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역사올레(1) - <한국전쟁>
2019년 6월 16일(일) 운정 행복센터 앞 버스에 올랐다. 우연하게 발견한 파주 역사올레 <한국전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집합 장소를 제대로 몰라 조금 헤메다 오른 버스에는 중학생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올레 참가가 봉사점수를 인정해준다는 조건 때문에 한 반이 전체로 참가하고 있었다. 중학생을 제외하고는 가족이 하나, 개인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2-3명 정도 보였다. 생각보다 시민들의 참여가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중학생들 때문에 차량의 좌석은 가득 찼다.
첫 번째 간 장소는 한국전쟁 때 학살당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장소였다. 38선과 휴전선을 가까이 두었던 파주는 어느 지역보다도 민족적, 역사적 비극을 갖고 있다. 한국전쟁을 시기별로 분류할 때 파주는 전쟁발발 후 북한세력이, 그 후 남한세력이, 다시 북한과 중국 세력이 지배하던 지역이었다. 그 과정에서 반대 세력에 조금이라도 협조한 사람들은 적에 대한 부역자로 살해되었다. 파주 곳곳에서 학살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수많은 죽음 중에서도 그나마 흔적이 남은 사람들은 공산군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 뿐이었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냉전은 남한세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죽음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파주의 한국전쟁 관련 장소는 특별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 외국의 병사와 관계있다는 점이다. 삼국시대부터 치열한 전쟁의 중심지였던 파주 적성의 칠중성은 한국전쟁 때에도 남과 북의 동맹군으로 참여했던 영국과 중국의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인해전술로 밀려오는 중국군을 소수의 병력으로 방어했던 영국군의 투지는 서울 방어에 큰 역할을 했다. 칠중성 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후퇴하게 된 영국의 글로스터스 연대는 설마리에서 다시 방어진을 치고 중국군의 공격을 막는다. 결국 영국군은 대부분 전쟁포로로 잡히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영국군이 보여준 저항의 힘은 전쟁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칠중성과 설마리의 전쟁 유적지를 살펴보면서 비극적인 20세기의 이념적 경쟁과 순수했던 인간애를 확인하게 된다. 비록 국가의 명령을 따랐지만 이들은 자신의 참전이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자유와 인민의 가치를 지키는 작업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소중한 가치와 이념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신념에 불타기도 하였다. 그것은 스스로 믿는 가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다. 하지만 이념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권력과 지배를 위한 허구적 이데올로기였으며 인간에 대한 착취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행위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열정은 수많은 시각에 의해서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어쩌면 영국과 중국에서 파병된 병사들은 자신의 땅도 아닌 곳에서 자신의 물질적 안정망도 아닌 것을 지키기 위해 추상적 세계에 복무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20세기는 그러한 시대였다. 개인의 행복과 개인의 존재보다는 개인이 살아가야 할 공동체와 국가의 가치를 위해 개인의 신념을 일치시키는 시대였다. 그것은 함부로 현재의 시각으로 평가할 수도 없으며 그 자체의 행위를 무작정 비난해서도 안 된다. 은폐와 허구로 개인을 종속시킨 권력에 대한 비난과 그것에 따랐던 순수했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마지막으로 간 북한군과 중국군의 묘지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남쪽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죽인 적군을 안장해주었다는 사실에 전쟁의 희생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쟁의 본질을 생각할 때 우리의 분노는 전쟁을 일으킨 권력자들에게 향해야 한다. 전쟁의 참여해 상대들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병사들은 모두가 전쟁의 희생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외부에서 만들어 놓은 게임판에서 탈출할 수 없었고 생존을 위해서 전쟁의 규칙과 법칙을 따랐으며 그 과정에서 상대를 죽였고 또한 죽어갔던 것이다.
최근 남북관계의 개선에 의해 여당 정치인들의 북한/중국군 묘지에 대한 관심이 불편한 보수적인 시민들에 의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의 냉전 상태는 문제를 냉정하게 판단하게 만들기 어렵게 만든다. 적으로 참여했던 군인들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는 분명 중요한 일이면서도 이것이 지나치게 앞선 정책으로 제시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정책은 천천히 후퇴하지 않는 속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아직도 상존하고 맞부딪히는 상황에서 지키고 보존해야 할 영역과 바꾸고 변화시켜야 할 영역을 현명하게 구분하고 변화의 속도에 맞춰 변화시켜야 한다. 섣부른 변화는 오히려 변화시켜야 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우리의 목표가 분명한 인간의 자유와 평화라면 그것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며 많은 사람들이 수용하고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군과 중국군 묘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보호되고 지켜져야 하는 공간이지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거론되어서는 안 될 장소이다.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우선 순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파주의 한국전쟁 유적 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인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었다. 탑사에 참여한 한 중학생이 강사에게 집요하게 물어보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이 결국 우리에게 피해를 준 것은 분명하지 않는냐? 북한은 변하지 않고 있는데 왜 우리가 먼저 북한에게 많은 이익을 주려 하는냐?’라는 말은 남북 관계에 내재되어 있는 깊은 갈등의 흔적을 젊은 세대에게 확인할 수 있는 의식이었다. 그들에게 자신의 것을 희생해서라도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요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희생의 대상이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들이라면 그것은 더욱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무관심한 아이들에 비하여 피곤할 정도로 특정한 의미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남북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내부적 설득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첫댓글 예측할 수 없는 역사의 변화, 그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 트럼프와 김정은, 그리고 문재인의 역사적 기록은 어떻게 될지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