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마음을 체험하며
- 알레그리의 미제레레(Miserere)
그리스도교회에서는 지금 이 시기를 사순 절기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 40일 간을 절제와 근신의 시기로 삼고,
평소와는 무언가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며 살도록 가르치고 있는 시기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이 시기에 매일 교회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배와 기도를 드리고요,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금식과 구제 헌금을 바치기도 합니다.
또 여러 단체별로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신과 가족 그리고 교회 공동체
더 나아가서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를 매일 바치곤 합니다.
이런 사순 절기에 들으며 마음을 다잡을 만한 곡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음악에는 완전 문외한이기에 그럴 능력은 없고요,
다만 이 시기에 자주 듣는 곡을 잠시 소개하는 선에서 변죽만 울리고자 합니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의 ‘미제레레(Miserere)’라는 곡이 있습니다. 아마 찾아서 들으시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음직한 곡일 것입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에서 거행되는 고난주간 미사 때, 교황청 합창단을 위해 작곡한 곡으로 알레그리는 이 곡 하나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됩니다.
다윗의 참회시로 알려진 시편 51편의 내용에 곡조를 붙인 것인데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를 취한 후에 예언자 나단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죄를 간절히 참회하며 지은 이 시편 51편은
전통적으로 고난주간에 낭송되거나 노래로 불려졌다고 합니다.
미제레레(Miserere)는 라틴어로 "불쌍하게", "가련하게"라는 뜻이 담긴 단어로
성공회 기도서에서는 ‘하느님, 선한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시작됩니다.
해마다 이 곡은 고난주간 동안 시스티나 성당에서
5부 아카펠라 합창으로 불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곡을 듣고 감명 받은 교황이 악보를 시스티나 성당 밖으로 반출하는 사람은
파문시키겠다는 엄명을 내렸다고 하죠.
그래서 오랫동안 교황청 안에서만 연주되다가,
그 유명한 모짜르트가 단 한번 듣고 암보하여 악보로 옮겼다고 합니다.
현재 이 곡을 제일 잘 소화하는 사람들은
탈리스 스콜라스(The Tallis Scholars, 1973년 창단)라는데 이견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16세기 영국 르네상스 음악을 주도했고,
특히 교회 음악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작곡가 토마스 탈리스(1505년~1585)의
이름에서 따온 이 팀의 주요 레퍼토리이기도 합니다.
이 곡을 듣다보면 정말 영혼을 울리는 곡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웅장한 울림이 있는 교회에서 점차로 촛불이 하나씩 꺼져 어두워져 가며
예수님의 고난을 함께 체험해 봅니다.
...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 ‘미제레레’를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고 고통 속에서 은총을 비는 것’이라 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곧 빛이 점점 사라져 깊은 어둠과 침묵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도 번잡하고 너무도 많은 말을 듣고 하며 살고 있습니다.
잠시 멈춰서서 지금 여기의 나 혹은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 안에서 좌절과 고통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고, 희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절망의 극한 너머에 다시 빛으로 오신 주님을 볼 수 있다는 희망 말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알레그리의 ‘미제레레’곡의 길이도 묵상하기 적당한 시간이기니까
한번 쯤 찾아서 들으시며 주님의 고난에 잠시 동참하는 마음을 가져 보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