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서 울산으로 가는 14번 국도변에 갈색바탕의 양호단소 란 이정표가 있어 따라 들어간 곳. 작은 마을의 뒷쪽에 허름한 기와집 한채 그곳이 경주이씨의 시조인 신라건국 원훈 표암공 알평의 36세손인 소평공 거명의 단소이다.
양호정사(良湖精舍)
양호단소(良湖檀所)
경주이씨 중시조(中始祖) 소판공(蘇判公) 소개
소판(蘇判)이라는관직은신라시대골품제도(骨品制度)의 성진골품(聖眞骨品)만이 천거되었으니,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왕인 무열왕(武烈王)부터 혜공왕(惠恭王)때까지는 진골계(眞骨系)에서 분적(分籍)하여 명분 호족(豪族)의 긍지로서 번성하여 갔음을 보이고 있다. 36世(1世)蘇判公 居明(거명) 慶州李氏中始祖 [족보 책자의 문헌] <한자> 蘇判이니新羅官制에蘇判秩은有眞骨이受之라 唐令狐澄의新羅記에新羅貴族을謂之骨이라하다 始祖以下는失系故로李牧隱穡이撰益齋墓誌에只載蘇判以下하고 大譜에以公으로爲遠代孫而起一世焉하다 <한글> 소판이니신라관제에소판질은유진골이수지라 당령호징의신라기에신라귀족을위지골이라하다 시조이하는실계고로이목은색이찬익재묘지에지재소판이하하고 대보에이공으로위원대손이기일세언하다 [참고문헌] 蘇判公은 高麗말 李齊賢의 墓地文에 그 先代가 新羅때 벼슬을 지낸 李居明이라는 記錄을 남김으로서 始祖以後 記錄이 傳하는 最初의 先祖가 되었다 慶州李氏는 소판공(蘇判公)을 中始祖로 門中사 重興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新羅때 蘇判의 벼슬은 眞骨만이 오를 수 있는 職 이었다. 따라서 시조以後 記錄이 傳하는 失傳된 1000年 동안에도 慶州李氏들이 代代로 王族다음가는 지위를 누려왔다는 事實을 알 수 있다. 蘇判公 以後 慶州李氏는 天子萬孫으로 繁盛하여 高麗朝와 朝鮮朝를 통하여 과거급제자가 182분, 宰相8분, 공신12분, 청백리 10분 등 이땅의 代表的인 明門巨族으로 成長 했든 것이다. 옛말에 李氏는 모두 慶州李氏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東方李氏 皆出於月城) 慶州李氏는 李氏姓中 賜姓의 으뜸宗門으로서 진주,원주,재령,아산,평창,우계.차성, 합천 등의 李氏는 모두 慶州李氏의 분적 종파다 ★★ 中始祖 蘇判公 居明 詞堂을 모신곳 ★★ 蔚山廣域市 울주군 靑良面 東川里 良川마을 良湖壇所(양호단소)는 中始祖 蘇判公 居明의 詞堂을 모신곳이다. (현재 양천마을은 양천과 원골 2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회양댐이 있는 마을로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
출처: 대발이의 추억만들기 원문보기 글쓴이: 대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