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투타.. 그의 별명은 바티골입니다. 해설자가 그의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에 골을 넣어버린다는 뜻에서 바티골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는 이 별명답게 9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써 그의 족적을 남겼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중에 하나로 남았으며, 피렌체의 신화가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일화는 많은데 그의 또다른 별명인 '최후의 로맨티스트'의 계기가 된 일화가 그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1969년 2월 1일생으로 처음에는 야구를 했었습니다. 17세가 되어서야 축구 선수가 되었으며 그의 재능이 꽃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91년 브라질과의 친선전으로 A매치에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해에 열린 코파아메리카 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최다골의 주인공도 바로 바티골 바티스투타였습니다. 그 활약을 계기로 그는 피렌체의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되었고 그의 이 이적으로 인해서는 그는 '최후의 로맨티스트'가 됩니다. 그가 이적하고 피오렌티나는 2부리그로 강등을 하게 되는데 수많은 빅리그 팀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는 잔류를 선택합니다.
그의 잔류의 이유는 매우 간단한 것이었는데 피렌체의 시민들 곁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바로 다음 시즌 팀을 다시 1부리그로 복귀 시켰으며 바로 그 시즌에 세리에 A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피렌체에서 여러 시즌을 보낸 그였지만 그가 평소에 말해오던 '스쿠데토'에 한번만 이라도 키스를 하고 싶다는 바램으로 AS로마로의 이적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적은 그동안 그를 열성적으로 믿었던 피렌체의 팬들에게는 배신과 다름없는 행위였기에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적을 위해서 고민해오던 그가 무려 15kg에 달하는 몸무게가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 눈물끼 가득한 눈으로 AS로마로의 이적은 자신의 오랜 꿈 때문이라고 하는 이유를 말하며 피렌체의 시민들을 사랑하지만 떠날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하자 피오렌티나의 서포터즈들은 더이상의 비난을 멈췄다고 합니다.
2000년 5월 그의 이적이 확정되고 그는 당시 사상 2번째로 높은 이적료인 2,200만 프랑에 이적을 하게 됩니다. AS로마로 이적한 그해에 피오렌티나로의 원정경기가 있기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피오렌티나를 적으로 두고 경기에 임하고 싶지 않으며 차라리 자신이 부상당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은 그의 바램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AS로마의 유니폼을 입고 피오렌티나 원정경기에 오른 그는 결국 그의 슛으로 피오렌티나에게 패배를 안겨주었습니다. 2:1의 결승골.. 그것도 오랫 동안 동료로 지냈던 톨도에게서 골을 뺐으면서... 그러나 바티스투타는 어떤 세레모니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눈물을 흘립니다. 그제서야 피렌체의 수많은 서포터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치며 바티스투타의 골에 환호했으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고 합니다.
이런 그이기에 피렌체에는 그의 실물크기의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피렌체 축구의 신의 동상..
그후 그는 '바티골'이라는 별명과 함께 '최후의 로맨티스트'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도 유독 월드컵과는 지독히도 운이 없는 선수였습니다. 마라도나 최후의 월드컵이었으며 바티스투타라는 아르헨티나의 희망이 떠오르던 미국 월드컵에서 그는 1라운드에서 3골(vs 그리스전 해트트릭)과 16강 루마니아 전에 한골을 더했지만 하지가 이끌던 루마니아에게 3:2로 패하며 희대의 풍운아 마라도나의 월드컵 마지막 경기를 함께 장식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98월드컵에서도 1라운드를 가볍게 통과하며 2대회 연속 해트트릭의 기록을 세우며 분전했지만 8강에서 클루이베르트, 베르캄프라는 두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골을 기록한 네덜란드에게 침몰하며 5골을 기록하고 물러났습니다.
2002한일월드컵에서는 죽음의 조에 속하며 나이지리아 전에서 골을 기록했지만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맙니다. 퐁테뉴의 한 대회 최다골은 몰라도 게르트 뮐러의 통산골을 갱신할 가장 유력한 선수로 꼽히던 그는 2002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결국 월드컵과의 인연을 접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급격한 쇠락을 겪은 뒤 카타르 리그 알-아라비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습니다.
사실 그는 수많은 유럽팀들에게 귀화를 권유받았을 정도로 환대 받았지만 그는 조국을 너무 사랑했기에 그들의 권유를 뿌리쳤으며, 피오렌티나를 너무 사랑했기에 아주 늦은 시기에서야 AS로마로 옮겼을 정도의 남자였습니다. 그런 그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르헨티나와 피오렌티나는 결국 최고의 자리로 이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력뿐 만이 아닌 인간으로써도 최고의 선수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최고였으며 최고보다 더 뛰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최고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는 바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저는 언제나 경의를 보냅니다.
바티골.. '최후의 로맨티스트'여..
<담아온 곳 : 지성갤>
골프치시는 예수님
루이 코스타 패스, 바티골 마무리
피렌체에 있는 바티스투타 상(Statue)
가브리엘 오마르 바티스투타 &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Knocking on heavens door - Avril lavi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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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올 바티너무좋고 ㅋㅋㅋㅋ 에이브릴 노래 너무좋고 ㅋㅋㅋ 에이브릴 팬이라는 ㅋㅋ
마지막사진... 예수와 사탄을 보는듯 하옵니다 T-T 바티골 만세!
아르헨티나에서 제가 제일 좋아햇던 선수 바티 ㅠㅠ 너무 멋짐~
마지막사진 진짜맘에든다..
파르마 시절의 베론. 그립군요.
ㅠㅠ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바티만큼 최고의 파트너를 둔 선수는 없을 거에요 ....... 마라도나 ... 후이코스타 .... 베론 ....... 아이마르 .......토티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2002년떄 울면서 쓰러지던때가 기억난다
로맨티스트(X) → 로맨티시스트(O)
바티골 바티골........... 언제까지나 내 영혼의 지배자이길 원합니다 ㅠ_ㅠ
제 우상은 바티골입니다.ㅡㅜ 아 2002월드컵때 그의 눈물이...ㅡㅜ 진짜 안습이었음;;;ㅠㅠ
오~~~ 바티 이한철씨가 노래도 만들었죠....안들어보신 회원님들 한번씩 찾아서 들어보세용...
제 싸이 배경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수님 ㅎ
바티스투타..ㅠㅠ 2002년에는 아르헨티나가 우승하길 바랬건만..16강도 떨어지고..ㅠㅠ 이번에 한번 더 가자 아르헨티나!!!
바티스투타 보고싶다 ㅠ.ㅠ
위대한 축구를 구사하는 바티스투타 ㅠ ㅠ
눈물나오..
예수님 ㅠㅠ............보고싶어요~
바티골...그립다.... 가브리엘바티스투타....
할렐루야 ~~~~~~~~~~~~
ㅋㅋㅋ;; -_-;;
바티도 호나우도급인데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듯;;;
많아요. 꼬맹이들도 베컴은 몰라도 바티는 알던데..
호나우도급이라뇨.. 호나우도가 바티급이겟죠
바티가 호나우도급
호나우도 바티 둘다 비교하지 말아열~
스타일이 다른데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정말 멋진사람이네ㅜ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