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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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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아무리 봐도...서태후는 조대비(신정황후)같습니다.
홍진영 추천 0 조회 1,626 11.02.16 20:26 댓글 2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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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2.17 07:02

    첫댓글 청나라가 한반도로 왔군요 청과 이조 두개로 보던것을 하나로 보아야 한다면 남한산성을 포위했던 후금 과 인조는 집안끼리 싸운 ㄱ것 일 뿐 국가 와 국가가 전쟁한게 아니군요 서태후 조대비 같은 얼굴 입니다 복장은 필ㅇ요에 의해 다르게 그릴 수 있다지만 성씨는 그렇게 못할거 같은데 이것 참 큰 난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 작성자 11.02.18 00:21

    청나라는 고지도 그대로입니다...한반도는 고지도 대로... 코리아(고려) 또는 朝鮮인 것이고...이도 선대는 고려나 이조에 밀려...이후엔 타타르 청나라(북청)에 밀려 황하 근처에서 이동한 세력이란게 제 생각입니다.

  • 작성자 11.02.18 00:23

    단지,북경을 중심으로 청나라라 불리운 구한말까지의 나라는...서북 타타리아(북청)가 동국조선의 함경도(내몽골) 평안도(북경인근&서안인근) 황해도(신장자치구)를 집중통치구역으로 점유하면서 한반도와 양자강 하류(남명)지역을 간접통치한 달단(타타르)예속의 청구조선으로 해석하는게 제 입장입니다...그러기에 당연히 달단과 인접해 친 달단 계통인 노론 소론의 서인들 세상이 지속됐다 보여집니다.

  • 작성자 11.02.18 00:27

    태평천국의 난(초기 동학운동?)으로...타타르(만주족)에게서 조선의 漢족이 독립하잔 투쟁 와중에 청구조선은 혼란해졌고...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서구 열강들의 영향으로 큰 섬 원숭이들이 일본열도를 흡수한 연후...거세진 힘으로 중원 동남부의 남명세력들인 대한제국 세력들과 제휴...섬 원숭이들이 이미 흡수해 가던 한반도 조선과 현 만주 조선의 왕통을 ...이성계의 먼 방계혈통임을 주장해 대원군계로 심어 놓았고...서북 백러시아에 밀리고 청일전쟁 이후 더욱 몰락한 달단 영향하의 무주공산이 된 북경일대의 청구조선 왕가의 대체 황제로 고종을 심어 놓는게 대한제국의 잠시간의 역할였다 보입니다.

  • 작성자 11.02.18 00:33

    청과 조선의 전쟁은...선생님 말씀 대로...생소한 상대국간의 전면전이라기 보단...서북지역 제후인 누루하치 집안이...왜란으로 쇠락한 명조선과 동국조선의 패권을 쥐기 위한 제후의 반란으로 시작됀 것이고...그 시발점은...전의 글에도 거론했듯이...함길도(몽골)왕인 안평대군을 제거한 수양대군의 난에 기인하며...이때 수양의 수하장수이자...전 여진지역에서 영웅으로 섬겼던 이징옥 장군이 누루하치 등의 여진족들에 의해 대금황제로 추대됐었고...그게 에센으로 추대됀 오일라트의 에센칸일까 합니다.

  • 작성자 11.02.18 00:36

    에센칸에게 토목보 전투에서 포로가 됀 명나라 왕이 세종의 첫째아들인 정종으로 보이며...에센칸을 서북도인들을 이간책으로 구슬러 암살 제거한 명나라 신임황제가...이징옥장군을 제거한 수양대군(세조)라 보입니다.

  • 작성자 11.02.18 00:44

    에센칸(이징옥?) 서거후...2인자인 누루하치가 여진의 우두머리가 돼어...이미 조선관 남이 되어 버린 서북도인들(여진인들)을 규합해...왜란으로 국력이 쇠한 명조와 동국조선을 압박해 가는 과정이 누루하치 여진의 발호이고...조선과의 전쟁구실도...임란의 대리 통치자인 광해군의 숙청에 대한 불만을 구실로 삼았으니...당시까진 누루하치와 홍타이지는...조선의 제후임을 인정한 격이고...임란시기 선조와 조정대신들의 허약하고 무책임한 몰골을 목격하고 실망한 조선 서북도(내외몽골 전체)인들이 이에 동조하였기에...조선이 그리도 쉽게 무너진 것이라 예상됩니다...내란였고...토벌 의병들의 호응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 보입니다.

  • 작성자 11.02.18 00:56

    성명이 다른건 어찌 해석해야 하시나 고민하실 것도 없습니다...여진족인 만주족(카자흐스탄&중앙아&신장지구 서쪽)인들과 문화가 같은 서북도(몽골=황해,함경도)인들과 평안도 (북경 주변)서북지역 인들은...어짜피 지역 사투리가 몽골어 계통이니...만주어(한자로 기록된 몽골어)나 위구루어가 자신들의 지역 사투리였을 것이니...자연스레 그 언어로 이름이 존재했을 것이요...청구조선의 중앙 관료나 국민으로 취급받을땐 청구조선식 한자이름이 다시 부여됐다 보시면 됄 겁니다...부의황제의 동생 부걸등이 현재의 체재에선..흔히 김(金)씨로 불리우듯이여.

  • 작성자 11.02.18 01:00

    경빈이 김씨이니...서태후의 몽골(만주)어식 성씨는...한자로 의역하면 김(金)씨가 아닐지도 싶습니다.
    서태후의 애인이란 영록"도여...서태후에게 아들을 양자로 드리민 경친왕의 별칭일 수 있으며...영록대부의 약칭일지 싶습니다...방계혈통의 황제가 탄생시...그 아비를 영록대부로 추서하는 고려의 전통에 유래한다 보입니다...고로 당대 똑같은 일을 한 대원군이 그 자일지 싶습니다.

  • 11.02.18 08:31

    이부문은 홍진영님의 역작입니다 저를 비롯해 다른 분들도 거들어 주면 좋을거 같은데 저는 홍진영님의 이부문을 계속 보고 있을 뿐 아직 거들 수 있는 정도가 안 됩니다 홍진영님의 계속적인 연구기고 를 기대합니다 특히 토목보 난 이라든가 이징옥 수양대군의 난 과 관련해 기존의 시각을 중앙아시아까지 확장해 생각하는 실력이 아직 되지 않아 맞장구를 치지 못합니다 이점은 홍진영님께서 이해하시고 좀더 좋은글 주시기 바랍니다

  • 11.02.20 03:07

    홍진영님의 천재적인 추리는 한국역사연구의 보배와도 같습니다. 끈질기게 방해하고 다리를 거는 사람들이 많지만,
    부디 개의치 마시고 연구를 계속해 주십쇼, 님의 연구가 얼마나 역사조작 세력에게 위협적이면 거머리 처럼 달라붙어
    방해를 하겠습니까? 그만큼 역사조작 세력은 홍진영님의 추리가 무서운 거겠죠,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말을 안할뿐이지
    님의 연구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 11.02.20 03:10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론인데, 조선의 서인,동인,노론,소론 당파싸움은 천산이서에서 천산을 넘어서 고려를 뒤업은
    달단(타타르)계열 몽골계 이성계집안(여진 포함)과 천산이동 족속들과의 지역적 파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잠시 서인들이 남인과 연합해서 동인(북인)들을 공격해서 조정에서 동인(북인)을 몰아내고,
    그 후엔 장희빈과 숙종때 서인들이 다시 남인을 제거합니다. 임진왜란때 동인(북인)은 광해군을 옹립하려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가해 왜적과 싸웠는데,,이 동인들은 서쪽에서 건너온 이성계조선의 기세에 대항하려 한 듯 합니다.

  • 11.02.20 03:14

    이성계 조선이 이방원 이후로 천산을 기점으로 동쪽은 이방원계열이,,,서쪽은 함흥차사(지금의 우즈벡 카시,,혹은 사마르 칸트?)로 돌아간 이성계의 다른 자손들 계열로 갈라졌다면, 이방원을 따라서 천산이동으로 지역을 옮긴 서인들은 대부분
    여전히 중앙아시아와 혈연적 유대를 가진 달단계열 여진계열들이 많았을 겁니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천산이동 사람들을
    피 지배층으로 무시했을 것이며,,,그래서 광해군때 천산이동의 동인들이 뭉쳐서 서인들의 횡포에 대항했을 것이고,
    이것을 서인들은 임진왜란 이후로 남인들을 부추겨서 동인(북인)들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을 한게 아닐런지요,,

  • 11.02.20 03:17

    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서 동진해온 서인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이씨조선을 세운 지배세력으로서, 농사나 짓는 남인, 즉 대륙의
    남방부족들을 피지배층으로 우습게 알았을 것이고, 따라서 자신들이 지배해야 할 남방계열 족속들과 같이 조정에 앉아
    정사를 논한다는 것을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숙종이나 영정조때만 해도,,이미 이방원계의 조선왕들은
    서쪽의 명나라,,즉 이성계의 다른 자식들 계열인 명나라와는 비록 친족간이긴 하나,,이미 촌수가 상당히 멀어졌고,,
    서쪽 명나라와 혈연관계를 유지하며, 동국조선의 왕을 감시하고 휘두르려는 서인들을 남인들을 이용해서 견제하려 한게
    장희빈같은 사건이 아닐런지

  • 11.02.20 03:21

    숙종때의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건을 보면,,,숙종은 파격적으로 남인인 장희빈세력을 조정에 들이는데, 이것은 남인을 피지배
    노예계층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중앙아시아 출신 서인들에게는 대단한 모욕입니다. 대대로 동국조선에서 서인출신 왕비를
    맞이해야 하는 이유는,,아마도 대대로 중앙아시아에 있었을 이성계의 또다른 자손들인 명나라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을 서인세력이,,,조선의 왕비를 여전히 자신들의 중앙아에 있는 친족들에게서 선발해서 데려오는 역할을 했거나.
    조선의 왕비는 혈통적으로 당연히 조선의 왕처럼 서인(천산기준 서쪽)출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봅니다.

  • 11.02.20 03:26

    인조때 병자호란의 경우도,,,반청세력과 친청세력을 보면...반청세력,,즉 곧 망해가는 명나라에 끝까지 붙어야 한다는 세력은
    서인세력들이 주축이었고,,,새로 떠오르는 청나라에 붙어야 한다는 세력은 "비 서인"세력들 이었습니다.
    서인세력들은 원래 그 혈통이 중앙아시아 출신들이니 당연히 서쪽 명나라가 자신들이 뿌리며 조상의 고향이고,
    대대로 혈통적으로도 결혼등을 통해서 관계를 유지해왔을 것이니, 만약 명나라가 망하면 자신들의 정치적,군사적
    지지기반인 서쪽의 고향모국이 붕괴되니 결사적으로 명나라지원을 주장한 것이고,친청세력인 '비서인"들은 오히려
    명나라가 망하면 서인들의 세력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 11.02.20 03:29

    특히 재미있는 것은,,,홍진영님의 분석대로 명나라가 중앙아시아에서 청에게 밀려서 남쪽으로 찌그러들어서 인도지역을
    새로운 왕조의 거점으로 삼은 무굴제국이라고 봤을때,,,중앙아시아에서 명나라가 밀려서 남쪽 인도지역으로 서서히 수도를
    이동해 가는 시점을 분석해 보면,,,조선왕조에서 서인이 몰락해 가는 것과 타이밍이 거의 일치합니다.
    조선왕조에서 서인은 숙종이후 정조때 쯤이면 거의 몰락하게 됩니다. 숙종,영정조 시기야 말로 조선왕조에서 서인들이
    가장 남인(혹은 "비 서인")을 탄압하고 조정을 장악하려 발악하던 때인데,,,이것은 그들의 대대로 지지기반인 천산이서의
    명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위기의식인 듯

  • 11.02.20 03:33

    중앙아시아에서 조정을 인도대륙,,주로 황제 직할지는 갠지즈강 상류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무굴제국이 "남명"이라는
    홍진영님의 추론을 근거로 했을때,,, 명나라가 중앙아시아에서 남진해서 인도지역으로 완전히 들어가게 되면...
    히말라야 산맥때문에 동국조선의 서인들과의 교류가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조선에서 서인들이 세력을 유지하려면
    여차하면 명나라로부터의 군사적 지원이 있어야 왕도 갈아치우고,타세력도 견제할 수 있지요, 그런데 명나라가 인도지역으로 축소되고, 더구나 1700년대 중후반부터 남명(무굴제국)이 영국등에 먹혀들어 가기 시작할때부턴 조선의 서인세력도
    급격히 와해되고 안동김씨등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

  • 11.02.20 03:40

    명나라가 청에 밀려서 중앙아에서 쫏겨서 남쪽 지금의 인도대륙으로 밀려났다 하더라도, 인도지역에서라도 세력을
    계속 유지했을때가 아마도 숙종,영조,정조 전중반 같습니다. 그러다가 1700년대 중반에 이르면 무굴제국(남명)은 각지방의
    소부족과 페르시아 지역에서의 침략,그리고 영국등 서구세력의 인도대륙 침략으로 급격히 망해갑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왕조의 서인세력 역시 마지막 남은 벽파가 정조에 의해서 숙청당하게 되는데, 조선왕조에서 대대로
    막강한 세력을 휘두르던 서인들이 정조대에 와서 결국 제거되는 것은 바로 서쪽의 모국인 명나라가 무굴제국으로 축소되더니, 결국 망해가서 전혀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

  • 11.02.20 03:43

    그러다가, 정조말년에는 정순왕후로 대표되는 안동김씨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합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나 역사교과서에서나 안동김씨,풍양조씨등을 조선을 망친 대표적인 조선말기 외척세력으로 폄하하고, 매도합니다. 그런데 정조대왕은 말년에 안동김씨 세력에게 의지했고, 신임합니다. 안동김씨 김조순을 사돈으로 맞기까지 하죠, 그런데 이 안동김씨 세력들은
    대부분인 천주교도들인 남인세력을 탄압한 세력입니다. 정조시대는 바로 서양세력이 프리메이슨들이 천주교 사제를 사칭하고 대대적으로 동양에 침투하던 시기로서, 이들은 서쪽은 중앙아의 청나라를 통해, 남쪽은 지금의 인도와 동남아,양자강하류등을 통해서 대륙으로 침투

  • 11.02.20 03:46

    따라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 조선은 서양세력이 천주교를 침투시키면서 국가체계가 급속도로 붕괴되고 약화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1700년대 부터입니다. 그리고 조선에 천주교를 확산시킨 세력은 남인세력으로 대표적으로 정약용집안이 있지요, 정약용은 아마도 지금이 베트남이나 라오스, 혹은 운남성이나 사천성정도의 토호였던 것 같은것이, 베트남의 호치민이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애독했다는 것은 지금이 베트남 하노이 근처에선 대대로 정약용이 영웅시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민심을 얻어야 했던 호치민은 정약용의 이미지를 차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 11.02.20 03:50

    조선의 왕들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툭하면 서쪽의 종가집인 명나라(이성계의 다른 자손들 왕조)에 고자질하며 조선왕을 견제하던 서인들이었지만, 반면에 서인세력은 조선왕조의 든든한 지지기반이었는데, 이 서인세력이 정조때 대부분 몰락하자 정조는 안동김씨 세력을 의지하고 중용합니다. 안동김씨란 안의 동쪽에 있는 김씨부족이겠죠,,이들중 상당수가 후일 한반도지역으로 피신한 건 맞다고 봅니다. 왜 정조는 남인들을 의지하지 않고 안동김씨를 의지했을까? 아마도 정조역시 서양세력과 결탁한 천주교 남인세력들을 믿지 못한 것 같아요, 고로 역사조작 세력은 서양의 하수인들이니 당연히 안동김씨 세력을 조선을 망친 세력으로 날조

  • 작성자 11.02.21 08:19

    리선생님의 댓글...그렇찮어도 제가 다음 글로 쓰려 했던 내용인데...무안스럽습니다...네.저도 딱 그리 가닥이 잡혀 갑니다.
    영정조기의 파당싸움은...이조의 본향세력은 알타이지방(함경북도)의 서북인들인 것이고...우즈벡족(달단)들의 남하로 카자흐 남단으로 밀려 서인(西人)이라 불렸을 것이고...인도로 밀린 무굴의 잔여세력이 동남아로 진출하면선 왜노들과도 섞이면서...그들이 남인도 되는 이치고...서안과 북경 일대의 조선인들은 동인(東人)...내외몽골(함경남북도)인들은 북인...이게 맞지 싶습니다.

  • 작성자 11.02.21 08:26

    아주 중요한 건 이겁니다...
    내내 조정을 휘둘렀던 서인들이...내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었단 겁니다.
    소론은 남쪽 양자강 연안의 남인들과 제휴하여 노론을 치는데...이는 적의 적은 동지다란 비열한 정치다툼인것이 아니라...
    양자강 남쪽 운남,호남성 등지엔...패망 무굴의 잔존세력들이 새로운 세력을 형성했었기 때문이라 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성계의 본향(무굴)세력이 서남쪽으로 찌그러들어 남인세력의 주체가 되는 이치니...서인들 중 소론은...명나라를 이조의 뿌리인 무굴(명)을 끝까지 존숭하던 세력이라 봄이 맞을듯 합니다.

  • 작성자 11.02.21 08:31

    반면...서인(알타이&알타이 이서)들중 노론은...새로운 서인들 지역(여진)의 영웅인 누루하치가를 대체적으로 인정하는 세력으로...
    병자호란 이후로 내내 타타르 청나라를 뒷배경으로..중후기 조선의 권력층으로 존재하다가...태평천국의 난 진압에 동원한 양이들의 진출로 오히려 타타르 청나라가 망해가는 싯점부터 서인들(청나라 달단청인들)중 노론(달단청계열)이 몰락한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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