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붉은 앞섶 풀어 헤쳐 붉게 꽃피우는 동백이
차가운 겨울 해풍 두터운 잎사귀로 이겨 내고 있는 언덕에
그날의 전승을 기리는 옥포대첩 기념탑........
아마 동복에서 막 하복으로 갈아 입을 좀은 어정쩡한 시기
춥기도 하고 덮기도 한 계절 5월 쯤인가에 항상 있던 옥포대첩기념일
이순신 장군님께서 크다란 칼로 쳐 들어온 왜놈 대갈몽시를
작살낸 날이라고들 하던 당시........그날이면 인근의 초,중, 고의 모든 학생들이 모여서
하던 백일장과 사생대회, 아마 알게 모르게 이어지던 학교간의 묘한 경쟁심은
오늘날 학교간의 경쟁보다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 옥포만)
이날을 두고 내내 갈고 닦던 기예중에 하나가 사생대회와 백일장,
차츰 이날이 닥아오면 방과후 에 모여서 그림 연습이 있었고
지상 명령이라도 받은 잘 훈련된 군사처럼 창과 방패를 들고
전장에 나아가듯이 화판과 이젤을 들고선 미술 선생님께로 가던 시절,
마냥 그려도 그저 그런 그림,
그래도 간간히 오가는 선생님의 칭찬과
그날 이순신 장군 전승 기념제에 입상의 영광이 주어
진다면 하는 설렘으로 지루한 오후를 그림 연습으로 보내곤 하던 시절이었다.
알듯이 그림은 좀은 타고난 재능에다
끊임없는 연습 그리고 열정이 보태져야 하는데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내겐 그날의 행사만 치러고 나면
그만 둬야 할 그런 그림 연습이었고,
부근에서도 그림을 전공 할 그런 실력이나 열정이 아니라는 것과,
미술 전공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내버려 둘 부모들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중학교시절 조건부 미술부 학생이었다.
미술 선생님이 불러 그림 하라 하고,
그럼 지시에 말없이 따르는 그 정도였고,
더구나 부모님 몰래 하는 한시적 과외 활동이라서
귀가길엔 손에 묻은 물감의 흔적들을 깨끗하게 지우곤 했다.
드디어 대횟날 기분이 영 아니였다
무릇 이런 걸 하다 보면 뭔가 잘 된다는 날이 있는데
스케치 부터 뭔가되지 않는 듯한 기분
이어 물 양동이에 붓을 씻어가며 그리던 수채화는
뭔가 부족해도 많이 부족한듯, 이른바 실내에서 내내 연습하다가
대횟날 몇일을 두고서야 야외에서 고작 서너번 연습한게 충분하지 못했던지
야외에서 전해지는 색감이 실내의 그것과 그렇게 많은 차이가 있을 줄이야
한참을 몰두 하고 있는데 문득 뒤에 커다란 무게 같은게 느껴져 뒤 돌아 보니
아버지 였다.
아마 인근에서 여러 행사가 벌어지던 그날이라
그림 그리고 있던 나의 모습을 본듯하다
그림이 거의 완성되어 가길 망정이지 초반에 아버님이 왔더라면 ,,,,,,,,
이런 부담스런 나의 마음을 아는듯
아버님은 잠간서서 말없이 보고 있다 이내 자리를 피해 주셨다.
하지만 발표 결과
그 흔한 입선작에도 들지 못하고 귀가했을때
"내가 보기엔 너 그림도 괜찮았는데" 하며 아쉬워하던 아버님의 말씀이
못내 부끄럽기 조차 했다.
이런 우울한 기억과 진학에 대한 또 다른 서글픈 추억으로 중학교 시절은
아련히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던 고등학교 생활이 지리하게 이어 졌으며,
그림에 대한 의욕도 그저 미술시간에 시간 떼우기나,
아님,
미술선생님이 잠간 면담이라도 하자 할라 치면,
진학 공부 핑계로 방과 후 도망쳐 버리면서
나의 시시껄렁한 그림에 대한 추억을 그렇게 멀어지고 말았다.
섬마을 시골 학교가 그러하듯이
몇몇 비중없는 과목만이 지역 출신 선생님이 말뚝을 박고 있을 뿐
육지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선생님이 오면 그저 1, 2년교생 실습 비슷하게 하고는
선생님과 정도 들기전에 다시 보다 낳은 육지의 어느 학교로 전근,
아니 아예 작별인사도 없이 방학중에 도망가 버리곤 하던 당시,
우리들 역시 그런 이별 아닌 이별이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고,
이어 신학기가 되면 새로운 선생님 아니 교생들이 대거 조회시간에 소개 되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신학기,
긴 겨울 방학동안에 또 많은 선생님들이 육지로 도망을 쳐 버렸는 듯
아침 운동장 조회 시간에 예닐곱명의 새로 오신듯한 선생님의 인삿말이 있었고,
태권도 유단자 선생님과 체육 선생 그리고 교련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어 남학생
소지품 검사가 있었다.
담배를 보관했거나 아님 담배 부스러기라도 나온 녀석,
잇빨 사이에 니코틴니 제법 요란하게
베인 녀석들이 조회 대열 뒤로 소집되어 엎드려 받쳐를 하고
나머진 교실로 들어갔다.
신학기 초라서 새로 오신 선생님에 대한 성향 분석이 나름되로 이어지고
제발 우릴 피곤하게 하는 이른바 폭력 선생님 기합 잘 주는 선생님이 없길 간절히 바라면서
화툿장 뒤집듯이 새로운 선생님을 제법 상기된 쏠쏠한 기분으로 맞이하던 그날
미술시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슬슬 시작되는 대학 진학 공부에 미술은 그저 법정 교과 일 뿐
그렇게 비중을 차지 하지 않았고,
미술 선생 역시 그런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리라 생각했는데
우린 잠시 그런 생각을 접어야 했다.
교실문을 열고 운동장 조회시간에 소개 되었던 남자 미술 선생님이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들어오시는데,
그 미소는 마치 저승사자의 으시시함, 뭔가 비꼬는듯한 입술모양,
유난히 흰창이 많은 눈 빛,
목으로 주름살 처럼 이어져 내린 살물결,..........순간 적막이 흘렀다.
선생님의 첫 인상에서 부터 우린 완벽하게 제압 당하고 말았다
화상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한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은 선생님,
우린 말이 없었고,
서늘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소개와 뭔가 모를 유머로 우릴 베시시 웃게 만든
그날의 첫 수업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문암 박 득순 선생님)
그날이후 미술 선생님의 기행에 관한 애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우릴 더 더욱 의아하게 했다
하기사 일주일에 한번 있는 미술시간
미술에 대한 공부 보다는 뭔가 색다른 애기과 미쳐 우리들이 생각지도 못한 애기들을
전해주곤 하다 보니 자연 선생님의 화상입은 얼굴 보다는
오늘은 무엇으로 우릴 놀래켜 줄까 하는 궁금함으로 미술 시간이 기다려 지곤했다.
차츰 벗겨지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학창 시절 학생운동도 한듯하고,
얼굴의 화상은 뭔가 모른 사연이 있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6. 25 전쟁 그리고 피치 못할 운명, 버림받은 사연 등등이 있을 듯한 짐작을
그저 선듯 선듯 비치며 오가는 말의 행간에서 짐작할 수 만 있었을 뿐
그 이상 알수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들이 접하지 못한 세계를 안내 해 주고
파격적인 언행으로 잠자고 있던 우리들의
열정에 불을 댕겨 주던 선생님으로 기억 되어 질 무렵,
칠판에 고이 펼쳐진 그림 한장 ...처음 보는 누드,
실제 모델을 두고 그린 그림이라고 했는데
당시 이런것을 믿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몇몇 이었을까?
그해 말
전해진 소식은 불타이(선생님 별명)선생님이 국전에 입상했다는 소식
당시 국전이란 어마어마한 대전에서 당당하게 입상하고
그 작품이 도선관 벽면에 자랑스레 걸려 있을때
우린 다시 선생님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작품 설명하시는 선생님
졸업을 했다
이따금 미술선생님이 생각 나곤했으나
예의 어느 선생님들 처럼 2년정도의 섬 생활 후에 육지로 훌쩍 떠났으리라,
하지만 어느 곳에선가 뭔가 일을 내고 나름대로의 작품 세계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 해 내고 있으리라 짐작 될 뿐 근황은 알 수 없었다.
문득
미술 시험문제에 "미술 선생님의 이름은?"
유명 예술인이 혼을전해 주던 선생님의 입담과
이런 내게도 아름다운 연인에게서 오는 사랑의 편지도 있다는 듯이
그 편지를 담담하게 읽어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곤 했는데
최근 고향에서 초대전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전시된 작품들..........)
문암 박득순 화백
예상한데로 선생님은 한길을 가셨고
그 길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다졌고
알고 보니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알았다
나 역시 이따금 그림을 향수 처럼 그려보곤 하는데
그 옛날의 열정이 아니라 그저 추억이라 생각하면서
그렇게 열정과 뜻을 두지 않았던 시절의 작은 재능 정도는
(전시된 작품: 출어, 만선이 연상되는 고향의 풍경)
사회적 환경으로 묻혀 버렸고 그런 것을 아쉬어 조차도 않는 지금,
직업을 구하고 생계 수단으로 확실한 직업을 구해야 하는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던 그때였고, 그때의 사람이었으므로,
그림은 그저 아득한 향수로 남아 있을 있을 뿐이다.
당시 선생님이 후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더라면 그 밑에서 내가 사사 받았을까?
하지만 당시 선생님은 부근의 자연 탐방과
자신의 작품 활동에만 전념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현재 이곳에서 멀지도 않은 곳에서 살며, 작품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
우릴 기억할진 몰라도 찾아 뵙고 인사드리고 싶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작품명: 단아한 국화의 자태)
(작품명: 배낭기미풍경이 그리운 고향.........아마 선생님 고향인듯 바닷가 혹은 섬??)
(작품명: 항해를 기다리는 배)
( 작품명: 바다풍경화와 옛시골집 풍경화)
살다보면 옛날에 대한향수는
그 계기가 무엇이든 간에
선듯 추억처럼 닥아오곤했다
작년 겨울
매사, 모든게 귀찮고
밉고 싫어서
내가 도망친곳은 결국 그림이었다
화방에서 구한 크로키 북 & 샤프 ㅡ
그리고 화본
겨울 내내 알수 없는 그림만 그렸다
때론 아이들을
시든 꽃들을
꽃병을
때론 헤벌레 주무시는 동거녀를
하지만
예술에 먹칠 하지말라는 동거녀의 눈물어린 호소와
모델하기도 지쳤다는
새끼들의 떼거지 반란에
약 3개월간의 투쟁은 몇권의 크로키북을 채우고 나서야
그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