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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안개가 자욱하게 뒤덮힌 곳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신선하게 느껴질 법한데도 이곳의 안개는
이상하게도 칙칙하고 무거웠다.
다른 곳에서는 선명하게 떠오르는 아침해를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해조차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공기중에
느끼한 비린내같은 것이 섞여 있어 깊은 숨을 한 번만 들이켜도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원인은 간단했다.
독장(毒障)때문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나뭇잎과 동물의 시체가 고여 어 있는
늪지에서 뿜어나오는 독기가 공기에 섞여 흩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독고무정은 시체를 겨드랑이에 낀 채 짙은 안개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늪지의 바닥은 질퍽질퍽했고, 이름모를 수초와 나뭇가지들이
자욱하게 늘어져 있어 한 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앞으로 갈수록 안개는 짙어졌고, 안개속의 비린내도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늪지는 더욱 깊어져 거의 허리까지 빠질
정도였고, 나무 덩쿨은 한 걸음만 내딛어도 온 몸을 칭칭 감아
버릴 정도로 빽빽했다.
그런데도 독고무정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태연히 나무덩쿨을 한 손으로 헤치고 늪지의 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짙은 안개속을 두 시진이나 지난 다음에야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의 늪지는 여타 지역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도 늪지라면 항상 있는 수초나 나무덩쿨들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늪지의 물이 깨끗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탁하고 더러워서 제아무리 안력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치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독고무정은 그 늪지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곳에는 시질(豺蛭)이라고 하는 아주 기이한 놈들이 살고
있지."
시(豺)란 승냥이를 가리키고, 질(蛭)이란 거머리를 뜻한다.
시질!
승냥이 거머리!
듣기만 해도 왠지 섬뜩해지는 이름이었다.
견문이 넓은 사람이라면 시질이라는 말을 듣고 안색이 변한 채
두려움에 몸을 떨 것이다.
시질은 거머리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일종(一種)이었다. 크기는
새끼손가락의 마디 하나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그 놈 한 마리가 개 한 마리의 몸에 있는 피를 몽땅 빨아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족속들이었다.
그 모양이 꼭 굶주린 승냥이같다고 해서 시질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독고무정은 힐끗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시체는 그의 말을 듣고 있는지 안 듣고 있는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독고무정은 시체의 무표정한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을 계속했다.
"이 놈들이 네 몸속에 고여 있는 죽은 피를 해치워줄거다.
물론 네가 피를 빨리는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면 말이지."
독고무정은 품속에서 고무마개를 몇 개 꺼내 벌거벗은 시체의
몸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틀어 막았다.
유일한 예외라고는 먼저번처럼 입에 쑤셔 넣은 대나무 죽통
뿐이었다.
그런 다음 시체의 몸을 끈으로 대충 묶더니 늪지의 중앙으로
집어 던졌다.
풍덩!
시체는 시커먼 흙탕물을 뿌리며 늪속으로 떨어져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독고무정은 시체의 몸이 늪속으로 잠겨 완전히 보이지 않게될
때까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체의 입에 물렸던 죽통이 거의 반이상이나 늪지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그는 시체의 허리를 묶었던 끈을 근처의 나무에
동여 매어 더 이상 빠지지 않게 했다.
그런다음 예의 특이한 모습으로 그 옆에 주저 앉아 그대로
잠속으로 떨어졌다.
* * *
피를 빨려본 적이 있는가?
피를 빨리면 우선적으로 그 부위가 가렵다. 그러다가 점차
가려움이 몸속으로 전해져서 아무리 긁어도 시원하지 않게 된다.
좀 더 심하게 빨리면 피부가 아니라 살 속이 가려워서
종내에는 칼로 살을 후벼 파고서라도 긁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시초에 불과하다.
가려움은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씩 그 부위가 쓰라리기 시작한다.
그 쓰라림은 보통때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과는 전혀
다르다.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것 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침(針)이 살을 뚫고 들어와 뼈속을 찌르는 것처럼
둔하고 아릿하게 느껴진다. 곰곰히 생각하면 이게 정말 쓰라린
것인지 의문이 들기조차 하다.
하지만 분명 쓰라린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쓰라림은 무엇으로도 멈출 수 없이 계속된다.
바늘로 찌르는 것이라면 바늘을 뽑고 살을 문지르면 통증이
덜해지지만 뼈속을 찌르는 듯한 이 쓰라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없어지거나 덜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살을 문지르고 주먹으로 쾅쾅 쳐도 쓰라림은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칼로 그 부위를 도려내도 역시
마찬가지다.
왠만한 사람은 이쯤되면 아예 그 부분을 통째로 잘라버린다.
하지만 쓰라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쓰라림이 점차로 뼈를 타고 번져나가 팔 전체가 저리거나 몸의
상반신이 둔한 통증에 짓눌리면 그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
몸을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그 쓰라림에서 벗어나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쓰라림을 멈출 수는
없다.
쓰라림이 몸 전체로 퍼져나가면 사람의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오직 이 쓰라린 고통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그때쯤되면 손가락으로 스스로의 살을 후벼파고 귀나 코를
잡아뜯기 시작한다. 그래도 쓰라림이 가시지 않으면 닥치는대로
자신의 몸을 짓이긴다. 물론 쓰라림은 가시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만이 이 쓰라림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 아직 아무도 죽음이 그 쓰라림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죽은 영혼(靈魂)에게 쓰라림이 가셨냐고
물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혼은 과연 무어라고 대답을 할까?
* * *
독고무정이 그 늪지에서 다시 시체를 끌어올린 것은 십 일 이
지난 후였다.
시체의 전신은 미세한 붉은 반점(斑點)으로 뒤덮혀 있었다.
안력이 예리한 사람이라면 그 반점이 거머리가 붙어서 피를
빨아먹었던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시체의 몸에는 단 한 마리의 거머리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둘 중의 하나를 뜻한다.
늪지의 거머리들이 배가 부르도록 먹어서 더 이상 피를 원하지
않던지, 아니면 시체의 몸에 더 이상 빨아먹을 피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고무정은 시체를 늪지에서 끌어 내어 바닥에 눕힌 다음
고무마개를 떼어 냈다.
시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눈까풀도 움직이지 않았고, 숨결조차 제대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독고무정은 오른손을 시체의 가슴에 갖다 대었다.
미약하나마 가슴이 뛰고 있기는 했다. 하나 그것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힘없고 불규칙적인 것이었다.
독고무정은 품에서 하나의 항아리를 꺼내들었다.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항아리속에는 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물은 붉었다.
너무도 붉은 빛이 선명해서 얼핏 보기에는 피를 모아 놓은 것
같기도 했다.
하나 피는 아니었다.
핏빛 혈수(血水)에서 은은한 약향(藥香)이 감도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핏물이라기 보다는 약수(藥水)에 가까웠다.
그렇다.
이것은 천하제일의 약수였다.
죽은 피를 살리고, 은 살에 새 살을 돋게 한다는
취수혈정(聚髓血精)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많은 피를 흘린 사람이라도 단 한 방울의 취수혈정만
마시면 잃었던 피를 복원할 수 있다. 취수혈정은 그 탁월한
효과만큼이나 구하기가 어려워서 인세(人世)에서는 거의
보기드문 영약으로 손꼽고 있었다.
독고무정은 시체의 입에 꽂은 대나무 죽통에 조심스럽게
취수혈정을 붓기 시작했다.
도중에 몇 차례나 시체의 목에 있는 혈도를 집어 취수혈정이
저절로 시체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한 동아리나 되는 취수혈정이 모두 시체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독고무정은 빠른 손길로 시체의 전신 혈도를 짚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그의 손길은 어찌나 빠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숨 한 번 내쉴 동안에 그는 시체의 전신에 나 있는 삼백 육십
이개의 크고 작은 혈도를 모두 점해 버렸다.
그것은 실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누가 만약 단 일수(一手)에 인체의 모든 혈도를 짚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모두들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 것이다.
막 삼백 예순 두 번째의 혈도를 짚자 시체의 몸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붉은 반점이 가득해서 흡사 혈인(血人)과도
같았던 시체의 피부에 하얀 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하얀 빛은 이내 전신으로 확산되더니 순식간에 붉은 반점을
모두 없애 버렸다.
시체의 몸은 이제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러다가 조금씩 다시 붉은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시체의 피부는 다시 원래의 살색을 되찾았다.
그와 함께 시체의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리더니 시체가 심하게
재채기를 했다.
"쿨룩...쿨룩..."
재채기를 할 때마다 시체의 입에서 거무스름한 흙탕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한참이나 흙탕물을 토해내던 시체가 서서히 눈을 떴다.
번뜩이는 외눈이 독고무정을 올려다 보았다.
독고무정은 그 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내가 해 줄 일은 없다. 지금부터는 네 혼자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시체는 멀거니 그를 올려보더니 바둥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하나 그것은 단지 생각일 뿐 실제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혈맥이 뒤틀리고 근육이 굳어져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뒤틀리고 굳어진 근육을 풀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끊임없이 움직여서 근육에 자극을 가하는 길 뿐이다.
독고무정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체가 일어나려고
기를 쓰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손을 내밀어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누가 돕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오직 스스로의 노력으로 몸을 움직이고 근육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체의 몸에서 축축한 땀이 흘러나왔다.
비록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으나 시체의 얼굴은 쉴새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독고무정은 필사적으로 일어나려는 시체의 모습을 묵묵히
내려다 보았다. 지금 시체가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어떠한
고통을 참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독고무정 밖에는 없을
것이다.
갈가리 찢겨진 상처는 그런데로 아물었지만 근육의 태반은
뻣뻣하게 굳어지고 신경도 군데군데가 끊겨 있었다. 두 달
가까이 땅속에 묻히고 늪에 잠겨 있었던 신체는 이미 반
이상이나 세포의 활동이 중지된 상태였다.
그런 몸을 다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고통'이라는 두
글자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전신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견딜 수 있는
극한의 인내력과 집념, 살아야 겠다는 불꽃같은 투지와 강인한
체력이 결합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사(必死)의 각오(覺悟)가 있어야 한다.
독고무정이 시체에게서 바라는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실로 너무도 오랫동안 이와같은 인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낙타와 같은 지구력과 강인한 육체, 어떠한 고통에도 견딜 수
있는 끈기와 집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사의 각오를 지닌 자를....
시체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것은 삼일 후였다.
앉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다시 오일 이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십 일째 되는 날, 마침내 시체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시체가 휘청거리는 몸으로 간신히 일어섰을 때 처음으로
독고무정은 시체를 향해 물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시체는 전신을 땀으로 목욕을 하다시피 한 채 이를 악물었다.
그는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성대의 반이 유엽비수에 달아나 음성이 새어나오지 않는
것이다.
한참후에 그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마치 쇳덩이로 바위를 긁는 것처럼 거칠고 쉬어버린
듯한 음성이었으나 독고무정은 알아들었다.
"노(路)....독(獨).....행(行)...."
시체에게는 그 세 단어를 내뱉는 것이 죽음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독고무정은 번쩍이는 눈으로 시체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독행이라...좋은 이름이군. 이제 너는 떠날 준비가
되었느냐?"
시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하나뿐인 외눈이
독고무정을 바라보며 묻고 있었다.
- 어디로?
독고무정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북해(北海)."
첫댓글 독고무정의 역활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ㅈㄷㄱ~~~~~~```````````````
감사해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즐감
북헤
즐감하고 감니다
ㅈㄷㄳ
즐감하고 갑니다,
줄독
잘읽었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재독했습니다.
즐독!!!!!!!!!!!!
즐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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