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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신부> 표절에 관한 미학과 경제학 |
표절, 리메이크라는 방식으로 경제적 가치 지켜야 |
장정일의 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가가 훗날 칠레의 문학을 표절했다는 명목으로 수상이 번복되는 대목이 나온다. 소설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일이었을 것이다. 스페인어 한 줄 읽을 줄 모르던 그가 어찌 지구 반대편의 칠레의 소설을 읽을 수 있었겠는가? 그 소설가는 "만약 정말 표절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있다면 표절 사실을 밝히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원작보다 더 잘썼다면 그건 표절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런 생각들을 적어놓기도 했었다. 90년대 포스트모너니즘이 보급된 이후 혼성모방, 패러디 등이 대중화되면서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장정일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소설가로 알려진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모티브를 빌려온 것에 대해 문학평론가의 비판이 이어진 적도 있었다.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표절의 윤리적인 문제를 지적했고, 이인화 측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모방을 근거로 반박했다. 영화 쪽에서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기존의 수많은 영화 속 장면들을 차용하여 늘 논란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정지영 감독의 영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영화 마니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 속에서 과거 작품들을 차용해와 좌절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90년대는 이렇게 표절과 혼성모방이 혼재된 시대였다. 국내에서 표절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면 으레 윤리적 측면의 비판이 제기된다. 즉 표절을 절도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 및 서구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한국 대중문화에서는 표절은 곧 선진문화의 베끼기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앨범 한번 발표될 때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수입이 불가능했던 일본 음악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 예술사적으로 봤을 때 표절논란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현재의 표절 관점에서 보자면 서양미술은 모조리 고대 그리스 미술의 표절이다. 그러나 로마시대에도, 근대에도 그 누구도 그리스미술을 표절했다고 윤리적으로 비난받은 바 없다. 아니 오히려 어떻게 해서라도 고대 그리스 미술에 근접하기 위해 모든 예술적 재능을 바쳐왔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미술이 그리스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을 밝혔기 때문에? 아니면 너무나 당연하니까?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그러나 사실 표절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던 시점은 예술이 산업화되기 시작할 때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 자본이 되고 자산이 되면서 표절은 절도가 되고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되어버린 것이다. 표절논란이 시작되면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고 결국에는 돈으로 이해관계가 조정된다. 현대 예술에서의 표절은 미학이 아닌 경제학으로 분석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브레이크뉴스에서는 350만 관객을 들인 한국 영화 <어린신부>가 홍콩영화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원제, My wife is 18)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오늘 중앙시네마에서 열린 기자시사회에 참여한 기자들은 모티브는 중심 내러티브, 그리고 중요 에피소드까지 거의 유사한 영화라는 점을 인지했을 것이다. 예술 창작의 입장에서 판단할 때, <어린신부>의 기획자와 감독,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는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를 상세히 보고, 그 중 잘된 부분을 차용하여 업그레이드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본인들이 아니라 그러면 이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로운 창작이라는 예술영역에서도 보편과 상식선에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있는 법이다. 만약 그들이 절대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를 보지 않고, 스스로의 머리 속에서 이야기를 구성했다면, 이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신기'라고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더 이상 표절 여부 논란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그보다는 과연 표절이 그렇게 돌로 쳐죽여야 할 정도로 나쁜 일인가, 라는 좀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는 좋은 기획과 아이디어로 구성된 작품이다. 세부 묘사 부분에서는 <어린신부>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어떻게 보면 <어린신부>의 데모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원소스를 <어린신부> 기획팀에서는 적절히 홍콩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며 훌륭하게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작품성만으로 판단할 때 이는 칭찬을 받아야지 비판을 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의 한국측 수입사는 이 영화를 <어린신부> 개봉 이전인 2003년 11월 밀라노에서 판권을 구입했다. 수입사 측에 따르면 워낙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기획이 돋보여 최소한의 홍콩영화팬들은 관객으로 끌어모을 수 있을 것 같아 저가에 수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신부>가 개봉되어 350만의 관객을 휩쓸어버린 통에 이 영화는 개봉이 되기도 어려운 지경까지 몰렸다. 스토리 상 사실 상 똑같은 영화를 누가 보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극장을 잡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어린신부> 측이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서 만들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수입사에서는 이 영화를 수입하지 않던지 아니면 처음부터 <어린신부>의 원작이라는 브랜드를 확보한 마케팅 전략을 썼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표절 논란이 가열되기 전까지 수입사 측에서는 뚜렷한 대책도 없이 그냥 조용히 개봉해서 끝내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을 뿐이었다. 홍콩영화계는 판권계약과 같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철저하지 않다. 그들도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표절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 측면에서 굳이 홍콩까지 가서 푼돈 주고 판권을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영화사 측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영화의 위상이 낮았을 때 이야기이다. 지금은 한국영화가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한류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차라리 리메이크 판권을 사서 당당히 홍콩에서 공격적 마케팅을 벌였으면, 홍콩측 영화사도, <어린신부> 측도, 한국의 수입사 측 모두에게 윈윈게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표절에 대한 미학적인 논란은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원작 영화를 더 발전시켜 만들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일반 창작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랬을 때 굳이 원작을 숨기고 만들겠다는 윤리적인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당사자나 제 3자에게 손해를 입히고, 궁극적으로는 본인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 논란이 김준호 감독을 비롯한 시나리오 작가들의 창작 능력에 대한 매도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며, 단지 패러디, 혼성모방, 리메이크 등의 경제적 측면을 간과한 영화사 경영진들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해야할 것이다. |
첫댓글 모티브를 따왔다는 것을 표명하고 글을 썼다면 '표절'이라고 하기 힘들고, 그런 의미에서 오마주 패러디와 표절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하나로 뭉뜽거려버리다니. 이 기자의 사고방식은 상당히 마음에 안드는군요.
작품성만으로는 칭찬을 받아야한다고? 하느님 맙소사. 게다가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라니.....개인적으로 이런 글이야말로 오히려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