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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번 제가 여태까지 읽었던 Carl Zimmer의 책들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Zimmer는 저를 과학책을 읽는 재미에 빠지게 만든 장본인인데 처음 인연(?)은 오랜만에 들렀던 베이스먼트 북숍에서 아래의 책을 보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과학에 점점 관심이 가기 시작하던 저는 이 책을 보자마자 제가 관심이 가는 주제이기도 하고 저자의 이름도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라 책값도 싼김에(베이스먼트는 remainder bookshop으로 출판사에서 재고로 남은 책들을 싸게 사들여 싸게 되파는 서점입니다) 질러버렸습니다. 저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도 책이 너무 재미있어 허겁지겁(?) 읽었지요. 그뒤 이 저자의 책들은 구할 수 있는대로 구해서 읽기 시작했고 덕분에 생물학이나 과학사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저를 과학에 빠지게 만든 위의 책을 요약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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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The clues)
차드 북부에 있는 사하라 사막에서 프랑스와 차드인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하면서도 열심히 조사활동에 착수했다. 사막의 열기와 바람에 노출된 화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 버리기에 고생물학자들은 필사적으로 이들을 보존하고 발굴하기 위해 애써야했다. 주라브 지역은 사막에 위치해 있어 지금은 비한방울 내리는 일도 드물지만 과학자들은 육칠백만년 전 이곳에 동물들이 모여들던 호수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 시대의 화석들을 발굴하던 중 2001년, 팀원인 젊은 대학생 아훈타 짐두말바예는 바람에 의해 드러나있는 두개골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말보다는 작고 원숭이보다는 큰 것이었다. 팀원들이 발견한 두개골을 사암에서 분리시킴에 따라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라고 이름 붙여진 호미니드가 세상에 드러났다. 여태까지 발견된 호미니드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발굴만이 증거를 모으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다. 매릴랜드의 국립인간게놈연구소에서는 DNA의 분석이 한창이다. 우리의 게놈에는 진화의 역사의 흔적을 숨기고 있으며 오래전에 잠들어버린 유전자를 발견하거나 언어와 같이 지금의 인간이 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유전자들을 구별해내거나 다른 동물들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육백만년에 걸친 두뇌의 역사를 알아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수퍼컴퓨터 등으로 직립보행을 시작하기전 우리의 조상들이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아낼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영장류 동물학자들로서 이들은 침팬지 등의 우리와 가까운 유인원들을 연구하여 인간의 문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과학자들이 해야할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진화론의 대부인 다윈은 행운아다. 화석화된 도구들의 존재는 17세기부터 알려졌지만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종의 기원이 씌여지기 3년 전에 발견되었다. 그들은 현생인류와는 다른 종으로 지금은 멸종했지만 박물학자들은 인간과 거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존재에 혼란스러워했다. 당시의 유력한 박물학자 헉슬리는 네안데르탈인들이 현대인들과 비교해 별로 다른 것이 없다며 그들을 현생인류와 같은 종으로 분류했다.
다윈은 자연선택이 진화의 원동력이며 이것을 통해 새로운 종들이 분화되어 나간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들인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들은 모두 하나의 가지에서 갈라져나온 셈이다. 인간과 유인원들의 유사성은 일찍부터 알려졌는데 최초로 침팬지를 해부해본 영국의 해부학자 에드워드 타이슨은 침팬지와 인간 두뇌의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다윈도 이러한 유사성에 주목하며 정기적으로 런던동물원을 찾아가 오랑우탄을 관찰했다. 하지만 종의 기원에는 다른 동물들이 진화한 예는 많이 들어있지만 인간만은 언급이 없었는데 당연하지만 이미 혁신적이던 진화론에 인간의 기원까지 언급했다가는 반발이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다윈의 예상대로 종의 기원에 대한 공격은 대부분 인간에 대한 것에 집중되었다. 리처드 오언은 유명한 다윈의 반대자였고 새뮤얼 윌버포스 주교는 헉슬리에게 자신의 부계와 모계조상 중 어느쪽이 원숭이의 후손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격은 강도가 약해졌다. 박물학자들은 진화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많은 토론을 벌였지만 일단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생물들은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은 다윈은 1871년 인간의 유래라는 책을 내며 인간이 진화했다는 증거와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의 유인원을 닮은 조상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현대 과학자들은 다윈을 놀라게 할만한 사실들을 발견했는데 다윈은 인류의 조상이 직립보행과 동시에 뇌를 발달시키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밝혀진 바에 의하면 호미니드들은 현생인류의 1/3에 불과한 뇌를 가지고 직립보행을 먼저 시작한 뒤 사백만년이 지나서야 지금에 가까운 크기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많은 발견들이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들은 많다. 과학계에서는 이런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인류진화에 대한 것에 비하면 물리학자들은 수많은 정보들에 파묻혀 익사할 정도이다. 역사과학들은 또다시 실험하거나 관찰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종들을 관찰하거나 DNA 등을 연구함으로서 가설들을 실험할 수는 있다. 생명이 처음 탄생한 때인 37억년 전부터 지금까지를 24시간으로 압축한다면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조상은 자정으로부터 3분 전에 지구상에 출현했고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때는 195,000년 전이니 5초 전이 된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젊은 종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진화역사는 다시 재구성하기가 어렵다. 호미니드들은 거대한 무리를 이루며 살지도 않았고 상대적으로 화석기록으로 남기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기능들 - 언어나 이성능력 등은 진화의 역사를 발굴하는데 더욱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비록 과학자들이 인류가 걸어온 진화의 길을 완벽하게 재구성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최대한 진실에 가깝도록 인류진화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성공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발견에 따라 더더욱 많은 증거들이 모일 것이다.
분화의 시작(A budding branch)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의 발견은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발굴팀의 대장인 푸아티에 대학의 미셸 브뤼네는 발견된 화석만큼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의 시작에 매료되며 특히나 인류의 기원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사헬란트로푸스의 쌍안은 이 생물이 현대의 인간과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이러한 시각이 있었기에 인간은 섬세하고 복잡한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헬란트로푸스의 정면을 응시하는 눈은 진화의 중요한 열쇠일까? 단정하긴 어렵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같은 공동조상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과 그 가까운 동물인 영장류들의 공동조상은 육천오백만년 전에 살았다. 이 공동조상은 쌍안의 정면을 응시하는 눈을 가졌을 것이다. 그 증거는 모든 영장류들이 같은 시각을 가졌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사헬란트로푸스는 바로 그러한 공동조상의 형질을 물려받았을 뿐이지 그것이 딱히 중요한 진화의 열쇠라고 하기는 어렵다.
포유류의 조상은 파충류의 조상으로부터 약 삼억년 전에 갈라져 나왔다. 처음에는 도마뱀 비슷한 형태였지만 진정한 의미의 포유류로 진화한 때는 2억년 전인데 백악기 말기가 되면 현재도 지구에 존재하는 여러 군들로 나뉘어 진다. 그중에는 영장류도 있었다. 가장 오래된 영장류의 화석은 효신세에 발견되었는데 형태는 다람쥐와 흡사했지만 오천오백만년 전, 주둥이가 줄어들고 눈이 정면을 응시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영장류들과 흡사한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 이들은 크게 두 종류로 분화되었는데 하나는 로리스원숭이와 여우원숭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원숭이, 유인원, 인간을 포함하는 종류이다.
당시 대기에는 이산화탄소의 함량이 높았기 때문에 지구의 상당부분은 따뜻한 날씨였고 열대우림들이 넓게 분포하여 나무에 의지하며 사는 영장류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사천만년 전 이산화탄소의 비율이 낮아지고 날씨가 나가워지기 시작하면서 열대우림들도 사라져갔고 영장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영장류들이 번성했는데 그러던 중 이천오백만년 전 새로운 영장류인 유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아프리카 곳곳과 유럽, 아시아까지 진출했는데 그중 천팔백만년 전 긴팔원숭이들이 분화되어 나간 후 유인원들의 크기는 커지기 시작했고 이들은 대형유인원이라 불렸다. 현생하는 대형유인원 중 인간과 가장 먼 관계에 있는 종은 오랑우탄인데 이들은 천오백에서 이백만년 전 사이에 인간과의 공동조상에서 갈라져 나갔다. DNA 검사 결과 오랑우탄 다음으로 인간의 조상과 갈라져 나간 것은 고릴라로 시기는 칠백에서 구백만년 전 사이고 그다음으로 제일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와 보노보(5~7백만년 전 사이)가 갈라져 나왔다.
인간과 가까운 종들의 존재는 인간들이 그들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미 공동조상에서 분화된 이후 이들은 각자의 진화의 길을 통해 새로운 형질들을 획득했으며 공동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무엇이고 새롭게 획득한 형질은 무엇인지는 화석기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인원들은 화석이 형성되기 어려운 열대우림에서 살아왔으며 과학자들은 칠백만년에서 천삼백만년 전 사이 어떠한 아프리카 유인원 화석도 찾지 못했다.
고인류학의 서광은 외젠 뒤부아가 189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자바인을 발견하면서 부터이다. 자바인은 90만년 된 호모 에렉투스로 그뒤 1924년 레이먼드 다트가 남아프리카에서 타웅 아이라 불리는 2백4십만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를 발견하기도 했다. 호모 에렉투스를 제외한 호미니드들은 모두 아프리카의 리프트 밸리에서 발견되었는데 고인류학자들은 이 지역의 호미니드 진화의 요람이라 생각했다. 1973년에는 유명한 루시라는 이름이 붙은 인간과 유인원의 중간적인 특징을 가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320만년전)가 발견되었다. 그뒤 여러 호미니드 화석들이 더 발견되었지만 루시보다 오래된 것은 없다가 1994년 440만년 전의 호미니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발견되고 마침내 사헬란트로푸스까지 발견됨으로서 호미니드의 역사는 7백만년 전까지 올라가게 된다.
호미니드들의 화석들이 발견되면서 인류의 진화계보를 쓰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다. 이미 알려진대로 인류는 절대 단일계통으로 진화하지 않았고 중간에 곁가지들이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게다가 단일종이라 할지라도 다른 종으로 보일만큼 다를 수도 있기에 화석의 종을 구분할 때는 매우 신중해져야 한다. 아르디피테쿠스를 발견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팀 와이트는 원래 별개종으로 여겨지던 제일 오래된 호미니드들인 사헬란트로푸스, 오로린 투겐시스, 아르디피테쿠스 카다바(570만년 전)의 치아를 조사하여 그들이 다른 종이 아닌 한종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오래된 호미니드일수록 다른 유인원들과 영장류적인 특징을 함께 공유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호미니드가 맞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걸음마의 시작(The walk begins)
다윈이 처음 인간의 진화에 대한 의견을 낼때 신경썼던 것은 무엇이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유일한 특징들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중 이족보행은 다른 동물들과 구분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특징이었다. 다윈은 인간은 나무를 타고살던 유인원에서부터 진화했다고 의견을 냈다. 그당시 손은 가지, 과일, 곤충 등을 잡고 돌을 적들에게 던지는데 사용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자연선택은 손기능을 더 능숙하게 사용하는 원숭이들을 진화하게 했을 것이었지만 문제는 이러한 손은 나무에서 살기에 부적당했으므로 점차 땅에 내려와 걷게 되었다. 이것은 손을 자유롭게 하여 손기능이 더욱 발달되도록 만들었고 발 역시 긴 발가락보다 걷기 편한 평평한 발이 선호되었을 것이며 골반은 상체를 지탱하기 위해 넓어지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문가들은 다윈의 생각이 합당하고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모든 증거들은 우리의 조상이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으로 진화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라면 다윈은 왜 인류의 조상이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왔는지 그리고 이족보행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긴팔원숭이의 경우도 역시 나무에서 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지만 사족보행을 하고있다.
초기 호미니드의 화석은 다윈이 죽은지 삼십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두개골을 발견한 레이먼드 다트는 다른 뼈의 부재로 아프리카누스가 이족보행을 했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뛰어난 신경해부학자였던 그는 두개골에서 원래 척추가 있었던 대후두공의 위치를 살펴 그것이 인간과 같이 중앙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아프리카누스가 인간과 같이 똑바로 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78년, 매리 리키는 탄자니아의 라에톨리 화산지대에서 350만년 전의 아파렌시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족보행하는 발자국을 발견함으로서 이족보행의 역사를 더욱 끌어올렸다. 2002년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연구팀들이 오로린 투겐시스의 화석을 발견했는데 그중에 대퇴골 윗부분에 있는 구상관절이 있었다. 이 관절의 형태는 후일 이족보행을 하는 호미니드의 것과 비슷했고 따라서 오로린의 상체무게를 지탱하여 똑바로 걸을 수 있게 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 오래된 사헬란트로푸스의 경우에도 비록 완벽하지 않은 두개골을 발견한 것이 전부였지만 대후두공이 인간과 같이 가운데 뚤려있음으로 인해 이들 역시 똑바로 설 수 있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고있다.
이런 증거들로 인해 우리의 조상들은 최소 부분적으로라도 이족보행을 했지만 가장 오래된 석기는 260만년 된 것이었고 이백만년 전까지만 해도 호미니드들의 뇌는 침팬지의 것에 비해 특별히 커지지 않았다. 즉 호미니드의 역사 중 반은 그저 이족보행을 하는 유인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논점은 어째서 우리의 조상은 나무에서 내려오게 되었냐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아프리카의 사바나 확산이 그 원인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건조한 초원이 펼쳐지면서 고릴라와 침팬지의 조상들은 아프리카 중부와 서부의 숲을 보금자리로 삼았지만 다른 이들은 사반나에 익숙해지도록 적응했다는 것이다. 이족보행으로 그들은 서로 멀리 떨어진 나무들을 옮겨다녔고 또한 똑바로 선 덕분에 시야가 높아져 다가오는 육식동물들을 더 잘 감지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고생태학자들은 아프리카의 환경을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러 증거들을 통해 이산화탄소의 감소로 숲이 사라지고 넓은 초지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밝혀냈지만 문제는 그 시기와 직립보행이 시작된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기 호미니드들은 숲과 초원이 혼합된 환경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호미니드들이 숲에서 이족보행을 하게된 선택압은 무엇이었을까? 일부 과학자들은 고릴라, 침팬지, 인간이 지관절행을 하는 공동조상에서 진화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침팬지에게서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크레이그 스탠포드는 야생침팬지를 관찰하여 침팬지들이 낮은 가지에 달린 과일을 따기위해 이족보행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스탠포드는 호미니드들이 밀림이 점점 사라지고 과일나무들이 서로 떨어져 자라게 되자 한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과일을 찾아 땅을 걸어 옮기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과학자들은 직립보행의 진화를 알기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보행과 침팬지의 지관절행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계산하여 이족보행에 훨씬 적은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효율성의 측면으로 이족보행의 진화를 설명한다. 한편 마이애미 대학의 일레인 비디언과 윌리엄 맥그루는 신시내티 동물원에 있는 침팬지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여 바나나를 멀리 떨어진 곳에 쌓아두고 침팬지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다. 침팬지들은 바나나를 두손 가득히 들고 두발로 걸어 보금자리로 돌아왔는데 이것을 통해 비디언과 맥그루는 식량채집이 두발로 걷게 하는 주원동력일 것이라 주장했다.
침팬지는 간접적인 증거는 될 수 있지만 인간의 직접조상이 아니기에 화석이 주는 증거만큼 신빙성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오래된 호미니드들은 두개골 정도의 화석만 남아있고 상대적으로 최근의 완전한 화석인 루시같은 경우도 많은 논란이 일고있다. 켄트 주립대학의 오언 러브조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대퇴골과 둔부의 모양을 살펴 이들이 현대인간과 비슷하게 걸었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뉴욕 주립대학의 랜들 서스맨은 다른 흔적들로 볼때 아파렌시스가 여전히 많은 시간을 나무 위에서 보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는 아파렌시스의 팔이 다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고 손가락과 발이 굽어있는 특징을 볼때 이는 나무가지를 잡는데 적응된 특징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루시의 어깨관절은 인간에 비해 머리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는데 이것은 나무를 오르는데 적합한 구조였다. 서스맨은 또한 땅위에서 루시가 얼마나 잘 걸을 수 있는가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아마도 루시가 걸을 때 다리를 완전히 다 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루시가 지관절을 이용해 걸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컴퓨터를 통해 삼차원적으로 루시를 재구성하여 기울여서 걷는 것과 직립보행 이 얼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하는지 측정해봤다. 리버풀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루시가 만약 기울어진 자세로 걸었다면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어 금새 지쳤을 것이라고 한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실시한 비슷한 연구는 루시의 자세가 직립일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짧은 다리와 인간에 비해 넓은 둔부는 루시가 빠르게 걷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족보행의 진화에 대한 의문점들은 여전히 많지만 확실한 것은 이족보행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기의 호미니드들은 직립했을 수 있어도 삼백만년 후 루시는 여전히 현대인간들에 비해 보행이 어색했다. 긴거리를 완벽하게 걸을 수 있는 호미니드가 진화한 때는 그로부터 백만년도 넘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도구제작자(The toolmakers)
에티오피아 북동부 고나강이 흐르는 곳은 건조하고 거친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수많은 돌들이 있는데 70년대, 고인류학자들은 어떤 돌들은 지질학적으로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손으로 만들어진 도구들이었던 것이다. 80년대가 되자 이 도구들은 계획적으로 수집분석되었고 가장 오래된 도구의 연대는 260만년 전의 것이었다. 도구는 인간이라는 종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짓게 만드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다른 어느 종들도 인간처럼 도구를 잘 만들거나 도구에 그렇듯 크게 의지하지 않는다. 도구에 대한 의존도의 영향은 매우 커서 신체를 변화시키기까지 했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 인간의 두뇌에서 손을 담당하는 부분은 더욱 크며 우리의 손은 손가락끝이 서로 맡닿아 도구를 쓰게 알맞게 되어있다. 도구의 사용덕분에 호미니드들은 식량을 더욱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또한 그로인해 더 크고 강한 두뇌와 연장된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 도구의 사용은 인간이 세상을 바꾸게 했으며 어느 기후에서도 살아가게 만들고 다른 행성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왜 언제부터 호미니드들이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나는 많은 의문이 되고있다. 260만년 전부터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의 호미니드들도 화석화되지 않는 나무가지나 잎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인간만이 지구상에서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랑우탄과 침팬지들도 나무나 잎, 돌 등을 사용하여 식량을 얻거나 보금자리를 만든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들과 인간의 공동조상이 도구를 사용한다고 단정내릴 수는 없다. 고릴라들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뉴 캘러도니아에 사는 까마귀들은 부리에 작은 나무가지를 물고 애벌레를 잡는데 이것 때문에 3억5천만년 전에 살았던 인간과 까마귀의 도마뱀 비슷하게 생긴 공동조상도 도구를 사용했다고는 하지 못한다.
대형유인원들의 조상은 아마도 직접적인 도구제작자는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끔 조기적응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세인트 앤주루스 대학의 영장류 동물학자 리처드 번은 대형유인원들이 쉽게 먹기힘든 음식을 얻는데 다른 영장류들에 비해 특별한 방법을 쓴다는 것을 지적했다. 침팬지들은 딱딱한 과일의 껍질을 깨서 가른 뒤 여러개로 다시 깨뜨려 과일의 속살을 먹는데 이런 행동에는 두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민첩한 손가락과 계획을 짜서 실행할 수 있는 두뇌가 그것이다. 과일마다 크기나 껍질의 단단함이 다른데 침팬지들은 여기에 맞춰 손가락과 도구를 사용하여 과일을 먹을 수 있다.
리버풀 대학의 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사회를 이루고 사는 영장류들의 특성이 두뇌의 진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다른 구성원들과의 친밀감이나 적대감이 형성되었으므로 더 많은 정보량을 처리하는 두뇌가 필요하게 되었고 무리가 커질 수록 더 크고 강한 두뇌가 자연선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뇌의 신피질을 비교하여 많은 무리를 짓고사는 영장류일수록 신피질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 큰 두뇌는 사회생활 뿐 아니라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정신능력도 함께 부여했을 것이다. 유인원들의 도구사용능력은 본능이 아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더 경험많은 다른 유인원들이 하는 방법을 보고 후천적으로 도구사용을 깨우친다. 그렇다면 천만년 전 우리의 조상들도 이러한 문화전통을 가지고 있었을까? 화석만으로는 답이 쉽지 않다. 침팬지가 쓰는 돌들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상태의 돌들이므로 호미니드가 썼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침팬지들은 이런 돌을을 한곳에 쌓아두는데 운이 좋다면 팔백만년 전의 이러한 형태의 돌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언제부터 도구를 사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이다. 고나에서 발견된 도구만이 간접적인 증거로서 남아있을 뿐이다.
고나의 돌도구를 발견한 실레쉬 세모는 아마 도구를 사용한 호미니드가 강에서 둥근 자갈을 모아 깨뜨려 날카롭게 만들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세모의 연구팀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대형초식동물의 화석도 발견했는데 이 화석에는 이빨로는 날수없는 날카로운 돌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고나의 호미니드는 아마 도구를 사용하여 죽은 동물의 몸에서 고기를 떼어갔을 것이다. 당사자인 호미니드의 화석은 도구와 흔적이 있는 동물의 화석 근처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비슷한 흔적이 있는 포유류의 뼈와 함께 250만년 된 호미니드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를 발견했다. 하지만 가르히의 화석은 두개골의 일부분으로 이것은 또다른 의문점을 제시했다. 가르히의 뇌는 침팬지보다 조금 큰 450입방센티미터에 불과했는데 그렇다면 260만년 전의 호미니드는 침팬지 정도의 사고력 밖에 없었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침팬지에게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실험하기 위해 인디애나 대학의 니컬러스 토드는 칸지라고 이름붙인 똑똑한 보노보에게 날카로운 돌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음식이 들어있는 상자를 묶어놓은 실을 끈게 했으나 제대로 된 도구를 만들 수 없었다. 칸지의 손과 팔의 구조가 도구제작을 어렵게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손을 담당하는 뇌부분에 문제가 있을 것일 수도 있었다. 칸지가 실험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고 돌을 날카롭게 만들지 못하자 칸지는 박편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돌을 땅에 던졌다.
고나의 도구는 별볼일 없어보일지도 모르지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과일이나 벌레로 한정되던 음식물은 도구를 사용해 죽은 동물의 사체에서 고기를 떼어내고 흰개미의 집을 통째로 헐거나 뿌리를 캘 수 있게 됨에 따라 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두뇌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두뇌는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여기에 사용될 에너지를 도구를 사용함으로서 충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뇌의 진화에 대해서 ASPM 유전자는 주목받고 있다.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대뇌피질(인간의 대뇌피질은 다른 유인원들보다 훨씬 크다)이 줄어들어 소두증에 걸리게 되는데 평소에 이 유전자가 두뇌에서 하는 역할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일파리와 쥐를 연구한 결과로는 뉴런이 두개로 분열되게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진화유전학자들은 ASPM이 호미니드 두뇌의 진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게놈의 2%만이 단백질을 만들고 그안에서도 수많은 정크DNA들이 있지만 이중에서 아직 과학자들이 찾지못한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유전자에서 코딩된 구역과 되지 않은 구역의 변이를 비교하여 자연선택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2004년, 과학자들 세팀이 개별적으로 이 방법을 사용하여 ASPM의 역사를 연구하였다. 이들은 영장류를 비롯해 고양이, 개 등의 다른 포유류들을 비교하여 공동주상으로부터 이 유전자가 어떻게 진화하여 왔는지를 알아봤다. 그 결과 영장류가 아닌 포유류들에게서는 그닥 ASPM에 대한 자연선택이 이뤄지지 않은 반면 현존유인원들의 조상 때부터 이 유전자가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중 미시건 대학의 지안지 장의 연구에서 호미니드가 침팬지로부터 분화된 이후 더욱 급격한 ASPM의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밝혀내게 된다.
ASPM 단독으로 지금의 인간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5년, 신경계의 발달에 관련있어 보이는 유전자 24개가 호미니드의 혈통에서 고속으로 진화했음이 드러났다. 과학자들이 인간의 게놈을 연구함에 따라 다른 수많은 유전자들의 정체가 밝혀질지도 모른다. 비록 이들 대부분이 두뇌와는 관련없는 유전자일지 몰라도 두뇌가 진화하려면 다른 기관들의 진화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내장의 경우를 본다면 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지만 뇌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할당된다는 것은 다른 곳으로 가게될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작은 내장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영장류의 경우 그들은 잎과 거친 음식을 소화하기 위해 큰 내장이 필요하다. 인간은 도구 덕분에 에너지와 영양이 더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삼백에서 이백만년 사이에 일어난 여러가지 진화들은 우리의 조상들을 이족보행유인원에서 지금의 인간으로 바꿔놓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인간되기(Becoming human)
고인류학자들이 주목하는 시대는 이백만년 전인데 과학자들은 이때 총 몇종의 호미니드가 살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이 속한 속인 호모(homo)는 삼백만년에서 이백만년 전 사이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임머신이라도 있지 않는한 정확한 인류진화의 계통수는 알기가 어렵다. 199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230만년 전의 턱뼈는 초기 호미니드들과는 다른 후대의 호미니드들이 가지는 턱뼈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이 뼈가 160만년 전까지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호모 하빌리스의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빌리스는 전과 후세대의 호미니드들의 혼합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뇌용적은 680㎤로 루시의 것보다 훨씬 크고 많은 석기도구들이 화석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다리는 상대적으로 짧고 팔은 길었기 때문에 여전히 나무를 타는데 능숙했을 것이라 보인다.
180만년 전, 새로운 호모속의 종이 여전히 하빌리스의 특징과 함께 훨씬 현대인류와 비슷한 형상으로 등장했다. 이 종은 호모 에르가스터라고 이름지어졌는데 긴 다리와 짧은 발가락, 발뒷꿈치를 가지고 있었고 둔부는 가늘었으며 팔은 짧았고 어깨는 낮고 넓었다. 치아와 턱뼈 또한 상대적으로 작았고 두뇌용적은 870㎤로 현대인간의 2/3에 달했다. 무엇이 이런 해부학적 특징들을 나타나게 했을까? 하버드 대학의 고인류학자 대니얼 리버맨과 유타 대학의 생물역학전문가 데니스 브램블은 2004년 인류의 조상이 뛰기 시작하면서 현대와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들에 비해 여러가지 신체구조상 뛰는데 적합한데 에르가스터에게 이런 특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뛰었을까? 육식동물들이 사냥을 하고 먹이를 먹어치운 후 이들은 육안이나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을 통해 사체의 위치를 알아내고 다른 동물들이 먼저 도착하기 전에 뛰어서 먼저 고기를 차지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현대인간에 가까운 호모속이 진화함과 함께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큰 두뇌는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루시는 섭취하는 열량의 11%, 에르가스터는 17%를 소비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도구의 사용은 고기와 골수의 섭취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 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충당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커진 뇌는 산모들에게 큰 문제가 되었다. 태아의 큰 머리가 자연선택으로 걷는데 익숙해져 좁아진 산도를 통과할 때 고통을 주게 된 것이다. 침팬지의 뇌는 태어날 때 성체의 40%의 크기이며 첫돌이 되면 80%까지 성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성인용적의 25%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며 첫돌이 되면 50%, 열살 정도가 되야 95%까지 자라난다. 이런 오랜 뇌의 발달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되며 유아들로 하여금 스스로 먹고살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침팬지 유아들은 어미를 안고 매달릴 수 있지만 인간은 어머니가 아이들을 안고 다녀야 한다. 인간아기들은 수많은 양의 모유를 수유받고 젖을 땐 뒤에도 꾸준한 음식물의 공급이 필요하다. 어린 침팬지들은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먹을 수 있지만 에르가스터들의 주식인 고기나 뿌리식물 등은 오직 어른들만이 얻어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서 자연선택은 호미니드의 생활방식을 바꿔 놓았을 것이다. 초기 호미니드들은 다른 유인원들처럼 어미가 새끼들을 전적으로 보살피는 형식이고 짝짓기기간이 지나면 서로 남남이 되는 식이었겠지만 아이들이 스스로를 보살피지 못하게 되자 자연선택은 더 오랜 남녀관계가 지속되도록 하고 아버지가 점점 자식들을 보살피는 일이 많아졌을 것이다. 유타 대학의 인류학자 크리스틴 혹스는 또다른 영향으로 더 길어진 수명을 뽑았다. 인간여성은 사십대가 되면 생식기관이 급격히 노화하여 대부분이 생식능력을 잃어버리는데 초기 호미니드 여성들은 지금의 인간보다 침팬지의 수명과 비슷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침팬지 암컷은 사십대까지는 건강하지만 그 이후로 노화가 진행되고 5%만이 생식능력이 사라진 뒤에도 생존한다고 한다. 하지만 호모니드들이 진화하면서 여성들이 폐경기 이후에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이것으로 인해 손주들을 돌보게 됨에 따라 자식들이 먹이를 찾는 것이 더욱 수월해져 자손이 계속 이어질 기회가 높아졌다. 혹스의 연구팀은 탄자니아의 수렵채취부족들로부터 이러한 가설을 도출해냈는데 할머니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건강이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보다 더 안좋은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은 농업사회에서도 나타나는데 혹스는 폐경기 이후에도 살아남는 여성들이 손주들이 성인이 되어 더 많은 자손을 남길 가능성이 더 높았고 그리하여 이 유전자가 호미니드들에게 퍼질 수 있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여러가지의 변화들이 겹쳐짐으로서 호미니드들은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뉴욕 대학의 수잔 앤턴은 호미니드들의 영역확장이 덩치가 커지고 고기를 먹게 되는 것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계산했다. 가장 오래된 에르가스터의 화석은 180만년 전의 것인데 가장 오래된 아프리카 바깥의 그루지야에서 발견된 호미니드 화석도 비슷한 시기의 것이었다. 고인류학자들이 논쟁을 벌이는 것은 그 이후인데 전통적인 견해는 현대인간과 흡사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호미니드들이 호모 에렉투스라는 단일종에 속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의 모두 현대의 인간으로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는 고인류학자들은 얼마 없으며 대신 대략 20만년 전 소수의 아프리카인들로부터 혈통이 이어져왔고 그들이 오만년 전부터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해 지금의 인류가 되었다고 한다. 그이전 아프리카를 떠난 호미니드들은 멸종하거나 현인류와는 별 관계가 없다.
이러한 새로운 인류진화의 견해는 새 논쟁을 낳았다. 180만년 전 호미니드들이 아프리카를 떠났을 때 이들은 단일종이었을까 아니면 여러 종들로 분화되었을까?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은 오래된 것은 180만년 전의 것에서부터 최소 3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 등이 있는데 이들 화석들의 독특한 특징으로 보아 동아시아의 에렉투스들은 아프리카의 에렉투스와는 다른 종으로 분화되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최근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백만년 전의 에렉투스 화석은 같은 시대 아프리카의 에렉투스들보다 동아시아의 에렉투스와 더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섣불리 단정짓긴 어렵다. 피츠버그 대학의 제프리 쉬워츠는 에렉투스들은 사실 여러 종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버클리의 팀 와잇은 이들이 모두 단일종이라 주장한다. 다른 연구자들은 이 두설을 절충하여 에렉투스들은 여러지역에 고립된 종인데 자주 접촉하여 교잡하고 유전자를 교환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아프리카 밖으로의 이주 외에 또다른 주목할만한 점은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들이 새로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그 이전까지 호미니드들의 도구는 고나에서 발견된 것에서 별다른 발전이 없었지만 160만년 전부터 더욱 복잡한 제작과정을 거치는 도구가 발견되었다. 예전에는 돌을 부숴 날카로운 끄트머리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돌을 조각하여 미리 생각해둔 모양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생 아쇨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지명을 본따 이런 기술을 아쇨 기술이라 부른다. 호미니드들이 이주해감에 따라 이 기술은 아프리카 외에 곳곳에 퍼지게 되었고 이후 140만년 간 사용되게 된다. 하지만 이 기술은 더이상 발전되지 않았고 백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각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도구들은 특색이라 부를만한 것이 없었다.
고인류학자들은 새로운 진화의 물결이 일어난 것을 확인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60만년 전의 호미니드 화석은 뇌의 크기를 비롯해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혹은 호모 로데시엔시스라 불리는 이 호미니드는 1200㎤의 뇌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역시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저멀리 중국까지 이주해갔다. 이들은 사냥을 했다는 여러가지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저지섬의 절벽 밑에서는 코뿔소를 비롯한 대형포유류의 화석이 도살당한 흔적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들은 호미니드들에 의해 절벽까지 내쫓기다 떨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독일의 고고학자들은 오래된 호수가에서 40만년 된 나무창을 발견했는데 양쪽은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었으며 6~9피트의 길이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도살당한 야생마의 화석이 발견되어 하이델베르겐시스들이 야생마를 호수가로 몰아붙여 창으로 찔러죽였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사냥법은 새로운 도구제작법의 탄생을 의미하는데 조상들이 쓰던 손도끼를 넘어 하이델베르겐시스들은 30만년 전부터 제작과정이 복잡한 레발루아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제작과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량으로 레발루아 도구를 제작하여 음식이나 식물을 자르거나 창끝에 붙여 사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능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대인간과 같은 사고를 하지 않았다. 고인류학자들은 이들이 시체를 매장하거나 그림이나 조각 등을 제작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유럽에는 호미니드들을 먹여살릴 충분한 식량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급격한 기후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빙하기의 시작은 잉글랜드와 덴마크를 두터운 얼음속에 갖히게 만들었고 호미니드들은 지중해 연안에서만 살게 되었다. 그뒤 잠시의 간빙기 동안 북유럽으로 다시 진출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선택은 유럽의 호미니드들의 육체를 바꿔놓았다. 이들의 다리는 땅딸막해졌고 가슴은 넓어졌으며 근육이 발달되어 30만년 전부터는 아프리카에 살던 늘씬한 호미니드들과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이리하여 유럽의 호미니드들은 13만년 전부터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라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게 된다. 유럽의 호미니드들은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었다. 호모 에렉투스들은 동아시아에 살고있었고 아마 몇개의 다른 종들이 아프리카에 동시에 살고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들은 다른 호미니드들과는 다른, 지금 현재 전세계에 퍼져있는 유일한 호미니드종인 호모 사피엔스를 태동시킬 준비를 하고있었다.
사피엔스
에티오피아 중부의 아와쉬강가는 호미니드 진화의 박물관같은 곳으로서 고인류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다. 1997년, 헤르토라는 마을 주변을 운전하고 지나가던 버클리의 팀 와잇은 며칠전 내린 비로 인해 하마 두개골 주변의 침전물들이 쓸려간 것을 발견하고 땅에서 돌도구를 찾았다. 11일 뒤 연구를 위해 다시 돌아온 이들은 세 호미니드의 두개골 조각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조각들을 모았는데 그 결과 이들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헤르토 두개골은 특이했는데 오래된 호미니드에게만 있고 현생인류에게는 없는 특징인 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연대측정 결과 화석이 발견된 지층의 윗쪽은 16만년, 그 아래는 15만6천년으로 나왔다. 이 결과는 2003년에 발표되었는데 두가지의 이유로 충격을 줬다. 첫째는 헤르토 두개골 발견 이전 가장 오래된 현생인류의 화석은 최소 수만년 후의 것이었고 둘째는 유전학자들은 80년대부터 DNA분석결과 지금 인류는 소수의 아프리카인으로부터 대략 그시대쯤 모두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주장했기 때문이다. 유전학자들이 이 이론을 내놓았을 때 여기에 일치하는 화석증거가 전무했지만 헤르토 두개골은 유전학자들의 예측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었다.
증거들의 발견으로 인류진화의 많은 부분들이 밝혀지긴 했는데 여전히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예를 들어 헤르토 화석의 주인공들만 하더라도 이들은 해부학적으로는 우리와 같을지 모르지만 연구자들은 보석이나 그림, 조각 등을 찾지 못했으므로 정신적으로는 다를지도 모르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기간 동안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진화되어 있는지를 두고 크게 갈라져 있다. 어떤 이들은 예술이나 복잡한 도구들은 문화의 성숙과 함께 서서히 발전되어온 것이라 말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나 인간이 갑작스러운 창조성과 현대로 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고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를 인류가 진화한 곳이라고 말한 다윈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90년대까지도 우리의 조상들은 오래전 아프리카를 떠나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현대의 인류로 단일종을 유지하면서 진화했다고 결론내렸었다. 이것은 80년대까지의 화석과 도구 등의 증거들로 인해 그럴듯해 보였지만 유전학자들은 세삼의 증거인 DNA를 통해 숨겨져있는 인간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세대가 지날수록 섞이고 희석되는 유전자의 특성 때문에 조상을 추적해나가는 것은 어렵지만 37개의 유전자만은 여기에서 벗어나 있다. 이들은 핵이 아닌 미토콘드리아에 있는데 이것은 모계를 통해 거의 완벽하게 후세에 전달된다. 다만 예외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느리지만 일정한 변이인데 80년대,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현생인류를 하나의 혈통으로 묶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의 앨런 윌슨은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유럽, 뉴 기니아에서 147명의 DNA를 수집하여 진화의 나무를 그렸다. 그 결과 거의 대부분이 하나의 가지를 이뤘지만 7명의 아프리카인들은 두번째의 주요가지로 분류되었는데 아프리카인들의 경우 아시아와 유럽보다 두배의 변이를 더 거쳤음을 알아냈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간단한 결론은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고 그중 일부가 다른 대륙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조사대상자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다양성이 매우 떨어졌는데 이것은 전인류의 공동조상이 최근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윌슨의 팀은 미토콘드리아 DNA의 일부가 상대적으로 일정한 변이를 일으키는 것을 이용한 분자시계를 통해 모든 인간들이 20만년 전 살았던 한 여자의 미토콘드리아DNA를 물려받았다고 결론내렸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별명지어진 이 여자의 발견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만년 전 유럽과 아시아는 이미 호미니드들의 터전이었고 따라서 모든 인류가 그시대의 아프리카에서만 기원했다면 다른 지역의 호미니드들은 멸종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많은 고인류학자들이 윌슨의 연구결과를 적대했지만 비슷한 견해로 논쟁을 벌였던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크리스토퍼 스트링거같은 사람들은 환영을 표했다. 현대인간과 닮은 가장 오래된 화석은 4만년 전의 크로마뇽인인데 스트링거는 십만년 전 아프리카의 인간과 크로마뇽인 사이에 유사서에 주목하여 네안데르탈인이 크로마뇽인으로 진화했다는 견해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크로마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주자들일 것이라 추측했다. 윌슨의 연구는 아직 인류의 기원이 아시아일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은 샘플들을 모았고 다른 연구자들도 다른 방식으로 연구에 뛰어들어 현재 미토콘드리아 DNA의 모든 시퀀싱이 끝난 상태이다. 그 결과는 여전히 최근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가리키고 있으며 더 어렵지만 부계를 통해 전해지는 Y 염색체를 조사하여 그린 나무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점점 적은 양의 DNA를 고립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화석에서도 유전물질을 찾아내려고 시도되었는데 97년, 과학자들은 독일의 사만년 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미토콘드리아 DNA의 흔적을 발견했고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일곱명의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전물질을 체취하였다. 검사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류는 두개의 큰 가지로 분류되었으며 또한 이들의 공동조상이 50만년 전에 살았던 사실을 드러낸다. 그시기 화석기록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프리카 기원 모델은 여러가지면에서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부 유전연구결과는 호모 사피엔스가 여러차례에 걸쳐 아프리카 밖으로 나왔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2004년에 발표된 한 유전연구결과는 진화나무의 뿌리를 아시아로 잡고있어 인간이 호모 에렉투스와 교잡했을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2005년 연구에서는 인간이 네안데르탈인들과 교잡했을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아프리카를 기원으로 잡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만년 동안의 아프리카를 주목하고 있다.
불행히도 이 기간 동안의 아프리카에서의 화석기록은 불분명하다. 호미니드들은 아프리카 곳곳에 살았지만 정밀한 조사는 몇군데에서 밖에 행해지지 않았으며 연대를 측정하는 것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어려운 형편이다. 새로운 기법을 통해 연대오차를 삼만년까지 줄일 수는 있지만 이 방법은 천만년 전 유인원 등을 조사한다면 몰라도 삼십만년 이내라면 혼란이 커지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고인류학자들은 지난 오십만년 동안의 아프리카에서의 호미니드의 진화를 밝혀내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6만년 전의 아프리카 두개골은 얼굴이 납작해지는 등 현대인간의 특징들을 보이지만 여전히 조상들의 원시적인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 이 두개골 중 일부는 멸종해버린 단기간 존속했던 종일수도 있지만 헤르토의 화석은 16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간의 혈통이 확실하게 확립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5년에는 또다른 연구팀에 의해 60년대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13만년 된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이 실은 19만5천년 전의 것이었음이 밝혀져 현인류의 기원을 더욱 올라가게 만들었다.
28만년 전부터 아프리카인들의 도구제작은 더욱 정교해지고 다양해졌다. 또한 예술용으로 보이는 물감도 발견했는데 이것의 용도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이때부터 인간의 창조성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팀 와잇은 헤르토에서 두개골만을 찾았는데 주변에서 더 완벽하게 보존된 동물의 시체가 발견됨에 따라 헤르토의 두개골들이 실은 죽은지 얼마 안되어 몸으로부터 누군가 분리시킨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종교의식의 흔적으로 보이는데 어떤 의식이 치뤄졌는지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헤르토인들은 지난 30만년 동안 가장 가혹한 환경에서 살았다.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우리의 유전자를 살펴보면 DNA의 다양성이 적어 이시기 인구가 수천명 미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것을 병목현상이라 하는데 이 현상이 일어나면 새로운 유전자가 보다 빨리 퍼질 수 있어 진화의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병목현상에서 서서히 벗어난 인간들은 여러곳으로 퍼져 12만5천년 전에는 해안가에 정착하여 어업과 물개사냥에 종사했다. 이들이 퍼져나감에 따라 현대인류문화에 가까운 흔적들을 곳곳에 남겼는데 과학자들은 도구들이 출토된 곳과 그 도구들의 재료들이 나오는 지역의 거리를 계산하여 인간들 사이에 거래가 성립된 흔적들을 찾아냈다.
이 기간동안 아프리카의 기술들은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발전하였는데 백만년 전 남아프리카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손도끼들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칠만년 전 이 지역들에서 출토되는 도구들은 분명히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고인류학자들은 이것을 호모 사피엔스들이 서로 정보공유를 했으며 각 지역에 맞게 활용된 흔적으로 보고있다. 새로운 증거들은 이시기 아프리카인들이 실용목적의 도구제작에서 벗어나 예술활동을 하고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증거들은 육백만년 만에 이십여개의 종을 거쳐 새롭고 독특한 동물이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지구상의 유일한 호미니드라는 칭호를 얻기까지는 수만년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할 것이다.
마지막 물결(The last wave)
아프리카 바깥으로의 첫 이주는 실패로 끝났다. 화석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나온 호모 사피엔스들은 13만년 전 아프리카를 나와 레반트 지역에 정착하여 전과 다름없는 문화를 누리고 살았지만 8만년 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빈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유럽에서 이주해온 네안데르탈인들로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들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3만년 간 그 지역에서 살았다. 네안데르탈인들이 살던 유럽은 정기적으로 빙하기에 휩쓸렸던 지역으로 환경은 매우 가혹했지만 매머드 등의 대형동물들이 살고있었다. 이런 메리트 때문에 네안데르탈인들의 조상은 가혹한 환경에 맞서면서 유럽에 정착했고 그 결과 큰 코와 근육질의 몸, 같은 키의 현대인보다 30%가 더 나가는 몸무게 등의 그들만의 특징을 진화시키게 되었다. 그들의 몸은 사냥에 적합한 구조였지만 찔린 흔적이나 부러진 뼈, 관절염의 흔적 등으로 볼때 45세 이상을 살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남긴 삶의 흔적 등을 보면 현대인에 필적하는 큰 뇌답게 상당한 지성을 갖췄음을 보여주고 있다.
네안데르탈인들의 사회생활은 알아내기 어렵지만 과학자들이 찾아낸 몇가지 증거들을 보면 죽은 시체를 매장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매장 때 동물뼈 등의 상징적인 물건을 같이 매장한 증거가 없고 또한 살아있을 때도 이들이 보석 등으로 치장하고 다녔다는 증거 역시 찾지 못했다. 이들은 작은 무리를 이루고 살았으며 오두막 등을 짖고 살기보다는 동굴에서 살았고 도구의 재료들도 모두 그들이 살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이것은 네안데르탈인들이 서로 거래를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5만년에서 5만년 전까지 네안데르탈인과 인간은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두 종 모두 특정한 환경에 알맞도록 진화했으며 거기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현대인간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만 살았으며 너무 많은 열을 받지 않도록 키가 크고 가늘었다. 13만년 전, 기후가 따뜻해지고 습기가 많아져 레반트가 아프리카와 비슷한 환경이 되자 아프리카의 동식물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왔고 인간도 이들을 따라오게 되었다. 하지만 8만년 전, 춥고 건조한 날씨가 되자 인간들은 사라지게 되었는데 과학자들은 이들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갔을 것이라 논쟁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들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빙하가 물러가자 이들은 북쪽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새로운 빙하기가 되자 남쪽으로 이주하여 8만년 전에는 레반트로 퍼져나갔다. 이들은 이 날씨좋고 풍족한 곳에서 수만년을 살았지만 5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들이 되돌아오면서 유럽으로 후퇴하였고 그뒤를 인간들이 따라가게 되었다. 빙하기는 물러가지 않고 오히려 진행 중이었지만 인간들은 기후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이겨낼 수 있는 비밀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인간 DNA 검사결과 인간의 이주경로를 알아낼 수 있었는데 5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날 때부터 인간들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이주 중 돌연변이가 계속 일어났고 그 결과 아프리카인들은 다른 지역의 모든 인간들보다 더 다양한 유전적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다. 아프리카 밖으로 나간 이주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는데 그 증거로 비아프리카인들이 모두 Y 염색체의 돌연변이인 M168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M168은 5만6천에서 8만천년 전에 나타났다. M168 보유자들은 최소 두갈래로 나뉘어 아프리카 밖으로 퍼져나갔는데 첫 이주는 동아프리카를 출발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 아시아 남쪽 해안가를 거쳐 한갈래는 호주와 뉴기니아, 다른 갈래는 아시아 동쪽 해안을 거쳐 올라갔다. 또다른 이주는 이때 아프리카를 나온 이들이 레반트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시베리아로 건너갔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이 이주한 정확한 시대는 아직도 과학자들이 논쟁 중인데 아프리카 빡의 가장 오래된 인간화석들은 모두 5만년 이하이기 때문이다. 근동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4만7천년 전의 것이었고 호주는 4만년이었지만 발견된 도구는 5만년 전의 것이 있다. 남아시아 지역은 화석증거를 찾기가 어려운데 만2천년 전, 빙하의 해빙으로 화석들이 묻혀있을 해안가의 상당수가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이주자들의 화석들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퍼지게 했는지에 대한 논쟁을 낳고있다. 이들의 뇌는 십만년 전, 헤르토에 살았던 인간들보다 더 크지도 않았지만 이들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호주로 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빙하기 때는 해수면이 낮았지만 여전히 바다를 건너야 했으므로 배를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배를 만드는 것은 창을 만들거나 불을 피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을 필요로 한다. 5만년 전, 도구를 만드는 기술이나 예술품을 만드는 창작성은 갑자기 발달하기 시작했다. 고인류학자들은 인간에게 어떠한 생물학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크게 두가지의 가설이 있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앨리슨 브룩과 코네티컷 대학의 샐리 맥브리어티는 장기도화설을 주장했다. 그들은 인간문화의 변화는 3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되는 호미니드 혈통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28만년 전부터 아프리카 호미니드들은 돌날 등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문화가 점점 빠르게 발전하면서 현대로의 행동변화 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뇌를 자극하는 유전자가 발생해서 문화가 갑자기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이작 뉴턴이 차를 몰지 못한다고 현대인에 비해 생물학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황당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가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생존과 번식가능성이 높아졌고 인구가 늘어나 여러곳에 정착할 수 있었지만 빙하기에 들어서면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도구와 사회구조를 이뤄야 했으므로 좀더 대규모의 사회가 되었고 지식과 자원을 공유하게 됨으로서 문화가 갑자기 발전되었다는 설을 주장했다. 단기도화설을 주장하는 사람으로는 스탠포드 대학의 리처드 클라인이 있는데 그는 DNA에 변화가 일어나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2002년, 과학자들은 클라인의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FOXP2 유전자를 발견했는데 언어능력을 관장하는 이 유전자는 지난 20만년 간 치열한 자연선택을 거쳐왔다.
현대를 향한 이러한 행동변화는 또다른 의문과 엮여져 있다. 다른 호미니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5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레반트에 도착했을 때 네안데르탈인들은 레반트에서 사라져 유럽으로 후퇴했다. 4만년 전, 사피엔스들은 유럽에도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후로 네안데르탈인들은 인간들과 만년 넘게 공존했다. 네안데르탈인들과 사피엔스들의 사이가 어떠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로트 뒤 렌이라는 프랑스 동굴에서 샤텔페로니언이라 불리는 당시 프랑스에 살던 현대인간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목걸이들이 3만3천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인간을 모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네안데르탈인들은 인간들과 제대로 경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들은 더 큰 규모의 사회를 이루며 살았고 더 발달된 도구와 거래를 통해 점점 유럽 깊숙히 정착해갔으며 네안데르탈인들은 점점 밀려나다가 피레네와 다른 외딴 산악지대로 후퇴하였고 마침내 그곳에서 사라져 버렸다.
호모 에렉투스들의 운명은 훨씬 더 의문에 싸여있다. 현대의 고인류학자들은 화석을 발견하면 화석과 그것이 묻혀있던 암석이 같은 나이인가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조사하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이런 방법이 별로 통용되질 않았고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첫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은 그저 발굴된 후 발견된 지역에 대한 기록은 별로 하질 않았다. 때문에 이때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 화석의 연대는 오랜 시간 동안 논란이 있어왔다. 90년대 중반,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칼 스위셔는 30년대에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을 더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 자바 동부의 응간동이라는 마을을 방문했다. 이 두개골은 수십만년 된 것이라 추정되었지만 정확한 연대는 모르고 있었는데 스위셔는 이것이 발견된 장소에서 발굴된 다른 동물의 치아를 연대측정한 결과 2만7천년에서 5만3천년 전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놀라운 결과였는데 180만년 전, 우리의 조상과 분화된 또다른 호미니드가 비교적 최근까지 살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스위셔의 연구결과는 많은 회의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스위셔의 팀은 여전히 모든 결과들이 호모 에렉투스의 젊은 연대를 가리키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98년,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 섬에서 일하던 연구자들은 80만년 된 호모 에렉투스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돌도구를 발견했는데 이 호미니드들은 홍수나 쓰나미에 휩쓸려 섬으로 왔거나 아니면 배를 만들고 항해하여 왔을 것이라 추측되었다. 아무도 호모 에렉투스가 배를 만들만한 사고능력을 갖추고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와 호주의 연구자들은 배로 노력하여 호미니드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하였고 2004년 그들이 발표한 발견은 연구자들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플로레스의 한 동굴을 파면서 과학자들은 3피트 밖에 안되는 작은 호미니드의 화석을 발견한 것이다. 화석 중에 발견한 두개골을 통해 이 새로운 호미니드의 뇌용적이 인간의 1/3, 대략 침팬지 정도 밖에 안되는 417㎤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화석의 연대였는데 9만5천년에서 만8천년 전 사이의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라고 명명된 이 화석은 호미니드 진화의 가장 큰 논쟁이 되었는데 어떤 고인류학자들은 이 화석이 사실 ASPM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소두증에 걸린 호모 사피엔스 난쟁이의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발견자들은 이런 생각을 거부하며 플로레시엔시스의 신체는 여러모로 해부학적으로 인간과 다르며 오히려 호모 에렉투스와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가능한 이야기는 언제인가 완전한 크기의 호모 에렉투스가 플로레스에 도착했고 그뒤 섬의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섬은 서식하는 동물들이 작게 진화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는 호미니드들에게도 같은 규칙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또한 섬에서의 생활은 작은 신경계를 진화시키도록 하는데 여기에서도 호미니드들이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플로레시엔시스의 화석을 CT 스캔한 결과 그들의 뇌는 호미니드들 중 가장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지만 대뇌피질은 더 커졌는데 인간 역시 브로드만의 10번 구역이라 이름붙은 부분이 커졌다. 이 부분은 계획을 짜고 행동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로레시엔시스의 뇌는 침팬지 정도 밖에 안될지 몰라도 그들의 사고는 우리와 더 가까웠던 것이다.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증거들 때문에 호미니드의 진화논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플로레시엔시스에 대한 논쟁은 가까운 미래에 해결될지도 모른다. 화석은 매우 최근의 것이기 때문에 DNA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일 플로레시엔시스가 인간난쟁이라면 그들의 DNA는 동남아시아인들과 비슷할 것이지만 그들이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이라면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먼 관계를 보여줄 것이다. 이 문제는 많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데 플로레시엔시스가 다른 종으로 밝혀진다면 우리들은 최소 한 종의 다른 호미니드와 만8천년 전까지 지구를 공유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유일한 호미니드가 된 사실도 비교적 최근으로 앞당겨질 것이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들이 멸종한 원인은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인데 만이천년 전의 화산활동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현대인간들의 흔적이 만천년 전부터 섬에 남기 시작했다. 아마도 플로레시엔시스들은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들 처럼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오래 견디질 못했을 것이다. 인간에 의한 멸종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사냥, 오염, 삼림파괴 등으로 인한 급격한 환경변화로 많은 종들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졌고 대표적인 예로 호주에서는 대형캥거루, 뉴질랜드에서는 모아, 2만년 전부터 인간이 정착하기 시작한 아메리카에서는 매머드 등의 동물들이 멸종했다. 인간의 멸종의 손길이 닿은 최초의 종들 가운데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이 섞여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있는가?(Where do we go from here?)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하여 대략 5만년 전, 현대인으로서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뒤로는 딱히 주목할만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자연선택은 지능이 없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 대신 인간은 과거의 흔적들을 상당수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등은 원래 네발로 걷는 것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직립보행을 하면서 여기에 제때에 적응하지 못해 우리는 디스크 등에 시달리고 있다. 뇌는 지난 이백만년 간 점점 크게 진화했지만 호미니드들은 마을 등에 모여서 살지않고 수렵생활 등을 해왔다. 아마 이런 생활방식을 볼때 인간은 이런 생활에 더 적응되어 있을지 모른다.
진화심리학이라 불리는 새로운 과학분야의 과학자들은 호미니드의 정신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흔적을 찾고있다. 많은 문화권에서 남성들은 여성의 풍만한 유방과 엉덩이, 잘록한 허리에 매력을 느끼는데 2004년의 한 연구에서는 이러한 체형의 여성들의 호르몬을 검사하여 이들의 가임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남자들은 자손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는 이런 여자들을 선호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질투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함께 살면서 같이 자식들을 키우는데 익숙해진 호미니드들은 파트너가 떠날 경우 잠재적인 재앙위협에 직면하기 때문에 파트너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민감해졌고 이것이 질투라는 감정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이성 또한 올바르고 공동체 전체의 손해를 막아줄 수 있도록 진화되었을 것이다.
정신은 아직 고대의 삶에 더 익숙해져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진화는 멈춘 것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감에 따라 새로운 돌연변이들이 발생했다 퍼지고 사라짐을 반복해왔다. 이러한 유전역사를 풀어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수천명의 아프리카인들로부터 나왔고고 아시아와 유럽인들은 더 적은 수의 이주자들로부터 나오게 되었다. 이 소수의 인간들은 수천세대만에 지금의 60억 인구로 불어났는데 덕분에 케냐에 서식하는 누들의 유전적 다양성이 인간들보다 두배는 더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들이 복제인간수준으로 동일하다는 말은 아니며 인간들은 피부와 체격이 다르고 약을 먹어도 인종마다 다른 효과를 나타낸다.
보통 사람들은 다양성이라고 하면 인종을 생각한다. 하지만 인종의 개념은 18~9세기에 등장했고 온갖 편견과 선입견에 싸인 관찰 등을 통해 정의된 것이다. 린네의 경우 인간을 7개의 인종으로 구분했는데 그는 호모 사피엔스 유로페아누스(유럽인)가 가장 진보하고 호모 사피엔스 아페르(아프리카인)들은 가장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어떠한 생물학적 근거도 없었지만 덕분에 노예제도나 나치의 학살 등이 정당화되기도 하였다.
다양성이 적을지라도 과학자들은 이 다양성을 많이 연구하여 질병이나 암 등을 연구한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인들의 DNA를 조사한 최신의 연구결과에서 유전적 차이는 15%로 밝혀졌다. 많은 차이는 아니지만 개인의 조상은 거의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는데 2003년, 유타 대학의 유전학자들은 107명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 67명의 아시아인, 81명의 서유럽인들의 DNA에서 알루 마커를 수집하여 백개의 마커를 분류할 수 있었다. 각 그룹에 속한 개인들은 거의 동일한 마커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그룹들 끼리는 차이가 명확했다. 하지만 이것은 통계상의 맹점일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수많은 눈색깔을 가진 나라의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섬을 식민화하기 위해 배를 타고 출항했을 때 사고로 배가 난파되어 우연히 보라색 눈을 가진 사람들만 섬에 도착하여 그 섬에서 자손을 번창시켜 섬의 인구가 모두 보라색 눈을 가졌다고 가정해보자. 후일 섬에 방문한 사람들이 섬사람들이 모두 보라색눈을 가진 것을 보고 어떤 선택압이 보라색눈으로 하여금 더 생존에 유리하게 했는지를 궁금해한다면 순전히 운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을 유전적 부동이라고 하는데 특히 인간이 소수의 무리를 지어 이주해가면서 특정유전자가 다른 유전자들을 지우고 집단전체로 퍼지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다른 그룹에 속한 사람들끼리의 차이 중 일부는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부색인데 초기 호미니드들은 다른 유인원들처럼 털로 뒤덮여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립보행이 시작된 후 열을 받는 면적이 넓어지면서 자연선택은 너무 많은 열을 잡아두는 털투성이 대신 털이 없는 쪽으로의 진화를 선호했을 것이고 따라서 자외선을 직접 피부에 받게되자 검은 피부로의 진화로 자연선택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선택압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유럽같은 경우 자외선이 너무 모자라 더 많은 자외선을 받을 수 있는 흰 피부가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이다. 자외선에 따른 피부색 진화는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의 니나 재블론스키와 조지 채플린이 주장했는데 그들은 인종들의 피부색과 환경이 자신들의 예상과 들어맞는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예외도 있는데 비교적 최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간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연선택에 의해 피부색이 바뀔 시간이 부족하여 "잘못된" 피부색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2004년, 어빈의 캘리포니아 대학의 더글러스 월러스는 미토콘드리아의 돌연변이로 생존에 더 유리해져 자연선택이 적용된 케이스를 보고했다. 월러스는 유럽과 시베리아 북동부에서 천명의 샘플을 수집하여 그들의 미토콘드리아가 더 많은 열을 내도록 하는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이 돌연변이는 아프리카인에게는 없는 것으로 월러스는 이 돌연변이가 유럽과 시베리아의 추운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자연선택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위의 케이스는 동물들이 환경에 적응하듯 비슷한 경우가 인간에게 일어난 것이지만 문화에 의한 자연선택의 예도 있다. 대부분의 포유류들은 어릴때 젖을 먹고 자라지만 다 크게되면 젖을 소화시키는 기능이 정지되는데 인간 역시 비슷했다. 하지만 수천년 전, LCT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사람이 목축사회 중에 출현했고 이 돌연변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젖을 소화흡수하여 더 많은 단백질과 열량을 생산함으로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낳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돌연변이는 전통적인 목축사회에 많이 퍼져있어 많은 사람들이 가축화된 소에게서 얻는 우유를 마실 수 있지만 목축문화가 없는 지역에서는 우유를 마시지 않기 때문에 자연선택이 적용되지 않았다.
문화는 진화과정에서 이득만이 아닌 해도 가져왔다. 인간이 농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플라스모디움 팔키파룸이라는 기생충이 일으키는 말라리아는 큰 위협이 되었는데 원래 플라스모디움을 옮기는 모기는 아프리카의 숲에 살면서 숲의 동물들 피를 빨아먹고 살았다. 하지만 인간이 경작을 위해 숲을 밀고 논밭을 만들면서 모기는 인공적인 저수지나 논물 등에 알을 낳았고 여기에서 태어난 모기들은 농부들의 피를 빨아 기생충을 옮겼다. 이렇게 기생충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다른 모기들에게도 옮겨져 남유럽과 남아시아를 거쳐 아메리카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오늘날 한해에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들은 백만명이 넘으며 희생자는 주로 아프리카에서 나온다. 병만큼 진화를 촉진시키는 것도 없는데 말라리아가 횡횡하는 지역에서는 혈액에 기생충이 들어오는 것을 막음으로서 기생충의 생활주기를 깨뜨리려는 방어기재가 나타났다.
진화는 현대인으로 완성된 5만년 전부터 계속 진행 중이지만 5만년 후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진화할지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인간의 문화는 자연상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선택압을 만들어냈으며 문화는 계속해서 변해간다. 문화가 어떻게 변해갈지 예측하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주식이 다음날 얼마만큼 될까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가족제도에 따른 특정유전자가 번성할 가능성도 있지만 대가족이 줄어들고 인구가 2100년 90억에 달한 이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전자들끼리의 경쟁도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들은 아직도 질병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지난 30년 동안 HIV는 이천만명의 생명을 앗아가며 죽음의 행진을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고있다. 말라리아를 막을 수 있는 유전자처럼 HIV에 저항하는 유전자도 있는데 HIV를 완전히 막을 수 없는 이상 바이러스는 인간의 유전자를 조금씩 바꿔놓을 것이다. HIV는 침팬지 바이러스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프리카의 숲들이 파괴되고 사냥꾼들이 더 많은 침팬지와 다른 영장류들을 도살할 길이 넓어지면서 HIV와 비슷한 경로로 다른 바이러스들이 인간에게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
기생충들은 많은 고통을 주고있지만 기생충으로 인해 인간이 멸종할 걱정은 기우이다. 질병은 소수에다 좁은 지역에 사는 종들을 멸종시킬 수는 있지만 넓게 분포되어 있는 동물들을 멸종시킨 증거는 없다. 하지만 생물의 역사는 많은 경고를 주고있는데 6천5백만년 전, 공룡을 멸종시킨 운석충돌이나 90%의 생물을 멸종시킨 2억5천만년 전의 갑작스러운 지구온난화는 좋은 예시가 되고있다. 이런 예는 무시할 수 없긴 하지만 인간의 과학은 질병을 충분히 통제하고 운석은 로켓 등으로 날려버리며 환경조절을 통해 온길가스배출을 줄여 나갈 힘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멸종의 걱정이 없는 세상에서도 인간은 계속 진화해갈 것이다. 한가지 주목을 끄는 것은 과연 새로운 종이 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보통 새로운 종은 한 무리가 다른 무리로부터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다른 선택압을 받으며 다른 돌연변이들을 거쳐 나중에 두 무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교배가 불가능하게 되는 종분화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배와 비행기 등을 통해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한 집단이 완전히 물리적으로 고립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잉글랜드 생거 센터의 유전학자 맷 헐스는 인구가 90억에 달하게 되면 진화의 법칙이 미묘하지만 중요하게 바뀔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위에 언급했던 섬에 고립된 보라색 눈의 사람들의 경우에서는 좁은 지역에 사는 소수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낮은 유전적 다양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인구가 90억이나 된다면 보라색 눈과 같은 통계상 맹점의 효과가 훨씬 줄어들고 다양성이 증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헐은 커다란 인구속에서 많은 돌연변이들이 일어나게 될 것인데 대부분은 해가 없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불임상태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90억의 인구와 다양한 돌연변이로 인해 염색체의 불결합으로 수정란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게 되면 불임비율이 커질 것이지만 비슷한 유전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다른 집단들과의 유전자 교환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이러한 생식적 격리가 수천년 간 지속되면 마침내 새로운 종으로 분화할 수도 있다.
이러한 예측은 지난 40억년 간, 생물의 진화를 이끌어온 생물학적 진화에만 국한되어 있다. 생물학만으로는 인간진화의 다음단계를 이끌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문화와 사고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으며 바뀌는데 수백만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시장에 나오는 전자제품은 몇달마다 계속 신제품이 나온다. 이 전자기계들은 여전히 인간이 생산하고 관리하고 고쳐줘야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자가복제되는 인공시스템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들에게 인간의 문화와 행동을 프로그램한다면 인간이라는 종의 새로운 존재로 분류될 것이다. 어떤 미래학자들은 이것이 전우주에 걸쳐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예상한다. 한 종이 도구를 사용할 정도의 지적능력이 생기면 후생물학문명으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외계생명체를 찾을 때는 생물이 거주가능한 행성에서보다 우주를 돌아다니는 자가복제기계를 발견할 기회가 더 높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찾는다면 우리의 미래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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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두 이 책을 구해서 읽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출간되지 않았더군요...ㅜㅜ 암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ㅎㅎ
저도 웨일즈대공님 덕분에 칼짐머의 책을 알게되었는데 참 유익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