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구의 진산이자 모악기맥의 서쪽 끝자락에 올망졸망 빚어진 구성산(九城山·487.6m)의 참모습은 금만평야에서 바라봐야 하고, 금만평야는 구성산에 올라야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산의 유래도 흥미로워서 아홉 개 봉우리에 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막았다는 의미의 구성산, 또는 굴성산, 앉은뱅이가 이 산을 아홉 번 올라 소원을 빌고 병이 나았다는 속설들을 간직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언양김씨들이 산기슭에 많이 살았으며, 정상 서편 상봉(헬기장)은 기우제를 지낸 무제터(無際-)가 있던 곳으로, 최근까지 상봉에 묘를 쓰게 되면 가뭄이 들어 인근 주민들이 묘를 파내면 비가 왔다고 한다. 상봉과 봉두산 주위에는 성을 쌓고 적의 침입을 막았던 곳으로, 봉두산 주위에는 지금도 성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금평저수지 옆에는 증산법종교의 교당이 있고, 영대라는 건물에 교주인 강 증산과 고 부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그 맞은편 구리골 약방터는 강 증산이 득도한 후 광제국이란 한약방을 차려놓고 9년 동안 구민활동과 포교활동을 했다.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가르침으로 한때 그를 따르는 신도가 6백만 명에 이르렀고, 전라도보다 경상도에 그 신도가 많았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삼계 대권을 쥐고 조화로서 천지를 개벽하고 선경을 열어 고통 속에 헤매는 백성을 구하던 곳이 바로 구성산 자락이었다. 모악산과 구성산 자락의 금평저수지 주변에는 신흥종교가 번창했다.
구성산의 높이가 487.6m에 불과하지만 해발이 낮은 금만평야에 위치하고 있어 산간지역의 1,000m에 육박한다. 금구 방향에서 보면 평범한 육산인 듯 보이지만, 정상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너덜과 바위지대도 있고, 산줄기가 상당히 출렁거리며 산행인들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코스도 있다.
남쪽 기슭에는 학선암(鶴仙庵), 동쪽에는 유서 깊은 귀신사(歸信寺)가 있다. 가을철이면 천년고찰 귀신사의 주변의 감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이 빨갛게 익어 가는 가을정취는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는다.
정상에서 조망은 사방이 탁 트여서 좋다. 동쪽으로 귀신사와 모악기맥, 북으로 삼례와 익산 시가지, 서쪽은 평야지를 뚫고 달리는 호남고속도로와 전주와 김제를 잇는 국도, 바둑판처럼 넓은 들녘의 젖줄인 만경강과 동진강의 물줄기가 눈요기감이다.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 상의 완주 주화산(모래재 위)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호남정맥이 만덕산과 오봉산을 지나 운암 초당골(막근댐) 서쪽 1.2km지점에서 모악기맥을 분기한다. 이곳은 삼분수(三分水)로서 남쪽은 섬진강, 동쪽은 섬진강, 서쪽은 만경강을 나누는 분수령이다.
모악기맥은 만경강과 동진강을 가르며 국사봉과 화율봉을 지나 모악산을 빚어놓고, 매봉(620m), 연불암 뒤의 칼바위 능선, 유각치를 지나 모고산(402.4m)에서 서쪽에 구성산 줄기를 내려놓고 김제 망해사 옆 국사봉까지 뻗어간다.
구성산 줄기는 귀신사 뒷산, 싸리재, 삿갓1, 2봉을 지나 구성산을 일궈 놓고 1번 국도와 호남고속도로가 마주보고 달리는 금만평야로 잦아든다. 모고산에서 북쪽으로 갈래 친 산줄기 하나는 선암저수지 뒷산으로 뻗어가며 박바위, 벼락바위, 봉두산과 금구면 월전리 부근에서 끝을 맺는다.
구성산의 물줄기는 모두 원평천을 통하여 동진강을 이루다가 서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전북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금산면 용산리, 청도리를 경계한다.
이번 산행은 이광수(블랙야크 전주점 대표), 송정용, 최병옥, 박창선씨, 그리고 이미나씨가 홍일점으로 참여했다. 개들이 짖어대며 마중나오는 청도리 마을과 주차장을 지나 귀신사에 들어서니 주위가 고요하다. 불사 중인 사찰을 돌아보고 서쪽으로 가면 고려시대에 세운 손상된 삼층석탑이 장구한 세월의 무게를 말해준다.
새 생명이 약동하는 경칩을 증명하듯 개구리가 목청을 돋우고, 버들가지는 푸른 빛이 돌고, 매화나무는 곧장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싸리재에 닿으면(귀신사에서 15분 거리) 송전탑이 제일 먼저 마중나오고, 북쪽은 축령 마을, 동쪽은 모악기맥 사거리다. 서쪽의 넓은 길을 지나면 솔가루가 양탄자처럼 노랗게 뿌려진 소나무숲에 부천 한동수-정동순 부부의 리본이 무척 금슬 좋게 인사한다.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 탓인지 땀에 흠뻑 젖는다. 귀신사 계곡의 하산로가 있는 오름길에 서면 동쪽은 귀신사와 청도리 마을이 정겹게 다가오고, 서쪽에 삿갓봉이 우뚝 솟았다. 낙엽 쌓인 산봉우리를 힘겹게 올라서니 부안에 사는 김기웅, 신형문씨가 백두산 등반을 손전화로 약속했다.
삿갓1봉(귀신사에서 50분 거리)에 올라서니 조망이 훌륭해서 가슴이 탁 트인다. 미끄러운 급경사를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인적 없는 비포장 임도가. 북쪽 축령, 남쪽 구릿골을 잇고 있다. 삿갓2봉이 머리를 압도할 듯이 눈앞을 막아서며 산꾼의 기를 죽인다. 솔향기 그윽한 송림을 지나 급경사를 오르는 중간지점의 전망바위에 서니 동남쪽으로 너울너울 춤추는 모악산 능선, 동쪽은 전주 시가지, 남쪽은 금평저수지, 금만평야가 한눈에 잡힌다.
삿갓2봉에서 전북산사랑회에서 설치한 이정표와 삼각점(갈담 802)이 있는 정상은 10분 거리다(귀신사에서 1시간30분 소요). 정상에서 옛적에 기우제를 지냈던 헬기장은 지척이고, 남쪽으로 학선암 하산로가 있다.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훌륭하고 특히 모악산 능선 확연하다.
하산길은 주변을 간벌하고 등산로가 잘 정비해서 실크로드인 반면 북쪽 산자락은 수목갱신의 미명 아래 실시한 벌목으로 벌거벗겨진 모습이 황량하기 짝이 없다. 벤치와 운무정 현판이 걸린 멋진 모정을 만난 뒤, 운동기구가 있는 갈림길에서 서쪽의 목우촌 방향 길을 버리고, 북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밤나무단지를 지나면 영천 마을 주차장이다(정상에서 1시간 소요).
슬레이트 지붕의 원두막과 철탑을 지나면 넓은 길이 시작된다. 선암제와 키 큰 시누대 군락을 지나 묘소 앞 갈림길에서 북쪽 임도는 금구 가는 지름길이고, 남산은 서쪽 송림으로 올라야 한다. 잰걸음으로 남산에 올라서면 산불감시초소와 이름 없는 삼각점이 마중나온다. 금선사에서는 이 산을 신선봉이라 부른다.
조망을 즐기고 금선사에서 시멘트 길을 내려가다 항아리가 많이 있는 집 앞에서 북쪽으로 내려서서 전답과 금구교회를 지나면 버스정류소에 닿는다(정상에서 1시간30분 소요).
#산행길잡이
○제1코스 귀신사~싸리재~제1 삿갓봉~임도~제2 삿갓봉~정상~상봉(헬기장)~영천 마을~선암제~남산~금구교회~버스정류소 <7.5km, 3시간 소요>
#교통
전주→금구 시내버스가 15분 간격 운행.
전주→청도리 금산사행 시내버스 30분 간격 운행.
드라이브 코스 전주~1번 국도~구 도로~금구(금구농협에 대형, 소형 주차 가능) / 전주~712번 지방도~중인리 삼거리~독배~청도리 * 귀신사 주차장 승합 및 소형 주차 가능, 대형은 712번 도로변 주차.
#문화유적-귀신사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한때 금산사를 말사로 두었던 대찰이었고, 주변에 7~8개 암자가 있었다. 사찰 이름은 원래 국신사, 귀신사 등으로 불려왔는데, 1992년부터는 국신사, 최근에는 또 다시 귀신사(歸信寺)로 불리는 비구니 사찰이다.
보물 제826호로 지정된 대적광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형태의 건물로이고, 이 외에 명부전, 연화대석, 장대석 등의 유물들이 남아 있으며, 3층석탑 1기와 석수 1점, 부도 1점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석수는 불교와 무속신앙이 어우러진 신앙 미술품으로 돌사자 위에 정교한 남근석주가 꽂혀있다.
고려 말에 왜구 300여 명이 이곳에 주둔했었으나, 병마사 유실(柳實)이 물리쳤다고 한다. 최근에는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과 보리여울의 여름 영화촬영 무대가 되기도 했다.
글·사진= 김정길 전북산사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