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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은 세계챔피언이라는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사진 김동하) |
미국 진출 1호 복서근황은 어떤가.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한 번 이겼다고 쉴 겨를은 없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지인들을 찾기도 한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비염 치료를 받았다.
코의 상태는 어떤가. 호흡이 불편해 간단하게 치료를 받았다. 경기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일상생활을 할 때에만 좀 불편할 뿐이다.
경기가 세 번이나 연기됐다고 들었다. 준비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 원래는 2월 2일 경기가 잡혀 있었다. 3월 7일로 한 차례 연기되더니 다시 4월 15일로 미룬다는 통보가 왔다.
결국 현지시간 5월 16일에야 경기를 치렀다. 3월 7일 경기는 코네티컷주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는데 계약서도 썼고 메디컬테스트 서류까지 보낸 상태였다. 하지만 취소됐다.
경기가 계속 늦춰지자 김형열 관장이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상관없었다. 언제 링에 올라가도 문제없을 정도로 꾸준히 운동을 해 왔다.
언제 경기가 최종 확정됐나. 4월 3일이다.
경기를 앞두고 감량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 언제든 경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몸을 맞춰 두고 있다. 그래서 큰 어려움은 없다. 식단은 김관장이 짠다. 계체를 끝낸 뒤에는 바로 힘을 낼 수 있도록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한다.
PABA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반납한 이유는. 원래는 챔피언 벨트를 갖고 있으려고 했다. PABA 챔피언은 자동으로 WBA 랭킹 15위 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PABA에서 미국 진출 소식을 들은 뒤 반납을 지시했다. 챔피언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3차 방어전에서 에두아르도 아파프를 이긴 뒤 링 위에서 바로 챔피언 벨트를 반납했다. 그 뒤 경기가 계속 미뤄지는 바람에 랭킹이 떨어졌다. 지금은 WBC 수퍼페더급 28위다.
고골라지와 경기는 미국 원정인 데다 한국 복서들이 전패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부담스럽지 않았나. 어차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김관장은 “그냥 챔피언이 아니라 진정한 챔피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기는 복서가 진정한 챔피언이다.
고골라지가 강적이었는데. 내 목표는 세계챔피언이다. 어떤 선수도 두렵지 않다.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어차피 링 위에서 두 주먹에 같은 글러브를 끼고 싸운다.
오히려 커리어가 있는 상대라 기쁘기도 했다. 경기를 준비하며 내내 즐거웠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골라지는 국내에선 드문 왼손잡이다. 대비는 어떻게 했나. 훈련 상대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태릉선수촌에서 아마추어 국가대표 선수들과 스파링을 하기도 했다.
상대가 왼손잡이라고 해서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왼손 복서인
이우석(2R KO승),
김정훈(한국 타이틀전,2R KO승) 등을 상대해 본 적이 있다.
시차 적응 문제는 없었나. 시차 적응과 컨디션 조절을 이틀 만에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위에서 걱정하는 만큼 힘들진 않았다. 경기 사흘 전에 미국으로 떠났다. 김관장과 세컨드를 맡을 후배 정진기가 동행했다.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라스베이거스로 갔는데 16시간이나 걸렸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 자고 일어나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한국에서도 아침에 일어나 훈련을 시작하니까 환경이 똑같다고 생각했다. 세계 어디에서 경기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리듬을 맞추면 되지 않겠나.
그래도 이틀은 너무 짧지 않나. 비용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배너프로모션에서 그렇게 일정을 짜니 따를 수밖에 없다. 선수는 여건에 맞춰 훈련할 뿐이다.
수퍼페더급으로 한 체급 올렸다.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체급을 올리니 감량도 편해졌고 경기한 뒤 회복 속도도 빨라졌다. 더 훌륭한 파이터가 되고 싶다.
경기가 원래 세미파이널 10라운드였는데 6라운드로 바뀌었다. 방송국 사정 때문이었다. 메인 이벤트가 라이트헤비급의 크리스 버드와 숀 조지의 경기였다. 원래 메인 이벤트 앞에 두 경기가 잡혔는데 다른 유망주의 경기가 추가됐다.
ESPN의 <프라이데이 나이트 파이트(Friday Night Fight)> 프로그램에서 경기를 중계했다.
방송 시간 문제로 앞 경기가 KO로 끝나면 8라운드, KO가 아니면 6라운드로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로선 라운드가 많고 적은 건 상관없었다.
토머스 앤 맥 센터의 분위기는 어땠나. 링 위에 오를 때만 해도 관중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자 환호가 쏟아졌다.
경기 중에도 떠들썩했던 것 같다. 낯선 한국 선수에게 갈채를 보내 준 게 인상적이었다. ‘이곳에는 순수하게 복싱을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컨드 자리에 외국인이 있던데 누구인가. 김형열 관장│밥 클럽이라는 커트맨이었다. 라운드 사이 휴식 시간에 선수들의 상처를 꿰매 주는 사람이다.
숙소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같은 날 경기를 치를 선수의 프로모터 겸 트레이너였다. 커트맨 라이선스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클럽의 선수가 메디컬 체크를 통과하지 못해 경기가 취소됐다. 커트맨이 필요한 상황이라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비용은 100달러였다. 미국은 경기를 치르는 절차가 까다롭다.
얼마 전 여자선수 김단비(17,안성제일복싱클럽)도 17세 이하 선수는 경기를 할 수 없다는 캘리포니아주 체육위원회의 규정을 몰라 현지에서 경기가 취소됐다.
고골라지의 첫인상은 어땠나. 경기 전 김관장이 설명한 대로였다. 올림픽에 출전한 아마추어 출신이라 기본기가 잘 돼 있었다.
중심 이동이 좋았고 전체적으로 뚜렷한 약점이 없었다. 경기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분석을 했다.
오른손이 앞에 나오는 왼손잡이에 공격적인 상대라는 이미지를 그렸다. 실전에서도 그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어떻게 싸워야 할지 그림이 그려졌다.
라운드 초반에는 좀 고전하지 않았나. 사실 버팅을 당했다. 시작하자마자 주먹을 휘두르며 공격을 했는데 고골라지가 클린치를 하면서 머리로 받았다. 충격이 꽤 컸다.
그 상태에서 왼손 보디 블로를 맞았다. 노련한 선수답게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공을 펼쳤다. 공격을 피하다가 비는 쪽을 노리자고 마음먹었다.
첫 번째 다운을 뺏은 펀치는 무엇이었나. 캐스터 로버트 플로레스는 “뷰티풀 쇼트 샷(Beautiful Short Shot)”이라고 칭찬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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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김지훈은 미국 무대 데뷔전에서 35살의 복서 코바 고골라지를 질리도록 몰아붙였다.(사진 김동하) |
카운터로 들어간 왼손 쇼트 훅이었다. 고골라지의 공격에 허점이 보였다. 그래서 각도가 작은 카운터펀치를 노리고 있었다.
복서들은 다운을 빼앗은 직후 어떤 행동을 하나. 상대방의 상태를 살핀다. 고골라지의 얼굴을 보니 동공이 열려 있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더 몰아붙여서 녹다운을 시키겠다는 마음이었다.
두 번째 다운 상황을 설명해 달라. 오른손과 왼손 콤비네이션으로 공격했다. 첫 번째 다운의 카운트가 끝나자마자 뛰어 들어갔다. 찬스에 강한 선수가 돼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승리한 뒤에 무슨 생각이 들었나.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돌아보니 관장님이 보였다. 나를 안더니 번쩍 들어 주셨다. 한 번 이겼다고 무엇이 바뀌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큰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 좀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김지훈에 대한 미국 현지의 반응“1라운드에 끝난 흥분되는 경기였다. 35살인 코바 고골라지는
알렉스 아더와 치른 주니어라이트급 잠정 챔피언 타이틀전에서 10라운드 TKO로 졌다. 재기전에서 손쉬운 승리를 거둘 것 같았다.
라운드 초반 고골라지는 김지훈을 몰아붙였다. 펀치 한두 방으로 경기는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 무대 데뷔전에 나선 스물한 살 김지훈은 이내 역습으로 고골라지를 질리게 만들었다.
김지훈이 고골라지를 두 번 캔버스에 누인 뒤 로버트 버드 주심은 경기를 중단했다. 김지훈은 ‘흥미만점의 ‘물건’이다. 그를 유심히 지켜보자."
칼럼니스트 댄 라파엘공은 이제 막 울렸을 뿐대학생인데. 부천대 생활스포츠학과 08학번이다. 세컨드를 맡은 정진기는 나보다 세 살 어리지만 같은 학과 같은 학번이다.
군대 문제가 있어 대학을 다녀야 할 것 같았다. 훈련 때문에 아무래도 학교에 자주 가기 힘들다. 사실 입학식 이후 한번도 등교한 적이 없다. 학교 측에서 여러모로 배려를 해 줘 고맙다.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교 2학년 때 처음 체육관을 찾았다. 현재 소속인 일산주엽체육관이다. 그때는 두 달 만에 그만뒀다.
그런데 김관장이 체육관 친구를 통해 다시 복싱을 하라고 권유했다. “큰 꿈을 가지고 제대로 시작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훈련을 하다 보니 복싱이 적성에 맞았다.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는 것도 좋았다. 열심히 하다 보니 1년 반 만인 2005년 9월 한국 챔피언이 됐다.
아마추어 경력은 없나. 없다. 김관장의 권유를 받고 복싱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2004년 4월이다. 6월에 프로테스트를 KO로 이기고 통과했다. 그리고 10월에 우우성을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세계 챔피언의 꿈은 언제부터 가졌나. 2004년 신인왕전 준준결승에서 조주환에게 판정패했다. 다운을 빼앗아 이긴 경기라고 생각했는데 판정에선 졌다. 납득할 수 없었다.
경기 뒤 김관장이 “네가 이긴 경기”라고 위로하면서 “내 꿈이 세계 챔피언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제자인 너를 통해 꿈을 이루고 싶다”고 하셨다. 챔피언의 꿈은 그때부터였다. 지금도 그 꿈은 변함없다.
복싱은 힘들고 어려운 운동이다. 부모님의 반대가 컸을 것 같은데. 어머니는 내켜하시진 않았지만 반대도 하지 않으셨다. 믿어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많이 반대하셨다. 아버지 몰래 체육관에 다녔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집을 비우시는 날이 많다.
복싱을 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건 2005년 한국 챔피언이 된 뒤였다. 아버지께서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라”고 격려하셨다.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이지만 늘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형편이었다면 내가 어떻게 복싱을 할 수 있겠나. 부모님 덕분에 하고 싶은 복싱을 계속 할 수 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인데.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복싱 선수다. 세계 챔피언의 꿈을 갖고 있다.
쉬는 날이 거의 없다. 정말 지칠 때면 김관장에게 하루쯤 쉬겠다고 말씀 드린다. 두 달에 한 번 정도다.
그날은 집에서 쉰다. 그러다보니 아직 여자 친구도 없다. 여자 친구를 사귈 여유도 없다.
지난해 SPORTS2.0과 인터뷰에서 1980년대 복서 토마스 헌스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링 위에서 보여 주는 강렬한 카리스마에 반했다. 폭발적인 연타와 좌우 스트레이트 등 그의 모든 것이 그냥 좋다.
자신 있는 기술은 무엇인가. 스트레이트와 훅, 어퍼컷 다 자신 있다. 팔이 길기 때문에 스트레이트가 강한 것 같다. 벽을 뚫어 버릴 정도의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싶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은. 복싱은 끝이 없는 운동이다. 특별히 무엇을 보완한다기보다는 더 발전하고 싶다. 내겐 아직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모자라는 면을 지적하면 곧바로 고치고 싶다.
김형열 관장│(김)지훈이는 체격 조건이 좋다. 기량도 빨리 느는 편이다. 뚜렷하게 고쳐야 할 약점은 없다. 다만 김지훈만의 개성 있는 복싱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리듬과 밸런스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복싱의 매력은 무엇인가. 땀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프로복싱이 침체기다. 관중들의 눈에는 복싱이 K-1 등 이종격투기에 비해 재미없는 운동으로 비쳐질 것이다.
하지만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와서 높은 수준의 복싱을 하면 팬들은 돌아오게 돼 있다. 나는 그런 선수가 될 것이다.
그러면 프로복싱의 인기가 높아지지 않겠나. 당장의 관심이나 인기에는 휘둘리지 않겠다. 나만의 야망이 있다. 세계적인 복서가 되고 싶다.
어떤 복서가 되고 싶나. 단순한 세계 챔피언이 아닌 ‘챔피언 중의 챔피언’이다. 수퍼페더급에서 챔피언이 되면 한 체급 위인 라이트급에 도전할 것이다.
프로복싱하면 김지훈을 떠올릴 정도의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좀 더 큰 무대에서 뛰는 게 1차 목표다.
김지훈에게 복싱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전부다. 지금 내게서 복싱을 빼 버린다면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게 된다.
SPORTS2.0 제 105호(발행일 5월 26일) 기사
일산=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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