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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산으로 가야만 볼수 있던 진달래가 지금은 아파트 마당에 만개해 있다. 우리 연변 조선족 자치주 주화로 정한후부터는 산에 가도 마음대로 꺾어 올수 없는 귀한 몸이 된 진달래이다.
기분 좋은 날에는 밟으면 안되는 잔디를 밟고 화원안에 들어 간다. 진분홍색의 진달래 꽃잎을 똑 따선 입안에 넣고 질금질금 씹어 본다. 약간은 쌉싸름하면서 단맛이 나온다. 향기를 느낀다. 그리고 청춘시절 농촌에 내려가 있을때에 진달래가 주던 환희와 기쁨을 추억한다.
중학교를 졸업한 열 일곱 살 철모르기들이 “집체호”라는 이름으로 가족 아닌 가정을 꾸려 사방이 산으로 꽉 막힌 산골에 내려가 농사일을 배우며 살게 되었다. 아궁이에 앉은 애는 갓 찍어온 물기 자분한 나무로 불을 지필라고 궁둥이를 하늘에 쳐 들고 아궁이에 입김을 불어 넣느라 얼굴이 지지벌개서 헤매인다. 가마목에서는 옥수수 가루를 (첫해에는 국가에서 배급으로 대부분 옥수수가루를 주었다.) 이겨서 그 반죽을 손으로 둥그렇게 빚어서는 가마솥 밑굽에 척하고 붙혀 놓는다. 시간이 얼마 지나면 가마 뚜껑을 연다. 어떤때에는 새까맣게 타서 먹을수 있는 부분이 절반도 안 되고 어떤때에는 절반만 익은 생옥수수 가루로 멀쩡하니 우리에게 매롱~하고 있다.
우리들의 희망은 시골의 뽀얀 안개속에 매몰되였고 하루하루가 막연한 십자로에서 헤매였다. 그때는 진달래야말로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는 유일한 빛이였다. 왜냐면 산골을 빠져나가는 입구에 피여있는 진달래를 보는때는 우리들이 엄마가 기다리는 시내의 집에 가는 길이기 때문이였다. 우리가 있는 심심산골의 입구에는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여났었다. 농사일에 지쳐있을때거나 마음의 절망이 요동칠때면 그 골안을 빠져 나가는 그 입구를 보는것이 어두운 밤에 등불을 찾는 길이였다. 5월이 되면 진달래가 산의 릉선을 빠알갛게 물들여 놓았고 그 진달래를 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얼마간의 환희와 생기를 찾을수 있었다.
몇 년전 역시 5월에 친구와 함께 그 시골에 찾아 갔다. 예나 제나 다름없이 만개한 진달래가 입구에서 우리들을 맞아주었고 가슴에서 울컥하고 옛정이 솟구쳤다. 마을에 도착하였지만 힘이 있는 사람들은 죄다 외국에 돈벌러 갔고 병약자거나 로인 몇분만 초가집에서 나와 우리를 반겨주었다. 허무한 마음에 멀거니 진달래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는데 다행이 당년의 김대장이 70을 바라보는 년세에 둥글소를 몰고 논밭에서 돌아오시는 광경이 아름다운 그림마냥 펼쳐졌다. 우리와 함께하던 70년대에, 령도에서 회의에 참가하라고 하면 그분은 논밭에 엎드려 김을 매면서 “농사를 짓는데 무슨 회의가 이리도 많단 말이냐. 회의하느라고 앉아 있으면 쌀이 나오는가 말이다.”하면서 가려고 하지를 않았다. 세 번 강산이 변하여 온 지금 보니 김대장의 깊은 고향사랑은 진달래의 그 일편단심과 같은것이였다. 사람들은 돈 따라 떠나갔지만 김대장과 진달래는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좀 더 넉넉하게 살고 싶어서 고향을 등지고 돈따라 갔다왔다하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도 리해해야하겠지만 김대장이나 진달래의 먼 조상들은 아무래도 지체가 높은 족속이였겠다는 생각을 혼자 나름대로 해 보면서 김대장의 존재가 진달래 핀 릉선을 따라 올리 솟은 산처럼 느껴졌다. 고향을 지키는 김대장을 위하여 진달래가 피는지?! 피는 진달래를 위하여 김대장이 고향을 지키는지?!하는 엉뚱한 련관성을 지어내면서 나는 마음이 포근해났다. 화사함으로는 장미나 백합같은 꽃이 있고 향기로는 라일락같은 꽃이 있지만, 우리 연변사람들의 마음에 자리한것은 뭐니 뭐니해도 진달래꽃이다. 연변의 산야 어느 산에 가도 볼수 있는꽃. 살길을 찾아 찬바람부는 만주벌판에 온 우리의 조상들과 함께 했던 세월의 력사는 아무도 흉내 낼수 없는것이 아닌가?!
올 4월에도 등산을 갔다가 쭉쭉 빵빵한 가지에 터질듯한 진달래 봉오리들이 호함지게 맺힌것을 만났다. 그전같으면 그 가지들을 뚝뚝 꺽어다가 옆사람들께도 노놔주고 고운 꽃병 가득히 꽂고 물을 함빡 주면 며칠후에 그 아름다운꽃을 보는 향수를 누릴수도 있겠지만 그 아래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눈으로 실컷 요기만하고 안녕히를 부르고 다시 등산길에 올랐다.
시장에 갔다가도 연변의 주화로 정한것을 채 모르시는 할머니가 진달래꽃을 꺽어다가 팔고 있는것을 본다. 그러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진달래꽃을 아끼고 보살펴야만하는 그 도리를 설명한다. 할머니가 다시는 꺽어다가 팔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 한 시름덜고 그 자리를 떠나기도 한다.
진달래꽃은 고집쟁이이다. 음지에 피던지, 조금 늦게 피면 친구도 많고 따뜻한 봄기운에 훨씬 편할것을, 기어코 초봄에, 꼭 산의 릉선을 따라 피면서 찬바람을 감내하는것은 진달래만이 할수 있는 고집이 아닐까?! 우리 민족의 저명한 정의의 투사이자 걸출한 소설가이신 김학철작가의 인생을 진달래에서 찾아 볼수 있다면 그 누가 토를 달것인가?!
그네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그 존재여하를 불문하고 후세에까지 길이길이 전하여질것이리라! 엄동설한을 지내온 천지 만물에 제일 먼저 향기를 전하여주며 봄 인사를 전해주는 그 따뜻한 마음을 지닌 꽃은 아무래도 진달래밖에 또 있을까?!
진달래를 모르고 우리 연변을 말할수 없으며 진달래를 모르고 우리 조선족을 말할수는 없으리니 인제 우리도 진달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려 보자. “ 자식 떠난 부모여, 갈라져사는 부부들이여, 부모효도 못하는 자식들이여!고향을 떠난 우리 민족이여. 인제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고향을 지키는 오월의 꽃, 진달래의 외로움을 우리 민족은 알아야할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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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변의 상징인 진달래를 노래하여 쓰신 고운 글 잘 읽고 가요. 진달래를 모르고 우리 연변을 말할수 없으며 진달래를 모르고 우리 조선족을 말할수는 없으리니 인제 우리도 진달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려 보자....이 말에 내포된깊은 함의를 다시한번 음미해보면서 좋은 음악과 함께 즐거운 아침을 보냈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우리 령도님 없는 시간에 자작글방도 오시고 감사합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진달래 좋은글 즐감하였어요
감사합니다. 울님 행복하세요.
조선민족의 상징인 진달래에 대한 좋은글 즐감하였어요
반갑습니다. 졸작을 읽어주시고 감사합니다.
연변의 상징인 진달래에 대한 긍지에 넘친 글 읽으면서 외국바람의 현실정황도 되돌아보게 되네요.좋은글 성수나는 노래 즐감하였어요
울님 이여름 잘 지내시죠? 댓글 고맙고 울님 하시는일들이 잘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벽에 제일윗집각시와 어느집각신지 셋이서 이글을 읽은것 같은데 시장가 아줌마들이 어서 오라고 하길래 잘 읽었다는 인사도 올리지 못했네요. 진달래의 묘한 속삭임 잘 알고 갑니다. 늘쌍 건강하시고 좋은글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
두만강님은 각시들이 좋아서 그냥. ㅎㅎㅎ 답글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
연변의자랑인 진잘래 꽃을 잘 쓰셨네요 만발한 진달래 꽃을 보니 고향생각 깊이 묻어나네요~~인생을 진달래에서 찾아 보면 그누구가 토를 달가 ~~이미가 있는 구절이네요~~ `좋은글 즐감하고 갑니다~즐거운날 복된날들 되세요~~
반가워요. 이쁜 우리 님, 몸은 건강하시죠?!또 닉네임시 시작해 보세요.
물 떠나 물고기 살수 없고 우리 민족의 넋으로 연변 산천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진달래는 어김없이 년년이 아름답게 피여납니다.비록 철부지 그시절의 하향마을이였어도 다시 찾아 옛추억의 회고를 돌이키는 오월의 꿈님도 틀림없는 진달래의 고집을 우러르는 연변조선족임은 틀림없지요.더운 날 건강 조심하세요.
아름다운꿈님. 우리 진달래의 고집을 닮아서 카페 사랑 건실히 키워 갑시다. 명년 진달래 구경 약속도 하고.~~~
연변의 상징인 진달래에는 두만강을 건너 만주땅에서 강의한 정신으로 땅을 일궈 삶을 가꿔가는 우리선조들의 넋이 고이 담겨져있지않을가 생각됩니다.좋은글 즐감하였습니다
맞는 말씀이죠. 선조들의 넋이 바로 진달래로 피여나는것이 아닐가요?!
진달래꽃에 어린 추억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저도 진달래꽃에 어린 아련한 추억이 있는데, 군 복무하면서 고참(선배군인)들이 산속에 담그어 놓은 진달래술을 밤중에 몰래가서 몇잔 훔쳐먹었는데.....아! 너무 맛이 있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쩝쩌ㅉ...
넘나도 반갑습니다. 카페에서 자주 뵈였음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와요.
수필 잘읽고갑니다 방송에서 듣다가 여기서 다시 읽으니 감수 또한 새롭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미안해요. 요지음 글을 쓰지 않아서. 문학사랑님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