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7월 1일)
마지막 관광의 밤을 보내고 귀국하는 날 아침은 왠지 마음이 착찹하면서도 홀가분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음식으로 빗대자면 몸에 좋은 보약을 이것 저것 다 맛 본 후에는 반드시 물 한잔으로 마무리 짓는 것처럼 그렇게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인 것일까? 짧은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눈에 담고 또 마음 속에 담았다. 사흘간 펼쳐놓은 여행 가방을 계속해서 정리하며 어느 것은 버리고 어느 것은 담고 가면서 내 스스로를 재 정돈하는 시간을 보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파리의 명품 관광지를 꼽을 때, 유럽의 희로애락을 함축시켜 놓은 루브르박물관을 말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박물관 입구에는 이미 수많은 관람객들로 인해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심 조급함에 안절부절 못하던 차에 가이드의 민첩한 행동으로 관람을 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또한 2008년 2월 12일부터 공식적으로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하여 시행중이었기 때문에 낯선 곳이 가져다 주는 익숙함은 참으로 반갑기 그지 없었다. 다만, 인파를 헤집으면서 대체로 600여점을 감상하려면 필요하다는 3일간으 시간을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모나리자’, ‘작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 등만 1시간 30분 만에 수박 겉 핥기식으로 감상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면서도 일행을 놓칠세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다시 박물관 밖으로 나와서 전경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시간 관계상 다시 ‘로댕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낮의 햇볕은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고는 시력의 고충을 맛보리만큼 따가웠다. 그나마 푸른 색깔로 조각처럼 우거진 수목들이 자연그대로의 걸 작품들이었다. ‘생각하는 로댕의 작품이란 말인가!’ 검은 빛의 로댕 상은 근육질이 울퉁불퉁 생동감과 건강미가 함께 어우러져 옆에 서있는 이들이 힘을 얻는 기분이었다. 넓게 펼쳐진 녹음들과 장미꽃이 어우러져 살아있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흔적을 담곤 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가까워지고 프랑스의 보물은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바쁘기만 했다. 콩코드광장은 나폴레옹의 ‘개선문’이 듬직하게 서 있으며 사방으로 넓게 뚫린 깔끔한 도로만 바라봐도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스럽게 여리는 듯 했다.
개선문 가까이 갔더니 코끼리의 다리 밑에 서 있는 듯 했다. 이런저런 벽면에는 조각과 전쟁의 모습의 조각이며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개선문 바로 밑에는 호국영령들을 위해 꺼지지 않는 불꽃을 중심으로 헌화들이 놓여있음이 인상 깊었다. 이런 연유로 콩코드광장은 슬픈 역사를 되새기게 한단다. 우린 다시 상제리제의 거리로 바삐 움직였다. 노래만으로도 흥겹던 상제리의 거리 ‘오! 상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이 거리. 오! 상제리제! -생략-’ 등을 흥얼거리며 여행의 활력이 되는 아이 쇼핑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다.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이며 명품의 진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품들이 우아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 이래서 명품을 구입하려면 파리로 가라고 했던가, 사지 않고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은 광장에는 젊은이들이 여러 가지 쇼를 하는 모습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상제리제의 상가를 구경하며 오르내리던 달콤함도 추억으로 남았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일정에는 없었지만 고궁을 한 군데 더 구경 시켜준다는 가이드 말에 눈귀가 번쩍했다. 공항 시간이 넉넉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고풍스런 샹티에 성으로 달렸다. 파리에서 약 1시간쯤 지나서 푸른 초원 시원스럽게 펼쳐진 곳에 고풍스런 성각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
샹티에(Chantilly)성을 중심으로 푸른 초원과 숲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정원이 있었다. 그 성은 호수 위에 세워져 있으며 주위 경치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환상적이었다. 성 안에는 영국 취향에 젖은 귀족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마장이 있고 콩데 박물관 (Musee du Conde)이 있었다. 또한 이 마을에는 부호들의 저택들이 줄지어 있으며 그 저택들 뒷 편으로는 말타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있었다. 현재의 샹티에 성은 6천여점 이상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파리지역에서의 가장 중요한 역사 박물관이란다. 전설 속의 작은 성이 바로 이런 곳을 그린 것인가? 몇 년 전에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는 이곳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로 되어있으며 그 주위의 경관 또한 상상 그 이상으로 매혹적이었다.
특히나 성 입구에서 성 뜰을 바라보는 경치는 굉장한 명작이었다. 듬성듬성 엮어진 쇠창살 문 사이로 비밀을 간직한 저 작은 성! 저 속에서는 금방이라도 금발머리 우아한 공주와 백작이 사랑을 속삭이며 정원을 거닐 것 같은 설렘으로 다가선다. 작은 연못가에는 형형색색의 작은 들꽃 사이의 오리 떼들이 카페트 위에 수를 놓은 듯 한가롭게 노닐고, 맑고 푸른 하늘은 마치 성으로 내려 앉아 호수를 이루는 듯 했다.
천년 세월 속에서 고풍스런 수많은 성들! 그 시대의 주역들은 한줌의 흙으로 사라지고 우린 이렇게 초대받은 객석에서 짧은 축복의 몸 둘 바를 모르리라. 어느 덧 한가로운 시간은 비행을 하듯 빨라지고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어쩌면 짧은 여정의 달콤함은 또 다른 여유로움으로 도전해보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