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보관함>
남상순·글
“감정을 왜 어두운 상자 속에 가두어야 하는 걸까?”
매일 시시각각 생기고 또 사라지는 감정, 감정은 일상이다!
오늘도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끓어넘치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위한 이야기
판형 142×210mm | 쪽수 140쪽 | 책값 12,000원 | 대상 청소년
발행일 2021년 11월 9일 | ISBN 978-89-8389-955-2 43810
○ 기획 의도
기쁨, 즐거움, 부끄러움, 분노, 공포, 두려움, 울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날마다 생기고 변하며 사라지는, ‘감정’은 일상이다. 그런데도 때로는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끓어넘쳐,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 홀로 자책하고 울상을 지을 때가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변화무쌍한 감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감정 보관함》은 열여섯 소녀 ‘소라’가 불합리한 체벌에 맞서면서 공부와 진학에 떠밀려 미처 돌아보지 못한 자신의 감정과 인간관계를 바로 보는 성장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남상순 작가는 특유의 필력으로 소통과 공감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 가정과 교실의 문제를 세밀하게 어루만진다. 청소년들의 학교생활, 주인공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섬세하고 재치 있게 풀어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사 시간, 소라는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잘못 듣고 되물었다가 3회의 욕을 했다는 이유로 벌을 서게 된다. 양손 들고 볼펜을 입에 무는 벌이었는데, 그 순간 필기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쪽 손만 들고 나머지 손은 다음 시간에 들겠다고 허락을 구한다. 그렇게 벌쓰고 수업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자 감정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앞뒤 상황을 따져보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벌을 받아들인 자신이 너무 미운 소라. 소라는 소용돌이치는 불편한 감정들을 무사히 해소할 수 있을까?
들끟는 감정에도 쉽게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긴장과 불안,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수치스럽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갖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자기 마음의 상태를 알려 주는 지표라고. 문제를 발견하고,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디디면 그다음 길이 열린다는 깨달음을 전하려는 작가의 응원이 소설 곳곳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책을 보며 독자는 나를 괴롭히는 감정으로부터 해방되고 인간관계에서 더욱더 현명한 태도를 가지며 건강한 자아를 만들어 가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도서 소개
* 우리는 ‘감정’에 얼마나 자유로운가
소라의 이야기를 듣고 대신 펄펄 뛰면서 화내 주고 위로해 주는 친구 성경이. 반면 바른말 잘하는 윤호는 말도 안 되는 벌을 왜 받아들인 거냐며 정곡을 찌른다. 그리고 소라에게 건넨 상자 하나. 일종의 ‘감정 보관함’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감정을 적어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면 나쁜 걸까? 감정을 왜 어두운 상자 속에 가두어야 하는 걸까?
자기 안의 감정 때문에 당황하고, 아프고, 힘든 십 대. 사춘기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사실 말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 부모는 생활에 쫓겨 바쁘고, 형제자매는 없으며, 코로나 시대라 친구 만나기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소설은 감정 보관함이라는 독특한 비책을 통해 독자가 자기 안의 진짜 감정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전한다. 불편한 감정들을 통제하기에 앞서 자신의 감정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표현도 옳게 할 수 있다. 여러 감정 반응으로 고민하는 십 대라면 누구든 공감하며 위로받을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자유로이 행복을 찾아가길 바란다.
* 관계의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학기 초라 서로서로 서먹서먹하게 여길 때지만, 툭 하면 비대면 수업에다가 짝이 없도록 의자가 배치된 탓에 소라는 반 아이들과 친해지기 어렵다. 더욱이 진로와 입시, 성적과 경쟁을 앞에 두고 서로를 돌아보기란 녹록지 않다.
그런데도 학교 성적만큼이나 청소년에게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인간관계이다. 학교 모둠, 동아리, 모바일 메신저 단톡방 등 어릴 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집단과 무리 속에 소속되어 생활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기 청소년들은 다른 이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 그러므로 관계에 관한 건강한 시선과 자신감을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감정 보관함》은 집과 학교에서 나를 든든하게 지지해 줄 관계를 애타게 찾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너무나 외롭고 힘들어 쉽게 자신을 탓하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이고, 그들의 관계 문제를 해결해 줄 해법을 유쾌하고 명쾌하게 제시한다. 소설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뜨거운 감정을 사랑하고, 무수한 관계의 고리를 어떻게 맺어가고 풀어갈지에 관한 혜안을 얻게 될 것이다.
* ‘나’만의 일이 아닌 ‘모두’의 문제를 말하다!
빨대를 물고, 한 손을 든 상태로 비굴하게 필기하던 모습. 그때 느낀 수치심이 끊임없이 재생되자 소라는 용기를 내어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기로 마음먹는다. 처음에는 능구렁이처럼 바라보며 의사 표현을 하지 않던 반 친구들도 서서히 소라에게 힘을 실어 준다. 소라가 벌인 사건, 소라를 둘러싼 사건이 소라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학내 체벌이 금지됐지만, 훈육과 체벌의 경계는 아직 모호하다. 특히 체벌, 교내 폭력, 따돌림 등 여러 문제가 산재한 학교 현장에서 제도적 개입을 넘어 청소년 스스로 자신만의 존엄성을 지키고 다른 이를 존중할 수 있는 기본기를 충분히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교권과 학생 인권을 서로 적대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서로 간의 오해와 갈등, 이해를 밀도 있게 그리며 독자에게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체벌은 개인의 문제인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것을 그대로 가만히 두고 보아도 되는지. 독자는 소설 속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 볼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긍정적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주변의 잘못된 일에 관해 적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을 것이다.
○ 차례
작가의 말
소라와 소유
마음 분리수거
욕하고 싶은 날
마라탕은 대체로 옳다
마무리는 아이스크림
감정 보관함
돌다리도 한번 두들겨 보고
치마허리 고치기
교실 에피소드 1
미꾸라지처럼 매끈매끈
감정 관리를 위한 팁
수업에는 진심인 편
교실 에피소드 2
감정 보관함을 빌려 드립니다
생일 파티
○ 책 속으로
나는 슬슬 시동을 걸었다. 성경이의 하소연에 공감해 주었으니 다음은 내 차례였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태블릿 컴퓨터로 앱을 틀어 놓고 상대의 모습을 감시해 주며 공부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때로는 감정 품앗이도 한다. 서로의 고충을 들어주고 뒷담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미친 듯이 욕을 하며 감정을 푼다.
욕…… 욕이라고는 하지만 절대 쌍욕은 아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식으로 분리수거만 해도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어쩌다 보니 오늘은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다. 그렇다. 성경이는 내게 감정 해소용 친구도 된다. 내 편이 되어 주고 믿어 주니 성경이랑 수다를 떨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살맛이 난다. 내게는 ‘내 마음 받아 주는 회룡포’가 바로 성경이다.
─ <마음 분리수거> 중에서
‘성경이는 이런 나를 용서할까.’
그것이 그 순간 든 생각이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고 용서받아야 할 처지도 아닌데 왜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이해가 안 되다가도 소유를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비굴하고 비겁하고 구질구질하고 지질한 애.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이며 자존감 따위는 못 쓰는 물건처럼 내팽개칠 수 있는 애. 대학에 가면 더러운 이 기분이 보상될까. 그때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취직해야 하니까 참아야 한다며 또 미련을 떠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자발적으로! 나중에 회사원이 되면? 그때는 당당할 수 있어? 꼰대 상사가 해고해 버리겠다며 설칠 때 거기에 맞설 수 있느냐고? 결국 나는 평생 이렇게 지질한 모습으로 살다 죽을 것 같다. ─ <욕하고 싶은 날> 중에서
윤호네 집에 도착했다.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가지는 않고 길에 서서 기다렸더니 윤호가 중간 크기의 상자 하나를 들고나왔다.
“내가 사용하던 건데 무척 도움이 되더라.”
“이게 뭔데?”
“일종의 감정 보관함이야.”
그러면서 상자를 나에게 안겼다. 내게 일어나는 감정을 쪽지나 A4용지에 적어 여기에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저금통처럼 생겼는데 돈이 아니라 쪽지를 넣으라고?’
얼결에 받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물스러웠다. 감정이 아니라 귀신이 보관되어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감정을 보관한다는 거야, 여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조금만 지나면 이 상자의 가치를 알게 될 거야. 이게 없었다면 내가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 나도 몰라. 큰 사고는 아니겠지만 중간 크기의 사고 하나는 치고도 남았을걸.”
─ <감정 보관함> 중에서
나는 비참했다가 화가 났다가 다시 비참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필기는 거의 놓치지 않았다. 고등학생쯤 되니까 내가 필기하는 자동 기계 같다. 머리는 머리대로 생각하고 손은 손대로 저 할 일을 열심히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지질한 짓만 골라 하고 앞으로도 계속 지질할 텐데. ─ <미꾸라지처럼 매끈매끈> 중에서
“SNS에 올릴까도 생각해 봤는데… 암튼 날 바보로 만든 사요나라가 개망신당한 뒤 해고되는 게 내가 원하는 거야.”
이번에는 섬뜩한 느낌 정도가 아니었다. 머리가 핑 돌아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이 사건에 저마다의 소망을 얹으려고 한다. 그 소망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어떤 색깔이 될까. 감당할 수나 있을까. 그것이 내가 시작한 그 사건이 아니게 되면 어쩌지? 그런데도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한국사 선생님만 모른다고 생각하면 뜨거운 고구마가 목 안을 틀어막은 것처럼 숨이 답답했다. ─ <수업에는 진심인 편> 중에서
옆자리 미오가 울상을 한 채 선생님을 부른 것은 그때였다.
“할 말 있으면 해도 돼, 장미오.”
선생님이 시간은 초과했지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는 듯 동작을 멈추고 미오를 바라보았다. 미오는 자리에 앉은 채 입을 열었다.
“선생님한테는… 뭔가…… 빠져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불쌍해요.”
점점 울먹이는 말투가 되더니 발언을 끝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미오가 소리를 내어 엉엉 울자 반 아이들이 모두 따라 울었다. 울지 않는 사람은 온갖 감정으로 출렁거리는 그 시간을 공감하지 못하고 오직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단 한 사람, 선생님뿐이었다.
─ <교실 에피소드 2> 중에서
○ 작가 소개
* 남상순 · 글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문화일보에 단편소설 <산 너머에는 기적소리가>가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듬해에 장편소설 《흰뱀을 찾아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장편소설 《나비는 어떻게 앉는가》, 《동백나무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 《희망노선》과 소설 창작집 《우체부가 없는 사진》, 《도라지꽃 신발》을 펴냈습니다. 2006년 청소년 장편소설 《나는 아버지의 친척》을 발표한 이후로는 《라디오에서 토끼가 뛰어나오다》, 《사투리 귀신》, 《키스감옥》, 《걸걸한 보이스》, 《애니멀 메이킹》, 《인간 합격 데드라인》, 《스웨어 노트》, 《비공개 2인 카페》, 《낙원의 아이》를 출간했으며 장편동화로 《이웃집 영환이》, 《코끼리는 내일 온다》, 《특별한 이웃=□》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