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찾은 곳, 내 놀던 옛동산...
참으로 먼 길을 돌아 왔습니다.
꿈에서도 잊혀지지 않았던 그 곳,
내 유년시절 4년을 보냈던 곳,
아픔이 서려있던 곳,
30여년을 돌아 이제 찾았습니다.
꼭 한 번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지척에 두고도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찾기가 두렵기도 했지요.
어린 시절 내 추억과 아픔이 공존하는 곳이기에,
그리고 옛터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강박에
난 흐르는 시간을 그냥 버려두어야 했습니다.
그 곳을 떠난 지 30여년이 넘었지만
난 여전히 그 곳의 추억을 꿈에서 만납니다.
노란 셔츠에 얼룩무늬가 있는 바지를 입고 다녔던,
그리고 그것은 사계절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았던 친구 흥섭
찧어지는 가난에 몸서리가 쳐졌지만 공부는 늘 1등이었던 그 친구가
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바람이 불고, 눈이 올 때에는 그 친구의 영상이 내 머리에 가득하지요.
그 때마다 그 친구는 내 집 문 밖에서 나를 불렀으니까요.
당시 우리는 단짝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나 외에 친한 친구가 없었습니다.
늘 혼자 다녔죠.
옷 한 벌로 사계절을 지내야 하는 그 친구는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 집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찌그러지고 불에 탄 냄비 하나, 썩어가고 있는 초가는 반 쯤 기울어 있었고
방은 불을 땐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너저분하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끼니 대신 물로 배를 채워야 했고
목욕을 하지 못해 얼굴은 새까맣지요.
결국 그 친구는 정규 중학교에 입학을 하지 못하고
새마을 중학교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학교는 틀렸지만 우리는 자주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들어간 지 두 달도 안돼 난 부산으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지요.
얼마 전까지 전 그 친구의 집에 가는 꿈을 자주 꿨었습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땅콩을 뿌리째 뽑아 다 찌그러진 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통째로 삶아서 알을 까서 먹던 시절, 일명 서리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했지요.
허기진 배를 채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습니다.
설령 걸린다 해도 굴밤 한 데 맞고 그것으로 끝이었으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던 시절,
새 소나무 순을 빨아서 먹고,
찔레 순을 꺾어 먹던 시절,
머루와 다래는 지천이었고,
진달래 피는 계절은 잔치하는 날이었습니다.
잣이나 호두를 따 먹다가 들켜 줄행랑을 치던 때,
참외, 수박서리는 한여름 밤의 추억이었습니다.
사계절 피고 지는 꽃이 있어 우리들의 삶은 그나마 축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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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학교에서 십리 길이었습니다.
동리 아이들이 여기 저기 모여 함께 한길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이따금씩 차가 지나갑니다.
느림보 삼륜차는 먼지를 덜 내고 가지만
버스는 참 먼지를 많이 토해내고 도망갑니다.
그래서 논뚝으로 피신하다가 논에 빠지기도 했지요.
학교 가는 길에는 고개가 하나 있었는데
고개 양쪽으로 보면 흰색, 빨간색, 노란색 등 각가지 색으로 된 리본이 달려 있습니다.
이 고개를 두고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지요.
시골에 흘러 다니는 괴소문들 있잖아요.
아침엔 괜찮은데 학교에서 늦게 돌아올 날이면
그 고개를 넘기 무서워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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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의 추억에서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은
군자염전, 소래, 소사, 그리고 협괘열차입니다.
군자염전은 막혀 시화공단과 시화호가 되었고
소래는 월곶 신도시에 눌려 한 쪽 귀퉁이로 밀려나
끊어진 협괘열찻길의 한을 풀고 있었으며
소사는 부천시 소사구로 등극해 옛 이름을 그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입학해서 반학기도 다니지 못했던 중학교, 당시는 학교가 작았는데 지금은 커졌네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당시는 2개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네요. 커졌어요. 시골에는 요즘 학생이 없어 난린데 여기는 아닌가봐요. 없어지는 시골초등학교가 많아 어떤 사람은 "난 뿌리가 없어."라고 하소연하는 데 그나만 다행한 일이죠.^^
지금 공사가 한창입니다. 언덕빼거 저곳이 옛날엔 산이었는데 지금은 그 산이 간 곳이 없어요. 하늘로 솟아버렸나봐요. 졸업하면서 아이들과 10년 후 6월 25일에 학교 뒷 산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가보지 못했죠.
그 친구 집 근처예요. 흔적이 없어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요. 어디로 간 것일까요? 누가 찾아주세요.
비포장 한길이었던 도로가 글쎄 이렇게 됐지 뭡니까? 흙을 밟으며 살아야 하는데 여기도 흙이 없어요.
산도 없어지고, 동네도 없어지고, 흙도 없어지고, 친구들도 없어지고....그럼 있는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요? 누가 말 좀 해 주세요. 아직도 우리 고향(하동)에 가면 옛모습 그대로인데...여긴 왜 이렇게 된 건가요? 싫어요...싫어 난....
오다가 물왕저수지에서 추억을 놓았습니다. 해질녘 호수 주변에서는 데이트 하는 연인이 많았어요. 나도 노을이 보이는 이런 호수에서 손 잡고 다정히 걷고 싶어요. 누군가 내 손에 잡혀 주세요.ㅋㅋㅋㅋ
엉성엉성 이만 마칠까 합니다.
이곳에서 얽힌 추억은 밤새도록 써도 모자라서...아예 시도를 안하고 여기서 끝.....
아픔에 대한 부분은 나중에, 나중에 기회 있으면 올리도록 하지요.
그 친구 소식 하는 분 있으면 연락주세요. 후사하겠습니다.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