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간도 실효적 지배 문건도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100년 전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한국병합조약의 양국 문서는 물론 이와 관련된 다른 두 문서까지 모두 조선통감부가 작성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공개됐다.
이는 대한제국이 작성해야할 문서까지 일제의 조선통감부가 날조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병합조약이 무효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25일 연구원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병합조약의 양국 문서는 물론 이완용을 협정 전권위원으로 임명하는 칙유(勅諭), 병합조약 체결을 양국이 동시 발표하기로 한 각서가 모두 같은 글씨체로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며 관련 자료들을 공개했다.
규장각 연구원인 윤대원 HK연구교수는 "특히 '병합조약 및 양국황제조칙 공포에 관한 각서(倂合條約及兩國皇帝詔勅公布覺書)'에는 판심(版心.책장 가운데 접힌 부분)에 '통감부(統監府)'라고 인쇄돼 있어 이들 문서를 모두 통감부 인사가 작성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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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전권대사 임명 승인 조회비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한다는 위임장의 승인을 요청한 조회 자료로, 조회 일자가 한일병합늑약을 조인한 1910년 8월22일이라는 점과 상단에 '무척 급한 문서(至急)'라는 도장이 찍힌 점으로 미뤄 순종황제가 이완용 임명 승인을 마지막까지 저항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한국병합조약의 양국 문서가 글씨체 등 여러 물리적, 외형적으로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 이상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를 통해 알려졌지만 이와 관련된 다른 두 문서까지 글씨체가 같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이들 문서의 작성자가 통감부 쪽 인사였다는 것은 그동안 추정만 있었을 뿐이다.
결국, 일본이 ▲이완용을 전권대신으로 임명하도록 순종 황제에게 압력을 가하고 ▲한ㆍ일 양국이 각기 작성해야 하는 조약문을 날조했으며 ▲조약을 양국이 동시 공포하도록 강제했다는 게 이번 자료 분석을 통해 밝혀진 셈이라고 연구원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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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간도 호구조사 자료
대한제국이 간도 주민에게 세금을 부과하고자 작성한 '간도주민 호수 및 개간토지 결수 성책(間島居民戶數墾土成冊)'으로 당시 대한제국이 간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자료다. |
윤 교수는 이어 조약 체결 당일인 1910년 8월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의 전권위임 임명 위임장 승인 조회비 408호'가 '무척 급한 문서(至急)'로 다뤄진 점으로 미뤄 "순종 황제가 마지막까지 일제 압력을 거부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자료는 규장각과 국립고궁박물관이 공동으로 오는 29일부터 규장각 지하 1층 전시실에서 개최하는 '100년 전의 기억, 대한제국' 특별전에서 일반에도 공개될 예정이다.
함께 전시되는 '각의제출안목록'에서는 데라우치 마사다케 조선통감이 자국 총리에게 보고한 '한국병합시말' 기밀문서의 보고내용과 달리 당시 대한제국 내각회의에는 관련 안건이 전혀 올라오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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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정계비 지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으로, 백두산정계비에 조선과 청의 국경으로 명시된 '토문강'이 어디를 가리키는지에 대한 조선과 청나라의 의견 불일치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1887). 청나라는 토문강이 두만강이라고 주장했고, 조선은 토문강이 쑹화강의 지류라고 주장했다. |
이번 특별전에서는 간도와 관련된 여러 자료도 공개된다. '간도주민 호수 및 개간토지 결수성책(間島居民戶數墾土成冊)'은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1900년대초 간도 지역 주민들이 경작한 농경지 규모를 조사한 것으로, 당시 대한제국이 간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다.
또 간도는 한국 강역(영토)이라는 간도 관리 이범윤의 보고문과 청나라에서 간도 주민에게 변발을 강제하니 이를 금지하는 공문을 보내달라는 조회문 등도 포함됐다.
조선 숙종 때 세운 백두산정계비에서 조선과 청의 국경이라고 적힌 '토문강'이 두만강을 가리키는지 혹은 쑹화강(松花江) 지류를 가리키는지를 놓고 대한제국과 청나라 간 다툼이 있었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백두산정계비지도'(1887)도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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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황제께옵서 누차 배신행위를 감행하사"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이 협약한 비밀문서 '한일협약의 약정을 요구한 기밀통비발'로, "한국 황제 폐하께옵서 누차 배신행위를 감행하사" 등 대한제국에 대한 일제의 적대감이 노출된 문장이 포함돼 있다(오른쪽). 이 문장은 나중에 종이를 덧대어 고쳐졌다(왼쪽). |
또 일본공사관이 강압적으로 요청한 황무지 개간권 위임을 두 차례에 걸쳐 거부한 당시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의 조복(照覆.회답)도 공개돼 당시 대한제국의 자주 의식을 엿볼 수 있다고 연구원은 덧붙였다.
특별전에서는 "한국 황제 폐하께옵서 누차 배신행위를 감행하사…" 등의 문장으로 대한제국에 대한 일제의 극단적 적대감이 표현된 '한일 협약의 약정을 요구한 기밀통비발' 등도 함께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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