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답사 그리고 김장축제"
자연과 전통이 머무른 곳 -영양
영양땅의 삶의 원동력은 유교전통이다. 수 많은 한옥들이 아직도
봉감모전오층석탑 (국보 187호)
처음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튀어 나왔다. 그 웅장함에 넋이 빠질 지경이다. 11미터 높이의 탑이 산과 물을 아우르고 있었다. 산태극과 물태극이 절묘하게 만나는 곳에 탑이 서있었던 것이다.
규격화된 벽돌이 아니었다. 층마다 돌의 크기가 제각각이다. 그걸 반듯하게 층을 맞춰 올린 기술에 무릎을 쳐본다. 만약 돌크기가 벽돌처럼 똑같다면 얼마나 지루했을까? 3층 지붕돌 끝에 꽃이 하나 피워올랐다. 그곳에 뿌리를 내리며 생명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이 석탑이 아름다운 것은 주변 산세와 물흐름이 탑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억새꽃이 바람에 휘날릴 때마다 탑은 절묘한 풍경화를 연출한다.
탑옆에 사는 할머니를 만났다.
" 뭐 볼 것이 있다고 여기까지 왔는교?"
'할머니..탑보다 할머니가 더 예뻐요. 할머니 보러 왔어요."
홍조를 띄며 희미하게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할머니 탑 잘 지켜주세요."
영양에서 유일한 국보인데도 이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큰 도로에서 푯말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버스는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다. 승용차 한 대 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최고의 탑이 살아 가고 있다. 국보의 대접이 영 시원찮지 않다.
현1동 삼층석탑 (보물 610호)
영양에는 LPG충전소가 하나도 없으니 진보나 봉화에서 충전하고 와야 한다. 영양땅에서 신호등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이다. 진보쪽에서 영양읍내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서 있는 신호등이 유일하다. "이것도 보물로 지정해야돼." 달새님이 농담에 미소를 지어본다.
이곳에서 바라본 들녁이 영양땅에서는 가장 넓은 곳이란다. 내가 보기엔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는데.....
그 대평원(?)을 바라 보고 있는 탑이 현1동 삼층석탑이다. 탑의 크기는 작지만 기단과 탑신에 새겨진 문양은 정교하다.
새로난 도로가 폐사지를 가로 지르고 있다. 현대인들은 도로를 내면서 시간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천년전 탑과 당간지주는 시계을 멈춘채 서 있었다.
당간지주 들어가는 곳에 폐가가 하나 보인다. 이발소 건물이다. 70년대 이발소 의자가 깨진 거울앞에 손님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이발소가 있다는 것은 예전엔 사람이 북적했던 곳이었나보다.
현2동 모전 오층석탑
현1동 삼층석탑에서 다리를 건너면 언덕배기에 5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바다의 등대처럼 높이 솟아 있었다. 이 곳에서 바라본 영양의 들녁을 보는 맛이 일품이다. 감실 문설주 돌에 새겨진 당초문 문양이 아름답다.
화천리 삼층석탑 (보물609호)
이 곳엔 두 가지 명품이 살아 움직인다. 삼층석탑에 새겨진 문양들이 천년동안 숨쉬고 있고 또 하나는 담배창고의 담쟁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천년 전 탑을 둘러보고, 30년전 담배창고를 거쳐 오늘날 이 땅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본다.
한 없이 머물고 싶은 곳 바로 화천리 삼층석탑이다. 더 머물다가는 눈물이 주르륵 흐를 것 같아 서둘러 떠났다.
황토벽에 싫증내는 사람은 있을까? 모든 색을 아우르는 색이다. 저걸 보노라면 시야가 편해진다. 담쟁이도 그 색맛을 알았나보다. 파릇한 색이 황토에 물들어 버렸으니....
삼층석탑 기단에 새겨진 팔부신중이다. 붉은 돌에 자갈도 끼워 있어 시멘트로 척척 발라낸 것 같다. 그러나 이 돌은 천연돌이다. 딱딱한 화강암이 아니어서 사암계통이어서 더욱 입체적이고 섬세한 조각을 할 수 있었다. 몸돌의 사천왕상은 악귀들을 밟고 있다.
무서워야할 팔부신중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어 올랐다. 무당벌레가 간지렀기 때문이 아닐까?
콩타작을 위해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얼마만에 보는 장면인가? 두 부부는 열심히 내리 찍고 있다. ^^ 저 콩이 된장이 되고 간장이 되겠지
주실마을
조지훈의 주실마을에 들어섰다.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숲에 그의 시비가 자리잡고 있다. 나무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시인이 될 것이다.
조지훈은 20세기 전반기와 후반기를 연결해주는 대 시인이다. 한국 현대시의 완성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의 문하생들이 1982년 그의 고향 주실마을에 시비를 세웠다.
주곡동 옥천고택이다. 17세기 말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 지방의 전형적인 'ㅁ'자 고택이다. 살림채인 정침과 별당인 초당 그리고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당건물이 인상적이다.
주실마을은 한양 조씨의 집성촌으로 마을 구성원 모두가 일가 친척이다. 전통마을이면서도 80년전부터 양력설을 쇠고 있다. 신문물을 일찍 받아 들인 마을은 인재 양성을 위해 월록서당을 지었던 선조들의 교육열을 이어받아 근대에 와서는 자식들을 한양이나 외국으로 보내 신교육을 배우도록 했다. 이렇게 멀리 떠나간 자식들이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시기를 맞춰 명절을 지내자니 양력설을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지훈 뿐아니라 의병장 조승기, 국립중앙도서관장을 지낸 조근영, 한굴맞춤법 통일안으 입안자 조헌영박사, 경북도지사를 지낸 조준영, 여류시인 조애영등 이 조그만 동네에서 30명이 넘는 박사들과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 풍수지리상 일월산의 맥이 집결하는 곳이기 때문이라는데.....
주실마을 어귀에 보호수가 서 있다. 그 밑의 나무의자에 앉아 억새를 보면 시인이 되겠지.
학초정
영양에서 조선상류집안의 정자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어찌나 절묘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지....
이곳에 올라가면 유유히 흘러가는 반변천이 바라 볼 수 있다. 그 시원한 눈 맛이란?
학초정 뒤의 정침이다.
영양 분재 수석 야생화 전시관
분재 130점, 양생화 5천본, 수석 50점이 전시되어 있다. 분재를 바라보면 자연과 동화되는 마음씨를 가지게 된다. 모놀가족 큰뫼님이 이곳에서 일하고 계신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영양에만 나온다는 영양 폭포석이다. 나는 처음에 하얀 돌을 본드로 붙인 줄 알았다.
고추 홍보관이다. 나는 영양의 초하주 맛에 반해 버렸다. 안동소주보다 훨씬 부드럽다. 그리고 고추술은 이곳에서 처음 본다.
선바위와 남이포
남이장군의 전설이 담겨져 있는 바위다.
남이포다. 마치 성난 사자가 달려오는 것 같이 힘이 넘친다.
서석지
한국 정원문화의 백미인 서석지다. 4백년된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어찌나 나무가 우렁찬지 정자를 거의 뒤덮을 정도로 넓다.
정자에 앉으면 누구나 신선이 된다.
노인의 벼를 말리고 있다.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햇볕을 골고루 받게 한다.
두들마을
석계 이시명 선생과 그의 후선 재령이씨들의 집성촌으로 석계고택, 서당 전통가옥 30여채가 있다. 특히 이곳은 소설가 이문열씨의 고향으로서 금시조,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등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석천서당
용화제련소
일제 수탈의 현장인 용화 제련소다. 구리를 캐서 이곳에서 제련을 해서 일본으로 날랐던 것이다.
지금은 덩그러니 폐허만 남았다.
수하계곡이다. 수비면에서 산속 깊숙히 10여키로나 이어져 있다. 제 2의 동강으로 반딧불과 수달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하 청소년 수련관
이 깊숙한 곳에 이렇게 멋진 수련원이 자리잡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28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가족관에서 바라본 절경
식당
수련원 내부다. 한방에 20명이 머물 수 있다.
볼바운딩장이다. 생각만 해도 재미 있다. 극기훈련 코스, 도미노게임등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야외 공연장 ..맵시님의 노래가 이곳에서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