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전 인터넷에서 스크랩해두었던 글인데...출처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읽어볼만 해서요...
- 카페지기 백
************
5년 전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모래시계를 기억하는가. 방송이 다룰 수 있었던 가장 최근세사였던 한국 역사 속의 '80년대'를 다룸으로써 우리는 새삼 80년 5월을 전후로 우리 현대사에 어떤 상처가 드리워졌던 상흔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계기와 결과야 어떻든 전직 대통령 둘이 '내란 음모와 부정 축재' 혐의로 역사의 단죄를 받는 광경을 볼 수 있고, 드라마 한 편이 많은 민초들의 역사의식을 깨웠던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하필 그 80년대를 헤쳐 나간 주인공이 조직 폭력배였던 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다. (검사 친구를 둔 조직폭력배의 인생행로 자체가 너무 극적이라는 재미를 무시할 수 없는 설정임에도 말이다.) 모 여론조사 기관에서 해당시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장래 희망이 '조직 폭력배'라고 응답한 숫자가 상당수였다는 에피소드를 가진 이 드라마는 방송의 영향력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 '방송의 영향력과 책임'이라는 화두를 놓고, 최근 미국은 고민에 빠져있다.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논쟁의 시발점이 된 프로그램은 ABC 방송국이 제작한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백만장자가 됩시다."이하 백만장자.)이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 주 3회 방영되는 [백만장자]는 5년만에 ABC 방송국 프로그램을 주말 황금시간대의 시청률 1위로 등극시켰다. 전통적으로 코미디는 CBS, 드라마는 NBC가 강세인 미국 방송가의 세력구도에서 ABC는 그동안 시청률 면에서 부진을 면하지 못해왔다. 우선, [백만장자]의 게임 진행방식을 살펴보자. 게임의 방법은 간단하다. 선택된 출연자는 15문제를 연속으로 맞추게 되는데, 첫 문제 상금 100달러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상금은 마지막 15문제를 맞출 경우 100만 달러(한국 돈으로 약 12억원)까지 올라간다. 답이 확실하지 않은 문제를 만날 경우 방청객들에게 답을 물어볼 수도 있고, 친구나 친지에게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물을 수 있다. 물론, 중간에 답을 못맞출 경우에도 중간까지 적립된 상금을 받을 수 있고, 100만 달러의 최고 상금에 대해서는 영국의 보험 회사가 지급하기로 되어 있고, 지난 11월의 본 방송 시작이후 현재까지 2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평범한 서민이 거액의 상금을 움켜쥐는 쇼는 백만 달러 짜리 답을 맞추는 순간, 방청석의 가족들이 뛰어나와 서로 부둥켜 앉는 모습에서 절정을 이루고, 상금을 지급하기 무섭게 진행자는 다시 다른 출연신청자들에게 백만달러에 도전할 것을 제의한다. 진행자 레지스 필비가 출연자에게 던지는 말, "Is that your final answer?"는 3000 만 시청자에게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문제 몇 개를 맞추고 백만달러를 움켜쥐는 이런 류의 쇼가 경제 호황이 가져온 물신숭배 풍조에 영합하거나 또는 그것을 더욱 조장한다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민들의 대부분은 이 쇼를 "Great Entertainment"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쇼 자체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러한 비판론자들조차 TV 수상기 앞으로 끌어 모으는 [백만장자]의 위세는 다른 방송사들 역시 유사한 형식의 퀴즈쇼를 프라임 타임에 편성하도록 했다. Fox TV의 [Greed], CBS의 [Winning Lines], NBC'의 [21], 그리고 CBS가 준비하는 또 다른 퀴즈쇼인 [$64,000 Question]이 그것이다. 바야흐로 미국의 방송가는 TV 퀴즈쇼의 전성기로 기억되는 50년대로 회귀한 분위기. 물가 상승을 감안한다고 해도 50년대만 해도 최고 상금은 2만불이 넘지 않았었다. (승부 조작이라는 비난 속에 간판을 내린 50년대 퀴즈 쇼의 모습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93년작 영화 [퀴즈 쇼]에 잘 묘사되어 있다.)
Now, Who Wants To Marry A Millionaire?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아무리 쇼라지만, 너무 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드디어 우려할 만한 일이 터진 듯 하다. 2월 15일에 폭스 TV 채널을 통해 방영된 파일럿 프로그램 [Who wants to marry a millionaire?]는 2280만이라는 시청자를 2시간동안 점유하는데 성공했다. 돈이 그렇게 좋으면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컨셉. 방송사 측은 미리 참가 신청을 받고 신청자 중에 50명을 (신부를 고르는 백만장자의 취향에 따라 )엄선해서 그들에게 수영복 컨테스트, 웨딩 드레스 심사 등을 거쳐서 최후의 선택된 한 명이 백만장자와 결혼한다. 첫 회 출연자였던 백만장자 릭 록웰(42)은 이런 절차를 걸쳐 걸프 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간호사와 즉석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에게는 4000만원 상당의 다이아먼드 반지가 결혼 예물로 주어졌고, 둘은 식을 올리자마자 카리브 해로 신혼 여행을 떠났다. 여성 단체측에서는 "미인 선발 대회가 건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여성을 상품화한 최악의 TV 프로"라고 발끈한 반응을 보인 반면, 실제 미국의 여성들은 3명 중 1명이 이 프로를 지켜봤다는 놀라운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성들이 쇼의 막판에 문제의 백만장자가 나타날 때까지 '미래 배우자'의 외모, 학력, 성격은 물론 이름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쇼에 출연했다는 것이다. 단지, 돈 많은 부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연 그러한 결혼: 돈과 미모의 만남으로 단순화시킬 수도 있는 이러한 결혼이 행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방송사 측은 둘이 '결합해서 잘 사느냐 안 사느냐 역시 게임의 일부로서 지켜볼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의외로 답은 쉽게 내려진 듯 하다.
유명인사의 뒷조사로 유명한 인터넷 사이트 TheSmokingGun.com는 화제의 백만장자 릭 록웰(우측 사진)이 9년전 당시 약혼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살해 협박을 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6개월간 반경 250미터 접근 금지 판결을 받았다는 법원 기록을 공개했다. 또한, 언론사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 배우이자 클럽 코미디언이었던 그가 어떻게 해서 200만불 이상의 재산가로 변모했는지에 대한 근거가 불확실하다는 "millionaire mystery"를 제기했다. 더더욱이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백만장자 옆에는 함께 여행을 떠났던 신부가 없었고, 신부의 행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록웰은 "그녀는 잘 있다."라는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첫 방송을 둘러싼 온갖 루머와 비판 속에 폭스 방송사측은 21일 월요일 이 프로그램의 기획을 백지화하고 유사한 프로그램의 개발(폭스의 계획에는 여자 백만장자에게 구혼하는 남자들의 컨테스트도 포함되어 있었다.)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경제적 풍요 속의 상대적인 박탈감
결국 한겨울밤의 헤프닝으로 끝나는 듯한 이 [백만장자와의 결혼] 소동은 경제 호황기의 미국을 휩쓰는 돈 열풍을 반영한다. 작년 7월 5일 뉴스위크는 커버스토리로 주식 투자와 인터넷 사업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박탈감을 다뤘다.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연소득 3만~4만9천달러인 미국 가정 가운데 67%는 주식시장 붐에 편승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인 71%는 현 직업으로 부자가 될 가망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72%는 이웃에 뒤지지 않기 위해 더 큰 집과 더 좋은 차를 사야 하는 압력을 더많이 받는다고 응답했다. 또 소득 5만 달러 이상인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는 아는 사람중에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욱 더 많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백만장자]류의 퀴즈쇼에 열광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20세기의 기준에서는 연봉 6만불의 안정된 직장을 가진 엔지니어는 어느 누구에게 기죽을 필요가 없이 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돈을 버는 방식이 바뀐 21세기는 장기적인 노력의 산물로서의 부의 축적이 아닌 순간의 운과 반짝 아이디어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 'American Dream'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현재 브랜다이스 대학교수이고, 과거 클린턴 행정부 초기 이른바 '클린터노믹스'의 이론적 기초 작업을 했던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부 장관은 2차 대전이후 처음으로 전통적 직업윤리가 뒤집히는 것 같다고 최근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글쎄, 한국은 어떨까? 1년전 MBC 문화방송의 오락프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장사가 안되는 가게를 선정해서 가게를 새로 단장해주는 [신장 개업]이라는 코너를 선보여서 경제위기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줬었다. 행운의 주인공을 뽑는 것 자체가 복권 당첨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도 많았지만, 최근의 미국의 퀴즈 쇼랑 비교하면 한국인의 의식은 상대적으로 건강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만약 주식시장에서 떼돈을 번 사람이 TV 프로를 통해 신부감을 고르는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결코 미국으로부터 배워서는 안될 하나가 뭐냐면 나는 바로 이거라고 대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