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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qIsc3wBgXZ4?si=VaG7yW3ZaE2996au/ 외식
두려운 심판의 날 2:1~11
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3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4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5 그들이 산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6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7 그들이 용사같이 달리며 무사같이 성을 기어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8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
9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오르며 도둑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10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11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2:12~17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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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경고의 소리를 질러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음을 경고해야 합니다. 그날에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고, 에덴동산 같았던 땅이 황폐한 들같이 됩니다. 이제라도 금식하고 애통하며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분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니 뜻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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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심판의 날 2:1~11
‘여호와의 날’은 전쟁을 알리는 나팔 소리로 시작됩니다. ‘어두움, 짙은 구름’ 등은 신현(神顯)의 상징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할 군대를 가리킵니다(2절). 그 군대가 하나님 백성의 땅 가나안을 황폐하게 만들 것입니다(3절). ‘말이 달리는 소리, 사람이 뛰는 소리, 병거 소리, 불타는 소리’ 등은 침략자들의 압도적인 힘과 강함을 표현합니다(4~5절). 그들은 훈련된 용사들로, 성을 포위하고 함락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싸웁니다(7~9절). 성벽을 기어오르고 어떤 상황에서도 대오를 흩뜨리지 않고 진군해, 결국 성을 완전히 정복하는 용맹스러운 군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는 무섭고 강력한 군대의 대장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 더 깊은 묵상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하나님 군대는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나요?
무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멀리할 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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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2:12~17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심판이 아닌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금식, 애통, 마음을 다함, 마음을 찢음’ 등의 표현은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며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12~13절). 요엘은 진정으로 회개하면,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셔서 재앙 대신 복을 내려 주실 줄 누가 알겠느냐고 호소합니다(출 34:6~7). 죄를 지었을 때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성품에 기대어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더불어 죄 용서는 하나님 주권에 달린 것임을 기억하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전쟁의 나팔’이 울리기 전, ‘회개의 나팔’을 불며 하나님 앞에 마음을 찢는 것이 긍휼을 얻는 지혜입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 앞에 옷이 아닌 마음을 찢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돌이킬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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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유익
하나님이 성도의 인생에 고난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자원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더욱 의지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나약함을 알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선함이 없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죄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인생의 위기와 고난은 내 믿음의 질을 점검해 준다. 평소에는 내 믿음의 점수를 모르는데, 위기를 겪으면 내 믿음의 수준을 알게 된다. 헨리 블랙커비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신앙의 위기가 닥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믿는지를 보여 준다.”라고 했다. 위기를 통해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지, 제대로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불같은 고난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게 한다. 고난이 아니면 그냥 넘겨 버릴 하나님의 속성과 사랑을 우리는 고난을 통해 배우기도 한다. 믿음이라는 나무는 고난이라는 거름을 먹으며 자라난다. 고난이 없으면 자기중심의 믿음 생활이 되기 쉽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허용하신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자원만 의지하고 깊이 인내하며,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는 큰 믿음으로 일어서게 하신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 누구보다도 고난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과 깊이 연결된다. 그래서 고난은 유익이다.
내게 왜 이러세요? / 강정훈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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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엘 2장 12~13절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그분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무지한 백성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그곳에서 기쁨과 행복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곳은 죄로 인한 슬픔과 고통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을 찢는 회개로 그분께 돌아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 그분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기 백성에게 이유를 묻지 않으시고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말씀해 주신다. 그것은 바로 죄에서 즉각 떠나라는 것이다. - 존 라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재물의 염려와 이생의 향락에 빠져 심판의 날이 가까움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회개와 기도마저 형식적인 종교 행위로 생각하는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상한 마음을 드리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오니 은혜와 자비로 제 삶을 새롭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539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 흐름 문장 *
1. 주님의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니, 경보를 울리고, 대비해야 함(1~2v)
2. 주님의 날은 놀라운 날, 가장 무서운 날이 될 것이며, 그 누구도 견딜 수 없을 것임(3~11v)
3. 그 날이 이르기 전에 너희는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함(12~17v)
본문의 정리: 심판이 곧 임하게 될 주님의 날 곧 임할 것이니, 너희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분께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고, 금식을 선포하며, 주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은 심판의 날이 곧 임할 것임을 경고하시면서, 우리가 회개하며 돌이켜 당신께로 나아와 심판을 피하고, 거룩한 당신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의 날이 언제 어떻게 임할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니, 그 때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대비하는 백성이 되자
그 누구도 임박한 심판을 회피할 수 없으니, 그 때가 이르기 전에 회개하고, 통곡하며 주님께로 돌아가자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셔서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자
오늘 본문은 임박한 여호와의 날에 대해 선지자 요엘이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날 행해지는 심판은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집니다. 여호와는 위대하고 두려운 존재이며, 그를 당할 어떤 피조물도 없습니다. 이제라도 금식하고 애통하며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분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니 뜻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여호와의 날, 황폐한 세상, 두렵고 강한 여호와의 군대,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등입니다.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메뚜기 떼가 하늘을 덮어 햇빛을 가릴 지경이 되어버린 현상을 서술한 말입니다. 그래서 암흑의 날로 비유한 바, 그처럼 여호와의 날이 닥치면 구원의 소망이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는 암시입니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 맹렬한 산불이 모조리 산을 태우며 번지는 것처럼 메뚜기 떼가 들의 곡식들을 모조리 먹어 치우며 진행하는 것을 묘사한 말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날의 참상으로, 그와 같이 유다 땅은 적들의 침략으로 황폐화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촉구로, 그 이유가 하나님의 다섯 가지 성품에 근거합니다. 첫 번째는 ‘은혜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곧 강자가 약자에게 보이는 히브리식 아량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자비’입니다. 이는 어원적으로 ‘자궁’에서 나온 말로 부모의 사랑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것으로 진노하심을 늦추시는 것이고, 네 번째는, ‘인애’로 이는 신실하심을 뜻합니다.
마지막 뜻을 돌이키시는 것으로, 긍휼이 많으사 마음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요엘 선지자가 출애굽기 34:6-7절의 여호와의 성품에 근거하여 호소한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 곧 여호와의 자기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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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 마치 돌격하는 용맹한 전사들처럼 그 머리는 말이요 뛰는 것은 기병과 같다는 것으로, 그처럼 저돌적으로 임하는 재앙을 유다백성들은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 이 역시 출몰한 메뚜기 떼의 모습을 마치 군대가 진군하는 것처럼 비유하여 기술한 말입니다. 이처럼 생생하게 표현한 것은 메뚜기 떼의 무자비한 공격을 잘 훈련된 군대의 참혹함과 대조시키기 위함입니다. 이 모두 메뚜기 재앙을 빗댄,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입니다.
메뚜기 떼가 요엘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나타나고 있으며, 그 분포도 세계적이며, 다양한 형태로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 남부에 출몰한 메뚜기 때는 몸길이 8 cm 날개 12 cm로 참새만한 것들로 괴물 메뚜기였고, 남호주지방, 북빅토리아지방, 북뉴사우스웨일즈 등등에 나타난 메뚜기 떼는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비행 할 수 있어 농경당국이 해당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답니다. 문제는 예고도 없이 닥친다는 점입니다.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현상은 대비하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으나 그런 곤충들의 습격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뜻에서 메뚜기 재앙은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그 날도 불현듯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 있는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유사이래 죽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날은 개인적으로 먼저 온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오는 것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고로, 또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 오기도 합니다. 자연사로 오는 것이 흔치 않습니다. 아침에 출근한 사람이 영영 돌아오지 않고, 어제까지 멀쩡한 사람이 돌연 듯 투병생활로 들어갑니다. 하루아침에 사업이 망할 수 있듯이 그렇게 한 순간에 죽음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주적인 종말은 실은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자기가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데 신의 자리에 올라 가 걱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메뚜기 떼는 숫자가 커서 무섭지만, 죽음은 다시 돌이킬 수 없기에 무섭습니다.
그러고 보면 안 믿는 사람들은 강심장이기도 합니다. 언제 갈 지, 언제 사고 날지, 병이 언제 걸릴 지도 모르는데 태평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자기는 죽음과는 멀다는 것을 맹신하고 싶어서 그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그런 것들이 피해 가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더 잘 믿어야 한다고 봅니다. 불 보듯 그 날이 올 것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평소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가급적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합니다. 받는 것 없더라도 주어야 합니다. 곧 우리 시간과 물질과 그리고 사랑 등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것들을 하늘에 갖고 갈 수는 없지만 하늘에 쌓을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구약시대에 있었던 메뚜기 재앙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됩니다. 그 때 선포된 여호와의 날이 무효화 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죄인들을 멸하시는 잔혹한 날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사13:9)
여호와의 날은 심히 두렵고 캄캄한 날입니다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2:1~11)
그래서 용사라도 슬피 울게 되는 날입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습1:14) 이 날이 우리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겸손의 표인 금식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2:12~13)
그리하면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2:13)
그래서 에스라는 스스로 겸비하여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스8:21)
그때 하나님의 응낙하심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8:23)
그러므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께서 우리의 간구도 응낙하실 줄 믿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103:13)
우리를 아끼시는 아버지께서 참으로 응낙하실 줄 믿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말3:17)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니 응낙하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욜2:18)
요엘 2:1~11 내일을 보는 시력
요엘 선지자는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닥칠 심판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계시는데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고,
장로들과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에 모여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라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오늘도 동일한 말씀의 연장이다.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다.(1)
이 날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2)
피할 자도 없다.(3)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시온에서 나팔을 불고,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서
이 땅에 사는 모든 백성에게 깨닫게 하라 하신다.(1)
그렇다. 여호와 의 날이 오기 이전에
내가 불어야 할 나팔, 내가 불어야 할 호각이 있다.
힘껏 소리내어 불어 보자.
한 사람의 영혼에라도 들려지게....
앞의 1장에서 메뚜기 떼의 습격과 가뭄 등의 자연 재앙을 통해
여호와의 날에 대한 경고를 하셨지만
지금은 메뚜기 떼의 실체를 실감나게 시청각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 같다.
메뚜기 떼가 얼마나 많은지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2)
빽빽한 구름 끼인 날고 같고, 새벽 빛이 산꼭대기에 덮힘과 같다.(2)
그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같으며(4)
메뚜기의 뛰는 소리가 병거 소리와 같고, 마름 풀이 불에 타는 소리같고(5)
잘 훈련된 큰 군대와 같다.(5)
이것을 본 사람은 질겁하여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6)
정말 엄청난 메뚜기 떼의 공격이다.
이들이 성을 공격하는 모습은 더욱 놀랍다.
하늘이 어두워질 정도의 수많은 메뚜기 떼가 서로 부딪히지도 아니하며(8)
용사처럼 공격하며, 무사처럼 성벽에 기어 오르고(7)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위에 달리며,
집안으로 기어 오르고, 도적 같이 창으로 들어 가며(9)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잃는다.(10)
정말 무서운 메뚜기 떼의 공격이다.
땅이 흔들릴 정도의 일사분란한 메뚜기 떼의 공격
이것이 마지막에 있을 여호와의 날에 징조이다.
이 임박한 여호와의 날이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국토를 황폐케하는 메뚜기 재앙을 나타내지만
두번째는 이방의 나라 바벨론에 의하여 민족적 침략을 당함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나타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나타내는 의미도
분명한 메세지 일 것이다.
출애굽 시에는 10가지 재앙중에 8번째 재앙이 메두기 재앙이였다.(출10장)
당시에는 애굽인들에게만 이 재앙이 있었다.
약속의 자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에는 아무런 재앙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이 받고 있는 경고의 말씀은 오히려
이방인을 통하여 출애굽시에는 없었던 이스라엘이 당하는 예언이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리는가?
믿느자와 믿지 않는 자의 구별이 없어져 버릴 때
선택받은 자와 선택 받지 않은자가 혼돈스러워 졌을 때
예배하는 자와 예배하지 않는 자의 삶이 구별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자연 재난을 통하여 이방인을 통하여
하챦은 메뚜기 떼들을 통하여서 선택한 백성들을 징계하시겠다는 경고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요엘 2:12~17 찢은 옷, 절반의 회개
메뚜기 재앙등을 통하여 여호와의 날의 임박함과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도 없고
누구도 피할 자가 없는 여호와의 날에 당할자가 누구인가?하고
메뚜기 재앙보다 더 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경고 하셨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반전이 있다.
회개하고 돌아 올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내게로 돌아오라 초청하신다.(12)
이제라도 (even now)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감동이 있다.
지금까지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이제라도
아무리 잘못된 과거가 있다해도 이제라도
아무리 늦었다고 생각 하더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내게로 돌아오라고 초청해 주시는 아버지가 감사하다.
무시무시한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의 경고는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아버지의 참 뜻이였다.
이 아버지는 어떠하신 분이신가?
1. 은혜로우신 분이며
2. 자비로우신 분이시며
3.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요
4.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요
5.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다.(13)
이렇게 좋으신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 이시다.
오직 단 한가지 조건만이 있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다.(13)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12)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1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라(13) 말씀하신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쇼를 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이시다.
결과를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동기를 보시는 하나님 이시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그 분을 향해 나아가면 그 뜻을 돌이키시는 아버지께
징계를 은총으로 바꾸며 나아가자. .
그러면 주께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축복하셔서
하나님께 소제를 드릴 곡식과 전제를 드릴 포도주를 주실지
누가 알겠는냐? (14) 하신다.
그래서 요엘 선지자는 요청한다.
백성과, 장로와, 소아와, 젖 먹는자, 신랑과 신부(16)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젖먹이 아이까지 누구나 다
예외없이 마음을 찢는 회개에 동참하라 촉구하신다.
제사장들에게도 동일 한 것을 요구하신다.
울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17)
1.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2. 주의 백성인 우리가 열국의 조롱 거리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3.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어디있느냐?라고 하지 못하도록
중보기도하라고 촉구하신다.
민족의 죄를 우리의 죄로 나의 죄로 알고
민족의 죄악을 바라보며 분열의 영을 바라보며
마음을 찢어야 할 나의 영역은 어디인가?
부정과 부패, 도박, 마약, 음주, 음란, 폭력, 낙태 뿐만이아니라
물질을 사랑함,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사상, 미신과 우상 숭배
불륜을 미화하는 드라마와 인터넷에 흐르고 있는 세대의 음란함
이루 말로 다 할수 없는 마음을 찢어야 할 영역이 있다.
❝‘이제라도’ 돌아서는 삶❞
❚ 회복의 주권과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그분께 돌아가야 합니다
➲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삶이어야 합니다(1~11절).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의 소리를 울려야 합니다.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해야 합니다(1절).
‘거룩한 산’ 즉 교회의 사명은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날은 해와 달과 별들도 그 빛을 잃고, 불꽃이 활활 타올라 모든 것을 삼켜 버리고, 에덴동산과 같은 곳이 황량한 사막과 같이 변해 버릴 것(2~3절)입니다. 주님이 친히 그 재앙을 지휘하십니다. 그분이 이끄시는 병력은 막강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4~11절). 이러한 사실만 봐도 주님의 심판의 날은 놀라운 날, 가장 무서운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징계하시고, 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듣는다면 그에 따른 책임과 결과는 고스란히 내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입맛에만 맞는 성경 구절, 설교를 지향하지 말고, 때로는 나를 향한 따끔한 경고의 메시지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열린 귀와 열린 눈과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정작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메시지를 듣는 것을 거북스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는 설교, 기복신앙과 세상의 이념들과 맘몬 지향적인 설교, 성도들은 성공, 교회는 수적 성장이란 가치만을 추구하는 설교들이 강단을 차지하고 있는 작금의 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혼돈의 시대 속에서 복음의 바른 가치관을 바로 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 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은 선포되는 것이고, 인간은 그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말씀 안으로 들어가 내 자신을 향한 그리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마음을 찢는 애통의 삶이어야 합니다(12~14절).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지만, 심판을 피할 기회가 있습니다. ‘이제라도...돌아오라...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12,13절)입니다. 돌아오는 방법은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12절) 그리고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13절a)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13절b) 아니 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찢는 진정한 회개가 있으면, 하나님이 그 재앙을 거두실 뿐만 아니라 복을 내리실 것(14절a)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소제와 전제로 다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 것(14절b)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다하여...마음을 찢고’(12,13절)는 형식적으로 돌아오지 말고 온전히 돌아오라는 의미입니다. 심판의 경고 나팔이 울릴 때, 그 경고가 듣기 싫어서 귀를 막는다고 해서 심판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에 대한 경고는 심판을 당해 아주 망가지기 전에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또 한 번의 기다림이십니다.
그러므로 머뭇거리지 말고 이제라도 마음을 다하고, 마음을 찢어 하나님께 돌아서야 합니다. 우회전으로 빠져 나아가야 하는 길을 지나쳤다면 앞에 보이는 유턴 표시가 있는 곳에서 유턴을 해서 다시 왔던 길로 돌아오면 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켜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찢는 회개의 눈물이 회복될 때 내 자신 안에 기쁨과 평안과 천국의 삶이 회복될 것입니다.
➲ 회복을 믿는 회개의 삶이어야 합니다(15~17절).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피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15절)해야 합니다. 성회에 모여야 할 자로 장로, 어린이, 젖 먹는 자, 신랑, 신부가 언급됩니다(16절). 젖 먹는 자까지 불러 모으라는 것은 모든 계층이 회개에 다 동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성전 현관과 번제단 사이에서 울면서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이방인들에게 욕보이고 조롱당하지 않도록 도우소서...’(17절)라고 호소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힘과 소유 등의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은 회개뿐입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순종과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도록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감으로 긍휼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을 다해 회개하므로 식어 버린 가슴이 다시금 뜨거워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어떤 이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서 있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상하고 찢긴 마음으로 간절히 회개하여 이제라도 하나님께 나아와 마음을 다해 죄를 고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욜 2:1~17절)...
그들에게 옷을 찢고 회개하는 일은 가장 간절한 애통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표현조차 진정한 돌이킴에 이르지 못하는 형식에만 머무르게 되고 그들의 영혼의 청소를 맡은 제사장들조차 그 거룩을 잃어버림으로 결국 그들은 쇠하고 능력을 잃어버린 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요엘을 통해 “옷이 아닌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서 그 풍성한 사랑과 오래 참으셔서 그들을 여전히 긍휼히 여기신다"라는 그 헤세드를 깨달아 알도록 외치게 하십니다.
돌이킨 자녀를 받지 않을 부모가 없듯,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그 앞에 엎드리는 민족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그분의 신실함에 기대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외 없이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떠나 그들이 드려야 할 예배의 형식과 갖추어야 할 그 애통의 마음이 회복되고 여호와의 이름이 더럽힘을 받지 않도록 그 은혜에 합당한 자들이 되게 하시는 그 뜻을 이 땅 가운데 선포할 때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손길로 모두의 심령 깊은 곳까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그 은혜의 손길을 붙들고 그 소망 가운데 거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1절 메뚜기 떼는 사실상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부대를 지휘하여 자기 백성을 향해 진격하십니다. 심히 크고 두려운 날이요, 아무도 당해낼 수 없고 막을 수 없으며, 피할 수 없는 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씀을 저버린 자들을 향한 진노입니다.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닥친 환난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끝나진 않을 것입니다.
12~17절 백성에게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이방 나라에 무너져서 ‘주의 기업’이 욕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하여 이방인들 입에서 ‘주의 이름’이 조롱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울며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할 말까지 다 일러주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이런 신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 인애가 크셔서 언제든 재앙 내릴 뜻을 철회할 준비가 된 하나님 말고는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버티겠습니까?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돌아갑시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3절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습니다. 어서 경고의 나팔 소리 울려서 백성들을 떨게 해야 합니다. 그날이 당도하면 피할 수 없습니다. 그때 회개하면 늦습니다. 지난 메뚜기 재앙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유례없는 멸망이 있을 것입니다. 에덴동산 같던 가나안 땅이 황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면, 그날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없는’ 에덴동산을 이루려 하지 마십시오. 경고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둔감한 영혼이 되지 마십시오.
4~10절 여호와의 날이 되면 하나님이 동원하신 강한 군대, 잔인한 군대, 용맹한 군대가 쳐들어올 것입니다. 물러서지 않고 막힘없이 돌파하여 이스라엘 앞에 당도할 것입니다. 백성들은 낯빛이 하얗게 질릴 것입니다. 재림이 없고 심판도 없으니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라는 말을 거절하지 않는다면, 죄인들을 향한 심판의 역사가 나에게도 현실이 되고 말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이제라도 돌아가겠습니다. 제가 잘못했다고 실토하고 주의 긍휼을 구하겠습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을 찢고 변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복된 삶 살아가는 오늘 하루의 시간 되길 구합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 쉬이 절망하고 넘어지지 않고
우리 안에 돌이켜야 할 것들을 다시 깨어 들여다보고 간절히 구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령 충만한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해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믿음의 밧줄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말씀과 예배의 기쁨이 다시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맡겨주신 거룩한 사명을
다시 붙들고 여호와의 날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도록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