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외국에 있는 한국의 문화재는 7만5000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가 반환된 것은 4800여 점. 아직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 7만여 점이 해외에 있다는 결론이다. 얼마 전 겸재정선의 작품 21점이 독일로부터 반환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이번에 반환된 작품들은 정선의 후기작들로 미술사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특히, 다수의 인물화를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화풍을 담고 있어 정선의 작품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겸재 정선은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 후기 진경산수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일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가이다. 조선의 산하를 두루 살피며 그 아름다움을 화폭에 새겼던 정선. 그의 정신은 조선후기 회화사상에 커다란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다. 서구의 르네상스가 '사물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되었음을 상기할 때 그림에 대한 그의 태도는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서막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보다 69년 뒤에 태어난 김홍도가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대두는 실학사상과 더불어 우리의 '근대'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김홍도와 같은 화가는 실학자들과 깊은 교유가 있었고 그런 이유로 중국을 통해 서구적인 화법을 익힐 수 있었다. 원근법과 명암법과 같은 서구회화의 기법을 받아들이지만 이것에 경도되지 않고 독창적인 화풍을 일구어 나간다. 만일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자생적인 근대의 정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구한말이나 조선 후기를 심리적으로 멀게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적 단절이 얼마나 한 민족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번에 반환된 겸재의 작품들은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집요하게 경매를 요구했지만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한국반환의 의지를 굽히지 않아 이뤄질 수 있었다. 정선의 소품은 작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미술시장에서 4000만 원에서 8000만 원 정도에 거래가 된다. 물론 이번에 반환된 작품들은 그 가치를 매기기 힘들 정도로 귀한 작품들이라 가격을 셈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수십 억 원 이상의 자산적 가치를 포기함으로써 우리의 품에 올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이러한 산정은 순전히 개인적인 평가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커다란 경제적 가치에 무관심 할 수 있었기에 겸재의 작품은 고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작품반환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 작품들을 가장 먼저 발견했던 유준영(전 이화여대 미대 교수) 씨가 한국에 작품의 존재를 알기기 시작했고, 왜관 성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선지훈 신부가 7년간 독일 오틸리엔수도원에서 수행 생활을 하면서 작품 반환의 기회가 만들어 졌다. 수행할 당시 그의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이던 예레미야스 슈뢰더가 수도원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반환논의는 시작되었다. 또한 이번 반환은 민간 차원의 영구임대형식, 즉 소유권은 외국에 있지만 전시나 연구는 국내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소장자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해외의 문화재를 국내로 반환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론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반환은 프랑스가 정상끼리의 회담에서 약속했던 외규장각 도서 297권의 반환을 미루고 있는 점을 상기하게 만든다.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피카소는 알아도 우리의 화가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을 일깨워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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