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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봉-상학봉(제23차, 1,057.7m : 보은)
*일 시 : 2005. 4. 16~17(주말무박산행)
*코 스 : 시어동화북분소-성불사-문장대-관음봉-속사치-982봉-북가치
-묘봉-상학봉-매봉(829봉)-우측계곡-화평동-운흥리 용화산식당
RTNAH 제 23 차 속리 서북릉(관음봉-묘봉-상학봉)
(경북 상주시 화북면,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산외면)
일 시 ; 4월 16~17일 (무박)
산행시간 ; 10시간 (B코스: 북가치 까지 5시간)
추풍령 방향으로 향하던 백두대간이 속리산에서 서북 방향으로 가지를 친 지능선에 솟아있는 묘봉(妙峰 874m)은 관음봉(985m),상학봉(上鶴峰 834m)사이에 위치하며 모산은 속리산으로 일명 두류봉 이라고도 한다. 독립봉이 아니라 암봉으로 연결되어 있고, 암릉은 몇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에는 거석들이 즐비하며 석문이 많다.
상학봉등 8개 암봉, 묘봉, 로프, 큰바위굴, 병풍 같은 암벽, 거목 등이 어울려 수려하다.
묘봉의 거대한 평암봉은 물론 능선에서의 백악산-낙영산 등 조망이 뛰어나다.
카페에 소개된 안내다.
16일 밤 10시 10분.
연말연시 신년 산행이후 맞는 오랜만의 무박산행이다.
봄내음이 물씬한 봄밤이다. 宋의 대문호 소동파의 시구에 춘소(春宵)란 말이 나온다.
‘春宵一刻値千金’'(봄밤의 일각은 천금이다)
봄밤은 그대로 일각도 천금이여
꽃향기 그윽한데 달도 밝구나
풍류에 섞인 노래 멀리 들려오고
한숨소리에 쩌른 밤 깊어 가누나.
<春宵>란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온의 봄바람이 부는 봄밤을 뜻한다.
각(刻)은 시간의 단위이다. 15분에 해당되지만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천금(千金)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니 '一刻千金'(일각은 천금의 가치가 있다)은 '시간을 아껴 쓰라'는 말이다.
따사로운 봄바람에 만산초화들이 경쟁적으로 피어나고, 그 꽃향기에 취해 잠을 청하기 차마 아까워 이런 봄밤의 분위기는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모처럼 春宵를 흠향하며 주말무박산행에 나선 4월 중순의 밤은 생각만 해도 절로 흥이 인다. 이런 의미에서 혹자는 봄밤은 황홀할 만큼 위험하다고 한다. 봄꽃들이 함부로 뿌려 놓은 진한 향기와 낯선 공기는 영혼을 공중에 들어올린 봄밤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函數일께다.
속리산 (1,058m)은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사이를 병풍처럼 갈라놓은 道界다. 백두대간의 능선에 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峰1058m)을 중심으로 비로봉(毘盧峰:1,032m), 문장대(文藏臺:1,054m), 관음봉(觀音峰:982m), 길상봉(吉祥峰), 문수봉(文殊峰) 등 9개의 화강암 암봉이 연꽃처럼 솟아올라 구봉산(九峰山)이라도 하였고, 광명산(光明山), 미지산(彌智山), 형제산(兄弟山), 소금강산(小金剛山) 등 異稱이 있다.
속리산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신라시대 이후로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첫 번째는 통일신라 선덕여왕 5년(784년)에 고승 진표(眞表)율사(律師)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이를 본 농부들이 고승 대덕의 법력에 놀라서 진표 율사를 따라 속세를 버리고 입산수도하게 되었는데, 이로부터 '속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천여 년 전 신라 말 지성의 대표자였던 孤雲 崔致遠이 속리산을 찾아 읊었다는 詩에서 유래됐다.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道)를 멀리하며,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는데 속이 산을 떠나는구나.)
사람들은 산이 속세(俗)를 떠나 있는(離) 줄 알았는데, 사바의 사람들이 산을 등지고 떠난다고 한다. 속세를 떠난다는 뜻의 <俗離>라는 이름에 걸맞게 峻峰과 深溪의 절묘한 조화 속에 많은 명승고적을 품고 있는 속리산은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도 단연 으뜸이다.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산행과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속리산의 트레이드마크는 단연 법주사와 문장대(1,033m)다.
속리산국립공원은 보은의 속리산지역, 괴산의 화양구곡, 쌍곡구곡 등 세 지역으로 나뉜다. 천황봉(1,057.7m)을 최고봉으로 구봉산의 이름을 낳게 해준 관음봉(962m)-태봉-수정봉-길상봉-묘봉(874m)-문수봉-보현봉 등 9봉과, 문장대(1,054m)-청법대-신선대-경업대-입석대-산호대-배석대-학소대-봉황대 등 9대가 있다. 계곡으로는 화양구곡과 선유구곡 그리고 만수계곡, 서원계곡, 갈론계곡, 각연사계곡 등 비경을 간직한 깊은 계곡이 구봉-구대와 함께 절경을 이룬다.
최근 속리산 산행은 화북면 운흥리나 신정리를 들머리로 상학봉-묘봉-관음봉-문장대를 잇는 서북능선과, 충북알프스 구병산-형제봉-천왕봉을 이어나가는 남동 능선이 새로운 코스로 인기다. 그 중 속리산 암릉이 문장대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져 북서쪽으로 뻗은 서북릉인 관음봉-묘봉-상학봉을 이어주는 암릉산행의 묘미를 즐기기 위한 주말무박산행 코스를 진작부터 계획한 바 있었다. 보은~상주 간 37번 국도가 지나가는 활목재까지 이어지는 서북릉은 도상거리만 해도 10km에 이르는 데다 굴곡이 심하고, 수시로 나타나는 험난한 바위들로 인해 산행경험이 적은 이들에게는 한 나절에 주파하기란 만만찮은 능선이다.
충북 보은군 내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에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묘봉(879m)속리산과 서쪽에 있는 상학봉 사이에서 기암괴석을 자랑하고 있다. 묘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가 보면 옛날에 어떤 사람이 돈을 몰래 만들었다는 주전봉과 학들이 살았다는 상학봉, 산세가 미남형으로 생겨 빼어나다는 미남봉을 비롯하여 감투바위와 낭바위덤바위말바위병풍바위애기업은바위장군석치마바위 등과, 기묘한 암석으로 형성된 바위들이 묘봉 주변을 차지하고 있다.
법주사를 감싸 안은 부채꼴 모양의 속리산 산줄기를 충북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경관이 빼어난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km를 1999년 5월 17일 특허청에 '충북 알프스'로 업무표장 등록을 하였다. 구병산에서 상학봉까지 도상거리 약 44km에 달하는 주능선은 육산과 암산의 산행묘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로 거친 암봉과 연이어지는 스릴 넘치는 암릉이 산행을 종료할 때까지 긴장감을 늦추게 하지 않는다.
한밤인 1시 44분.
운흥리 삼거리에서 장암삼거리를 향한 밤길이다.
문장대에서 눌재를 연결하는 대간을 잇는 밤치 마루다.
1997년 여름, 대간(갈령고개~밤치)을 연결했던 기억의 밤치 마루턱에 올랐다. 마루턱을 중심으로 전후 약 300m 거리는 아직도 비포장이다. 포장을 위한 도로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기억의 밤치는 당시 무더위를 씻기 위해 계류를 찾아 좌왕우왕하던 각인된 회상을 끄집어내기에 바쁘다. 장암 삼거리를 돌아 49번 도로로 바꿨다. 방바위 화북교를 건너기 직전 우회전이다. 화북매표소를 향한 기다란 포장도로다.
새벽 1시 55분.
들머리 화북매표소 앞 버스 2~3대 정도 수용이 가능한 작은 공간이다.
이 시간에 닿은 버스는 우리들뿐이다. 굳게 잠긴 매표소 박스도 깊은 잠에 빠진 한밤이다.
새벽 40시 30분 쯤 등반에 오를 계획이고 보면 두 시간여 공백이 있다. 버스 내 수면 시간을 가졌다. 평소 무박체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다소 불편한 잠자리지만, 경험자는 코를 골면서 깊은 잠에 들어있다. 15명의 작은 수의 회원 한 사람씩 2인 좌석을 차지해 길게 누월 각기 휴식시간에 들었다. 선잠이 될 수밖에 없다. 1시간 이른 시간에 물을 끓여 편의식(컵라면)을 제공하려면 깊은 잠이 올 리 없다.
새벽 3시 30분.
정감사님과 버스 밖으로 나와 김성현 기사께서 가지고 온 000와 코펠에 내가 준비한 가스버너가 동원되어 약 30분 동안 물을 끓였다. 새벽등산 전 공복보다는 따끈한 국물이라도 있어야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다. 감화가 남다르다.
새벽 4시 30분.
뜨거운 국물에 공복을 적신 일행들은 칠흑의 밤을 뚫고 포장도로를 따라 등반에 나섰다.
고라니가 짝을 찾는 단조로운 찌르레기 울음소리가 새벽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머리 위엔 금방이라도 정수리에 떨어질 것 같은 총총한 별들이 청명한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4시 38분.
국립공원 화북관리사무소 앞이다. 가로등이 환하다. 식당을 겸업하는 몇몇 인가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오르는 연기가 살아 움직이는 새벽준비에 바쁘다. 좌측 계곡의 계류소리와, 새벽을 침입한 일행들을 향해 인가를 지키는 개들이 짖는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오송교를 건넜다.
급커브를 그리며 올라가는 경사로 우측에 제법 격식을 갖춘 묘소1기가 보인다. 랜턴에 비친 갓길에 만발한 개나리꽃이 밤빛을 빛낸다. 후미와의 격차가 실히 4~5분 정도다. 헤드랜턴 불빛이 한참 아래 지점에서 올라오고 있다.
4시 47분.
오송폭포와 성불사 입구다.
오송폭포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에 있는 오송폭포는 속리산 국립공원 지역 내에 위치해 있는 폭포다. 높이 15m의 폭포가 바위 절벽을 따라 다섯 개의 단을 만들며 떨어지며 장관을 이루는 폭포로 옆에 있는 오송정이라는 정자에서 유래된 이름이라 전한다. 천연림과 기이한 암석 사이를 흐르는 이 폭포는 가뭄 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 일대는 폭포지대라 할 수 있는데 오송폭포 외에도 옥양폭포-장각폭포-복로폭포-쌍룡폭포 등이 이어져 있다. 주변에 견훤산성, 성불사 등의 명승고적이 있고, 문장대 용화온천이 개발 중에 있다.
성불사.
문자 그대로 成佛을 이룬다는 성불사는 아방궁보다 튼튼하고 불야성이다.
白夜처럼 조명시설로 사찰을 밝힌 성불사는 생각했던 암자가 아니었다. 거대한 각종 佛事도 그렇거니와 속리산 기슭을 차지한 새벽시간에 불야성을 이룬 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될 리 없다. 일행들은 불편하고 불만 섞인 이야기를 한 마디씩 내뱉는다. 成佛寺는 어디가고 未佛寺만 남아있다. 속세를 떠나있다는 俗離山 자락을 승려들의 착각과 오판 속에 철저하게 세속화되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음보다 짙은 안타까움이 깨끗한 새벽의 가슴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 염치없는 인간들이 홍수처럼 임리하는데......
오송폭포 쪽 길은 사찰에서 폐쇄한 모양이다.
대신 좌측으로 터진 소로를 따라 올라갔다. 금새 산죽 오솔길이 나타난다.
5시 24분.
바위너덜지대다.
어른 키를 넘는 산죽터널지대다. 마치 산짐승들의 통로같다.
어느새 어둠이 스스로 물러가고 희뿌염하게 밝아오는 동쪽 하늘이 보인다.
계곡을 수차례 도계했다.
한 참 후 너른 계류수가 흐르는 지점에 잠시 모였다.
시원한 계류수를 마시는 시간이다. 사슴이 찌른 오줌도 섞인 시원한 계류수라며 단수를 한 움씩 담아 마신다. 시원한 계류수에 가슴이 씻어진 시간이다. 급 오르막길이다. 샤워라도 치른 듯 전신은 땀범벅이다.
5시 35분.
집채바위 앞에서 잠시 행선지를 선택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죽이 좌우 사면을 깔아놓은 오르막이다. 갓밝의를 지나 동살이 퍼지는 지금이다.
각종 산새들이 지저귀는 아침이 평화스럽게 열리고 있다. 말채나무-서어나무-신갈나무가 혼재한 군락지대다. 나목 사이에 곱게 핀 새벽의 생강나무 노랑꽃은 너무나 화사했고 이색적이다. 지난 주 계룡산 산행 하산지점인 갑사 길에 최이사님께서 생강나무와 산수유에 대한 구분을 물은 적이 생각났다.
삼월이 채 오기도 전에 피어나는 꽃 중에 매화가 있지만 우리 산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생강나무가 있다. 그리고 비슷한 꽃 모양새로 약재를 얻기 위해 주로 키우거나 조경수로 심는 산수유가 있다. 이 꽃들은 모두 추위를 이기며 잎보다 먼저 어여쁜 꽃송이를 피워내는데, 두 나무의 꽃의 생김과 노란 꽃 색깔이 비슷하다. 녹나무과 식물들이 흔히 특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는데, 생강나무 어린 줄기나 잎을 잘라서 손끝으로 비벼보면 정말 생강냄새가 난다. 생강나무는 특별히 가리지 않아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사시사철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기특한 나무다. 노랗게 물드는 가을 낙엽은 물론, 익으면서 색깔이 검게 변하는 열매도 아름답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갈잎 관목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광릉 숲에서 몇 그루가 발견되었고, 학자들이 우리나라가 자생지임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구례 산동마을은 산수유축제지로 유명하다. 나무도 아주 큼직한 노목들이 많은데,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보기 좋은 열매는 씨를 발라내고는 한방에서 약으로 쓴다. 신맛도 나고 떫은맛도 나는데, 신맛이 정력을 돋우어 오래도록 먹으면 性신경을 자극한답니다. 체질이 허약한 사람에게도 좋고, 어린아이 밤에 오줌 못 가리는 데 등에 뛰어난 약효가 있다. 산수유 열매는 씨 빼는 일이 보통 어렵지가 않은데, 산수유를 많이 재배했던 경기도 여주나 이천에서는 마을 처녀들이 입에 열매를 넣고 이 사이로 씨를 발라냈다고 한다. 입을 빨리 움직이는 처녀들은 하루에 한 말 정도 씨를 발라냈다는데, 이렇게 처녀들이 입으로 모은 것은 약효가 더 좋다하여 훨씬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두 나무의 구분 방법은 인가주변엔 대부분 산수유로, 산에는 거의 생강나무가 분포한다. 꽃 모양은 생강나무가 뭉쳐서 소복하게 피는데 화병이 거의 보이지 않은데 비해, 산수유는 화병이 길다. 잎과 수피는 생강나무가 잎 끝이 삼각의 부드러운 결각이고 미끈한 수피인데 비해, 산수유 잎은 타원형이며 수피가 거친 것으로 육안으로 쉽사리 구분한다.
잠시 남쪽으로 내려섰다.
좌측계곡에서 올라오는 오르막 너덜길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동살이 퍼진지 한참이 지났다. 붉은 아침을 밝히는 동녘하늘이 맑고 순수하다.
5시 51분.
<속리산 73번지점 119구조요청지점, 상주소방서장>
직사각형 스텡에 박힌 다목적 표지판이다. 거물보다 더 윤기가 흐르게 표면을 처리한 안내판에 그동안 땀에 절인 얼굴을 비쳐보았다. 나르시스(narcisse프)란 말을 남긴 전설 속의 소년처럼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美少年).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여 그리워하다가, 빠져 죽어 수선화(水仙花)가 되었다고 함. 자기도취의 변태증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되는 일반명사로 변했다.
산죽 사이에 핀 생강나무 몇 그루가 소년처럼 뽀얀 표정이다.
능선 위를 올려다보았다.
전면과 좌우의 기암들이 실루엣으로 다가든다.
이미 두어 뼘 이상 올라온 원형의 붉은 태양이 거대한 속리산을 아우르고 있다.
거암 밑이나 암벽사이엔 아직도 쌓인 눈과 얼음이 그대로다.
로프를 잡고 힘겹게 오르는 계곡이다.
6시 06분.
<속리산 75지점>
다목적 표지판을 일별하고 계곡 코브라 대가리처럼 치켜드는 오르막이다.
아직은 그대로 쌓인 낙엽으로 자주 미끄러지는 오르막이다. 머리위로 속리산 주능선 자락이 잡힌다.
6시 11분.
신선대휴게소에 올랐다.
<경업대 0.6Km ↔ 문장대 1.1Km>
시멘트 브록으로 만든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 생리적 습관처럼 이른 아침을 쏟아내는 짬을 가졌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일행들이 올라섰다. 휴게소를 지키는 누렁이 한 마리 가 짖더니 어느새 꼬리를 흔들며 일행과 휩쓸린다. 녀석도 사람이 그리운가 보다. 조희순씨가 개를 무척 좋아하나보다. 어루는 솜씨가 남다르다. 토실토실하게 근육질 살이 오른 가슴과 다리가 매력적인 누렁이는 한참후에 혼자서 신선봉 암능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녀석의 아침 산책인가보다.
어떻든 문장대로 직접 올라오는 길을 성불사 입구에서 놓치고, 신선대를 돌아 오르는 오류가 있었다. 야간산행에서 흔히 나타나는 과오다. 결과적으로 약 20~0분 등산예정시간이 늘어나게 됐다.
6시 28분.
일행 모두가 합류했다. 그리곤 서편에 보이는 문장대 철탑을 북극성으로 삼고 트인 대간길로 접어들었다. 대간 능선 길섶에 망울을 막 터트리기 시작하는 노랑제비꽃이 모양이 낯설다. 오랜만에 접하는 장면이다.
6시 53분.
문장대 휴게소에 닿았다.
<신선대 1.1Km ← 법주사 5.8Km ↓ >
경찰통신중계소 철탑이 서울의 남산타워탑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가드라인이 쳐진 우측은 밤치와 눌재로 향하는 백두대간으로 가는 길이다.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을 따라 문장대로 올라섰다.
7시 00분.
문장대(文藏臺:1,054m)에 오르다. 문장대 정상은 거대한 바위 위 암반이다.
모처럼 우리들만의 너른 공간을 호기롭게 차지하는 시간이다. 비록 차가운 아침바람이지만 시원하기 그지없는 天上이다. 시야가 일망무제로 트인 문장대에서 바라본 서북능선은 암릉의 장쾌함이 눈앞에 전개된다. 관음봉을 건너 묘봉-상학봉으로 이어지는 암봉과 대간 능선으로 벋어나간 산줄기는 기암, 기봉의 장관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문장대는 원래 구름 속에 묻혀 있다 하여 운장대(雲臧臺)라 하였으나 조선조에 세조가 복천에서 목욕하고 이곳 석천의 감로수를 마시면서 치병할 때 문무시종과 더불어 날마다 대상에서 시를 읊었다 하여 문장대라 부르게 되었다하며, 문장대를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간다는 속설이 있다. 천황봉과 버금가는 높이의 문장대는 안전을 위해 사이드에 철책을 설치해 놓았다. 철책에 몸을 의지하고 사방을 바라보는 현재가 너무나 느긋하다.
정민이 <죽비소리>에서 독서란 문자화된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는 지론에 동의한다.
일상생활에서 무심히 스치는 짧은 만남의 삼라만상, 그 안에서 들리는 소리와 각동 변화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체가 독서라는 얘기다. 따라서 책은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주변 모든 곳에 산재한다는 것이다. 작은 자연현상을 예사롭게 바라보지 않고 그 변화를 조심스럽게 관조하는 것이 훌륭한 독서이며 깨달음이다. 사방을 관조-조망하며 얻는 현재의 우리는 다차원과 고차원의 자연을 음미하는 독서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7시 18분.
문장대 표지석 좌측 출입통제 ‘등산로 아님’ 표지판이 있고 가로막대가 쳐져있는 가파른 서쪽방향 길로 내려섰다. 관음봉으로 가는 능선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호젓한 우리들만의 길이다. 바위에 붉은 페인트로 화살표(→)가 그려있어 이정표를 대신한다. 암릉을 타고 돌거나 건너뛰고, 또 로프를 잡고 오르거나 내려가는 코스가 반복된다. 확실한 리더의 안내가 필요한 코스다. 물론 구간마다 우회로나 로프가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때론 준비한 보조로프가 필요한 때가 있다.
15분 정도 진행하니 좌측으로 바위를 잡고 오르는 지점으로 밑은 절벽이다. 손을 잡을 곳이 마땅치 않은 위험지구다. 바위를 오르면 밧줄이 메여져 있고 우측 조망 바위에 올라섰다. 둥그런 흔들바위에서 문장대를 바라봤다. 巨巖위에 다른 작은 바위를 올려놓은 모양이 위태하게 보인다. 조망만은 일품이다.
암릉지대가 아니면 산죽 숲이 우거진 능선의 반복이다.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打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낭타죽)
飯飯竹竹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다면 옳거니, 그러면 그러려니, 그대로 아세
손님접대는 집안 형편대로하고, 장터에서 사고팔기는 시세대로 하세
세상만사가 내 마음대로 안 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아가세)
산죽이 하 많아 떠오른 김립의 詩 <되는대로>다.
한자의 운을 빌려 세상사의 흐름을 표현한 김삿갓의 재치가 흐르는 시다. 대나무가 쉽게 흔들린다는 점을 이용한 ‘……대로’의 대목에서 세상을 다시 한 번 읽는 기회를 가져보자.
산죽 사이로 커다란 선돌 하나가 하늘을 향해 돌올한 자태다. 산죽군락 안부를 지나 조금 올라오면 우측으로 두 번째 만난 조망바위에 올라서 바라본 좌측 법주사 마을이 한눈에 찬다. 바위와 바위사이를 건너뛰는 지점이다. 先渡한 양경태 선두리더께서 뒤따라오는 일행들의 손을 잡아주며 이끈다.
7시 48분.
두 번째 조망바위에서 20분 진행하니 두 번째로 만난 붉은색의 화살표가 있는 암릉을 지났다. 계속 이어지는 암릉구간은 다소 위험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아서 반복할수록 흥미를 돋운다. 5m 로프가 걸린 급내리막 지점이다. 이어 로프를 잡고 오르고 내려가는 암릉지대가 반복된다. 때로는 암릉을 우회하는 곳도 만난다. 이제 일행들은 암릉을 오르내리는데 질이 난 상태다. 로프, 로프, 로프의 연속이다. 10여분 바위지대를 차고 관음봉을 향한다.
8시 20분.
로프도 없는 암릉구간은 때론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20여분 절벽을 올라갈 홈이나 밧줄도 없어 바위에 붙어 지그재그로 올라가야 하는 난코스를 지나 올라서면 관음봉 정상이다. 관음봉(982m) 정상에는 표지석은 없고 관음봉이라고 바위에 검은 글씨가 써있다. 돌아본 문장대-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하늘금을 긋고, 우리들이 밟게 될 묘봉-상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신선하다.
9시 25분.
관음봉에서 내려선 첫 번째 안부는 속사치 삼거리다.
우측은 밤치 서쪽 대흥동으로 빠지는 하산로다.
노송들이 들어찬 능선이다. 모처럼 맞은 편 방향에서 홀로 산행을 즐기는 중년남자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는 상학봉 방향에서 올라온다는 이야기를 남기곤 잰걸음으로 우리들 반대방향으로 내친걸음이다.
능선 길섶 양지에는 만개한 노랑제비꽃이 지천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 종류는 40~50여 종이다.
노랑제비꽃, 흰제비꽃, 호제비꽃, 태백제비꽃, 각시제비꽃, 고깔제비꽃, 아욱제비꽃, 금강제비꽃, 민둥제비꽃, 뫼제비꽃, 왕제비꽃, 자주알록제비꽃, 장백제비꽃, 잔털제비꽃, 낚시제비꽃, 둥근털제비, 졸방제비꽃, 민졸방제비꽃, 태백제비꽃, 단풍제비꽃, 남산제비꽃, 엷은잎제비꽃, 털노랑제비꽃, 둥근털제비꽃, 구름제비꽃, 민금강제비꽃, 누운제비꽃, 좀낚시제비꽃, 흰좀낚시제비꽃, 흰털제비꽃, 화엄제비꽃, 갑산제비꽃, 흰갑산제비꽃, 왜제비꽃, 잔털제비꽃, 큰졸방제비꽃, 흰젖제비꽃, 넓은잎제비꽃, 긴잎제비꽃, 털제비꽃, 선제비꽃, 왜졸방제비꽃, 흰뫼제비꽃, 서울제비꽃, 여뀌잎제비꽃, 섬제비꽃, 민둥뫼제비꽃, 삼색제비꽃, 콩제비꽃, 반달콩제비꽃, 자주잎제비꽃, 경성제비꽃 등 숱한 이름의 제비꽃을 구분하려면 상당한 관찰과 경험이 필요하다. 측막태좌목 제비꽂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줄기가 없고 황적색의 뿌리에서 긴 잎자루가 있는 잎이 돋는다. 제비꽃은 전국의 낮은 산 숲 가장자리에서 자라며, 꽃은 4 ~ 5월에 핀다. 키는 10cm정도 자란다.
제비가 돌아오는 봄과, 꽃 생김새가 물 찬 제비처럼 땅을 박차고 비상하는 자태라 하여 붙인 이름의 제비꽃이다. 또 춘궁기인 이때 북쪽 오랑캐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잦은 침범이 있을 때 피거나, 제비꽃의 뒷부분이 오랑캐의 머리태를 닮았다고 하여 ‘오랑캐꽃’이도 부른다. 또 병아리처럼 귀엽고 앙증맞다고 하여 ‘병아리꽃’, 로제트형처럼 지면에 바짝 붙어 자란다고 하여 ‘앉은뱅이꽃’, 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Ion)이라 부른다. 제우스가 숨겨 끼었다고 하여 ‘반지꽃’, 장수꽃-씨름꽃-외나물 등 친근하고 다양한 이름의 봄꽃이다.
제비꽃은 그리스의 국화로 아테네를 상징하는 꽃으로 주신 제우스의 애인 이오의 눈을 닮은 꽃이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 주신 제우스는 아내 헤라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켜 그네가 있는 들판에 그네의 눈을 닮은 제비꽃을 피게해 위로했다는 로맨틱한 내용의 신화다.
봄철 나물로 먹을 때는 밀가루 옷을 입혀 튀김을 만들기도 하고, 살짝 데쳐서 무쳐 먹기도 한다. 다른 야채와 함께 샐러드로 먹을 수 도 있으며 꽃잎을 모아 살짝 데쳐서 잘게 썰어 밥에 섞어 꽃 밥을 만들어 먹을 수 도 있다. 제비꽃에 들어 있는 배당체 성분은 암세포의 발육을 억제한다. 풀 전부가 태독·부인병·중풍·통경 따위의 약재로 쓰인다. 불면증에는 제비꽃 온포기 12 ~ 15g을 1회분으로 달여서 하루 2 ~ 3회씩 4 ~ 5일 복용한다. 유방암 등 각종 암에는 : 제비꽃 온포기를 말려 6~15g을 하루 양으로 하여 물에 달여 3번에 나누어 먹는다. 정절과 성실, 그리고 겸손, 행복(노랑제비꽃), 소박(흰제비꽃)이란 꽃말을 가진 제비꽃에 대한 횡설수설이다.
887봉으로 올라가는 오르막 능선 따스한 곳에 선두가 자리를 차고 행동식을 꺼냈다.
후미도 기다리는 여유를 갖는 시간이다. 지금까진 이재성-정옥자씨와 이충식-박미경씨 부부의 행보도 염려 밖이다. 모처럼 치르는 장거리산행이란 걸 생각하면 다행이랴 싶다.
9시 34분.
887봉 삼거리다.
법주사로 내려가는 좌측길이 어렴픗하게 보인다. 깊숙한 내리막이다.
따사한 기온을 머금은 봄바람이다.
삼거리 안부를 지났다. 어느 샌가 일행을 앞지르고 선두에서 홀로 산행이 됐다.
이런저런 생각이 혼란하게 후두부와 정수리를 압박하고 있다.
둥그런 바위 뒤로 해서 급경사 내려가면 <119-속리산-13> 다목적표시판이 나오고 화살표 바위사이를 내려가면 안부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가는 등로가 잘 나있다. 관음봉에서 약 20여분 거리다. 능선은 노랑제비꽃으로 바닥을 이루고, 참나무겨우살이가 우듬지마다 연걸리 듯 달린 군락지다. 안부에서 5분 정도 경사를 오르면 조망바위가 나오고 이어 내려서는 절벽에 매인 로프가 보기에 다소 부실하다. 조심스레 내려서자 절벽이 앞을 막고 바로 통과하기 거북한 암협이다. 배낭을 먼저 위로 올려놓고 어렵게 통과한다.
10시 10분.
879봉을 지났다.
건너편 묘봉이 가벼운 손짓이다. 정상 봉우리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모습과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깊숙하게 내려선 안부는 북가치다. 이곳에선 법주사 앞 속리산관광호텔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10시 26분.
북가치 사거리다.
<119현재위치 속리산11>
노란 청주소방서장명의의 표지판이 있는 북가치(北加峙)사거리 안부에 내렸다.
7분쯤 내려가니 119속리산 청주소방서의 표지가 있고 좌, 우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인다. 경사지를 오르다 오른쪽으로 조망바위가 있는데 등로에서 20m우측으로 갔다 와야 한다. 거대한 바위 위에 솟은 소나무들이 일품이다.
<묘봉→>
바위벽에 글자는 노란페인트로, 화살표시는 흰색 페인트로 쓴 이정표다.
다시 암릉길이다.
10시 45분.
묘봉 정상직전 삼각점이 보인다.
<묘봉 해발874m>
정상은 너른 암반을 이룬 널찍한 마당바위 공터다. 사이드는 접근하기조차 어지러운 천인단애다. 정 중앙 봉굿한 지점에 에 박힌 대리석 정상표지석 몸통 한 가운데가 잘려 나가고 비석의 기단에 박힌 하반신만 남아있다.
< 봉 847m>
글씨만 남아있다. 연유는 알 수 없으나 마치 새남터에서 망나니의 칼춤에 참수를 당한 죄수가 연상되어 소름을 느꼈다. 표지석이 박혀있는 지점에서 바라본 문장대 정수리가 아득하게 보인다. 다른 방향에서 올라 선등한 5~6명의 산꾼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묘봉(妙峰 879m)은 거대한 너럭 바위봉으로 수십 명이 올라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정상에 올라서자 눈앞 가까이에 문장대 관음봉이 형 아우처럼 어깨를 걸치고 위용을 드러내는데, 문장대에서 천황봉으로 구비치는 기암 기봉의 암릉은 동편하늘 한 자락을 병풍처럼 둘러친다. 산 아래 운흥리, 절골, 대흥동 산자락에 포근하게 안긴 마을 벗어난 길은 들을 가로질러 청천으로 달려가는데 들판 끝자락을 끌어올린 덕가산(691m)과 백악산(857m)이 봄볕에 조는 듯 한가하고, 구비치는 산 그림자에 겹쳐서 한 폭의 그림이다.
뒤돌아보면 묘봉에서 상학봉으로, 상학봉에서 토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용아릉을 방불케하는 기봉들이 장관을 이루는데, 옛날 몰래 돈을 주조했다는 주전봉을 비롯하여 감투바위, 덤바위, 공룡바위, 돼지바위, 문바위, 말바위, 병풍바위, 애기업은 바위, 장군바위, 암탉바위, 치마바위 기암괴석의 바위 전시장이다. 가히 신선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연결하는 두 곳의 쇠사다리를 건너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암릉 내리막에는 여러 가닥의 굵은 로프가 매어있다. 어깨가 뻐근하게 느껴지도록 로프를 잡고 내려서는 심각한 내리막이다.
묘봉을 막 내려서 수평능선이다. 완만한 낙엽 깔린 등산로다.
우측 사면에 자주색과 흰색 노루귀가 활엽낙엽사이를 뚫고 우후죽순격으로 깔린 군락지다.
이어 암릉 오르막이다. 참나무로 얽어놓은 나무사다리를 잡고 올라갔다 내려가는 지점이다.
11시 11분.
경사가 급한 로프지역을 지나 오른 암릉 안부에 오석으로 만든 이정표가 맞는다.
<묘봉 0.3 상학봉 1.1 주차장 2.3Km, 해발 860m 충북 보은군>
우측 암릉방향으로 올라갔다. 원 없이 치르는 암릉산행이다.
11시 36분.
상학봉 방향으로 두 개의 암벽사이에 뚜껑을 덮은 고인돌 모양의 암문이다.
배낭을 맨채 그대로 통과다.
11시 40분.
상학봉이다.
<신정리 1.4Km, 묘봉 1.0Km>
장년의 남자와 중년의 여인 커플이 정상 바로 아래 암반에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다.
지형상 묘봉을 바라보기에 적당한 장소다. 청주에서 왔다는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서북능선 하산지점에 관한 몇 마디 궁금증을 물었다. 옆에서 보기에 중년 여인의 눈매가 고혹적으로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고 했더니 수줍어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다. 그들 커플이 떠난 암반에서 망부석이 되어 후미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정상비 대신에 소나무에 상학봉 해발834m 김천영우산악회라 쓴 표찰이 걸려있다.
속리산 북서쪽에 숨어 있듯이 자리잡은 상학봉(上鶴峰)은 산 전체가 기암전시장으로 이름대로 부근 암봉에 학들이 많이 모여 있다. 상학봉은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 활목고개에서 시작되는 속리산 서북릉 종주코스에 속한 봉우리로 뒤로는 묘봉, 앞으로는 미남봉과 마주보는 봉우리로 학이 날아간다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불리는 암봉이다.
선자리에 사방을 조망할 겨를도 없이 뒷사람을 위하여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
겨우 10여명이 올라설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까마득한 벼랑위에 얹혀진 봉이라서 발길이 후들거린다. 상학봉(上鶴峰․834m) 능선에는 공룡의 등허리인 양 기기묘묘한 공룡바위, 병풍바위, 애기업은바위, 문바위, 주전바위, 돼지바위, 문바위 등이 연속적으로 있어 산행할 맛이 절로 나는 구간이다. )
상학봉(上鶴峰834m)에서 묘 봉(妙峰 879m) 구간은 속리산 줄기 서북의 암봉(巖峰)능선이다. 지금까지는 속리산 천황봉에서 문장대에 이르는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곳이야말로 속리산이 품고 있는 숨은 비경이며 암릉이다. 험준한 바위벽이 천인단애를 이루고 연이어 마주치는 벼랑을 오르내리기가 만만치 않은 이곳이 사람들의 때가 덜타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암릉코스로 계속되기를 빌었다.
후미를 기다리는 사이 상학봉 정상을 올랐다. 설악산 천화대 리지의 왕관봉 그대로다.
4~5m 수직 쇠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3~4명이 앉으면 꽉 찰 좁은 바위 꼭대기에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는데 선점한 장년커플이 담소를 즐기고 있다.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선남선녀처럼....... 합석하자는 제안을 뿌리치고 바로 아래로 내려서서 홀로 사방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가졌다.
山外有山 天外有天(스안와이이여우스안 티엔와이이여우티엔)이라.
산 밖에 또 산이 있고, 하늘밖에 또 하늘이 있다는 의미로 중국인들의 말이다. 은유적 의미로는 뛰는 몸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지만, 한 봉우리를 넘어서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난다는 산행코스에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단문이다.
서북쪽 아래로 거대한 토끼봉 암봉이 가까이 다가있다. 시야는 일망무제다. 살구나무골 골짜기 건너 매봉에서 미남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파동을 그으며 활목고개를 건너 금단산 줄기로 솟아오르고, 다시 운흥리 마을을 내려놓은 산자락은 들판 끝에서 도명산과 낙영산을 일으킨다. 산이름 그대로 낙영산의 그림자를 따라 백악산을 일으키고, 백악산 멀리 대야산과 동북쪽으로 청화-조항산을 잇는 백두대간이 山파고다.
바위 벼랑과 암봉 정수리에 박힌 노송은 한결 여유롭다. 이보다 더한 동양화가 어디 있으랴. 속리(俗離)는 먼 곳이 아닌 바로 이곳이다. 이곳이 이름 그대로의 仙界다.
서북능선 829봉 마당바위에 10여명 사람들이 어른거린다.
차례로 올라선 일행들이 합류한 시각은 12시 30분이다.
정옥자-박미경씨부부, 정재근 감사님과 김자연씨가 힘든 행보였던가 보다.
운흥리에 식당을 잡았다는 김기사님의 전갈이다.
오후 12시 40분.
829봉(매봉) 아래 삼거리 안부에서 만난 이정표다.
<신정리, 활목재, 상학봉>
상학봉의 약속대로 이 지점을 하산 포인트로 잡았다. 예상대로 급박한 내리막이다.
곳곳에 생강나무 꽃이 나목사이에 돋보인다.
미치광이풀 군락지대다. 진보라색 미치광이 꽃이 수줍은 듯 아래를 내려다보며 피어있다.
미치광이풀 노랑꽃이 있나 휘둘러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2년 전 설악산 화채능선에서 만난 후 모처럼의 해후다.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양대장이 놓칠 리 없이 셔터를 누르는데 꽃모양 그대로 두고 찍었으면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셔터를 누른 후였다. 독초인 미치광이 풀잎을 살펴보면 먹음직한 산채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것엔 보이지 않는 독이 있음을 알리려는 자연의 섭리인가?
광대작약 또는 미친풀, 미치광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먹으면 쥐약을 먹은 개가 미치광이처럼 날뛰다가 죽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가지과 다년초로서 높이 40-90cm이며 털이 없고 지하경이 길게 벋어 깊은 산골짜기의 그늘에서 번식한다. 잎은 어긋나지만 한 군데서 2-3개씩 나며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5월에 짙은 보라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1개씩 달려서 밑으로 처진다. 꽃받침은 녹색이고 5개로 불규칙하게 갈라지며, 화관은 종 모양이고 끝이 얕게 5개로 갈라지며, 수술은 5개이다. 하나씩 달리는데 짧은 통 모양을 하고 있다.
열매는 삭과이고 둥글며 꽃받침에 싸이고 다 익으면 뚜껑이 열리듯이 갈라져서 종자가 나온다. 둥근 모양이며 지름 1.5cm정도로 적색으로 익으며 먹을 수 있다. 옛날에는 열매 속의 씨앗을 빼낸 후 꽈리를 만들어 노리개로 삼기도 하였다. 뿌리줄기는 굵고 옆으로 벋으며 끝에서 줄기가 나온다. 줄기는 곧게 서고 윗부분에서 몇 개의 가지가 갈라지며 털이 없고 높이가 30∼60cm이다.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 모양이며 가장자리는 대부분 밋밋하고 끝이 뾰족하며 잎자루가 있다.
뿌리줄기는 알칼로이드인 히오시아민과 스코폴라민이 들어 있어 독성이 강하고 진통제와 진경제의 원료로 쓰인다. 한방에서는 뿌리줄기를 동낭탕(東 )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진통 효과와 진정 효과가 있고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수전증을 제거하며 종기를 가라앉히고 옴이나 버짐에도 효과가 있지만, 중독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위산 과다증에는 미치광이풀 뿌리 0.7g을 1회분으로 달여 하루 2 ~ 3회씩 1주일 이상 먹는다.
한국·일본에 분포한다. 小考치곤 장황하다.
오후 1시 10분.
간헐천이던 계곡이 하류로 내려올수록 常流다.
잠시 계류에 앉아 땀을 닦는 짬을 가졌다. 앞으로는 땀과 더위와 씨름할 계절이다.
주변엔 진달래, 양지꽃, 山괴불주머니, 꽃다지 노랑꽃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지루한 농촌 길을 굽이굽이 돌았다. 이런 평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쉬 피로를 느끼고 싫증으로 행보마저 비틀거리기 일쑤다. 좌우엔 검은 천막을 두른 인삼재배밭이 보인다. 검은 喪章같아 보기에 따라 느낌과 연상이 다르다. 몇 년 전 부터인가 인삼밭을 털어가는 농산물절도범으로 농민들의 시름 하나가 첨가됐다는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세상은 이렇게 상상 밖으로 악화하고 있다. 너른 밭 한 가운데에서 버섯재배용 참나무 토막을 다루는 장년남자에게 다가가 현 위치를 확인했다.
마른 밭섶에 머위꽃이 숱하다.
아직 넓은 잎으로 변모하기 직전에 주먹 크기의 모둠꽃 모양이 특이하다.
오후 2시 10분.
운흥리에서 보은 방면으로 약 500m 지점의 도로변 화평동에 내렸다.
지난 일요일부터 금요일 밤까지 타의와 자의가 섞인 주석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전신을 땀으로 말끔하게 털었던 오늘이다. 거리감각이 어렵고, 또 지친 후미를 위해 예약한 식당 앞에 주차하고 있는 버스를 현 장소로 오도록 연락했다.
오후 2시 40분.
운흥리 화평동에 후미 일행 모두가 모였다.
새벽 4시 30분, 들머리인 시어동화북분소를 출발, 시어동화북분소-성불사-문장대-관음봉-속사치-982봉-북가치-묘봉-상학봉-매봉(829봉) 아래 우측계곡-화평동계곡을 나와 화평동에 이른 시각은 오후 2시 10분(후미도착시간은 2시 40분)으로 총 산행거리 14Km에 10시간 10분이 소요된 셈이다.
운흥리 용화산버섯마을(채미숙 054-532-4777, 016-9338-3419)식당 앞 주차장으로 이동한 시각은 2시 50분이다. 주문한 버섯전골의 풍미는 상상 밖이다. 호남음식의 맛깔진 풍미가 홀 안에 가득 메워진 지금은 모두가 흡족한 시간이다. 곁들인 맥주잔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오후 3시 25분,
식당을 떠나 귀로에 올랐다.
중부고속도로가 예상보다 밀렸다. 길게 누운 회원들의 늘어진 오후다. 애써 접착제처럼 달려드는 잠을 떨쳤다. 모처럼 감행한 무박산행과 10시간의 암릉산행이 가져다 준 困憊로 버스 안은 마치 한낮의 공동묘지가 무색할 정도로 적막하다. 차량 정체로 김기사의 짜증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전국시대 말기 초(楚)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은 정치가로서도 뛰어나 懷王(회왕)에게 중용되어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중신(重臣)들의 시샘을 사게 되어 자주 모함을 받고 있던 중 회왕의 명령으로 새 법령의 초안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당시 실력자 중의 한사람인 근상(勤常)이 찾아와 새 법령의 내용을 알려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법령의 중요성에 비추어 누구에게도 알려줄 수 없다면서 굴원은 근상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근상은 굴원을 비방하고 다녔는데 왕도 마침내 굴원을 의심해 멀리하다가 관직을 박탈해 버렸다.
조정에서 쫓겨난 굴원은 머리칼을 풀어 흐트러뜨린 채 장강(長江:양쯔강) 주변을 방황했다. 실의의 나날을 보낸 이때 굴원은 자신의 참담한 심경이 실린 많은 작품 중'이소(離騷)'와 '어부사(漁夫辭)'는 그의 대표작이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동안 굴원의 몸은 고목처럼 마르고 얼굴은 초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를 알아본 어부가 있었다.
"아니,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어쩌다가 이런 곳에까지 왔습니까?"
이에 대한 굴원의 대답이다.
"온 세상이 혼탁하지만 나만 맑고 깨끗하며, 모두가 술에 취해 있지만 나 홀로 깨어 있어(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그들이 나를 쫓아냈다네."
그 후 굴원은 유언을 대신한 시 '회사부(懷沙賦)'를 지은 다음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중취독성(衆醉獨醒)[ 衆:무리 중. 醉:술취할 취. 獨:홀로 독. 醒:술깰 성《史記》]이라는 故事의 유래가 어울리는 지금이다. 모두 취해 있는데 홀로 깨어 있는 것은 김기사의 입장이면서 자신의 입장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고 있지만 혼자 깨끗한 삶을 산다는 다른 속뜻도 포함되어 있지만 지금의 경우는 아니다.
그렇게 고속도로는 동맥경화의 통증을 감내하며 조금씩이나마 흐르고 있었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도록 휴게소에 들르자는 사람이 없었다.
피곤의 강도가 어떠한가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의 오늘이다.
발산역 도착시각은 밤8시다.
항시 이곳부터 집까지는 비틀거리는 행보다.
오늘 주파한 서북능선의 암벽보다 더 굳은 표정으로 바뀌는 지금이 싫다.
사람이 무섭고 시간이 아프다.
나이로 버티는 초조한 요즘이다. 늙으면 자식이 무서워 산다던가?
뻔한 정년퇴직 시간들을 손 셈하는 작정이 없는 무뎌진 밤이다.
익일 새벽.
사지 곳곳에 침전된 뻐근한 통증이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그러나 기상을 이리저리 미루는 긴 시간을 보냈다. 침대가 부끄러운 새벽이다.
전날 밤 알콜에 절여 야심한 시각에 귀가했던 남편의 새벽 酒毒을 풀어주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난 주부의 심사를 생각해봤다. 돌 위에 얹어놓고 남편에 대한 불편과 불만한 주부가 휘두르는 나무방망이로 부터 무자비하게 난타당하는 마른 북어처럼 눅신하게 얻어맞은 사지가 이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상체와 양팔을 사용한 부담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신체감각은 차츰 변화하고 있다.
쉽게 피곤에서 벗어나곤 했던 시간이 길어졌다.
자신감이 퇴화할 나이는 정녕 아니라고 종교보다 더 강하게 믿어보자.
*교통 :
-승용차 :
경부고속도로 옥천IC(대전IC)-보은-속리산(1시간 20분정도 소요)
보은방향 37번 도로 ~ 보은읍 ~ 속리산 법주사방향 37번 도로 ~ 중판리 삼거리에 서 청주, 청천방향37번 도로 좌회전 ~ 하판 ~ 백석 ~ 백현을 지나 ~ 장갑 삼거리 575번 도로 갈림길에서 청주, 청천방향 37번 도로 ~ 신정리 마을표지석 ~ 신정리
중부고속도로 증평IC-증평읍-초정약수(540번도로)-이티고개(511번도로)-미원천-미원
-열티고개(19번도로)-삼거리에서 우회전-청천-운흥리(37번도로)-운흥리에서
좌회전-밤치-장암삼거리에서 남쪽으로 우회전(49번도로)-범바위 장암교
직전에서 우회전-시어동 화북분소 매표소 앞
중부고속도로 증평IC-괴산방향(34번)-19번-청천방면(37번)-보은 방향-운흥리 서부식당 앞(보은에서 운흥리도 가능)
-대중교통 :
동서울-속리산15회(1시간간격), 남서울-속리산 12회(1시간 간격)
청주여객터미널(043-234-6543)
속리산시외버스터미널(043-543-3613)
*숙식
-법주사방면[속리산관광호텔(043-543-3542), 로얄호텔(-543-3700), 영빈장(543-2909)
송림장(-543-3941), 경희식당(043-543-3736), 가야식당(543-4419), 문장대식당 (543-3655), 팔도식당(544-2531), 신토불이식당(542-5166), 수복식당(542-2066)]
-보은읍내 신라식당은 충청도식 한식백반(생선, 두부조림, 산나물 등 20여 가지의 음식)
-신정리[마을 입구의 청소년수련관 신정유스타운, 4인 기준 별관 40,000원, 생활관 30,000 원. 취사장이 따로 마련돼 있지는 않지만 취사는 가능하다. 식당에서 정식(5,000원), 불낙전골(25,000원), 백숙(30,000원) 등의 음식도 팔고 있다. 전화 043-542-5454~5, 홈페이지 www.sjtown. com.
-운흥리[문장대파크호텔(054-531-2866), 묘봉산가든(533-9190), 고향식당(-533-6451)
]
-만수동[황소민박(043-542-5347), 청수벌집민박(-542-5437), 계곡식당상회(-543-3245),
남경가든(-543-9302)]
-화양동방면[청화식당(043-832-4310), 도원가든(-832-4484), 매화식당(-832-4566),
운영상회(-832-4365), 금성민박(-832-4351), 청주식당(-832-4581)]
-낙영산방면[사담관광농원(043-833-5359), 사담가든식당(-833-2308)]
-가령산방면[화양동 방면 참조, 문장대회가든(054-533-8934~5)]
-갈모봉방면[화양관광농원(043-833-4900), 이평쉼터(-833-8077), 신라식당(-833-8089),
송림가든(-833-8249) 등]
-쌍곡지구[소금강휴게소(043-832-3943), 도막골식당(-832-5783), 여주식당(-832-3806),
덕암식당(-832-5696), 군자산가든(-832-1990), 보배식당(832-5922), 전원풍경 (-832-5594), 떡바우ㅣ가든(-832-9982), 쌍곡휴게소(-832-6667)]
*기타 :
-입장료 : 어른 3,200원, 학생 1,200원, 어린이 600원 주차료 : 대형6,000원, 소형3,000원
-전화문의사항 - 보은국유림관리소 043-543-1667
-말티재 휴양림 043-543-6282
-상주시청 문화공보과(054-530-6063)
*법주사
신라 법흥왕 14년(553년)에 의신조사가 처음으로 창건한 절로서 문장대와 함께 속리산을 대표한다.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을 가진 이 절에는 현존하는 석탑, 석등 중 사자조각이 가장 뛰어난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8세기경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석연지(국보 제64호), 1984년 쌍봉사의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됨으로서 한국 목조탑으로 유일한 팔상전(국보 제55호) 등의 국보와 사천왕석등,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 병풍, 대웅보전, 원통보전, 괘불탱 등의 보물 6점이 있다.
*정이송품(천연기념물 제103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앞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다. 이 나무는 예전 신병에 고통받던 세조가 온양온천과 속리산을 찾아 치료를 할 때 나무 아래 이르러 타고 가던 가마가 나뭇가지에 걸릴 것을 염려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졌던 나뭇가지가 스스로 하늘을 향하여 무사히 통과하도록 하였다고 정이품의 벼슬을 받게 되었다. 나무에 벼슬을 내린 것은 전무후무한 일로 같은 전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외속리면 서원리에는 정이품송의 아내격인 정부인송(천연기념물 제104호)이라 칭하는 소나무가 있다.
*삼년산성(사적 제235호)
신라의 백제 공격 최전방 기지로서 축성하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여 이름지어졌다. 산성 내에는 보은사라는 절이 있는 절 진입로가 무척 호젓하며 산책을 하기에 그만이다. 그리고 절 뒤로 2km가 채 안 되는 산성을 걸어볼 수 있는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