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전화에 적힌 번호를 보니 청주에서 약국을 하고 있는 임사일 형님이다....
"환삼아! 대청호울트라대회 나가지 않을래?"
말로만 들었던 울트라마라톤대회 그것이 뭐더라?
"그거 100km 달리기 아니에요?"
하프코스 세 차례 완주경력이 내가 가진 달리기경력 모두인데.. 100km라니....
(대회 당일에 형님과 나눈 얘기였지만 내가 풀코스 몇 번은 완주하였던 것으로 생각하셨다 한다)
"안돼요! 저 전주군산대회 풀코스도 신청해놨구요"
"서울경향마라톤풀코스도 신청해놨어요... 겹쳐서 안되겠는데요......."
"얌마! 나만 따라오면 돼.. 다른 경기 포기하고 걱정 말고 도전해... 나도 작년에 했는데 생각만큼 그렇게 힘들진 않아.."
그렇게 형님에게 속아서 대청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울트라대회 30여일 남겨두고 통화한 내용이다...
뒤에 대청울트라 홈페이지를 방문했더니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배낭에 물이며 음식을 넣고 렌턴들고 밤새도록 뛰는 서바이벌 경기였다.
순천철인클럽회원들 모임에서 얘기를 꺼냈더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고개를 돌리고 두 세분이 습관처럼 속닥속닥 귓속말을 나눈다.... 정신없는 놈이라고 하는 듯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철인운동경력 8개월에 2002년 10월 제주성산포친목철인대회를 꼴찌로 완주하고 달리기는 하프코스 세 번 완주한 초보가 울트라대회를 나간다니 형들의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도전심이 더 생기는걸 어쩌란 말인가...
남들이 다 하는 도전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도전(挑戰)아닌가..
일단 참가비 10만원부터 송금했다.
풀코스 완주경력이 없으므로 가 접수만 된다 한다.
전주군산대회 풀코스 완주를 약속하고 가 접수한다..
30일 전부터 철저하고 잔인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한번도 안 뛰어본 40키로부터 뛰어보기로 했다.
4시간 30분이다... 날씨도 좋지 않았지만 기록이 너무 저조하다..
하프코스에서 못 느꼈던 부분에 통증을 느꼈다. 특히 팔꿈치에 통증은 의외였으며 자세교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다음날부터 5∼10km를 거의 거르지 않고 뛰었다.
혹시 울트라를 도전하는 이가 있다면 첫 번째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많은 거리를 뛰어보고 며칠씩 푹 쉬는 것보다는 짧은 거리를 자주 뛰어서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적응을 위해 배낭에 물을 담고 뛰기도 하였다.
학교운동장에서 이 모습을 본 어떤 선생님은 단순히 근육 단련을 위해 등에 배낭을 짊어지는 줄 아시고는 "모래주머니 팔던데 그것을 발에 차고하지 그러냐" 고 조언도 해주신다..
두 번째는 식이요법이다.
대회 열흘 전부터 식이요법에 관해 여기저기 다 뒤지며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8일전부터는 단백질 섭취로 소고기와 닭 가슴살 그리고 계란만 10끼를 먹었다.
소금도 못 먹고 하니 먹기가 너무 힘들 때는 물김치를 물에 다시 씻어서 먹었다.
물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머지 12끼니는 무조건 탄수화물만 먹어댔다.
이 두 가지가 만족할만한 결과로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한 내가 생각하는 비결의 전부이다..
준비
대청울트라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정상적으로 접수가 되었다.
나의 배번은 100번이다. 우선 느낌이 좋다. 100번이니 100위로 완주만 하자는 각오를 다진다.
청주는 대중교통이 복잡하여 우선 참가자 명단을 확인하고 순천과 여수지역에서 동반할
울트라 도전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여수, 순천 마라톤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놓았더니 속속 연락이 오고 여수 백창희정형외과원장이 자기 차로 모두 같이 가자했다.
당일에 처음 만난 네 명이 공통으로 느낀 점은
"야! 모두들 달리기 꽤나 하게 생겼다" 는 것이었다.
대회 당일이 하필 예체능교육정상화 집회를 위해 전남동부지역 음악교사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서울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나는 울트라대회참석으로 불참하게되어 여러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약간의 간식을 구입하여 차에 실어드리고 청주로 출발하였다.
가다가 전주에 들러 식사를 하는데 네 명중 나를 제외한 세 명이 보신탕을 시킨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기 위해 갈비탕에 밥 말아서 고기 건져내고 밥만 먹는다.
끝까지 탄수화물을 고집한다.
대회장!
문의면에 도착하여 대충 주변을 돌아보니 긴장도 되지만 어제까지도 많은 비가 내려서인지경치와 날씨는 상쾌하고 아주 좋다.
일행 중 한 명이 코스를 한번 돌아보자 한다.
그냥 모르고 용감하게 뛰자는 내 의견을 받아들여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백창희씨가 예약했다는 여관을 찾아가 모두 잠시 눈을 붙이고 짐을 챙긴다.
쵸코렛스틱, 사탕, 아미노바이탈, 렌턴, 백라이트, 꼭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도 무겁다.
네 명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다른 사람 가방을 들어보며 무게를 재어 본다.
왠지 내 가방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다 똑같은가 보다.
뭐를 챙기는지 흘깃흘깃 눈치도 보고 비밀의 명약이라도 챙겨 가는지 얘기도 나누고 재미있다.
백창희씨는 물통에 달린 호스를 이남근씨가 발견해주니 되게 반가워한다.
울트라 전용가방인데도 자기 가방에는 물통에 호스가 달리지 않은 줄 알았다하여 한바탕 웃는다.
현덕환씨는 덩치도 적은데 손전화에 라디오에 이것저것 가방이 꽤 무겁다.
순천철인클럽 오병익님이 주신 타이즈 반바지와 새로 구입한 철인경기복 상의를 입고 중요한 부위에 바세린 바르고 젖꼭지에 밴드 바르고 편안한 발놀림을 위해 평소에 신었던 나이키 런닝화를 신으니 준비 끝...
밖으로 나가 두 시간 전인 4시에 맞춰 식사를 한다.
경기 후에도 계속 농담의 소재가 되었던 "힘이 벌떡!"이라고 씌어진 어죽(魚粥)을 먹었는데 다행히 죽에 밀가루가 아닌 밥알이 들어있어서 든든하지 싶다.
그래도 죽인데 나중에 속이 허전하지 않을까 걱정은 좀 된다.
운동장에 도착하니 사람들도 제법 많이 와있고 길가에 보니 철인경기전문용품점인 "아이언맨샵"에서 양효길 사장님이 와 계신다.
인사를 드리니 금방 알아본다.
사모님도 "아! 유환삼씨... 작년 제주성산포대회때 제주도게시판과 KTS게시판에서 끝까지 투쟁하셨던 분 맞죠?"라며 알아봐 주신다..
1회 대회여서 그런지 방송국 취재진들도 많이 와있다.
옆 카메라맨에게 찍어달라고 조르며 "여수, 순천화이팅"을 두 번이나 외친다..
스트레칭 시작하려는데 나를 이 지경에 빠지게 만든 주인공 청주 임사일형님이 약국 문닫고 이제야 나타난다.
근육이완제라며 약을 건네길래 "몸에 좋다면 날아가는 총알도 받아먹는다"가 신조인 나로서는 단숨에 꿀꺽 받아먹는다.
그것이 시작부터 56키로 지점까지 속쓰림의 원인이 될 줄도 모르면서....
수지침 자원봉사 해주시는 분에게 허벅지에 쥐날까봐 걱정된다 하니 미리 준비해둔 압침밴드를 손가락에 감아주신다.
덕분에 100km 달리는 동안 쥐는 한번도 나지 않았다.
힘 빠질까봐 유구웅회장님이 힘내라며 준 파워젤을 하나 빨아먹고 나니 배는 든든하다.
배낭에 물 채우는 것을 잊고 있다가 급하게 본부석으로 가서 배낭물통에 물을 채운다.
아뿔사... 채우고 나서 병을 보니 씁쓰름한 천연탄산수다.
덕분에 30km 지점까지 내내 쓴 물을 마시며 뛰어야만했다....(그것이 약효가 있었나?)
스트레칭을 10여분간 하고 출발점에서 기념사진 찍고 군장검사(물통과 안전등)를 하고 나니 벌써 출발시간이다.
징소리와 함께 모두가 출발이다.
임사일 형이 속도를 낸다. 처음언덕까지는 좀 빠르게 가자한다.
언덕에서 걷자는 얘기이다.
옆에 같이 가는 백창희씨가 마라톤 풀코스 11번 뛰었어도 초반에 이렇게 앞서보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지금 현재 순위 백창희씨 5위 내가 6위다.
나는 무조건 따라만 간다.
문의면을 한 바퀴 돌아 대청댐 주로로 막 나가려는데 맨 뒤에서 입살 좋은 달리미 아저씨가 "선두 제자리!" 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모두들 한바탕 크게 웃고 계속 달린다.
길가에 비치는 시골풍경과 행복한 주말나들이에 "화이팅"을 외쳐주는 차량행렬들...
왼쪽으로 한없이 보이는 대청호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발걸음을 힘차게 만든다.
해가 질 무렵 논가의 개구리들이 합창을 하더니 이내 대청호 쪽의 소쩍새가 힘내라며 독창을한다.
울트라경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얼마를 갔을까 하루살이 때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코로, 입으로, 눈으로 마구 달라 든다.
귀찮아서 배낭에 넣어버린 반투명 썬글라스가 아쉽지만 시간이 아까워 그냥 뛴다.
뒤에서 누군가 얘기 나누는 소리를 들으니 내 얘기다 "배낭이 참 편리하겠다" 한다.
그냥 동네 자전거 판매점에서 구입한 것인데 불편한 구석은 아직 없다.
난 내 것이 가장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나 보다..
어깨를 더 으쓱이며 뛴다.
뒤에 보니 어떤 이는 그냥 줄만 달린 가방(스님들처럼)을 둘러매고 달리는 이도 있다.
얼마를 갔을까..
10km표지판이 발 아래에 조그마하게 적혀있다.
어두워서 그랬는지 표지판이 너무 적어서 그랬는지 그 이후로는 매 10km마다 있다는 푯말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물론 그래서 시간대별로 기록이 전혀 없다. 뛰고 나니 그 점이 아쉽다.
8시가 좀 넘었을까 초등학교 5학년 아들놈의 전화다.
"아빠 8시 넘었어요.. 힘내세요..." "꼭! 완주하세요" 초반에는 전화 받기가 힘들까봐 8시 이후에 전화 하랬더니 착한 아들놈 정확히 전화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딸은 "아빠 몇등이야?" 묻는다.. 미치겄다..
아내는 "조심히 뛰세요 힘들면 포기하고 그만 뛰어요....." 한다.
그 이후로는 아내가 스스로 걸어온 전화를 받질 못했다.
순천철인클럽친구 손병서와 회장님이 번갈아 가며 계속 전화한다... 덕분에 전화 받는 척 하며 조금씩 걸으며 쉰다.
지금어디야? 너무 빠른거 아냐? 관리 잘해... 그만 뛰고 술이나 먹자... 60km만 뛰면 인정해 줄게....
어떤 때는 같이 운동하는 동료가 마누라보다 낫다...
밤 11시에 손병서씨 안부전화 다시 왔길래 우리 집에 전화해서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아내는 억지통화 한번하고 나서 이후로 밤새 코골고 잘 잤단다... 흑흑...
20여 키로 지날 즈음부터는 백창희씨도 이남근씨도 보이질 않고 해병대 옷을 입은 젊은 친구 두 명과 일산에서 왔다는 두분 그리고 임사일 형님과 나 여섯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린다.
지나가던 차에서 "임사일 화이팅!"을 외친다. 그러더니 "참가번호 100번 어딨어요? 임사일씨.. "
"여기 있잖아요.." 하며 나를 가르키니 깜짝 놀라며 "어이구 잘 달리시네... 저 청주철인클럽회장 이종근입니다" 한다. 같은 철인이라고 신경 써주시는 것 같아 역시 철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든다. 그리고는 따뜻한 꿀물을 한잔 건네는데 그 맛이 정말 꿀맛이다..
고속도로아래를 지난다, 도대체 여기가 어딜까?
두리번거려보니 대전에 있는 경부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입구다... 많이도 내려왔다...
다시 충남으로 충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4키로 지점쯤 삼거리에서 큰 대로가 보인다. 저곳이 역 주행하는 곳이구나 바로 알 수가 있다. 너무 위험한 도로였다. 그래서 서바이벌 경기인가?
코너 봉사자에게 받은 물 두 컵을 단숨에 마시고 쉴 시간도 없이 또 뛴다.
위험한 도로가 끝나는 37키로 지점에 임사일 형님이 소속된 청주 로드패스회원들 10여명이 기다리다가 음료수며 바나나를 건네준다.
아직 배가고프지 않아서 생각이 없다. 한번 베어먹고는 못 먹겠다.
맥주도 주지만 다리 풀릴까봐 사양한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이제 57키로 지점까지가 목표다.
그곳이 CP1 지점으로 전복죽도 있다했으니 그곳까지만 가면 절반이 훌쩍 넘는구나 생각한다.
정말 한적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밤길에 주변 민가에서 짖어대는 선잠에서 깬 신경질적인 개소리가 들리더니 서너 차례는 개가 발 뒤를 쫓아오는 일도 있었다.
어떻게 갔을까? 주변이 온통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57키로 지점에 도착하여 싸인하고 전복죽을 받았으나 아무 생각이 없다. 힘들어서일까... 두 숫가락 뜨고는 다시 버린다.. 임사일형님이 그래도 배를 채워두라고 이르지만 전혀 먹히질 않는다.
느닷없이 카메라맨이 얼굴에 카메라 들이밀고 맛있냐고 묻는다..
카메라가 비추니 내 표정이 금새 바뀐다.. "꿀맛이네요".... 메스컴 탈려고 거짓말했다..
순천에서 회장님이 챙겨주신 긴 타이즈로 갈아입고 긴 방풍 자켓을 걸치고 다시 뛰어본다.
추워서도 못 서있겠다..
오랬동안 쉬어서인지 처음에는 떨리더니 뒤에는 땀으로 온몸이 젖는다.
그래도 저 체온증을 가지고있는 나는 땀 나는게 더 편하다.
휴대폰이 조용하다 했더니 밧데리가 떨어졌다.
차라리 잘됐다 싶다.
임사일 형님, 나, 그리고 해군장교로 근무하고있으며 낼모레 제대하면 미국으로 유학간다는 카이스트 출신의 김종명씨 셋이서 나란히 뛴다.
이제 다음목표는 70키로 지점의 피반령이다.
발에 피가 난다하여 피발령이라 불리다가 지금은 피반령이라 한단다.
순수하게 오르막만 3키로 내리막만 5키로라 한다..
정상에서 다시 청주철인클럽 이종근 회장님이 꿀물을 건네니 또 힘이 생긴다.
내리막길에서 무릎에 약간 통증을 느낀 나는 천천히 가고 싶었지만 분위기에 휩쓸린 탓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같이 계속 뛴다. 옆에 가던 김종명씨가 갑자기 멈춰 선다. 무릎에 통증이 심하단다. 큰일이다.. 나도 부상인데.... 사일 형을 먼저 보내고 둘만 남아서 천천히 뛰어본다.
5키로 내리막길이 정말 지루하고 길다. 앞서가던 사일 형은 보이지도 않는다.
시간을 보니 11시간에 완주를 목표로 하는 듯 보였다.
우리도 계산을 해보니 11시간대 초반에는 충분히 완주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뒤에 닥칠 힘든 상황을 예상치 못하고서..
좌측에 공동묘지가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묘지 투성이다..
섬뜩하지만 옆에 사람이 있고 주위의 밝은 불빛 탓인지 별 생각이 없다.
양계장이 많은 동네를 지나는지 매캐한 계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얼마나 갔을까..
빨간색 도로 방향 지시등이 멀리서 보인다.
드디어 청남대 입구에 다다른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청호를 한바퀴 순회하는 코스였지만 그래도 거리가 부족하여 길 왼쪽에 있는 청남대를 다녀와야만 거리가 맞기 때문에 17키로 되는 청남대를 들어갔다가 나와야하는, 언덕도 많고 힘든 코스이다.
청남대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1위 그룹 세 명이 벌써 돌아와 우리를 스쳐간다. 엄청난 속도다....
"대통령님 청남대 개방을 환영합니다"현수막이 눈에 띈다.
얼마가지 않아 앞서가는 사일 형을 발견한다. 몸이 안 좋아 보인다. 컨디션을 물으니 졸려 죽겠다며 데드라인이라 한다. 온몸이 다 풀려있다. 아무튼 인사를 나누고 우리먼저 앞질렀으나 청남대 들어가는 입구에서 지금까지 같이 뛰던 김종명씨가 다리 통증을 호소한다.
다시 걷다가 뛰다가 시간을 계산하여보니 11시간대는 틀린 것 같다.
12시간대 초반으로 목표를 정정한다.
깜깜한 청남대 입구에 도착하여 싸인을 하니 순위 19위다.
꿀물 한잔하고 뛰는데 김종명씨가 못 가겠다고 버틴다.. 벌써 몇 명이 나를 앞질러 가버린다. 시간도 쏜살같이 지나간다.
마침 사일 형이 뒤따라 오길래 그럼 두 분이 같이 오라고 이르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혼자 앞서 뛰어간다.
사각사각 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헉헉거리는 내 숨소리 어렴풋이 보이는 왼편 대청호의 새벽물안개만이 지금 나의 동반자다.
이것이 뭐 하는 짓인가.....
주위에 같이 뛰던 사람들은 간 데 없고..
고독한 질주의 연속이다....
별 생각을 다 해본다........
뛰고 또 뛰고 1km가 왜 이리도 먼지....
주위 분들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하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도 생긴다..
그 동안 살아오며 잘못했던 일들 반성도 해보고...
물론 가족들 생각도 잊지 않는다..
동이 터 오며 사람이 많이 눈에 띈다.
한참을 뛰어나가니 백창희씨 이남근씨 모두 마주친다.
내 뒤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하니 조금씩 오버하기 시작한다.
순천에서 기대하고있을 철인클럽회원들을 생각하니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반대편에서 이제야 청남대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힘"을 외치고 "화이팅"을 외쳐주지만 그냥 손만 흔들며 응답한다.
대답할 힘도 없고 빨리 달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그랬지만 돌이키니 그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사실 그분들이 완주시간 부담 때문에 더 힘들었을텐데...
시계를 본다. 시간이 40여분 남았는데 거리는 7키로쯤 남았다.
오기가 생긴다... 숨도 안 쉬고 뛴다.
그 동안 뛰어온 93km가 아깝게 느껴진다..
그래 죽자!
내가 좋아하는 운동 하다가 죽자!
어차피 한번 죽는 것..
쓸데없이 못된 짓 하다가 죽는 것보단 백배 나은 일 아닌가.
갑자기 괴력이 생긴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 듯이 뛰고 있다.
하프대회 나갔을 때 전력 질주하는 기분이다.
사실 마지막 스퍼트의 이 순간을 위해서 처음부터 부상을 피하며 조심히 뛰었으며 10%의 체력을 계속해서 비축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뛸 수 있었다.
마지막 3키로는 왜이리 멀까..
골인지점 앞에서의 300미터도 너무 멀었다..
시간을 보니 11시간 58분 전체순위 18위로 골인한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니 피곤도 덜하고 기분도 상쾌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약간씩 절룩거리는 발은 마지막에 욕심부리며 뛰었던 스퍼트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예체능 교육의 성적을 내신평가에서 제외한다는 데 항의하기 위해 서울 결의대회에 참석한 전국의 음악선생님들께 같은 음악교사로서 죄송한 마음에 "음악교육정상화"라고 써온 종이를 들고 골인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동안 많이 도와주었던 순천철인클럽회원들..
대회 당일 밤새워 자원봉사 해주신 분들 그리고 대회 주최측...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임사일 형님...
같이 대회에 참석하여 좋은 성적으로 완주한 백창희, 현덕환, 이남근님께 축하의 말씀을 전하고 내조를 아끼지 않았던 아내와 열심히 응원해준 아들, 딸 모두에게 감사한다.
426대회에 수고많으셨던 "전동음교" 회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첫댓글 당신은 큰 뜻을 가진 분이십니다. 존경스럽네요 짝짝짝!!!!!!!!!!!!1
대단하네요. 그 불굴(?)의 의지와 투지로 이땅의 교육의-예술 체육- 정상화 그 날까지 뛰고 또 뜁시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