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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문사! 이제는 끝내야 한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사망한 사람은 자살 3,263명, 폭행치사 387명 등 모두 8,951명에 달한다. (한겨레신문 95년 9월 26일자) 이후에도 2000년도 국회국방위 보고자료에 의하면 매년 300여명이 사망하고 이중 100여명이 자살하고 있다.
이런 엄청난 수치를 접하다보면 지금 우리가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걸프전 당시 미군 측 사망자가 148명, 사고사 121명으로 모두 269명에 불과한 것에 비한다면 이러한 수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
꽃다운 젊은 넋들이 무수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지만 이에 대해 국가와 사회는 침묵하고 유족들만이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세상을 한탄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밝혀진 군에서 의혹의 죽음을 당한 허원근일병 사건의 진실은 우리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위원회는 "허일병이 중대내 소대장의 진급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중대본부에서 열린 술자리에서 뒷바라지를 하던 중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하사관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오른쪽 가슴을 맞아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으나 당시 군 헌병대는 허씨가 중대장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군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살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었다.
당시 유가족들이 "자살하려는 사람이 3발이나 총을 쐈다는 것이 석연치 않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을 때 군 헌병대와 군 검찰이 유족의 편에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진실이 밝혀지는데 18년의 긴 세월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허일병 사건에 대해 국민적 관심과 분노가 들끓는 것은 비단 타살을 자살로 조작하고 은폐한 군의 반인도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사건에서 나타나듯이 소위 사회지도층은 마치 이런 현실을 꿰뚫어보고 있던 것처럼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고 힘없는 서민의 자식들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보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제2, 제3의 허원근 일병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한편 허일병의 유족들은 매우 운이 좋은 경우이다. 사건현장과 목격자, 참고인, 각종 사건관련 증거들이 모두 군에 있고, 유족의 현장접근을 가로막으며, 현장과 사체사진에 대한 촬영을 불허하고, 수사기록 열람조차 보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유족들의 힘으로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같은 국가기관의 도움으로 진실을 규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민주화운동관련성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의문사진상규명위에 사건 접수조차 하지 못한 수많은 군의문사 유족들과 비교할 때 커다란 혜택받은 사례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군에서는 아까운 젊은 생명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유족들의 눈물은 커다란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군의문사는 왜 발생하는가?
군의문사는 무엇보다 폐쇄적인 군 조직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족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자식이 왜?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다. 즉 사망원인과 사망경위 및 과정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자식을 마음 편히 보내주고 싶은 것이다. 그
러나 유족들이 제기하는 각종의혹은 뒤로한 채 "타살의 혐의가 없으므로 자살"이라는 군 수사기관의 수사결과 발표는 오히려 의혹을 더하고 국가와 군에 대한 불신만을 키울 뿐이다.
군대에서 사망하는 모든 사건이 군의문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수사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지 않으며 유족들이나 인권단체들이 보기에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오히려 타살 또는 사고사의 가능성이 있는 사건들이 '군의문사' 사건이다.
즉 죽음의 책임을 군에서 회피하기 위해 사망자와 사망자의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여,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고 성급히 자살로 결론을 내려 유족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사건들이다.
사회에서의 사망사고처럼 검찰의 지휘를 받으며 경찰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수사를 하고 유족들의 불복절차가 보장된다면 군의문사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군의문사로 유족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군에서의 사망사고가 군의문사 사건으로 되는 것만으로도 유족들의 고통은 뼈를 깍는 아픔이지만 고통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허일병의 유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유족들은 스스로 진상규명을 위해 뛰어다니게 된다.
국회로, 청와대로, 국방부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을 제기해 보지만 답변은 해당부대에서 민원내용에 대한 회신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유족들은 직접 사건현장을 방문하여 부대책임자를 만나 현장재연과 목격자, 참고인 등을 만나 진실을 밝히는데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고자 하면 부대측의 비협조적 태도로 충돌을 빚기도 한다.
지난 3월초 12사단에서 사망한 반00 일병의 유족들은 폭행, 공무집행방해로 군으로부터 고소를 당하였고, 지난 7월 23사단에서 사망한 박00일병의 유족들도 무단침입, 공무집행방해, 통행방해로 고소를 당하였다.
자식의 죽음도 부족하여 유족들이 군으로부터 고소, 고발되는 이러한 사태는 유족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자식의 죽음도 부족하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죽음과 국가와 군에 대한 분노와 불신으로 몸서리친 유족들은 지친 육신으로 병마와 싸워야 한다. 어머니와 누이가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고 폐암으로 쓰러져 가는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을 감당해야 한다.
지난 90년 21사단에서 사망한 홍00 이병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2달만에 병원에 입원하여 1년 6개월 동안 폐암과 싸우다 사망하였고,
지난해 3월 12사단에서 사망한 김00 이병의 아버지도 지난 6월 아들의 장례를 1년 3개월만에 치룬 후 사흘만에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자식의 죽음이 온 가족의 고통과 죽음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사체인도 소송과 가압류
상급기관의 재조사를 통해 진상의 규명을 요청하며 재조사시 믿을 수 있는 법의학자의 재부검을 통해 또 다른 증거를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유족들은 장례절차를 거부하기도 한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기 전까지는 장례를 치룰 수 없다는 가족들의 절규에 대해 군에서는 사체인도 소송과 재산 및 월급가압류라는 보복도 서슴지 않는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데려간 자식을 이제 수사가 마무리 되었으니 사체의 보관비용을 가족들이 물으라며 유족을 상대로 국가가 사체인도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99년 9월 논산훈련소에서 발생한 이00 하사의 유족들에 대한 사체인도 소송과, 4년동안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김천의료원에 사체를 보관하고 있는 98년 9월 사망한 해군 2함대 소속 김00 중위의 유족들과 99년 12월 사망한 해군 2함대 소속 나00 이병 유족에 대한 사체인도소송과 집, 자동차, 월급에 대한 가압류는 유족에 대한 군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동생을 군에 보내야 하는가?
20년 동안 애지중지하며 키운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군에 보냈다가 자살처리 되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자식을 보는 부모의 심정을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아들이 둘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에도 상황은 만만치가 않다. 98년 9월 사망한 해군 2함대 소속 김00 중위의 동생은 지난해 8월 군에 입대했다.
지난해 11월 5군단에서 사망한 강00하사의 동생도 현재 군복무 중이다. 그리고 둘째아들의 군 입대를 앞둔 유족들의 마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만일 둘째마저 형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면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특조단 재조사는 군의문사를 종식할 절호의 기회였다.
군의문사를 생각하면 우리사회의 생명경시 풍조와 심각한 건망증세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인권문제 중에서 생명권은 가장 중요한 분야이다. 하루에 한 명씩 군에서 아까운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에서 발생한 이른바 '김훈중위 사망사건'이 사회문제화 된 후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대거 국방부에 민원을 제기하였고 국방부는 '민원제기 사망사고 국방부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을 1999년 4월에 발족하여 재조사에 착수하였다.
1980년 이후 1999년 9월 30일까지 발생한 사망사고 중 민원이 접수된 사망사고 166건에 대한 조사를 2001년 9월까지 재조사를 하였다.
특조단은
△유가족의 고충이해와 국방개혁 차원에서 철저한 재조사를 통하여 진실규명
△법과 규정의 범위 내에서 유가족 요구수용
△유가족, 유가족이 선임한 변호사/자문위원 등의 수사기록 열람 및 현장접근 보장
△유가족 측에서 제시한 각종자료 재조사에 적극 반영
△유가족이 요구시 자문위원, 언론인 등 참가하에 조사설명회 또는 공개토론회 실시라는 야심찬 원칙을 밝히며 유족의 편에서 진실규명을 하겠다고 했지만
단 1건도 사건의 내용이 바뀐 것은 없었고(타살의혹이 제기된 민원이 많았음에도) 해석상의 차이로 20여건을 순직처리하여 유족들에게 생색을 내고자 하였다.
여기 166건에는 허일병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특조단에서 밝힌 원칙이 일반 군대내 사망사고에서 지켜지고 특조단도 원칙대로 재조사를 하였다면 군의문사 논쟁은 이 우리사회에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친 특조단은 군만으로 구성된 특별조사기구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방부가 밝힌 허일병사건 특별조사단에 민간의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밝힌 것은 눈에 뜨는 대목이며 유족과 인권단체들은 이를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아직도 특조단이 해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조사인력이 각 군으로 돌아갔음에도 그리고 조사가 완료되었는데도 해체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허일병사건의 특별조사기구를 별도로 만드는 시점에서 특조단은 이미 수명을 다한 것이다. 어느 군 관계자의 말처럼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해산을 기다리며 의문사 사건의 형평성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는 유족과 국민에 대한 기만일 것이다.
유족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군의문사진상규명과군폭력근절을위한가족협의회'(이하 군가협)는 무엇보다 앞서 국가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20년간 건장하게 키운 자식을 국가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고 데려갔으니 아들의 죽음에 대해 국가가 마땅히 책임을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39조 1항)라고 규정하고 있고, 병역법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는 헌법과 병역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3조 1항)며 한국남성은 일정기간 군대에서 복무하도록 되어있다.
군가협은 각종 집회에서 "데려갈땐 국방의무! 죽고나면 나몰라라!"한다며 국가와 군을 원망하고 있다. 유족들에 대해 국가의 책임지는 자세가 무엇인지 국가와 군은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군가협은 입증책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타살의 혐의가 없으므로 자살'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수사결과 발표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부대부적응, 가정환경비관, 이성문제, 금전문제, 성격문제라는 천편일률적인 자살로 짜맞춰진 사망원인을 밝히며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책임을 더 이상 떠넘겨서는 안 된다.
군 수사기관의 주장처럼 "그렇다면 자살이 아님을 유족이 입증하라"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망언이다. 사고현장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고 (군사시설보호법 7조), 현장에 대한 촬영, 묘사를 금지하고(군사시설보호법 8조), 목격자와 참고인에 대한 녹취 및 진술을 금지하고, 모든 관련증거와 수사기록을 군에서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유족이 자살이 아님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왜 자살일 수밖에 없는지를 군에서 입증해야 하고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자살이 아니라는 수사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군수사체계에 대한 전면적 개혁과 사망사고를 대하는 관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소속부대의 장은 사망자가 발생한 때에는 그 사실을 24시간 내에 소속 군 참모총장에게 전문 보고한 후 7일 내에 사망확인조서에 사망진단서를 첨부하여 서면보고한다"(국방부 전사상자처리규정 제5조 1항)고 하는 규정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수사를 충분히 하여 공정한 결론에 이르게 하기보다는 처음에 충분한 조사 없이 전문보고 한 내용과 7일 후 서면보고 하는 내용이 일치하도록 하는 압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우일까...
마지막으로 군가협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모든 군의문사 사건에 대해 전면적인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특조단'과 같이 군만으로 구성되는 특별기구는 반대하고 있다.
허 원근사건에서 보여지듯이 군만으로 구성된 특조단과 같은 기구로는 진실규명을 할 수 없으며 유족의 의혹을 해소할 수 없다. 과거 병역비리조사단처럼 민,관,군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조사기구를 구성하여 군의문사 사건에 대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다.
2001년 국정감사에서 육군본부는 "유가족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시민단체의 전문가, 유가족이 위임하는 대표가 포함된 육군본부의 상설기구가 직접 사망사고를 수사하도록 육군본부직속 상설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답변을 한 바도 있다. 이제 국방부는 군 당국에서 국회에서 답변한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여 한 점 의혹 없는 재조사를 단행하여 유족을 위로해야 한다.
군의문사의 종식을 기대하며 - 국제인권기준과 군의문사
군의문사 문제는 한 국가의 인권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시민적 감시체계를 수립하여 군에서의 폭력과 구타 및 가혹행위를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있다면 군에서의 사망사고는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군내 자살사고의 원인을 밝히려 한 연구에 따르면 구타를 당한 후 자살충동을 느낀 장병이 90%에 가까웠고 얼차려 등 가혹행위를 당한 후 자살충동을 느낀 장병도 80% 정도가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제적인 흐름과 기준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휴먼라이츠워치와 같은 국제인권단체들은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파키스탄 등지에서의 군 의문사와 군 사법기구의 공정성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군 사법기구의 개선을 권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휴먼라이츠워치는 멕시코 정부에 보낸 의견서를 보면, 그곳에서는 군 사법기구에 대한 민간인들의 불만이 매우 높아 군 사법기구 자체가 제대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민간인들이 군 사법기구의 수사 및 기소활동에 조력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휴먼라이츠워치가 멕시코 정부에 권고한 내용을 보면 제1번로 "인권을 침해한 군인이 연루된 범죄를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civilian jurisdiction)이 수사하고 기소하도록 엄격히 법이 정하는 법률을 조기에 채택"하라고 되어 있다. 물론 이 권고는 군대로 인한 의문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군대 내에서의 의문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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