 가운데 구전으로만 전해지다 보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부르게 된 것이다.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된다. 알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느님이라는 신명(神名)은 처음에 알이었다. 그런데 알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알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여서 한알님이라고 했다.
그것이 [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나님]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알은 하나님이다. 창조주 하느님을 뜻하는 원시언어가 알이었다.
유대인의 엘(EL), 아랍인의 알아(알라)는 바로 이 알에서 파생된 말이다(알라는 아랍어로 유일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인 아랍 사람들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이름인 '엘로힘'(단수는 Eloah)은 '알라(alah)'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벌코프 조직신학 239쪽*크리스챤 다이제스트 간). 즉 창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인류 최초의 신명이 우리 말 알이었다.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언어학자들은 토씨는 6천년 이상 간다고 한다) 영어의 With이다(예, 갑돌이랑=갑돌이와 함께, 갑순이랑=갑순이와 함께). 따라서 알이랑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말이다.
'알이랑'은 우리 겨레가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하나님의 자손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사적 언어 유물'인 것이다.
서양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써 2천년 전에 육신이 되어 크로마뇽인들에게 오셨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1만 년 전(또는 7만 년 전)에 지구에 직접 오셔서 한국 민족을 직접 낳아 주신 하나님이다.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난생설화가 아니다. 왜 “알“이 유일신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알이 수많은 생명을 낳기 때문이다. 쌀도 볏알(볍씨: 배달 조선의 어원)에서, 과실도 씨알에서 생기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허다한 생물들이 또한 알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알은 모체(母体)요, 근원(根源)이요, 시작(始作)과 같은 뜻을 갖는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도 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만물의 모체이시고 근원이시며 시작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한국인은 그 알이 큰 모체이시고 큰 근원 이시며 커다란 시원(始原)이시기에 알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였다. 또한 그 알이 인격적 존재이심으로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였다. 그래서 창조주 유일신을 한알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한알님이 [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나님]으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알은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다. 더욱이 하늘은 둥글어 알인데, 하늘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한알즉, 큰 알(大卵)이었다.
한알→하날→하늘로 변한 것이다. 만물을 내신 한알님(하느님)은 한알(하늘)에 계신다. ꡐ큰 알(大卵), 큰 모체(母体), 큰 근원(根源)ꡑ같은 뜻으로서의 한 알에 하늘이라는 말의 기원이 있는 것이다.
지난날의 우리 신화 ? 전설에서, 한 시조(始祖)의 탄생이 난생(卵生)으로 이어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밝불거뉘)는 망아지가 알을 품고 있다가 뛰쳐나간 그 알에서 태어났다. 그 밖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많다. 짐승이나 사람이 알을 낳는다. 너무도 이상해서 갖다 버린다. 그러면 새와 짐승들이 그 알을 보호하며 노래 부른다. 그렇게 하늘의 뜻에 따라 보호를 받으며 태어난 것이 고주몽(高朱夢)이기도 하고, 금와(金蛙)이기도 하다.
알이라는 것은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사물(事物)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커다란 시원(始原)으로서의 알이 곧 한알→하날→하늘로 된 것이다. 그러한 하늘이었기에 삼라만상(森羅万象)은 곧 당신의 것이었다. 당신이 낳으시고, 당신이 기르시고, 또 당신이 주재하시는 것이었다. 홍수 전 사람들이 창조주 유일신을 알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뜻하는 성경 원어 엘(EL)은 바로 이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이다. 엘은 다스리는 이, 강하신 분이란 뜻을 가진 신명(神名)으로 셈어(Shemitic)에서 전반적으로 사용된 하나님또는 신성(Divinty)에 관한 호칭이다. 이 엘은 바로 알의 변음이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이라고 불렀다. 이 알이라는 단어는 창조주 하느님을 뜻하는 일종의 원형 언어이다. 알이 고대에 하느님의 이름이었음을 보여주는 언어학적 증거로서 메아리를 들 수 있다. 메아리는 본래 말이 뫼알이이다. 이 말은 뫼의 알, 즉 산신을 말한다. 산에 가서 야호~하고 고함을 치면 야호~, 야호~, 야호~라고 산이 있는 숫자만큼 되돌아오는 소리를 우리 조상들은 산신의 소리로 연상했던 것이다. 엘(EL), 얼, 일과 같은 말들은 모두 바로 이 알의 변음이다.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 얼 ‘얼이라는 토박이말도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역시 신(神), 넋과 같은 의미의 말이다. 정신 나간 사람을 두고 얼간이(얼이 간사람) 혹은 얼빠진 사람이라고 하고, 얼떨떨함이나 얼이둥절(어리둥절)은 정신을 가다듬지 못한 상태이며, 얼뜨기는 다부지지 못하고 겁이 많은 사람을 뜻하며, 얼버무림은 제대로 버무리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온 정신을 뜻하는 우리의 훌륭한 토박이 말이다.
이 얼이라는 말의 시작이 바로 알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고대 수메르어에서도 인간의 정신(Human spirit)을 뜻하는 단어가 A-LA였다는 것이 뒷받침 해준다. 이 얼을 드러내는 곳이 인체에 있어서는 얼골(얼골→얼굴)이다. 얼골을 보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즉얼이 어떤 것인가를 대충 알 수 있다. 얼골에 그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 안에서 얼이 사라지면 송장이 되고 나중엔 뼈만 남는데, 그것은 더 이상 얼골이 아니므로 해골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무덤이 동그란 까닭 한국인의 무덤은 동그란 모양의 봉분인데, 그것은 큰 알을 뜻한다.
셈의 후손으로서 한알님께 제사지내며 생활했던 한국인의 선조들은 스스로 천손민족(天孫民族), 즉 한알님의 백성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죽음이란 한알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덤이 동그란 모양의 알인 것이다. 그들은 한알님의 백성으로서 알에서 왔으니 알로 돌아가고자 했다. 실로 한국인은 알이랑 정신으로 살고 죽는 알이랑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알이 원래 무슨 말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그것은 홍수 이전 최초의 인류 가계로부터 내려온 지상 최초의 낱말 중 하나로서, 고대에 창조주 유일신을 뜻하는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알이랑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종교적인 말이다.
‘고개를 넘어 간다는 가사는 무슨 뜻일까?
그것은 고대 한민족이 시베리아에서 뷔름 빙하기를 거치면서 추위를 이기고 살아 남아 일부는 고비(한 고비 두고 비 즉 시험 또는 고난의 단계를 뜻하는 순수 우리 말)를 넘고 또 일부는 파미르고원을 넘고 또 일부는 바다를 건너(인도네시아의 바다우 족, 중국의 산위 족), 천산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넘었다는 말이다.
실로 수많은 고개를 넘은 것이다. 타림분지는 다리목이 아프다고 하여 다리목 분지다. 파미르 고원을 지나(支那) 사람들은 총령(蔥嶺: 파총, 재령)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 파(蔥) 마루(嶺) 그대로 파마루(파미르)이다.
지리학에서도 역시 파미르 고원(蔥嶺)에서는 파(蔥)가 많이 야생한다고 한다. 파미르 고원은 파마루로서 파(蔥)가 많이 자생하는 산마루(嶺)이기에 파마루(파머루) 고원인 것이다. 파미르의 어원이 한국어 파마루이다. 타림분지는 다리목이 아프다고 하여 다리목 분지다. 한국인은 남자를 사내라고 한다. 사내는 원래 산아이가 [산아이→사나이→사내]로 변한 것이다.
조상들이 쌓은 재단과 거주지는 제사장이었던 관계로 산 위에서 살았던 것 같다. 한국인의 선조들은 시베리아의 산(탱그리 산. 알타이 산, 천산, 백두산, 묘향산, 마니산) 위에서 살다가 벼농사를 지으면서 제일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犬白山→白頭山)에 이르러 배달나라를 세웠다.
고대에 고조선 제사장들이 창조주 한알님께 천제(天祭)를 드린 것이 후에 제천의식이 되었다.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신라의 솟대) 그래서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에서 타 민족에 비해 훨씬 능하다.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따라서 이 노래 가사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하느님이요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with God, with God, with God, just God. accompany with God, I will take over the mountains.)
저자가 이 후렴이 찬양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은 나의 스승인 전흥상 목사님께 우연히 아리랑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듣게 된데 기인된다. 자세한 내용을 두고 금식 기도를 하던 중 어느 날 새벽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감을 주시어 알이란 단어가 아랍인들의 알라와 일치한다는 e[p서 유래되었다.
‘아리랑은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던 고대 한국인이 이 땅에 오기까지 수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어오면서 부른 찬양이었던 것이다.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겨레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민족의 숨결이며 역사의 맥박이기 때문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누구를 뜻할까? 문맥상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가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된다. 왜냐하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바로 앞의 가사는 하나님과 함께(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가사는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 곧 천손민족의 찬송이며 믿음의 고백이었다. 그러므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 배척하는 무리들을 의미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악담이나 저주가 아니다. 만약 노래 가사가 나를 버리고 가는 놈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했다면, 그것은 실제로 발에 병이 나라고 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나를” 의 나는 하나님이다. 나를 버리고 한 시간이 지나면 시험이 든다 라는 말이다. 가 즉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린 자들을 향해 다시 순수한 하나님 신앙으로 되돌아 올 것을 사랑으로 촉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겨레의 노래 알이랑에는 하나님을 위한 열정과 잃은 자를 위한 연민이 함께 깊이 배어 있다. 즉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얼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경천애인(敬天愛人)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마 22:37~40).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의 2절은 푸른 하늘의 잔별만큼이나 우리 가슴엔 수심도 많다고 노래한다. 왜 알이랑 찬송을 부르며 추운 시베리아에서 사방으로 이동하던 우리 조상들의 가슴엔 그리도 근심이 많았을까? 그것은 1절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때문이었다.
즉 유일신 신앙(제천신앙)을 저버린 자들이 제천민족 우리 조상들의 커다란 근심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근심과는 차원이 다른 거룩한 근심이었다(고후 7:10). 이와 같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알이랑' 찬송은 우리 조상들이 동방의 산지를 넘어 이 땅에 오기까지 끊임없이 불리어졌다.
그리고 오늘도 겨레의 삶 가운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상 자세히 살펴본 바처럼 아리랑은 홍해를 건넌 후 부른 미리암의 노래와 같은찬양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알려주는 천손민족(天孫民族)코드이다.
우리 배달겨레는 세계 만민 중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유일한 백성인 것이다.
고려 속요인 청산별곡에 보면 알이랑과 흡사한 후렴구가 나온다.
바로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라는 가사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ꡒ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ꡓ 대체 이것은 무슨 뜻일까? 지금까지는 아무런 뜻이 없이 악률을 맞추기 위해 사용된 조흥구(助興句), 여흥구(余興句)라고 보는 견해가 가장 우세하다. 혹자는 주술의식에서 읊었던 일종의 주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라는 요상한 소리가 다소 신비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알이 알이 알랑셩 알알이 알라라는 가사를 낙천성(楽天性)과 명랑한 느낌을 주기 위해작가가 모음 ㅏ를 ㅑ로 살짝 고쳐서 노래한 것뿐이다.
알이 알이 알(이)랑셩 → 얄리(이) 얄리(이) 얄(이)랑셩 알알이 알(이)라 → 얄얄이(얄라리) 얄(이)라 그러므로 이 가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 알이 알이 알(이)랑셩 = 하나님 하나님 하느님과 함께 - 알랑셩의 셩은 악기의 의성어로 흥을 돕는 소리이다. 고려속요 서경별곡의 후렴구에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역시 악기의 의성어로 흥을 돕는 조흥구이다. 알이의 이는 접미사로서 복순이주몽이처럼 받침 있는 사람의 이름에 덧붙여 어조를 고르는 말이다.
* 알알이 알(이)라 =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라
그러니까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라는 청산별곡의 후렴구는 우리 겨레가 아득한 옛날부터 불러오던 알이랑의 후렴구를 살짝 고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아리랑이라고 부르는 민요는 최소한 여말선초(麗末鮮初) 시대까지는 알이랑으로 노래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며 그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종교적인 뜻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애국가에도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란 가사가 들어 있다.
이제까지 아리랑에 대해 수긍할 만한 해석이 없었던 이유는 아리랑은 본래 알이랑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모르고 학자들마다 아리랑에서 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정답이 나올 수 있겠는가. 아리랑은 겨레의 역사 노래이자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찬송가다.
그것은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인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들이 마지막 빙하기를 이기면서 사방으로 천동(遷動)할 때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을 넘으면서 부른 찬송가였다(창 10:21~30). 그리하여 알이랑은 천손민족 한국인의 키워드이다.
알이랑! 그것은 우리 배달(벼알=벼와 함께 히신 하나님)겨레의 근본사상이요 뿌리 정신이다. 그것은 하느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니,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제천민족, 천손 족이라는 사실이 민요 알이랑으로 말미암아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알이랑! 그것은 우리 한민족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 준다. 알이랑!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다. ‘알이랑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우리는 알이랑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알이랑으로 살아갈 것이다. 알이랑! 그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찬송가이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세계문화유산이다. 우리는 이 귀한 노래 알이랑을 시편 삼아 함께 자주 불러야 한다. 우리 겨레에게 이 노래가 있는 한 여호와 하느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 하느님(한알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아멘! (유석근 목사 저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에서 인용) 유석근목사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상동중앙교회의 담임목사로 성경에 계시된 한민족의 정체성과 구원사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선포하도록 소명을 받음. 이를 위해 한국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을 설명한 책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을 출간하였음 필자와 같이 기독교 상고사학회 회원임
소결론
아리랑과 관련하여 필자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은 진짜, 핵심, 정수, 생명, 핵 등의 사물과 관련된 단어였는데 “알”이라는 단어가 알라, 바알, 아라랏 등 고대의 하나님을 뜻하는 원형 언어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자 신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고 그 의미가 진리, 사랑, 창조주, 한단고기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논문제목을 “성경제사와 한민족 제사의 비교연구"로 잡았는데 우선 아리랑의 근원이 제사 때 부른 노래이고 고조선(하나님조선 :환인조선) 때부터 낳아준 하나님 아버지(천신天神)를 살아계신 부모로 제사지내며 북, 춤과 함께 부르던 노래이다.
이 노래는 고 조선 이후 고구려의 동맹(천신제사와 함께 여러 부족이 밤낮 춤추고 먹고 짝을 찾는 행사), 동예의 무천(천신 앞에서 춤추는 행사), 부여의 영고(천신을 환영하는 북치기 행사), 신라의 소도(천신을 기념하는 대 위에 새를 올려놓음: 성령이 내려오기를 기원)행사로 계속되었고 불교와 유교시대(천년)를 거쳐 오면서도 한번도 이 노래를 버린 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신라시대에는 절에서도 삼신각, 대웅전, 칠상각, 염불을 통해 이 노래가 이어졌고 고려시대에는 팔관회를 통해 이어졌다. 이조시대에도 백성들은 겉으로는 중국의 홍무예제를 지켰으나 엄마들은 부엌에서 신주단지와 함께 아리랑노래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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