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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첫 주에는 여름 소리와 가을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저녁에는 아직 에어컨 돌아가는 여름 소리가 부산스럽다. 아침에는 아이들이 학교 가면서 가랑잎 부서지는 가을 소리를 만들며 걷는다. 갑자기 생소한 더위가 엄습하면 차에서 내리면서 짜증 내기도 하지만, 아침에 비라도 오면 고요한 품위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으며 운전한다. 둘째 주에 들어가면서 가을은 학교 주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학교를 휘감은 나무 울타리에 번지는 초록의 이끼들은 초가을 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쁜 아침처럼 달리는 학생들이 등교하기 위해 건널목을 건너는 두발자전거 돌아가는 소리. 분주한 학교 근처를 정돈하는 경찰 아저씨 샘의 인사. 왼쪽 깜빡이를 마지막으로 켤 때 학교 가기 싫다고 저항하는 막내의 맥 빠진 반란. 이런 초가을은 매해 찾아오기에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것들이다. 그런데, 올해 가을 소리가 이상하다.
내 나이가 가을을 너무 많이 넘어가고 있어서가 아닐까. 대학원생인 첫째와 단둘이서 밥을 먹을 때 인생의 가을을 느낀다. 말 없는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잦아진다. 자기가 알아서 돈도 벌고, 어떻게 공부할 줄도 알고, 문제도 혼자 해결할 줄 안다. 내 도움이 점점 필요 없어지면서 우리 사이에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소천하신 아버지의 뒷짐 지신 뒷모습이 문득 떠오를 때 쓸쓸한 가을이 왔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자연을 접한 가을과 인생을 접한 가을의 감성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자연은 가을을 풍성히 수확하여 들인다. 씨를 심는 봄, 열기를 견딘 여름,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가을. 한 해가 가을에 도착하면 감사 축제가 열린다. 자연은 대지 속에서 감추었던 자신의 다양한 표현을 단감처럼 달콤하게, 토실한 밤을 품은 껍질처럼 날카롭게, 포도주를 짜내어 얼큰하게 자유롭게 표현한다. 자연의 대담함이다. 인생의 가을은 무엇을 맺고 있는 것일까.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가면서 자꾸 불안한 것은 무슨 연고일까.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들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 나는 인생 가을의 전반전이 아닌 후반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낙엽이 한 잎 떨어지기 시작하는 초가을이 아니다. 나뭇잎이 와르르 속절없이 떨어지는 늦가을에 와 있는 적막감이 올해는 든다.
얼마 전, 오랜만에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을 만났다. 연세가 지긋한 나이, 종심(從心)에 드신 분이다. 공자(孔子)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종심은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道)에 어그러지지 않았다[從心所欲不踰矩]’ 뜻이라고 했다. 70년 연륜이 차면, 내 마음이 말하는 대로 순종해도 괜찮다는 뜻일 것이다. 그분은 인생의 겨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만큼 적막하실까. 하지만, 웬걸, 잃어버린 머리카락을 하얀 모자로 써서 감추고 열심히 수영하면서 튼튼한 근력을 길으신다고 한다. 손자, 손녀가 얼마나 이쁜지 매일 보러 가요하고 그분 옆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그분의 아내가 재잘거리기까지 한다. 고목에 새순이 자란 것일까. 종심의 나이에 손자들이 봄처럼 나타난 것이다. 무엇을 보아도 웃음이 나오고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한다. 인생의 겨울은 자연의 겨울과 달리 겨울에도 봄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분을 근간에 만났다. 아버지뻘인데 형님이라고 부르라는 분이 계신다. 평생을 성악 하신 분이다. 그분은 팔순이 넘으셨다. 그리고 책을 발간하셨다. 책 제목은 평생 현역(Until My Last Breath)을 발간하시면서 감사 콘서트를 얼마 전에 여셨다. 그분의 목소리는 여전히 청중들의 심장을 공명시켰다. 앙코르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You raise me up” 후렴이 시작되자, 내 앞자리에 앉은 한 노인이 오른손으로 눈물을 닦으셨다. 예사로운 눈물이 아니었다. 82세 나이로 아직도 무대에서 아리아를 부르시는 그분의 노래를 통해 자신만이 앓아 왔던 인생의 멍을 느낀 것이다. 그 아픔을 스스로 눈물로 치유 받는 중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현역을 뛰면서 인생의 깊은 겨울을 지나는 분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다시 싹틔우고 계셨다.
인생의 계절은 자연의 계절과 다르지 않은가. 인생의 가을과 겨울에는 봄날도 오고, 여름날처럼 활기참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지만, 또한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껍질이 나이테와 함께 두꺼워지는 나무처럼 건조한 발에 각질이 쌓여도 인간 내부는 손자 손녀를 보면서 또는 현역으로 살아내면서 새싹처럼 생명력이 솟구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 얼마나 인간은 특별한 존재인가. 육체는 자연의 이치를 따라야 하지만, 자연과 맺어진 상황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는 것에 따라 나는 자연의 나이를 뛰어넘는 독특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일이면 9월 셋째 주가 된다.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거실의 불을 끄고 전등불 하나만 켜진 가을밤, 밖을 본다. 가을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초록의 젊은 여름옷을 벗고 찬바람을 따라 낙엽 몇 잎이 굴러가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린다. 제법 리듬을 느끼며 굴러가는 것 같기도 하다. 비슷한 리듬을 따라 나뭇가지 사이에서 들리는 소리. 가을이 화음 넣는 바람 소리이기도 하다. 그 화음 속으로 굴러가는 낙엽은 어딘가에 멈출 것이다. 찌리르 찌리르 들리는 탄성 섞인 풀벌레 소리는 사실, 이성을 유인하기 위한 세레나데 같은 노래라고 한다. 슬프거나 억울해서 우는 소리가 아니다. 잘 우는 흉내를 내는 수컷이 인기가 좋다고 한다. 굴러가다가 멈추어 선 낙엽은 풀벌레의 사랑 노래를 듣기 위해 부랴부랴 바람을 타고 규칙적인 리듬으로 껑충껑충 뛰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처럼 좀 더 깊은 가을 소리를 듣기 위해 나도 한번 굴러가고 싶어진다. 9월 말에 있는 첼로 연주 티켓을 사기 위해 지갑을 더듬어 본다.
대구 출생
Temple 대학교 약학과 졸업
2020년 워싱턴문학 시 등단.
2021년 워싱턴문학 수필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