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도장(粧刀匠)
孤竹, 최종 수정일 : 2003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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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환도(環刀)의 제작 전통은 완전히 끊어진 반면에 장도(粧刀) 제작의 전통은 다행스럽게도 각 지방의 장인의 손에 의하여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장도를 찾는 사람은 점차 줄어만 가고 장도는 그저 장식품이나 외국인에 대한 선물용으로 소량이 제작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전라도 지방의 장도 제작 기술은 박용기(朴龍基)옹과 한병문(韓炳文)옹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으로 지정됨에 따라서 연구 자료도 누적되었고 전수생을 통한 계승도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경상도 지방의 대표적인 장도인 울산(蔚山) 병영(兵營) 장도는 세인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연구 자료도 부족하고 맥이 끊겨버릴 것을 염려할 정도로 수요도 부족한 실정이다. 다음에서는 장도장 임원중(林元重)옹을 중심으로 울산 병영의 장도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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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1. 병영(兵營) 장도의 역사
2. 임원중(林元重) 장도장
3. 임원중(林元重) 장도장의 작품
4. 병영(兵營) 장도의 제작과정
5. 다른 지역의 장도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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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영(兵營) 장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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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蔚山)은 고대로부터 철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울산울주향토사(蔚山蔚州鄕土史)에 의하면 울주군 달천(達川)의 철광은 인조(仁祖)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구충당(求忠堂) 이의립(李義立)이 처음 발견하였다고 하였지만 그로부터 훨씬 이전 시기에 이미 달천산(達川山)은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철산지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울산군 토산조에 의하면 달천(達川)에 철장(鐵場)이 있어서 세항(歲項)이 매년 생철 1만2천5백근(斤)이라고 하였고 동국여지승람의 울산군 토산조에는 수철(水鐵)이 달천산에서 난다고 하였으며 조선 말기의 여지도서와 조선총독부 간행의 「조선의물산(朝鮮の物産)」에서는 달천에서 토철(土鐵)이 난다고 하였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철 뿐만 아니라 장도 제작에 필요한 백통이 일찍 부터 생산되었는데,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종 20년(1438년)에 경상도 채방별감(採訪別監) 백환(白環)이 울산군(蔚山郡) 달천(達川)에서 백동(白銅)을 채굴하여 구리 1근에 백동(白銅) 8냥쭝을 섞어 쇠돈을 만든 기록이 있다. 따라서 울산지역은 이미 조선 초기 부터 장도 제작에 필요한 철과 백통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조선 태종 17년(1417)에 지금의 울산시 병영동(兵營洞)에 경상좌병영(慶尙左兵營)을 설치하니 이로부터 병영 지역에 군수산업이 발달하고 많은 야장(冶匠)들이 창검과 총포를 제작하게 되었으며, 야장들이 생계를 위하여 장도와 담뱃대, 기타 금속 세공품을 제작함에 따라서 이 지역이 경상도의 대표적인 장도 제작 중심지가 된 것이다. 조선 말기 까지만 해도 이 지역에서는 수 많은 공방에서 장도와 환도가 제작되었으며 병영 장도의 명성은 한양까지 미쳤다. 하지만 장도의 수요가 점차 줄어들고 울산이 공업단지로 개발됨에 따라서 장인들은 이리저리 하나 둘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울산에서 장도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은 거의 사라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임원중(林元重)옹등이 평생을 울산 병영을 떠나지 않고 50여년 동안 고집스럽게 장도제작에 매달린 까닭에 울산 병영의 장도 제작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울산 병영은 철과 구리, 백통의 산지답게 은장도와 백통장도가 유명하였고 특히 흰 백통 바탕에 은(銀)과 오동(烏銅)으로 상감하여 문양을 넣는 기술이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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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원중(林元重) 장도장 :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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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중(林元重) 장도장
칠순이 지난 나이에도 정정하신 모습으로 한평 남짓의 좁은 공방에서 장도를 직접 제작하시고 계신다.
올해 연세가 74세이신 장도장 도천 임원중(林元重 : 고려민예사)옹은 1930년에 출생하였으며 울산 병영에서 장도 공방을 운영하던 임인출(林仁出)씨에게서 장도와 은삼동구리(담뱃대), 자물통, 기타 은제품 제작기술을 전수받았다.
임원중옹의 사촌형이자 스승이신 임인출(林仁出)씨는 일제시대에 병영에서 장도와 담뱃대 등을 제작하다가 1940년대 들어서 일제에 의해 장도 제작이 금지되자 산속에 숨어서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결국 공방의 유지가 곤란해지자 공방을 닫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은세공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해방 직후인 1946년에 다시 울산으로 돌아와 공방을 열었다. 임인출씨는 이 때 사촌동생인 임원중옹에게 장도일을 권유하여 자신의 공방에서 일을 하도록 하였으며 자신은 1950년 초에 대구로 옮겨갔다. 임인출씨가 대구로 옮긴 후 울산에 혼자 남은 임원중옹은 몇달간 혼자 공방을 유지하다가 육이오사변이 일어나자 1950년 8월 군에 입대하였으며 1952년 제대후 다시 일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울산시 중구 서동 518번지의 공방에서 계속 장도를 제작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울산에 공단이 조성되고 판로가 막히면서 병영의 장도 제작은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경제개발과 함께 비싼 은장도가 한달에 30 ~ 40개씩 팔려나가기도 하였으나 이 또한 점차 줄어들어 현재는 한 달에 10개 가량의 장도가 제작될 뿐이다.
1993년 12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 지정된 임옹은 울산광역시 승격과 함께 1997년 10월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1호가 됐으며 현재 울산시 중구 서동 518 에서 여전히 작업중이다. 아버지 임원중옹으로부터 8년에 걸쳐서 장도 제작기술을 전수받고, 다른 장인으로 부터 금속 조각기술까지 익힌 바가 있는 둘째 아들 임동훈씨(32)는 공예대전 등에서 수차례 특선과 입선을 하였으며 현재는 전수생 자격을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주소 : 울산시 중구 서동 518
전화 : 052-293-5543. 017-587-0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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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원중(林元重) 장도장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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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중옹의 장도는 경상도 병영 장도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볼 때 병영 장도는 장식과 조각이 화려하지 않고 비교적 단순하고 투박한 편이다. 칼끝의 형태는 전라도 장도와 달리 환도처럼 둥그스름하게 솟아 올라가며 칼 날의 한쪽(끝볼)은 평조로 갈아내고 다른 한쪽(안볼)에만 턱을 두어 실용성을 더했다. 두겁 위에는 대부분 오동으로 상감을 넣는데, 학과 파초, 그리고 천하일품(天下一品) 군자보도(君子寶刀)라는 글자가 새겨진다. 메뚜기는 세밀한 조각을 넣지 않고 그냥 은판을 말아서 단순한 형태로 만든다.
<오동상감을자도(烏銅象嵌乙字刀)>
전체 길이: 15㎝ 가격: 170,000원
은판을 버선꼴로 오려 칼몸을 만들고 그 위에 사군자를 조각했으며 두겁(원장석)에는 오동(烏銅)으로 상감을 넣었다.
<까치 장도>
전체 길이:15㎝ 가격:300,000원
을자도의 자루와 칼집 위에 은을 씌운 모습이 마치 까치의 머리와 같다고 하여 까치 장도라고 한다. 은으로 틀을 만들고 그 안으로 나무자루를 끼워 넣는다.
<흑감나무 장도>
전체 길이:18㎝(大), 15㎝(中) 가격: 大(200,000원), 中(150,000원)
흑감나무는 목장도의 재료중에는 일품으로 치는데 현재는 흑감나무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흑감나무는 오래된 감나무의 심재(心材)로서 먹감나무, 흑시(黑枾), 오시목(烏枾木)이라고도 하며 단단하고 고와 세공물(細工物)을 만드는 데 쓴다.
<향(香)나무 을자도(乙字刀) >
전장길이: 大(18㎝), 中(15㎝), 가격: 大(180,000원), 中(150,000원)
향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패용시 은은한 향기가 몸에 배인다.
<골장도(骨粧刀)>
전체 길이:15㎝ 가격:250,000원
골장도는 소의 앞 다리뼈로 만든 장도이다. 단단하고 손에 잘 붙는다.
<오동상감일자도(烏銅象嵌一字刀)>
전체길이:18㎝, 가격:300,000
은으로 몸체를 만들고 두겁 위에 오동으로 상감한 원형 일자도이다. 남성용으로 가장 잘 나가는 물건이다.
<매미장도>
전체길이:12㎝, 가격:450,000원
매미장도란 젖가락을 칼집의 안쪽에 끼워 넣는 방식의 장도를 말한다. 이 장도는 몽개 장도 방식의 짧고 단순한 두겁이 붙어있다.
<팔각첨자도(八角籤子刀)>
전장길이: 18㎝, 가격:500,000원
젓가락[籤子]이 달린 팔각 장도이다.
<팔각첨자도(八角籤子刀)>
전체 길이:18㎝, 가격:500,000원
젓가락[籤子]이 달린 팔각 장도이다. 칼날의 형태가 전라도 장도와는 사뭇 다르며 전통 환도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칼날 위에는 군자도(君子刀)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있다.
<오동상감팔각도(烏銅象嵌八角刀)>
전체 길이: 18㎝, 가격:400,000원
남성적이고 단단한 느낌이 드는 팔각 은장도이다.
<팔각목장도(八角木粧刀)>
전체 길이:18㎝, 가격:350,000
나무로 만든 팔각장도이며 소박하고 남성적인 느낌이 든다. 원장석에는 군자보도(君子寶刀)라는 글자가 오동 상감되어 있다.
<팔각일자도(八角一字刀)>
전장길이:18㎝, 가격:400,000원
병영장도의 왼쪽 칼날은 완전히 평조로 갈려져 있다. 젓가락을 끼울 수 있도록 뒷매기에 홈이 하나 만들어져있다.
<대검(大劍)>
길이 : 50 cm, 폭 :3 cm, 높이 :3 cm
무게 : 평균 1.2 Kg, 가격 :1,300,000원
이 칼은 무게가 무려 1.2k이나 되고 길이는 50cm 정도 되는 대형 장도이다. 이는 전통적인 장도는 아니지며 임옹이 새롭게 시도해본 양식이다. 군인이나 경찰 계통에 있는 분들이 선호랄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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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병영 장도(粧刀)의 제작(製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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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장도는 원래 도자장(刀子匠), 소목장(小木匠), 조각장(彫刻匠), 백동장(白銅匠)이 제각기 맡은 부분을 제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한사람이 이 모든 기능을 담당하기 시작함에 따라서 장도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은 과거만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장도장은 혼자서 은판 외형뜨기, 조각과 용접 등 총 100여 단계의 세부공정을 모두 수작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은장도 하나 만드는 데는 보통 하루에 10시간씩 4일이 걸린다. 다음은 임원중옹의 설명을 근거로 하여 필자가 정리한 병영 장도의 제작과정이다.
1) 은장석의 제작
- 도가니에 은을 녹이고 틀에 부어 가락을 만든 뒤 모루에 놓고 계속 두드려서 넓이 6 ~ 7cm, 두께 0.6 ~ 0.8mm 정도의 은판을 만든다.
은괴
도가니
은판
- 은판을 버선꼴 모양으로 재단한다. 그리고 이 은판 위에 끝이 가느다란 정으로 여러가지 무늬를 새겨 넣는다.(요즘은 은장도의 형태를 다 만든 후 그 표면에 조각을 하기도 한다.) 조각이 끝나면 은판을 장도 모양으로 오목하게 파인 틀에 대고 두드려 칼자루와 칼집의 형태를 갖춘다. 나머지 장석을 제작하기 위하여 은판을 직사각형으로 재단하여 두겁(원장석), 앞매기, 뒷매기, 띠, 설경, 딱까리를 만든다. 장도 작은 것에는 은 한냥, 큰 것은 두냥이 든다.
버선꼴 재단
용조각
오목틀에서 빼낸 자루 장석
- 칼자루와 칼집, 그리고 둥글게 말아 놓은 두겁, 앞매기, 뒷매기, 띠의 접합 부위에 붕사를 바르고 은땜을 한다. 은땜은 순은만을 사용하며 가스 토치로 순간 가열하여 은과 붕사가 섞여 끓어오르게 한다. 은땜이 끝난 원장석, 앞매기, 뒷매기, 사발이는 쇳대에 감고 나무망치로 두드려 형태를 잡고 사포로 곱게 갈아서 표면을 마무리한다.
- 장석의 표면에 오동 상감을 한다. 오동 상감은 구리에 금 3%를 섞어서 만든 진오동을 사용한다. 우선 얇은 오동판을 만들어서 이것을 납판 위에 놓고 무늬가 새겨진 정으로 두드려 문양을 떼어낸다. 그리고 이 문양을 상감하고자 하는 부위에 얹어 놓고 은땜을 한 후 망치로 두드려 넣는다. 새겨지는 무늬는 파초와 학, 그리고 가운데의 네모 모양인데, 가운데 네모 모양의 오동상감 안에는 다시 은을 붕사와 함께 녹여서 <天下一品 君子寶刀>라는 글자를 새겨 넣는다.
오동 무늬 따기
쇳대
완성된 은장석
- 은판을 자르고 한 쪽을 둥글게 말아서 메뚜기를 만들고 두겁 위에 얹어 은땜을 한다.
- 왕매기를 두겁 위에 끼운다.
- 국화 문양을 은판에서 따서 오목한 꽃잎을 모양으로 만들고 구리 못으로 칼집에 고정시킨다.
- 칼집과 칼자루에 앞매기와 뒷매기를 끼운다. 빈 부분에는 딱가리를 대고 땜을 한다.
2) 칼집과 칼자루의 제작(목장도의 경우)
- 나무는 먹감나무가 가장 좋으며 그 다음으로 대추나무나 향나무가 좋다. 가장 하급품은 감나무를 불에 그을려 검게 만든 것이다.
- 나무를 재단하여 대패로 표면을 대충 깎는다.
- 칼날과 슴베가 들어갈 부분에 활비비로 구멍을 뚫고 거도(鋸刀)로 속을 긁어 낸다. 거도는 등거도와 날거도가 있다.
- 속을 다 판 후에는 겉을 대형 거도로 문질러 형태를 잡고 사포로 표면을 다듬는다.
먹감나무 소재
소형 대패
거도
3) 칼날 제작
- 병영장도의 칼날은 원래 참쇠나 뽕쇠 등으로 만들었으나 현재는 철도 레일을 잘라서 만든다. 레일중에도 특히 경도가 높은 윗부분을 사용한다.
- 철조각을 화덕에 넣고 풀무질을 하여 가열한 후 모루 위에 놓고 두드려 칼날의 형태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약 10 ~ 20여회 정도 재가열이 이루어진다. 단조를 할 수록 쇠가 가늘어지는데, 마지막 남은 속 고갱이 쇠가 좋다고 한다.
- 칼날이 형태가 잡히면 가열한 후 짚이나 소쿠리로 덮어 몇시간 정도 서냉을 하는데 이를 "시름 놓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칼날은 풀림이 되어 가질이나 조각이 수월해진다.
- 칼날을 깎칼로 다듬고 줄과 숫돌로 다듬어 기본적인 형태를 모두 갖추도록 한다. 그리고 이 때 칼날 위에 명문을 새겨 넣는데 남성용의 경우는 군자도(君子刀), 여성용의 경우 일심도(一心刀)라고 새겨 넣는다.
- 칼날과 칼자루를 잇는 부분에 주석막이를 만들어 끼운다.
화덕
모루
칼날
4) 담금질
- 담금질은 황토를 뻑뻑하게 탄 물(황토:물 = 3:7)에 한다.
- 담금질을 할 때 전라도 장도는 칼날의 1/4 정도에 된장을 바르고 칼날 부분만을 물에 담그는 반면 경상도 장도는 칼날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칼날 전체를 물에 담근다. 이렇게 하면 부분 담금질에 비해서 칼날이 단단해지는 반면에 부러질 위험이 커진다. 담금질 과정에서 10 개의 칼날중 1 ~3 개는 날이 터지거나 휘어서 버리게 된다고 한다.
5) 조립과 마무리
- 송진을 불에 녹여서 칼자루의 구멍 안에 넣고 슴베(수메라고도 부른다)를 끼워 넣어 굳힌다.
- 메뚜기에 고리와 매듭을 달아주고 천으로 전체를 깨끗이 닦아준다.
- 전라도 은장도는 모래마치로 은의 광택을 죽이는 반면에 병영 장도는 잘 문질러서 광택을 낸다.
- 요즘은 외장이 다 완성된 후 장도를 바이스에 물리고 표면에 조각을 넣기도 한다.
장도를 물리는 바이스
최종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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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른 지역의 장도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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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용기(朴龍基) :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전남 광양 장도장
박용기(朴龍基)옹
금은장매조갖은을자도
광양의 장도장 도암 박용기옹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웃에 살던 고종 사촌누님의 친척인 장익성(張益成) 선생을 찾아가 장도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겨우 1년만에 스승이 돌아가시자 스스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철 다루는 법을 배우고 다른 지방의 장도 제작 기법을 배웠으며 마흔이 넘어서야 자기 이름으로 다양한 양식의 장도를 제작하여 세상에 내 놓았다. 현재 박용기옹이 제작한 장도의 종류만도 수백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하며 전남 광양시 광양읍 구산리 385번지에서 작업중이다. 박용기옹은 사재를 털어 장도 전통을 잇기 위한 박물관 건립에 전력하고 있다. 박용기옹이 제작한 장도의 칼날에는 일편심(一片心)과 용(龍)자를 새긴다.
2) 한병문(韓炳文) :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전남 곡성 낙죽(烙竹) 장도장
한병문(韓炳文) 장인
낙죽 장도
중요 무형문화재 제60호인 한병문 선생은 13세부터 증조부 한기동씨로 부터 낙죽(烙竹)장도 기법을 배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기능보유자이다. 백제의 문화유산으로 알려진 낙죽장도는 15㎝ 내외의 대나무 표면에 인두로 구름, 산수, 사슴, 매화등 무늬을 새겨 넣고 깨알같은 글씨로 중국 왕원지(王元之)의 황주죽기(黃州竹記)를 써 넣는다. 칼날 표면에는 금 상감을 하여 장식한다. 대나무는 2 ∼ 3년생으로 마디가 촘촘한 뿌리 부분을 사용하며 일곱마디 이상의 흠 없는 것을 골라 쓴다. 부재료로는 순금, 은, 특수강철, 소뼈, 소뿔, 먹감나무, 부래풀, 사슴가죽 등이 사용된다. 낙죽 장도중에도 특히 경인일에만 제작한다는 경인도(庚寅刀)는 한가지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선생은 이 경인도로 "동아공예대전" 대상을 받았으며 1978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았다. 선생은 현재도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공복리에서 여전히 전수생들과 작업중이다.
3) 김일갑(金一甲) :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5호 영풍 장도장
김일갑(金一甲) 장인
장도들
장도장 김일갑(金一甲)옹은 5대에 걸쳐 영주 봉현면 오현리에서 거주하다가 1935년 15세때 영주시 영주동에서 스승 유덕목(柳德睦)에게서 장도 제작기능을 전수받았으며, 1946년에 경북 영주시 풍기읍 동부2리 547로 이사온 후 지금까지 장도장으로써 작업을 하고 있다. 영풍장도의 특징은 우골과 우골 사이에 대추나무나 서각을 붙여 모양을 만들며 보래 없이 장식을 만든다는 점이다. 칼날에는 <치천금(直千金) 소백(小白)>이란 글자를 새긴다. 현재는 제자 이면규씨 등이 대를 잇고 있다.
4) 임차출(林且出) :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진주 장도장
임차출(林且出) 장인
원형은장도
장도장 무도(撫刀) 임차출(林且出, 고려은장도 공방)옹은 장도의 명산지인 울산(蔚山) 병영(兵營) 출신으로 1938년 ~ 1947년까지 스승 김말호(金末鎬)에게서 장도를 익혀 그곳에서 장도를 제작하다가 진주(晋州)로 이사하여 공방을 차리고 은장도를 만들고 있다. 1987년 5월 19일 경상남도 지방무형문화재 제 10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진주시 상대1동 573번지에서 작업중이며 장남 임장식이 1980년 7월부터 현재까지 전승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