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쉴트 일족은 독일계 유대인에서 기원한 국제적인 금융 및 융자 가문으로서 유럽 전역에 퍼져있으며 오스트리아와 영국 정부에게 귀족 작위를 받았다.
마이어 암셸 로트쉴트로 인해서 일족은 국제적인 명성을 알리게 된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게토에서 태어났으며 금융회사를 세우고 유럽 도시에 흩어져 사는 그의 다섯 아들들에게 사업의 주도권을 부여함으로서 자신의 제국을 넓혀나갔다. 장래의 성공을 위한 마이어 로트쉴트의 전략 중 필수적인 부분은 자신의 사업을 가족들의 통제하에 놓고, 그들로 하여금 최대한의 재량권을 부여하여 부를 늘리고 사업을 발전시키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마이어 로트쉴트는 가까운 친족 일원과 계산된 정략 결혼을 함으로서 가문의 부를 성공적으로 유지하였다.
마이어 로트쉴트의 아들들은 아래와 같다.
암셸 마이어 로트쉴트 (1773-1855) - 프랑크푸르트
살로몬 마이어 로트쉴트 (1774-1855) - 비엔나
네이탄 마이어 로트쉴트 (1777-1836) - 런던
칼만 마이어 로트쉴트 (1788-1865) - 나폴리
제임스 마이어 로트쉴트 (1792-1868)- 파리
로트쉴트 가문의 문장
로트쉴트 가문의 문장에는 마이어 로트쉴드의 다섯 아들을 상징하는 다섯개의 화살을 쥔 주먹이 포함된다. 방패 밑에 적힌 좌우명은 라틴어로 콘코르디아(Concordia), 인테그리타스(Intergritas), 인두스트리아(Industria) - <화합, 청렴, 근면> - 을 의미한다. 가문의 성인 로트쉴드(Rothschild)는 독일어로 '붉은 방패'란 의미이다.
# 영국에 대한 군자금 지원과 나폴레옹 전쟁
로트쉴트 가문이 지닌 재력의 기초는 나폴레옹 전쟁 후반기에 축적됬다. 1813년에서 1815년 사이에 런던에 있는 네이탄 마이어 로트쉴트는 영국의 전쟁 자금을 적극적으로 융자해주었으며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 있는 웰링턴 경의 군대를 위한 금괴를 선적하는 일을 담당했고, 거기다 더하여 유럽의 동맹국들을 위한 영국의 금융 보조금을 준비하여 지급하였다. 이러한 거래를 통해서 벌어들이는 수수료를 통하여 로트쉴트 가문의 재산은 막대하게 늘어낳다.
유럽에 흩어져 있는 나머지 네명의 형제들도 네이탄 마이어에게 협조했으며 일족은 유럽을 가로질러서 금을 운반하는 - 또한 정보도 - 대행사와 선적회사로 구성된 운송망을 설립하였다. 이 사설 정보 업체는 정부의 공식 사절이 소식을 알리기 하루전에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이 승전했다는 소식을 런던에 있는 네이탄 로트쉴트에게 전해주었다.
네이탄 마이어 로트쉴트는 자신의 런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1811년 런던시에 위치한 세인트 스위진 레인의 뉴 코트에 N.M 로스차일드 앤드 선즈(N.M Rothschild and Sons)를 설립했으며 이 회사는 현재도 사업을 하고 있다. 1818년에 네이탄 마이어는 프러시아 정부에 5백만 파운드를 대출해주었으며 본인의 은행 사업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정부 차관을 위한 공채를 발행했다. 그는 런던시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립했으며 1825년경에는 유동자산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잉글랜드 은행에 엄청난 양의 경화를 공급하였다.
# 귀족의 지위로 승격되다
프란츠 2세
1816년에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는 로트쉴드 형제 4명에게 작위를 하사했고, 네이탄은 1818년에 귀족으로 승격되었다. 1822년 9월 29일에 로트쉴트 형제들 모두에게 오스트리아의 남작 지위가 수여되었다. 이로 인해서 가족들 중 몇명은 "드(de)," 또는 "폰(von)"이라는 성을 얻게되었고, 로트쉴트 가문은 귀족의 지위를 갖춘 것으로 인정받았다. 1885년에 로트쉴트 가문의 런던 가계에 속한 네이탄 마이어 로스차일드 2세 (1840-1915)는 영국 귀족 사회로부터 로스차일드 남작(Baron Rothschild)이라는 귀족 지위를 수여받았다.
로트쉴트 가문의 금융업은 유럽의 공업화 시절에 거액 융자 분야를 개척해나갔으며 세계를 연결하는 철로 체계에 자금을 지원해서 도왔고 수에즈 운하 건설 작업에 필요한 복잡한 정부 융자를 담당했다.
엄청난 재력을 축적한 이후 로트쉴트라는 이름은 금융업 및 막대한 재산과 동일한 의미로 쓰였으며, 로트쉴트 가문은 자선사업 만큼이나 예술품 수집으로도 명성을 알렸다.
# 시오니즘에 대한 지원
에드몽 제임스 드 로쉴트 남작
2대 로스차일드 남작 월터 로스차일드
로트쉴트 가문은 이스라엘 국가 설립에 대한 지원자였으며, 에드몽 제임스 드 로쉴트 남작은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초기 유대인들에 대한 후원자였다. 1917년에 2대 로스차일드 남작인 월터 로스차일드는 벨푸어 선언을 들은 후 영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를 설립해주겠다는 조약을 서약을 받아냈다.
제임스 A 드 로스차일드는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선물로서 입법부 건물 설립에 자금 지원을 해주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도로시 드 로스차일드의 기부금으로 세워졌다.
몸의 모든 부분은 마음에 의존하고, 마음은 돈지갑에 의존한다. 돈은 사람을 축복해 주는 것이다. 부는 요새이고 빈곤은 폐허이다.
첫댓글영국이 수에즈운하때문에 로스차일드에게 돈을 빌릴때 "대영제국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일화가 있다고 하더군요 ㅡㅡ;; 근데 요새는 후손들이 다 좀 지능이 모자라는 사람들이라 좀 곤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뭐, 그동안 쌓아올린 돈이 워낙 많으니...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첫댓글 영국이 수에즈운하때문에 로스차일드에게 돈을 빌릴때 "대영제국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일화가 있다고 하더군요 ㅡㅡ;; 근데 요새는 후손들이 다 좀 지능이 모자라는 사람들이라 좀 곤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뭐, 그동안 쌓아올린 돈이 워낙 많으니...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먼저 수에즈 운하의 주식을 사놓고서 다시 그걸 영국이 산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 영국의 수상은 디스라엘리 였는데, 그 사람도 유태인이었다지요.
외부인을 믿지못하는지라 같은 사촌끼리 결혼을 했는데(삼촌과 조카 등등) 그게 영향을 끼친것 같습니다...
유태인이 민족심이 엄청 강하나보군요...;
근데 보통은 '로스차일드'라 고 하지 않나요? 내가 잘못알고 있나...
그건 영어식이고, 독일식 발음은 로트쉴트죠.
잘 봤습니다. 마음은 돈지갑에 의존한다...^^;; 마음에 와 닿는... 아니 돈지갑에 와 닿는 말이네요.
하품을 하다 글을 읽고...웃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