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잠옷 / 정종열
바이오 세라믹 금사로 짠 러닝과 사각팬티
과학적인 설계로 인체 건강에 암 좋다기에
중소기업 행사장에서 한 벌 구입했다
가격도 만만찮은 이십만 원대
몇 번 입고 나더니 우리 집 아담
까칠한 느낌 때문에 안 입는대요
'안 입으면 내가 입지 뭐'
가위로 싹둑 어깨 위를 자르고
아래에 고무줄을 넣고
사각팬티는 뜯어서 주름을 잡아
위 아래옷을 이어 붙여
튜브형 원피스 잠옷이 되었다
선물포장용 금색끈으로 리본꽃을 만들어
머리띠에 달았다
그걸 입고 빙그르르 돌아보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무슨 요정인줄 알아?
까르륵 까르륵 웃고
침대에 누워 있는 아담은
식빵피자를 구울 때 전자렌지 앞을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닮았다
아담의 사과는 위 아래로 움직인다
<제25회 영주 죽계 백일장 참방>
수수께끼 / 정종열
어느 날 오후
아들이 수수께끼를 일방적으로 쏟아낸다
"세상에서 제일 큰 코는?
멕시코"
"겁쟁이들이 먹는 포는?
공포"
"맞으면 맞을수록 좋은 것은?
100점"
"사람이 두 명 있는 한자는?
어질인(仁)"
"돌담이 무너지는 한자는?"
"엄마! 돌담이 무너지는 한자는?"
대꾸해 주다가
저녁준비를 하며 씻어놓은 젖은 쌀을 잊고 열판에 부어버렸다
그봐 뭐랬니? 나가 놀라 그랬지!
소리를 꽥 지르자
가분이 상했는지 쿵쿵쿵 발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녁상은 차려지고
아들을 부르며 방으로 간다
.
.
.
돌담이 무너지는 한자는?
사라진 것들 / 정종열
이게 뭘까?
애플그랜색의 끈을 풀었더니
몽실몽실 꽃은 없어지고
기다란 자루만 남았다.
계란을 3개씩 담아 볼까?
마늘을 넣어 창고에 걸어 둘까?
하다가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묶어 놓았지만
처음처럼 예쁘진 않았다
마트에 갔다. 샤워볼이 보였다
먹이를 발견한 허기진 짐승처럼
눈이 반짝였다
네개를 주워 담는다
오늘은 그만 쇼핑 끝
포식한 사자처럼
뱃속이 간질간질 웃는다
야무지게 묶여진 짙은 코발트색, 살구색, 연핑크색, 애플그린의 샤워볼
<시작노트>
나와 글과의 만남은 아이를 기르며 내 아이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이다. 육아에 관한 책을 보면서 큰 아이의 잠재교육과 둘째 아이의 태교를 동시에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 주기에서 7. 5조의 문장읽기와 한자카드놀이, 그랜드만 박사의 도트 카드읽기, 음악은 동요, 찬송가, 클래식음악 듣기 였고, 식사 기도송을 따라하게 하였고, 기분 좋은 꽃향기도 맡게 하였다. 육아 체험수기를 써서 보냈는데 활자화가 되어 다음호에 실려 왔다.
그 이후 산북교회 주일학교 유치부를 맡았는데 성탄절이 다가오면 유치부는 첫인사를 한다. 인사말을 써서 맡은 아이의 손에 쥐어 주어 외어우게 하였다. 그 아이중 하나가 이제 성인이 된 금산님의 딸이다. 금산님은 남편의 친구였고 백화문학 책을 주셨고, 아내인 진아엄마는 나와도 친구가 되었고, 친구를 통해 내 육아체험 수기를 금산님이 보시고, 매년 영신숲에서 실시하는 백산여성백일장에도 참가하게 하셨다. 상큼한 잔디 내음과 햇살과 구름과 상쾌한 바람 맞으며 아는 사람들과 수다도 떨며 하루를 보냈었다.
그날 중학교때 단짝친구였던 김숙자 시인을 만났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요즘은 아이들에게 영. 수를 가르친다고 했다. 그럼 내 아이의 공부도 봐 줄겸 놀러오라고 했다. 마침 비어있던 컨테이너에 꽃방을 마련해 두었는데 나에게 꽃꽂이를 배우라고 하였더니 그러자고 하였고 나를 만나면 시인친구가 쓴 자작시를 낭독해 주곤 하였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글사냥문학회에 회원가입하여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