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25:
40
후세이(Houssaye)는 말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마태가 기록해 주고 있는 마지막 설교에서 예수께서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강화에서 그는 그의 메시지를 실행토록 하는 말씀을 하고 있다.
그것은 "가장 작은 자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지난 시간 마지막 심판의 중요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예수의 재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임을 살펴보았으며,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 그 곳에 서게 될
것을 살폈다.
그 날 예수께서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며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실 것이라. 그 심
판의 최종적인 성격 또한 살폈다.
어떤 기준에 근거해서 분별하는 작업을 할 것인가? 그 대상은 나를 놀라게 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25:33~36
구원받은 자의 표시가 무었일까?
이방 지역에 기꺼이 가고자 한 것인가?
대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설교하는 능력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구원받은 자의 표시는 가장 작은 자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이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 주목해 보았는가?
거기엔 어떤 화려함도, 그 어떤 요란함도 없다. 단지 선한 일을 행하는 선한 사람들이
있을 따름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
이다.
예수는 잊혀진 자들 가운데 거하고 계시며, 무시 당하는 자들 가운데 사신다. 그는 병자
들 가운데 그의 거처를 두고 계신다.
만약 하나님을 보기 원한다면
상한 자들....
지친 자들.... 가운데로 나아 갈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히11;6 이것은 약속의 말씀이다.
"내 형제 중에 지그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25:40
이는 구체적인 실천을 보여 주는 것이다.
놀라우리만치 가치있는 것이 전혀 있을 법하지 않는 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세상을 등진 사람들, 이를테면 집이 없는 사람들.....편모, 편부의 손에 맡겨진 아이들....
고아, 병마에 시달리며 홀로 아파하는 이들....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밤을 지세우는
이들.... 에 대해 투자를 하라.
"그들에게 대하는 것이 곧 나를 대하는 것이다".
생애 마지막 주간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가르침 가운데 이 가르침이 나를 흔들어
댄다.
그의 말씀은 내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곧 상처입은 사람을 돌아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예수를 보고자 하는가? 요양원을 찾아 할머니의음식드시는 것을 도와주라!
예수를 보고자 하는가? 주님께 아무도 찾아 주는이 없는이가 누군지 물어보라!
예수를 보고자 하는가? 사무실을 나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혼의 고통속에 몸부림치는
동료를 찾아보라.....
예수를 보고자 하는가? 도심가운데 불쌍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 설교가 아닌 필요한
것을.....
예수를 보고자 하는가? ......볼품없는 이들에게....잊혀진 자들을 찾아가라.
때때로 우리의 기대를 재 조정할 필요가 있다.
때때로 우리의 동기를 재 조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등을 돌린다면 우리는 그 보다 더한 것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출처/염산대교회카페
첫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