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우치 총독, 조선의 꽃이 되다 :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을 뒤지다 1
이순우 | 하늘재 | 2004년 06월 | 304쪽 | 13,500원
차례
제1부 뒤틀린 근대 역사의 자취
1. 산사(山寺)를 신사(神社)로 만들 참이오?
사찰마다 넘쳐나는 일본풍(日本風) 석조물
2. "독립문 편액은 '매국노' 이완용의 글씨"
독립문은 정말 독립의 상징이었을까?
3. 제야의 종은 꼭 울려야 하나?
타종의 뿌리는 경성방송국의 기획프로그램에서 비롯
4. 박물관으로 옮겨야 할 청와대의 '미남부처'
조선총독의 업보를 왜 진작에 벗어 던져버리지 못하나?
5. 남산의 이승만 동상은 아직 남아있다
4.19때 넘어진 동상 두 구의 행방, 그리고 그 후
제2부 낯익은 거리, 어색했던 풍경
6. 광화문 해태상, 떠돌이 80년의 이력
1923년 10월에 개최된 '조선부업품공진회'가 발단
7. 국회의사당에 해태상을 세운 뜻은?
제안자는 월탄 박종화, 조각은 하라 이순석의 작품
8. 원각사 10층 석탑, 그 어색했던 풍경
누가 파고다공원의 석탑을 그토록 방치하였나?
9. 그들은 왜 서울성벽을 따라 돌았을까?
예전엔 과거합격에 효험이 있다는 풍설도 있었던 모양
10. 조선귀족회관, 결국 주차빌딩 되다
한국외환은행 본점 자리에 얽힌 근대사의 굴곡
11. 세검정초등학교 옆의 인도가 좁아진 사연
자동차에 밀려나는 문화재의 이모저모
12. 삼전도비, 감출 수 없는 치욕의 역사
넘어지고 다시 세우고 또 파묻기를 거듭하다
제3부 궁궐을 거닐며 역사를 만나다
13. 경복궁의 서십자각은 왜 사라졌을까?
1923년의 '광화문~영추문' 전차선로 개설이 원인
14. 순종이 승하하니 영추문이 무너지도다
경복궁 영추무의 온전한 복원을 기다리며
15. "차라리 창덕궁으로 길을 낼 지언정..."
종묘(宗廟)를 관통하는 도로는 이렇게 개설됐다
16. 성종 태실은 왜 창경궁 안에 있을까?
보존상태가 제일 좋아 표본 삼아 옮겨놓은 것이 그 이유
17. 저 종은 왜 덕수궁에 놓여 있을까?
흥천사 동종이 박물관으로 옮겨진 사연은 이러했다
18. 고종이 승하하니 덕수궁이 찢어지도다(1)
그 많던 어진(御眞)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19. 고종이 승하하니 덕수궁이 찢어지도다(2)
정동의 선원전 권역은 어떻게 해체되었나?
20. 덕수궁 선원전, 해인사 포교당 되다
친일승려 이회광의 야욕과 몰락의 그늘
제4부 문화 속의 역사, 역사 속의 문화
21. 만원권 지폐에 들어있는 석탑의 정체
경복궁 복원으로 달라진 풍경 미처 반영 못해
22. 해외유출 문화재의 반환에 시효 따위는 없다
조선총독부가 기증한 오쿠라집고관의 이천향교방석탑
23. 한송사 석조보살좌상, 90년만에 '반쪽' 귀향
2002년 가을 국립춘천박물관의 개관과 더불어
24. 같은 절터인데 문화재 이름은 제각각
현저하게 차이나는 지정명칭은 재조정해야
25. 순종 왕릉의 석물은 일본조각가의 작품
채석장은 가오리(加五里)였으나 형식은 순일본식
26. 안기부가 머문 자리에 석탑이 남아있네!
중앙정보부 시절 의릉(懿陵)으로 옮겨진 석탑의 내력
제5부 식민지는 그래서 더욱 슬펐다
27. 누가 조선호랑이의 씨를 말렸나?
호육(虎肉)을 시식한 야마모토 정호군(山本征虎軍)
28. 누가 마지막 조선 호랑이를 보았나?
공식적으로는 1940년에 포획된 것이 최후기록
29. 테라우치 총독, 조선의 꽃이 되다
빼앗긴 꽃 이름 사내초(寺內草)와 화방초(花房草)
30. 세키노 교수, 조선미술사를 선점하다
1904년은 동경제대의 <한국건축조사보고>가 나온 해
31. 식민지 조선의 여자비행사로 산다는 것
비행사요 무용가요 운전수였던 이정희(李貞喜)의 인생유전
첫댓글 우리가 아는 독립협회는 진정 독립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청나라로부터 독립해서 일본에 붙자는 것입니다...독립협회의 회장단을 한번 살펴보세요...누가 했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