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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산 "용담호의 미완성"
종남산 (610M)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용진면 관중리
서방산 (617M) : 전북 완주군 용진면
원등산 (715M)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연석산 (960M) : 전북 완주군 동상면
운장산 (1,126M) : 전북 진안군 주천면 부귀 정천면, 완주군 동상면
복두봉 (1,017M) : 전북 진안군 정천면, 주천면
구봉산 (1,002M) : 전북 진안군 주천면
혼자서
산행코스 : 송광사→1.80Km→종남산→1.17km→553봉→1.05Km→서방산→1.65Km→오도재→1.32Km→702봉→0.45Km→630봉→1.28Km→되실봉→1.0 Km→558봉→1.32Km→위봉폭포→1.61Km→496봉→1.78Km→송곳재→1.92Km→청량산(원등산)→1.05Km→579봉→1.37Km→율치(55번 도로)→1.93Km→436봉→1.67Km→675.4봉→1.06Km→황새목재→1.97Km→655봉→1.95km→연석산→2.15Km→만항치(늦은목)→0.6Km→운장산→2.21Km→갈크미재→1.21Km→1,084봉→2.24Km→복두봉→2.28Km→구봉산→2.95Km→절연재(725번도로)→6.5Km→고남치(795지방도로) (도상거리 : 47.49 Km)
산행거리 : 58.362 KM
5월 19일 06시 30분-18시 (11시간 30분)
20일 22시 10분 -21일 15시 10분 ( 17시간) 합: 28시간 30분
나에게 전주는 너무 멀리 있었다. 3년 전 쯤 일보러 전주에 잠깐 들린적은 있어도 산을 오르기 위해 내려온 전주는 처음 발길이었고 무엇이든 먼 나라 이야기인듯 나에게 전주는 서툴러 있었다. 전주 한 모퉁이에서 하루밤을 지새운 새벽녘, 택시를 타고 송광사로 가는 벚꽃 터널이 첫 인사를 했다. 소양면 죽절리에서 해월리에 이르는 지방도로 741호선은 도로 양 옆으로 40년생 벚나무가 2Km에 걸쳐 숲터널를 이루고 있는 전라도의 아름다운 길 20선안에 있었다.
경남 하동 쌍계사가는 길, 서울 여의도 길, 경주시, 진해 벚꽃, 신탄진 4차선 도로등 저마다 지역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벚꽃길들이 있지만 이곳 송광사 가는 벚꽃길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 얼마 전 건교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중 한 곳으로 선정되어 아름아름 알려지기 시작한 벚꽃 길이다, 꽃이 진 자리를 잎으로 채워진 그늘속을 빠져 나왔다. 송광사였다,
송광사에서
마음 빈구석이 너무 넓어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한단 말인가. 텅빈 마음속의 모든 허용과 욕심을 버리고 찾아온 산 속으로 들어서는 길인데 종처럼 생긴 것이 돌무덤, 돌탑이 절 앞이나 뒤를 볼 때마다 선정에 든 좌선 곹,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했다, 죽어서도 여전히 열반한 스님무덤이나 탑(부도)이 있다는 데 떠나야 할 길이 넘 멀어 채워져야 할 종소리와 불경과 불상, 부처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송광사 뒷산, 서서히 대죽을 따라 올랐다,
산의 오름은 어느산과 다를리 없고 높은 산과 낮은 산의 높이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헉헉 숨소리 울리는 진동박동은 고동치고 있었다, 시야가 트이면서 밝아지는 죽절리, 계곡 깊숙이 파여 임도길따라 서 있는 대흥리의 아늑한 촌마을, 동쪽 높이 솟아있는 위봉산성길들이 종남산 길이 주는 선물이었다, 아늑한 숲속 터널, 그리 많은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지 않는 평범한 산, 구름이 속세 아래 비추어주던 하얀 구름바다도 잠시 모든걸 종남산 아침이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
"따다닥 따닥 " 무슨 새소리인지 리듬 맞추어 들리는 귀울림 소리, 소나무 잎파리에 송진가루 뒤엎는 소리, 신갈나무 잎새에 구름 가리우는 그늘 소리들이 이 산의 오케스트라 3중주 화음과 함께 열며 오고 있었다, 행여 나의 미천한 여인이 홀로 가는 마음에 더 큰 입맞춤을 한다 하여도 받아주리라! 먼 길 떠나는 행인이 받아 줄 수 있는 것 모든 걸 포옹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종남산과 서방산의 가느다란 철기둥 이름표를 달고 서 있지 않아도 분명 그 산은 호남의 산이고 완주군 사람들과 맞부디치는 애달픈 사연을 담은 산 그리메일지라도 낮선 나에게 주는 싱그러움은 눈이 커 보이고 작음에 내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서방산지나 굽어진 오도치의 낮음을 난 좋아하지 않았다, 내려가는 만큼 올라가야 하는 산의 이치 암릉의 600봉과 702봉을 넘는 숨가쁜 사연을 쉬엄쉬엄 이마에 땀을 쥐어짰다.
양화저수지와 전주시
그래도 전주쪽으로 시야가 넓어지면서 사람들의 달달 볶달대는 소리가 이 깊은 산중이 들려오고 있는것만 같았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차를 진열해 놓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세모 모양의 긴꼬리를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양화저수지등 이곳이 아니면 이곳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산님이 小태극이라고 칭하는 길 (되실봉~702봉~560.4봉~475봉~동성산~대야저수지)를 버리고 위봉산 삼거리에서 되실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위봉산성 석문
위봉산성
위봉산성이 시작되는 되실봉이었다, 1675년(숙종 1)에 축성하고 1808년(순종 8)에 관찰사 이상황(慶基殿)이 중수하였다 한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있는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것으로 동학농민운동 때 전주부성(全州府城)이 동학군에 의해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피난시킨 일이 있다는 위봉산성은 규모는 너비 3m, 높이 4~5m, 길이 16㎞이며 서·동·북 3개 소의 성문과 8개의 암문이 있었고 문 위에 있던 3칸의 문루(門樓)는 붕괴되어 없어지고 높이 3m, 너비 3m의 아치형 석문만 남아 있는 성따라 내려오니 741번 지방도로(위봉재)였다, 산천과 문루가 이루어내는 조화에 있었다.
전주 팔경(기린토월, 한벽청연, 남고모종, 다가사후, 비비낙안, 덕진채련, 위봉폭포, 동포귀범)중 하나인 위봉폭포, 폐허에 홀로 앉아 옥으로 포말져 떨어지는, 혹은 인간이 보면 질투할까 봐 심산유곡을 돌고 돌다가 홀로 부서지는 폭포의 비경을 조금이라도 느끼고자 하였건만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걸어서 햇볕이 제일 기세등등한 한나절 걸어가는게 꾀가 나 위봉마을에서 물을 보충하고 임도길따라 밭길이 이어지는 길따라 앞봉우리 사면을 돌아 올랐다, 위봉산성은 527m의 봉우리까지 이어졌다,
은대난초
청량산(원등산)의 삼각점
산길을 오를때 가슴 설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때문이다, 욕심없음을 피워낸 순백의 아름다움을 만났다, 잎의 모양이 대잎과 비슷하며 흰색꽃을 피운다는 은대난초를 보면서 청초하고 고요한 산이 키워낸 청량산이 아닐까 했다, 꽃이 완전히 펴지지 않고 포는 선형으로 된 은대난초와 청량산(원등산)의 산마루를 넘으면서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고 아직까지 때 묻지 않은 천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산, 청량산과 같이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빨라지는 건 내려서는 가파른 능선이 율치(밤티재)에서 11시간을 넘게 걸어온 해 기울어지는 저녁이기 때문이었다.
완주군 소양면 화심과 동상면을 잇는 율치였다. 소양면쪽으로 걸어 오면서 칡즙을 한 잔 마시며 전주행 버스 871번을 6시 30분차에 타려고 기다렸다, 땀 냄새와 함께 배어있는 하루의 여정이 끝나는 저녁 한 기가 맴돌고 있었다, 이것 저것을 배속에 넣어 보았지만 보잘 것 없는 내 몸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전주시의 밤 하늘은 별도 달도 숨어버린 야등만이 반짝이는 저녁 하늘아래 난 꿈 속으로 숨 죽은듯 멀어져 갔다,
그 다음 날, 전주시의 향내음을 맡으며 하루를 보냈다,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먹은 돼지 주물럭 고기, 찜질방에서 시간 땜빵, 모레내시장에서 할머니의 구슬픈 이야기와 1,500원짜리 깡보리밥을 먹으면서 흐뭇했던 마음과 함께 871번 20시 30분 동상가는 버스에" 밤티재 가요?" 버스 기사님은 내 얼굴을 쳐다 보신다, "왜 그러나? 했더니" 기사님은 벌써 내가 막차로 밤티재에 갈 것임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시간표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어제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랐다,
율치(밤티재)에 21시에 도착하여 내려야 했지만 연석산까지 거리를 생각하여 너무 이른 것 같아 버스기사님께 부탁하여 동상면까지 갔다 뒤돌아와 밤 10시가 되어 첩첩산중 율치에 사뿐히 내렸다, 버스 기사님은 걱정이 되는지 불빛을 계속 비추어 주시곤 떠나질 못하고 계셨다, 산 속을 들어 서면서도 "괜찮습니다, 어서 가세요" 하는 나에 목소리가 힘차 보였는지 버스의 불빛은 멀어져 갔다,
산님들의 발 길이 전혀 없는 희미한 등로에 낙엽까지 쌓여 있어 비추어지는 랜턴불빛도 숨죽여 조심스럽게 올라야 했다, 혹여 잘못된 길을 걷게 된다면 꽉차 있는 내일의 시간표가 걱정되었고 알바는 캄캄한 밤중에 제일 큰 도박일 수 있다는 염려가 내 안에 있기에 조심 조심 모든걸 산행길위에 촛점을 두었다,
만경강 발원지
캄캄한 밤하늘 깊숙히 들어 앉아 있는 밤샘, 만경강 발원샘을 만났다, 전북 북부에 있는 강으로 완주군 동북부 청량산에서 시작하여 전주천 등의 지류를 합류하고 익산, 김제, 옥구 등을 거쳐 황해로 흐르는 만경강은 호남평야의 젖줄이 되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니 더 없이 귀한 물줄기임을 알았다, 발원샘옆의 한국의산하 두타행님의 표지기가 나풀거리고 있는 걸 보고 전주에 살고 계시다는 두타행님은 어떻게 생기신 분일까, 생각해 보았다,
산죽터널
보령치에서 연석산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길과 만나는 봉우리였다, 표시기가 나뭇가지에서 인사를 하고 등로가 환히 비추어지는 정맥길은 걸으면서도 편해지는 건 우리의 산줄기를 이어가고 있는 산님들의 덕분이 아닐까, 내 키를 넘어서 캄캄한 하늘도 보이지 않는 산죽터널을 가로 질러 앞으로 나아갈 때 나를 움추리고 낮추고 함이 자연스런 모습이 되었을 것이니까. " 아무도 없는 산마루에서 정신이 몽롱해지도록 먼 길의 산죽길을 걷고 싶다"
657.4m의 거대한 바위가 나와 씨름을 하고 밤새 걸어온 풀섭에 스친 풀과 벌레들이 잠들어 있는 고요한 산에 바람한 점 없는 이 산 중에 황조치에서 들려오는 개 소리만이 내 발자욱 듣고 짖어대는 난 어데로 가야 하나요, 알 수 없는 새소리가 "꼬꼭꼬오꼭" 리듬따라 내 귓속을 울리는 자장가 소리를 난 길섶의 침대를 깔아야 하나요, 만경강 발원샘에서 등로를 찾다가 잃어버린 또 하나의 눈(돋보기)이 없어 이제 가는 길 희미해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요?
집채만한 바위를 로프줄에 매달려 오르고 어두움이 깔린 적막강산에 달과 별이 숨박꼭질하여 찾지 못한다 해도 연석산으로 향해 가는 난 동이 터오르는 희망이 있고 운장산에 웅장한 자태을 간직하고 있는 산을 찾아 내가 걸어 가고 있는 산 길에 융단을 깔자, 뜨겁게 달구어진 호남의 산, 산, 산이 있기에 먼 길을 마다않고 밤길을 오지 않았는가!
-연석산에서 바라본 산군들의 모습-
운장산 서봉의 모습
북쪽으로의 산 군
옥녀봉쪽의 모습
만항치에서 바라본 남쪽의 모습
운장산 서봉이 열리면서 연석산 200미터를 남겨두고 동이 터오는 찬란한 새벽이었다, 연석산이었다, 새벽 4시 45분, 연석산은 모든걸 신비하리 만큼 나에게 비추어 주는 굽이굽이 산들의 정열, 운장산의 서봉에서 동이 터오는 빛의 황홀감, 계곡 깊숙이 파여있는 동쪽으로의 옥녀봉우리, 금남길따라 이어지는 진안쪽으로의 구름과 앉아있는 곡선의 어우러짐을 보면서 아침 밥상을 차렸다,
-운장산 서봉에서 -
서봉에서 중봉가는 길
서봉의 암봄
굽이 굽이 산줄기 따라 이어져 있는 능선들, 길고 깊은 골짜기의 굴곡, 첩첩산중 산마루 따라 거대한 바위벽에 달달거리며 올랐다. 뜨거운 산, 흘러가는 긴 구름이란 이름의 운장산은 구름 한 점 없는 말끔한 운장산 서봉이 처음 맞아 주었다, 서봉에 서 있는 바위가 중봉, 동봉의 모습까지 아우르는 형상처럼 당당하고 거세게 구름빛보다 더 강한 힘을 덧칠하고 있었다, 낮게 내려앉은 내 마음을 녹색빛으로 푹신한 산릉들을 깔고 있는 중봉과 동봉으로 긴 파장을 이루며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중봉의 모습
송익필의 詩,
귀학정이 아직도 남아 있건만 정자는 비고 학도 머물지 않네
은하수 가까우니 단이 환하고 해운이 흘러 발 겹겹이 드리웠네
달이 지고 샘 소리 들리는 밤. 산 높고 이슬 떨어지는 가을
까닭 없이 멀리서 파도소리 들리고 갈림길에 머리 가득 하얀 눈일세,
운장산에서 들려오는 맑고 고운 산소리는 이슬처럼 영롱하고 밝은 햇살을 받으며 모두를 갖추어져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조선의 성리학자 송익필의 자를 딴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 운장산은 내가 운장산을 알고 운장산이 나를 알아주는 벗으로 평생 깊이 깊이 사귀어 온 것처럼 친한척하고 더 멋지고 세련되게 발걸음을 옮겼다, 중봉의 높이가 가장 높고 동봉의 모습이 가장 잘 어울어진 미인일 터인데 그래서 운장산의 세련과 완결미는 동봉을 넘어 깊이 파여진 각우목재가 내가 사는 삶 일부처럼 느껴졌다,
동봉의 모습
동봉에서 바라본 북으로 마이산도 보이고
굽어진 허리를 달구듯 걸어 오른 1,084봉 가는 길은 지나온 운장산, 연석산, 멀리는 마이산까지 등뒤를 밀어 내면서 거센 심호흡과 같이 했다, 평평한 정상, 아무것도 없는 무명 봉우리 1,084봉을 넘으면서 길도 널은 능선을 가르며 순해지고 있었다, 소나무와 활엽수의 조화를 이루면서 또렷한 색의 강약을 드러내는 산 길을 거슬러 오르니 1,017m의 봉우리 복두봉이었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바위가 떨렁 한 개, 무채색 회색빛을 발하는 둥그스런 큰 바위였다,
복두봉
구봉산 1.7Km, 상양명 4.6km, 천황사 5.0km 의 이정목을 보면서 얼마 남지 않은 길들에 행운이 있기를 소원했다, 깜깜한 밤 하늘 아래 누렸던 산 길들을 생각하면서 뒤돌아 본 지난 시간은 멀어져가고 있었다, 아주 소중하고 우아하게 그리고 그림처럼 펼쳐지는 산릉들의 파노라마를 머리에 이고 가는 내가 저장능력이 많아질수 있도록 압축시켰다, 877봉에서 부터 나무계단을 내려서고 터벅터벅 늘어진 다리힘을 바짝 부추켜 세운다 해도 아홉봉우리 구봉산의 병풍이 있기에 힘든 줄 몰랐을 것이다,
구봉산 정상
용담댐의 모습(1)
용담댐의 모습 (2)
용담댐의 모습 (3)
그랬다, 난 구봉산의 암봉들을 수많은 사진첩에서 구경했었다, 조선 중조때의 율곡의 친구인 송익필宋翼弼)1534-1599) 호는 구봉(九峰), 자는 운장(雲長)이 운장산 서봉의 오성대에서 유배생활을 한 것에 연유하여 자와 호를 따라 주줄산은 운장산(雲長山)으로 바꾸었고, 구봉산(九峰山)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한다. 여덟 봉우리의 모습이 막 피어 오르는 연꽃의 형상을 하고 있어 "연꽃산"이란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구봉산의 암봉
멀리 덕유산과 지리산의 모습이 보인다 했으나 가지고 있는 지도가 너무 작기에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내가 걸어갈 용담호가 흐르는 물줄기가 한 눈에 들어오는 굽어진 호수길을 보기 위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걸어오지 않았는가! 천황사쪽으로 내려가면서 발길은 빨라지기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갈 차표 시간과 남은 시간이 쪼그라 들면서 마음은 급해졌다, 느릿느릿 걸었던 밤 길을 조금만 돌려 달라고 애원하면서 천황사를 재촉했다,
절연재(725번 도로)를 지나 용담호는 동쪽으로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보다 임도길 따르다 밭과 만나는 지점에서 직등하여 되도록 빠른길을 선택했다, 진안군의 산이었던 산마루 언덕에 발길 조차 흔적없는 조용한 산,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숨죽은 산이었다, 헬기장에서 좌측능선을 따라 가다 보니 길이 막혀버린다, 잘 못 왔는가 싶어 가지고 있는 지도를 되짚어 보지만 나뭇가지에 가려있는 조망은 볼 수 없고 눈도 침침해 정확한 발길이 의심스러워 헬기장까지 되돌아 왔다,
헬기장에서 직진하여 발길을 돌렸지만 고도가 심하게 떨어져 분명 이 길은 아닐꺼야? 혼자말로 위안을 삼으면서 아쉬운 발 길을 절연재에 내려 놓았다. 서울로 오늘 올라 가야하는 시간이 조급해 지면서 용담호로 떨어지는 산길에 대한 여운만 남겨 놓은채 내 발길은 용담호와 멀어지고 있었다, 그랬다, 구봉산에서 보았던 용이 용트림하는 것처럼 보이는 용담호가 구불구불 파아란 물결에 잠겨 있었다.
금산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으나 기사님은 서울간다는 말에 반대편에서 전주쪽으로 가야 시간를 절약할 수 있다면서 다시 날 내려 놓았다, 택시든 버스든 승용차든 세워주는 고마움으로 손을 들어 타고보니 아저씨는 그 산은 등산로가 없는데 거기서 내려 오냐며 물어 왔다. 용담호를 보려고 28시간을 넘어 밤길을 걸어왔는데 등로가 막혀 갈 수가 없다고 하니 용담호까지 구경시켜 주겠다며 날 안내 해 주었다, 멀리 와 있는 난 얼마나 복많은 여자였던가!
-용담호반에서 -
'용龍'자에 '못潭'자를 쓰니 '용을 담는 커다란 호수'라는 뜻이 된다. 실제로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해 보였다, 용담면의 행정구역명을 따서 용담호가 되었다 했다, 용담댐 지역 2,864세대 12,600여 주민들이 도민들을 위해 타지역으로 옮겨야하는 희생으로 전북의 용수난 해결과 산업발전, 관광자원을 만들어 주게됐다. 차수벽(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만든 벽 "물막이 벽")을 상류측 표면에 콘크리트를 설치하는 콘크리트 표면차수벽형 석괴댐으로 건설되어졌다는 대형다목적댐으로 우리나라 다섯번째로 큰 댐이라 했다,
호남의 산,
전주의 산,
진안군의 산을 넘어
28시간을 걸었네.
새소리, 풀벌레 장단에
이파리 짙어가는 녹색향따라
굽이굽이 산릉넘기는 거센 호흡
용담호에 멈추었네.
삶의 터전 빼앗겨버린 진안군 사람들
뿔뿔히 흩어져 버린 물 속은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잔잔히 잠겨져 있었네.
미완성을 그린 나
발걸음 떨어지지 않던 나
용담호수를 바라보며
또 오겠노라 약속하였네.
용담호수에서...
요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