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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굴어당의 한시.당시.송시 원문보기 글쓴이: 굴어당
뻗어가는 도시, 인맥도 ‘쭉쭉’ | |||||||||||||||||||||||||||||||||||||||||||||||||||||||||||||||||||||||||||||||||||||||||||||||||||||||||||||||
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경기 용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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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이라는 지명은 조선 태종 14년(1414년)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치며 한 글자씩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용인현은 1896년 경기도 용인군으로 개칭되었다가 1996년 용인시로 승격되었다. 인구 증가와 함께 2005년 기흥구, 수지구, 처인구가 설치되었다. 도농 복합도시의 형태를 갖춘 용인시는 최근 10여 년간 급속히 도시화되면서 유입 인구 면에서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현재 90만을 넘어선 인구는 10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2020년이면 인구 1백20만명의 도시로 성장할 전망이다. 쾌적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속속 찾아들기 때문에 단독주택과 아파트, 빌라가 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처인구보다 기흥구와 수지구 쪽에 많다. 앞으로도 기흥구 흥덕지구·서천지구에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이 다수 세워질 예정이다.
그 밖에도 골프장 26개와 호암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등 박물관·미술관 18개와 스키장, 휴양콘도미니엄이 있어 외지인의 왕래가 빈번하다. 특히 한국민속촌과 에버랜드에는 매년 1천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용인시는 또한 여러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자연박물관이다. 조선 기호학파의 산실로 예학(禮學)의 본향이며 포은 정몽주, 정암 조광조 선생이 묻혀 있는 유학의 성지이다. 곳곳에 충신과 용장의 묘역,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자 가마터, 향교, 서원, 구석기 고인돌인 모현지석묘, 사찰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생가, 김수환 추기경의 묘역 등 가톨릭 성인들의 숨결이 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유서 깊은 역사와 수려한 풍광을 찾아 용인에 둥지를 튼 외지인 숫자가 원래 주민들에 비해 월등히 많다 보니 그 실태를 일일이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개략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이들 중 대다수가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을 형성하는 계층이고 상당수는 사회 각 분야에서 여론을 주도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직업별로는 전·현직 공무원, 기업 임원, 예비역 장성, 교수·학자, 문화예술인, 체육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히 일부가 파악된 것이기는 하지만 현 18대 국회의 이춘식 한나라당 의원(비례대표), 김옥이 한나라당 의원(비례대표), 이두아 한나라당 의원(비례대표)이 용인에 거주하고 있다. 관계와 법조계 인사로는 최각규 전 경제부총리,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 윤관 전 대법원장, 정구영 전 검찰총장, 권영해 전 안기부장, 황영시 전 감사원장,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양성철 전 주미 대사, 강동석 2012여수엑스포 조직위원장, 최종수 한국광해관리공단 이사장이 있다. 재계에서는 강신익 LG전자 사장, 홍봉철 전자랜드 대표이사 회장의 이름이 보인다. 윤용남 전 합참의장,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 조재토 전 2작전사령관 등 상당수의 예비역 장성들이 용인에 살고 있다. 임권택 영화감독, 탤런트 송재호·서인석·정애리·심양홍·임동진 씨, 개그우먼 김미화씨, 뽀빠이 이상용씨, 성악가 김동규씨 가수 신중현씨 등 많은 문화예술인이 용인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체육인으로는 김인식 한화이글스 고문, 프로골퍼 신지애씨도 있다. 최태순 무형문화재 악기장(가야금 제작), 이형열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종묘제례)도 용인시민이다. 용인시 선거구는 현재 처인구·기흥구·수지구 3개 구로 나뉘어 있다. 17대 때 용인 갑과 을의 2개 선거구였던 것이 인구 증가에 따라 한 개 구가 더 늘어난 것이다. 17대 당시 용인 갑은 우제창 의원, 용인 을은 한선교 의원이었다. 처인구에서 18대 총선을 치른 통합민주당 우제창 후보가 여유현 한나라당 후보(현 한나라당 처인구 당협위원장·오디세이아 대표이사)와 친박연대 이우현 후보(용인시 생활체육협의회장)를 누르고 재선의 영광을 안았다. 용인에서 출생한 우의원은 중동고-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중국경제학)를 취득했다. 은행원과 연세대 교수를 지내고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17대 국회에 입문했다. 18대 국회에 들어서는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원내대변인, 정책위 수석부의장을 차례로 지낸 정책통이며 6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 의원(국감 NGO모니터단), 입법 발의 우수 의원(경실련)으로 뽑혔다. 수지구의 한선교 의원은 MBC 아나운서 출신의 재선 의원이다. 17대 총선에 한나라당 공천으로 용인 을에서 당선되었으나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과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17대 의원을 지낸 윤건영 후보에게 공천을 뺏기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한나라당으로 복당했다. 방송인 생활을 하면서도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6대 총선 때도 한나라당의 영입 대상이었지만 가족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가 17대에 이르러 결행을 했다. 한의원은 지난 6월 한국농구연맹(KBL) 제7대 총재로 선출되어 오는 9월1일부터 KBL을 이끌게 된다. 임기는 3년. 전육 현 총재를 물리치고 차기 총재로 결정되었다. 현역 국회의원이 KBL 총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소문난 농구 마니아로서 일찍이 중앙 일간지에 농구를 소재로 칼럼을 연재한 적도 있다. 6월은 한의원에게 행운과 구설이 겹친 달이다. 법률소비자연맹이 주관하고 대한민국헌정대상위원회가 주최하는 의정 활동 종합 평가에서 ‘제18대 대한민국 헌정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또한 얼마 전에는 KBS 수신료 인상안과 관련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의 비공개 회의록을 입수·공개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기흥구의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검사 출신의 초선 의원이다. 성동고-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광주·울산·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했다. 17대 총선 때 고향인 논산에서 출마하려 했으나 한나라당 공천이 불발에 그쳤다. 그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정치인에 줄 대려는 정치 검사에 실망했다”라는 ‘사직의 변’을 올려 화제가 되었었다. 자신의 장점이 ‘솔직’이라고 말하는 그는, 책을 내며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출판기념회는 사실 자신을 알리고 돈을 걷는 편법”이라고 대놓고 말할 만큼 직선적이고 할 말은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다. 검찰 선배인 홍준표 신임 한나라당 대표와 가깝다.
김학규 용인시장(민주당)은 용인에서 태어나 신갈초등학교와 수원중고-강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고향에서 개인 사업과 사회단체 활동을 하고 경기도의회 의원을 지냈다. 5공 때부터 시작해 여주·이천·용인에서 4선 의원을 지낸 정동성 전 의원의 지구당 사무국장으로 정당 활동에 관여했으나 제5회 지방선거에 이르러서야 시장에 당선된 늦깎이이다. 33세의 나이에 정계에 입문해 4선을 기록하고 7월4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대열에 진입한 남경필 의원(수원 팔달구)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부친인 남평우 전 의원의 출생지가 용인이다. 이 지역 출신으로 정치에 뜻을 품은 몇 사람이 있다. 민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보좌역, 국민회의 중앙위원,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등을 지낸 김학민 도서출판 학민사 대표는 16대 총선 무소속 출마, 18대 총선 예비후보(통합민주당·용인 기흥구), 5회 지방선거 예비후보(민주당·용인시장)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투옥되어 27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정찬민 전 한나라당 경기도당 대변인(전 중앙일보 기자)은 18대 총선 예비후보(한나라당·용인 기흥구), 5회 지방선거 예비후보(한나라당·이천시장)였다. 한 시대 중앙 언론계의 중진으로 자리 잡았던 두 인물이 있다. 이웅희 전 의원과 신동호 전 스포츠조선 사장이 그들이다. 이의원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언론계에 들어가 동아일보 편집국장까지 지내고 관계로 옮겨 청와대 대변인과 MBC 사장을 거쳐 문화공보부장관을 지냈다. 고향인 용인에서 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국회 재경위원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신사장은 조선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신문사 생활을 거의 전부 사회부 기자로 지냈다. 약관 33세에 사회부장으로 발탁되고 편집국장을 두 차례 지낸 것도 파격이었다. 30년간의 조선일보를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마치고 스포츠조선을 창간했다. 조부가 여주·이천 군수를 지내고 부친이 용인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한, 용인 터줏대감이라면 터줏대감이다. 외무부 차관과 주독일 대사를 역임한 신동원씨가 신사장의 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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