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수락산 종주기 / 김찬일 (2009년 03월 24일)
이 춘삼월 호시절에 새악시 볼에 피는 연지곤지 불그스레한 정념 품고 버들개지 실눈 따라 물오르는 봄날에 느닷없이 진눈깨비 내린다. 남도에서 섬진강 매화축제 끝나간다고, 어제까지 여인의 속살 같은 흰 매화꽃 속절없이 분분히 휘날리며 떨어져간다고 소식 오더니만, 오늘 징 하게도 진눈깨비 내리네. 흰 눈이 내리는 불암산 들머리에 서서, 나는 잠시 고개 돌려 두고 온 고향의 겨울 정경을 그려보았다. 신석호 고장 신 씨가 많고, 돌이 많고, 호랑이가 많았던 고장 문경, 게다가 겨울이면 어찌 그리 눈이 많이 오던지, 그 한겨울 진눈깨비 내리던 날, 워낭소리 울리며 문경 장으로 팔려 가던 어미 소 눈에서 떨어지던 눈물 지금도 내 가슴 적시고 있네. 입가에 허연 거품 물고, 어미 따라가려고 하는 새끼송아지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진눈깨비 사이로 사라져간 그 어미 소 워낭소리 지금도 내 귓전을 아프게 들려오네.
등산의 초입이 되는 불암사 일주문에 天寶山 佛巖寺 란 글씨가 진눈깨비 사이로 날아오르는 검은 새처럼 율동적이다. 천보산은 불암산으로 개명하기 전의 산명이며, 하늘에서 내린 보배로운 산. 이라는 뜻이 있었다. 경내로 들어선다. 불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주군 불우 조에 “우리 집 서쪽 영에 절이 있는데, 여러 벗과 손잡고 놀았다. 달 숲에 송뢰 소리 두릉이 묵었고 늙은 나무 굽은 바위 이백이 썼다. 객자가 안 오니 원숭이 서럽고, 노승이 잠들려니 산새가 운다. 아득한 티끌세상 어느 곳인가. 흰 구름 땅에 가득 길을 몰라라.” 불암사의 정경을 한시로 묘사했다. 시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선시 속에서 환(幻)으로 표현되는 불암사는 조선 세조 때, 진관사 삼막사 승가사와 함께 한양중심의 사대 원찰이었고 호국안민의 기도도량이었다. 이절에는 서가모니 일대기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석씨 원류응화 사적 책판이 소장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서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모신 불 진신 사리보탑이 아름다운 맵시로 서있다. 나는 불암사 우측 등산로를 잡았다.
불암산은 송낙을 쓴 부처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인 산명이며, 기묘하고 암벽이 많은 산이다. 크렉과 홀더가 많아 릿지슬랙으로 등산의 가닥을 잡았다. 게으르면서도 편안한 자세로 걸었다. 곧 암반이 나타나고 별수 없이 상체를 구부리고 엉금엉금 기면서 전진하였다. 화강암은 아름답다. 과연 하늘이 내린 보물답게 갖가지 모양으로 자태를 드러내는 바위들이 수려하다. 바윗길이 마음의 길을 만든다. 저 바위들이 부처님의 몸이다. 저 바위 속에 억겁의 적멸을 입에 물고 가부좌로 앉아 계시는 부처님. 사랑이 뭐이며 미움이 뭐든가 집착만 놓아버리면 저렇게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기쁨을 얻는 것을. 잠시 눈이 멈추고 하늘이 밝아온다. 저 바람에도 풀냄새에도 숨이 찬데, 새로운 바위 군이 나타나 유혹한다. 그날 나는 508미터에 불과한 바위산을 콩죽 같은 땀 흘리면서 힘겹게 올라가 정상에 섰다. 남양주 구리방면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중계동의 시가가 조망된다. 저렇게 올망졸망하게 사는 게 우리 삶의 모습이다. 저편 멀리 수락산이 보인다. 오늘 저기 저 수락산을 지나 청학동으로 하산하도록 일정이 짜여있었다. 어디라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북한산이 살아있는 임금님을 지키는 산이라면 불암산은 돌아가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고 한다. 산 아래에 태릉 강릉 동구릉 광릉이 있다. 다람쥐공원을 지나 덕능 고개에 있는 동물이 통과하는 육교를 지나 수락산자락으로 들어선다. 수도방위를 위한 군부대의 철조망 따라 가는 길은 흙으로 이어진 편한 길이었다. 길 한쪽에 진달래가 피어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산에는 마르지 않는 꽃의 샘이 있네. 오늘도 눈썹 위 수실 같던 풀각시 꿈 돋아나고. 질갱이 쇠비름 엉겅귀 산 쑥 산야생화 화엄의 세계 만드네. 걸어도 안만 걸어도 제자리로 돌아가는 회귀의 산길. 홀로 걸으면 눈시울 붉어지는 아득한 날들이 낙엽으로 누웠다. 어느 때인가. 고향 뒷산 홍골 할미꽃 허리처럼 시들어 간 여자. 우리네 어머니. 싸리향기 물컹물컹 진동하는 삽짝밖에 칠석날 꽃등 되어 산사로 간 어머니, 우리네 여인들. 그 멧두릅 같던 순정 맑기만 한 여인의 길 수락산 길이네. 경기 의정부시 남양주시에 걸쳐있는 수락산은 638미터이고 도봉산과 북한산을 마주보고 있으며 덕능 고개에서 중랑천이 발원한다. 암반지대의 홈통(기차)바위와 도정봉지나 능선 타고 508봉에 도착한다. 등산로 우편에 청학리와 의정부시 용현동이 눈에 잡히고 왼편으로 서울 도봉산과 도봉동 의정부시 호원동 장암동과 동부 간선도로가 네비게이션의 지도를 그린다. 수도권의 명산 불수도북(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의 산군이 한눈에 조망되는 여기 수락산 정상에서 나는 지친 몸이지만 기도하는자세로 섰다. 우리의 몸이 비만으로 고통 받을 때, 더욱 야위어가는 수락산 풀꽃이여 잡초여. 봄바람 차갑게 불어오면 한웅큼의 시들을 낭송하며 흔들리는 나무여. 치마바위 코끼리 바위 우뚝 솟은 만장봉 선인봉 자운봉의 잠언이 내 가슴에 밑줄을 긋네.
수락산 정상에서 청학동으로 가는 길은 실크로드였다. 길마다 비단이 깔려 있는 듯이 내 마음의 고운 결을 딛고 가는 환상의 삼월 잎맥 따라가는 길이였다. 조금 내려오니 수락산장이다. 이미 배꼽시계는 늦은 오후를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그 산장 단순하면서 자신의 뒷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는 공간을 가진, 수락산장에서 라면을 시켜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한요셉 곽마리아 부부가 운영하는 이 산장에, 나는 곽마리아씨가 들려주는 통기타 라이브공연을 들으면서 라면의 맛과 음악의 늪에 빠져 버렸다. 한곡이 끝날 때 마다 일곱 명의 산객은 박수를 쳤다. 다람쥐와 산새들의 요람, 사랑하는 가족, 다정한 친구, 황홀한 불빛, 별자리 찾는 여행, 수락산장에서 하룻밤 이란 명함을 얻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주차장에서 도착해야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산속은 고즈넉하다. 나는 자신의 마음을 더 열고 더 보면서 수락산의 그리움을 쉼 없이 기억에 담아가면서 내원암으로 내려왔다. 조선조 정조 때 왕자가 없었던 정조가 300일의 기도를 올려 순조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법당 뒤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2미터 석조 미륵입상이 있다. 절은 절을 많이 해야 하는 곳이다. 비록 갈 길은 바쁘나 나는 법당으로 들어가 삼배의 절을 올렸다. 절은 어떤 형상에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보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 잠시도 쉬지 않고 올라오는 번뇌의 티끌을 태우는 것이 절이다.
더 내려와서 금류동천 이란 필력이 대단한 글자가 새겨진 금류폭포를 구경한다. 그건 마치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의 기운을 붓에 실어 써내려간 글씨 같아 매우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은선 폭포 옥류동은 바로 선경이었다. 그럼에도 수려한 계곡에 똬리를 튼 상점들이 밀집되어 틈이라고는 전혀 없다. 이제 보름달을 밥그릇으로 하는 신선들의 쉴 곳이 없어졌다. 저 악머구리 떼처럼 밀려오는 사람들의 욕망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그래도 맑은 물이 옥구슬 구르는 소리로 흘러간다. 그때까지 멈추었던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슬어슬 춥기도 하지만, 나는 구태여 열어 두었던 등산복의 지퍼를 올리지 않았다. 이제 그리움으로 남아야 할 수락산의 연가는 진눈깨비 노래가 된다. 그 어디에 가서 봄날의 몽환적인 진눈깨비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출발시간은 삼십분이나 남아 있었다. 나는 약삭빠르게 버스에 올라타서 휴식을 취하는 영악한 선택보다 차라리 감기에 걸리더라도 출발시간까지 눈발 속에서 서성거리고 싶었다. 수락산의 봄, 그 하루의 길, 제2회 WBC대회에서 일본에게 5:3으로 지면서 준우승으로 막을 내린 야구소식에 화가 나서가 아니다. 그 무언가 수락산의 진눈깨비가 나를 잡아당기고 있어 쉽게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