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학원 학생들과 송년회를 했다.
한 열명쯤 나왔는데..
일차는 학생들이 삼겹살을 샀으니까
이차는 보스톤에 데려가
술을 사주려 했는데
차(車)를 가져 온 학생들이 많아
그냥 헤어졌다.
나흘밤만 자면 새해인데
송년회가 아직도 한두차례 더 남아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내가 주선하고 싶은 송년회가
있긴 한데.. 항상 내 마음 먹은대로
되지는 않는다.
일주일 후면 이번엔 송년회가 아니라
신년회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한주일 안에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하는
의식이 다 있는 셈이다.
매해 그런 연말연시면 어디론가 떠나곤 했다.
최근 몇해동안 대청봉에 올라 신년 맞이 일출을 보았었는데
올해는 엄두가 나질 앉는다.
새벽 3시쯤 오색약수에 도착해
광부처럼 헤드랜턴을 머리에 달고
대청봉을 오르는 광경은 무척 아름답다.
겨울달이 길동무처럼 슬며시 따라오고
두레박으로 퍼올릴만큼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눈 덮힌 산 속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어둠을 뚫고 대청봉으로
올라갈 때
출렁이며 반짝이는 랜턴의 불빛은
그 자체가 장관(壯觀)이다.
대청봉 정상에서
동해 쪽에서 올라오는 새해 첫 일출을 보며
수천명의 사람들이 내지르는 환호성도
희망처럼 내 맘을 설레게 한다.
날이 밝아 지천에 핀 눈꽃을 보는 일이나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산길을 걷을 수 없어
궁둥이 눈썰매를 타고 신나게 하산하는 일이나
사시사철 아름다운 천불동 계곡의
눈 쌓인 경치를 감상하는 일이나
모두 내 맘을 사로잡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올해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해서 난 남쪽 어딘가로 3박4일쯤 쉬다 오려 한다.
아주 편하게 아주 느긋하고 조용하게
쉬다 오려 한다.
서해로 지는 낙조도 감상하고
전주에 들려 시장 골목안 저렴하지만
푸짐한 한정식도 먹어보고..
순천만의 겨울 억새밭을 거닐다 철새 사진도 찍고
작년처럼 송광사에서 일박하고
조계산을 넘어
눈덮힌 선암사에 가보고..
그래도 여력이 있으면 영암 월출산에 가서
하루 자고 아침에 산을 넘어 도갑사로
가려한다.
작년인가 올초 겨울인가 아무도 없는
눈덮힌 월출산 정상에서 짐승 발자국을 만나
무지 가슴 졸였는데
알고보니 산 아래 도갑사 중이 기르던 개의 발자국이었는데..
이번에 놀래지 않으리라.
그리고 작년처럼 도갑사 근처
식당에서 산채 비빔밥을 먹을 것이다.
이 정도 일정이면 내 연말연시 연휴가 다 지나갈 것이다.
아내와 딸은 연말 호텔 패키지로
1박 2일간 쉬게 만들었으니 나에게
더이상 불만이 없을 것이다.
신년 연휴동안 TV 붙들어 안고 미식축구보고,
외화보고 손님 맞아 낮술에 취해 있는 거 보다야
멀리 여행 가 있는게 훨 나을 테니까..
이번엔 여행갈 때 읽기 어려운 책을 몇 권 들고 갈거다.
정말 아무런 목적없이, 걱정없이
책 읽기에만 빠져 볼거다.. 그러다 심심하면 사람들에게
메일을 쓸지도 모른다..
낯선 곳을 헤매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메일을 쓸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일이다..
이렇게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 해야 내겐 정말 한점 후회없는 산뜻한
송구영신인데..
그리고 기억 남을 것 같은데
계획대로 될런지 모르겠다..
항상 이맘때 내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생각나는 시 2편 적어 본다..
그 시들을 읽게 되면 아마 산우님들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것이다.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 노래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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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에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첫댓글 또 떠나는군요 ! 훌훌 털어버리고 혼자 떠날 수 있으니 정말 부럽습니다. 올 마지막 날이 토요일이고, 새해 첫 날이 일요일이니 우리같은 소시민이야 월요일 부터 출근해야 하는 일상의 연속이지요. 언감생심 여행은 꿈도 못 꾸지요 더구나 마누라 집에 두고 홀로가는 여행은 더더욱 생각도 못하지요. 자유인 대은 부럽소.
자유인-대은, 나와 호를 맞 바꾸어야 쓰겄다. 방랑자여 방랑자여 기타를 울려라!
大隱兄글을 읽으니, 이 겨울에 어떻게 해서든지 여행을 떠나긴 떠나야 겠소이다. ㅠㅠㅠ (한숨소리__)
혼자 하는 여행, 아니 어쩌면 외로움과 같이하는 여행. 생각의 폭과 깊이를 크게하는 여행.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 마음의 여유를 넓혀주는 여행. 좋은 계획입니다.잘 다녀오시고 좋은 글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