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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1년 10월 26일에 『스티브 잡스』의 번역이 엉터리라고 비판했습니다.
<전문 번역가 좋아하시네: 『스티브 잡스(안진환 옮김)』 번역 비판 - 8장>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56
제 글은 인터넷에서 하루 만에 급속히 퍼졌으며 주요 일간지에서 제 비판을 다루었습니다.
<잡스 자서전 ‘오역 투성이’>
한겨레신문, 임종업 선임기자
등록: 2011.10.27 20:42, 수정: 2011.10.27 21:09
http://www.hani.co.kr/arti/economy/it/502846.html
<[이은호의 헬로] 안진환 잡스 자서전 번역한 인트랜스 대표>
한국일보, 이은호 선임기자
입력시간 : 2011.10.28 21:37:45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110/h2011102821374586330.htm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제 글을 널리 알려 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 중 일부입니다.
번역가 이덕하씨는 27일 한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려 “<스티브 잡스>(민음사 펴냄·번역 안진환)의 영문판 10쪽을 검토한 결과 41개의 오역이 발견됐다”며 “전체가 600쪽 분량임을 감안하면 오역의 개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가 글을 올린 것은 27일이 아니라 26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41개의 오역”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으며 “오역의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르니 내가 나열한 사례들 중에 오역이 몇 개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제각기 의견이 다를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한국일보>에 실린 안진환 씨 인터뷰 중 일부입니다.
_ 번역가 이덕하씨가 한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려 영문판 10쪽과 한글 번역판을 검토한 결과 41개의 오역이 발견됐다고 하는 등 번역의 오류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도 인간이니 실수는 있을 수 있다. 'order'를 '주문량'으로 해석했는데 '질서'나 '기강'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은 옳다. 오류가 확인된 부분은 바로잡겠다. 하지만 나머지 내용은 대체로 수긍하기 힘들다. 전체 문맥을 보면 'desktop'은 이씨 주장대로'책상'이 아니라 내가 한 대로 '데스크톱'이 맞다. 그리고 다른 지적들은 대부분 나 나름대로 적절하게 풀이한 것을 문제 삼았는데 이건 내가 번역을 했으니 내 방법론을 인정해 줘야 한다. 나머지는 한국판의 미수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씨는 미국판과 비교해 지적한 모양인데 미국 쪽에 확인했더니 '미국판은 다른 나라에 최종본을 보낸 이후에도 계속 수정했으나 다른 나라 판은 전체 맥락에 크게 저촉이 안 돼 수정본을 보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민음사의 해명 글 중 일부입니다.
하지만 어떤 지적들은 저희가 도저히 납득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미국판 책과 저희들 책을 대조하시면서
누락이나 오역을 지적해 주시는 경우가 있어서 저희가 받은 원고에서 확인해 보면
번역상 잘못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저자가 미국판과 국제판을 모두 공인했기 때문에,
출간된 미국판을 근거로 해서 단어 하나하나를 비교해 번역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한국어판과 미국판에는 왜 크고 작은 차이들이 생기게 되었나?>
http://cafe.naver.com/minumsa/18982
안진환 씨와 민음사 측에 따르면 오역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제가 제기한 문제 중 대다수는 미국판과 국제판의 차이 때문이거나 번역자의 재량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정도의 문제랍니다. 따라서 이 번역서에 심각한 문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해명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저는 이 책이 오역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 좋아하시네: 『스티브 잡스(안진환 옮김)』 번역 비판 - 8장>에서 41 군데를 지적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글에서 제기한 것들 중에 누가 봐도 오역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제 결론은 영어판 기준으로 단 10쪽에 오역이 적어도 9개 이상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60을 곱하면 책 전체에 오역이 몇 개나 될지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민음사와 안진환 씨, 억울하면 제가 지적한 부분이라도 번역 대본으로 삼은 국제판 원고를 공개하십시오.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 글에 공감하신다면 이 글을 널리 알려주십시오. 한 번 끝장을 보고 싶습니다. 이 싸움이 여기서 흐지부지 될 것인지 아니면 번역출판계의 개선을 위한 큰 사건이 될 것인지 여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덕하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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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환(160쪽): 당시 많은 컴퓨터들에는 그 설계자의 딸 이름이 붙곤 했다. 그런데 리사는 잡스가 버리고도 자신의 자식임을 인정하지 않은 딸의 이름이었다.
Isaacson(93쪽): Other computers had been named after daughters of their designers, but Lisa was a daughter Jobs had abandoned and had not yet fully admitted was his.
l 오역 1: “not yet fully admitted”를 “인정하지 않은”이라고 번역했다. “아직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은”이다.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는 뜻인데 거의 반대로 번역했다.
안진환(160쪽): 하지만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리사는 ‘엉터리로 창조한 머리글자(Invented Stupid Acronym)’로 통했다.
Isaacson(93쪽): Among the engineers it was referred to as “Lisa: invented stupid acronym.”
이덕하: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리사(Lisa)는 “리사: 억지로 만들어낸 엉터리 두문자어(頭文字語)(Lisa: invented stupid acronym)”로 통했다.
l 오역 2: “Lisa: invented stupid acronym”가 한 묶음이다. “Lisa”, “invented”, “stupid”, “acronym”의 첫 문자들을 합치면 “Lisa”가 된다.
안진환(160쪽): 아직 애플 II의 개선 작업에 조용히 몰두하고 있던 천재 엔지니어 워즈가 빠진 상태에서, 엔지니어들은 전통적인 텍스트 디스플레이를 갖춘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강력했음에도 기대만큼 흥미로운 기능을 구현하지는 못했다. 잡스는 더디게 돌아가는 상황에 점점 초조해졌다.
Isaacson(93쪽): Without the wizardry of Wozniak, who was still working quietly on the Apple II, the engineers began producing a straightforward computer with a conventional text display, unable to push the powerful microprocessor to do much exciting stuff. Jobs began to grow impatient with how boring it was turning out to be.
l 오역 3: “더디게 돌아가는 상황에”는 엉터리 번역이다. “much exciting stuff”를 내놓지 못하고 따분한 전통적인 컴퓨터가 될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에 짜증을 냈다는 말이다.
안진환(162쪽): 그들이 구상한 개념이 바로 지금의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우리가 접하는 것들이다. 즉 모니터 화면에 많은 서류 파일과 폴더가 보이고, 마우스를 이용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방식 말이다.
Isaacson(95쪽): The metaphor they came up with was that of a desktop. The screen could have many documents and folders on it, and you could use a mouse to point and click on the one you wanted to use.
l 오역 4: “The metaphor they came up with was that of a desktop”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했다. 여기서 “desktop”은 “데스크톱 컴퓨터”가 아니라 진짜 책상(정확히 말하자면, “책상 위의 작업 공간”)을 말한다. 컴퓨터 화면을 진짜 책상과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168쪽에서는 “데스크톱 메타포(책상 위의 전형적인 환경. – 옮긴이)”라고 제대로 번역했다.
l 안진환 씨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자신의 번역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168쪽에서는 “책상 위의 전형적인 환경”이라는 옮긴이 주를 넣은 것일까? <애플 시스템에서는 직접 해당 대상을 가리키거나 조작하고 혹은 끌어다가 위치를 바꿀 수 있게 함으로써, 데스크톱 메타포(책상 위의 전형적인 환경. – 옮긴이)를 가상현실로 구현했다.(안진환 씨의 번역, 168쪽)> <The Apple system transformed the desktop metaphor into virtual reality by allowing you to directly touch, manipulate, drag, and relocate things.(미국판, 98쪽)>
안진환(166쪽): PARC 방문을 마치고 두어 시간쯤 지나서 잡스는 빌 앳킨슨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쿠퍼치노에 있는 애플 사무실로 향했다.
Isaacson(97쪽): When the Xerox PARC meeting ended after more than two hours, Jobs drove Bill Atkinson back to the Apple office in Cupertino.
l 오역 5: “after more than two hours”를 엉터리로 번역했다. 회의를 마치고 두 시간 이상 지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회의가 두 시간 이상 걸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more than two hours”는 “두어 시간쯤”이 아니라 “두 시간 이상”이다.
안진환(166쪽): 애플이 PARC의 기술을 가져다 쓴 것은 IT 업계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도둑질로 간주되곤 한다.
Isaacson(98쪽): The Apple raid on Xerox PARC is sometimes described as one of the biggest heists in the chronicles of industry.
l 오역 6: 원문에는 “IT”라는 단어가 없다. 그냥 “산업 역사상”이다. “IT 업계 역사상”과 “산업 역사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안진환(169쪽): 그래서 앳킨슨은 잡스의 지원을 요청했다. 하드웨어 팀원들은 투덜대다가 차츰 흥분을 가라앉혔다.
Isaacson(100쪽): So Atkinson enlisted Jobs, who came down on his side. The hardware folks grumbled, but then went off and figured it out.
l 오역 7: “went off and figured it out”를 엉터리로 번역했다. 바탕색을 흰색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투덜대다가 가서(went off) 그 문제를 해결했다(figured it out)는 이야기다.
안진환(169쪽): “스티브는 엔지니어는 아니었지만 직원들의 답변에 담긴 속뜻을 진단하는 데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방어적인지 또는 그를 불신하는지 금세 알아챘어요.”
Isaacson(100쪽): “Steve wasn’t much of an engineer himself, but he was very good at assessing people’s answers. He could tell whether the engineers were defensive or unsure of themselves.”
l 오역 8: “그를”은 오역이다. “themselves”가 복수형이라는 것만 생각해도 이런 오역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themselves”는 잡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 자신을 말한다. “unsure of themselves”는 “자신이 없는지”라는 뜻이다.
안진환(171쪽): 스콧과 마쿨라는 애플 주문량을 늘리기 위해서 여념이 없었고, 잡스의 과격한 행동을 점점 더 우려하기 시작했다.
Isaacson(101쪽): Both Mike Scott an Mike Markula were intent on bringing some order to Apple and became increasingly concerned about Jobs’s disruptive behavior.
l 오역 9: 엉터리 번역이다. 여기서 “order”를 “주문량”이 아니라 “질서” 또는 “기강”이다.
첫댓글 번역의 기술 또한 단 한가지로 규정할 수는 없지요.
안정효 선생의 주장과 같이
띄어쓰기도 번역하라
문단도 번역하라
마침표도 번역하라
라는 철학을 가질 수도 있는거고
넓게 육당 최남선 선생처럼
아예 외국 글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번안도
번역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는 번안을 배척하는 분위기입니다만)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오역"은
번역의 기술과는 무관합니다.
저건 이덕하님의 말씀대로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 이 둘 중의 하나라고 봐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기방어는 필요합니다만
안진환씨의 글이 100% 자신의 생각을 옮긴 것이라 한다면
저 사람의 오역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인상이 강하네요.
애초에 오판한 겁니다.
스티브 잡스 전기의 오역을 사람들이 그냥 봐 넘길 리 없습니다.
안진환씨는 이 일을 고사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