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문화원 2024년 연간집 청탁 원고)
(수필)
죽림竹林의 풍류 은사隱士와 김삿갓 시인의 만남
이성교(동화작가)
조선시대 삿갓을 쓰고 전국을 유람하며 많은 시와 일화를 남겼던 김병연, 그를 사람들은 김삿갓이라고 불렀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전국의 명승 유적을 유람하던 그가 우리 고장 화순을 세 차례나 왔고 마지막을 동복에서 마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행적을 탐방하는 시인 묵객들은 우리 화순을 반드시 방문하고 있다. 이러한 때 김삿갓 시인의 유람 여정을 따라 걸으며 쓴 책 속에서 죽림 은사와 김삿갓 시인의 만남을 추정한 국문학자가 있는데 그는 도곡면 죽청리 출신 양현승 박사이다.
양현승 박사는 그의 저서 ‘이야기가 흐르는 대한민국 소도시 기행’에서 동복으로 향하는 김삿갓의 경로는 세 길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첫 번째는 35세(1841년) 때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북쪽 지역을 탐방하다가 무등산을 넘어서 이서로 들어와 적벽을 먼저 보았을 것이고, 두 번째는 44세(1850년) 때 영남에서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을 거쳐 보성을 통해 동복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강진군 군동면 금곡사에서 시 〈쟁계암爭鷄岩〉을 짓고,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에서 〈과보림사過寶林寺〉를 지은 다음, 해망산海望山을 넘어 화순 도암면 운주사雲舟寺를 보고 화순읍을 거쳐 동복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또한 김현승 박사는 김삿갓 시인이 왜 화순을 세 번이나 왔으며 동복을 종명지로 택했을까 하는 의문을 김정수 작가가 쓴 《전라도 사람들, 5》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적벽을 비롯 수려한 승경勝景, 둘째 동복 삼복을 비롯한 풍부한 산물, 셋째 순박하고 후한 인심을 들었다.
그동안 나는 김삿갓 시인이 화순에 들어온 세 번째 경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김삿갓 시인이 화순 동복에서 종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 막연하게 내가 나고 자란 죽청리를 방문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행적을 추적하던 중 매우 중요한 단서를 하나 찾았다.
지난해 마을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인터넷 마을 카페를 개설했다. 그리고 자료를 모으던 중 서죽시집이 죽청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국민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인 양현승 박사가 국역한 서죽시집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뜻밖에 시집의 원저자가 거처한 집이 서죽당이며 그곳이 죽청리라는 것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카페에 올려두었다.
그러던 지난해 9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화순군 하니움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양현승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당일 오전 지인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고 참석한 학술대회에서 어린 시절 죽청리에서 함께 자랐던 후배 임을 알고 무척 반가웠다. 10대 후반에 가족이 고향을 떠난 후 소식을 알지 못했는데 개명한 양현승 박사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서죽시집의 국역자 양현승 이름을 보면서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생면부지로 생각했다.
지금은 현직에서 은퇴하고 국민대학교 명예교수로 학술연구와 저작 활동으로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퇴임 후 도곡 모산마을 골짜기에 있는 삼지재三芝齋에 방마다 가득 책을 쌓아놓고 가끔 내려와 지내는데 당분간 그곳에서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 후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곳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삿갓 시인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흐르는 대한민국 소도시 기행’이라는 귀한 책을 선물 받았다.
이 책은 ‘흐르다 멈춘 영혼을 찾아’를 1부로 대표 저자인 양현승 박사가 김삿갓 시인의 중요한 유람 길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면서 기록한 부분이다. 서술 형식을 보면 직접 보고 듣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적인 서술과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삿갓 시인을 만나 술잔을 나누며 대화 형식으로 뭇사람들이 궁금해한 문제를 화두 삼아 직접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장면은 실제 김삿갓 시인과 마주 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국문학자로서의 상상력과 문학성이 돋보이는 실감 나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뜻밖에 이 책에는 그동안 내가 품고 있던 김삿갓 시인의 경로 중 죽청리 유람에 대한 단서가 있었다. 나는 그동안 김삿갓 시인의 화순 유람 경로를 보면서 우리 죽청리를 반드시 들렀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로 첫째 마을 앞을 흐르는 두물머리 주변의 넓은 평야와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에 자리 잡은 마을의 모습이다. 둘째 김삿갓 시인의 유람기를 보면 대부분 풍광 좋은 정자가 있거나 서당이 있는 곳에서 유숙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죽청리는 두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죽청리에는 화다산이라는 지명이 있다. 그 산에는 내가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봄이면 온 산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곤했다. 그리고 그 골짜기와 일대의 능선에는 복숭아꽃이 만발하였는데 지금도 복숭아밭 일부가 남아 고향의 봄을 지키고 있다.
나는 이런 이유로 김삿갓 시인이 죽청리를 방문하게 된 단서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양현승 박사는 나와는 달리 국문학자로서 서죽시집을 국역하다가 자신의 윗대조인 서죽과 김삿갓 시인의 만남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 그의 감동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짜릿함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감동이 평생 국문학자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고향인 화순에서 종명한 김삿갓 시인의 행적을 따라 유람을 결정한 것은 소명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숙명의 과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임을 앞둔 나이에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완수한 그는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과 뿌듯한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양현승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김삿갓과의 만남을 쓴 어느 죽림은사竹林隱士의 시 한 수’라는 소제목으로 서죽시집에 있는 시를 소개하고 있다. <나그네가 있어 관서關西 지방의 경치를 한껏 말하다(有客盛說關西景)>의 시로 다음과 같다.
竹下梅窓晩挹芬(죽하매창만읍분) 대숲 매화 핀 창가에는 철 늦은 향기가 떠오르는데
洞天近午正陽嚑(동천근오정양훈) 오정 가깝던 고을에는 어느새 석양이 비추네.
優遊宕槖粧奚錦(우유탕탁장애금) 한가롭게 노닐며 쓴 시 주머니를 둘러멨는데
古樹文枰運郢斤(고수문평운영근) 고수다운 시평(詩評)은 영(郢)의 장인이 도끼를
쓰는 것 같았네.
滄海觀來琴在水(창해관래금재수) 푸른 바다를 볼 때면 거문고는 물에 있었을 것이요
名山踏去屐飛雲(명산답거극비운) 명산을 걸을 때면 나막신은 구름 속을 날았으리.
行人剩說關西景(행인잉설관서경) 관서 경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행인이게 듣노라니
坐我大同千里濆(좌아대동천리분) 앉아 있는 나도 천리의 강기슭에 앉아 있는 듯하네.
양현승 박사는 자신이 국역한 <서죽시집> 중에 있는 이 시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면서 양상항과 김삿갓 시인의 만남을 확신하고 있다.
이 시의 작가 서죽당 양상항瑞竹堂梁相恒은 김삿갓보다 스무 살 아래다. 그러나 집을 찾아온 나그네를 반갑게 맞아 사랑채에서 하룻밤 유숙객과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고, 특히 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과 좋은 말솜씨로 실감 나게 들려주는 팔도 유람 경험담에 귀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시 1, 2구에서는 나그네(김삿갓)이 찾아오는 계절과 시간을 쓰고 있다. 계절은 매화가 필 때이니 2월 말 정도이고, 하루 시간은 석양 무렵이다. 길가는 나그네는 해가 지면 마을로 찾아들어 동구 밖에서 하룻밤 유숙할 집을 물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초가삼간 작은 집보다는 사랑채가 있는 큰집이어야 잠자리를 청하기에 덜 미안할 것이고, 한두 끼 식사라도 마음 편하게 얻어먹을 수 있다. 3구에서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가운데 탕낭(宕囊):시를 쓴 주머니)을 둘러메고 대문 넘어 사랑채로 들어서는 김삿갓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어 4구에서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 주인과 나그네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해박한 시에 대한 지식과 함께 특히 시평詩評을 할 때는 식견이 높아 고수高手처럼 매우 능수능란했다고 한다. 5, 6구에서는 관서 지방을 비롯한 조선팔도를 유람한 풍경과 경험담을 어찌나 실감 나게 하는지 바다를 본 흥취와 명산을 어르는 모습을 거문고와 나막신을 들어 상상하면서 듣는다. 7, 8구에서는 그런 말솜씨에 감탄하고 공감하면서 듣고 있는 자신이 마치 함께 탐승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양현승 박사는 이러한 시의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두 풍류 시인의 만남을 추정하고 있다. 호남지방이나 지역 인근 사람으로서는 가기 어려운 관서 지방을 유랑했다는 것과 유람하면서 쓴 시를 주머니에 넣어 둘러멨다는 것, 그리고 시에 대한 평판을 높은 식견으로 능수능란하게 했다는 것, 특히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점 등 네 가지를 강조해서 쓴 것을 보면 예사로운 나그네나 탐승가가 아닌 것으로 여겨져 김삿갓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또한 김삿갓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일화와 시를 남겼으나 정작 김삿갓을 만나 본 사람이 김삿갓에 대해서 시로 쓴 것이라는 점에서는 희귀한 시라고 여겨져 추정을 전제해 소개한 것이다라고 맺고 있다.
김삿갓 시인이 우리 화순을 세 번이나 방문하고 동복에서 머물며 마지막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시인 묵객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는 길에 풍광 좋은 정자를 만나면 잠시 쉬기도 하고, 해질녘에 죽청리를 찾아 잠자리를 얻어 하룻밤을 유숙했던 것처럼 화순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행적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행적을 찾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화순의 문맥을 잇는 하나의 과제라는 생각을 해본다.
<프로필>
월간<아동문학> 동화 당선(92), 계간<크리스찬문학> 동화 당선(93) KBS-1TV 드라마 소재 공모 당선(85) 광주일보 월간 <예향> 창간 1주년 기념 <쓰고 싶은 이야기> 당선(86) 한·중·일 아동 동화교류 일본대회 광주·호남·제주지역 인솔 단장(2004) (선집) 한·중 아동문학 선집 2(94), 호남 시인 106인 대표 시선 하(99) 화순군민의 상(교육문화부문) 수상(87) 한국문인협회 회원, 화순문협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