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4일 청림회(2)
<범어사>에 유명한 스님, 명학 스님있습니다. 팥죽 먹고 죽은 구렁이 있잖아요? 범어사 주지하면서 돈을 욕심만 부린 중이 있잖아요. 그 스님이 이제 범어사 주지하신 명학스님인데. 이름이 또 학을 떼겠네··· (웃음)명*스님이야. 같은 돌림자 하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용,학을 떼겠네 진짜··· 이 명학 스님이 범어사에 살고 있었는데 그 스님이 주지를 오래오래 하면서 돈을 많이 모아서 중이 욕심을 부리면, 돈에 욕심 부리면 구렁이가 된다, 그래요. 돌아가셔 가지고 구렁이가 됐는데. 구렁이가 된 줄도 몰라, 돌아가셨어.
근데 스님 상좌 중에 영원조사라고. 영원 스님이 피리도 잘 불고하는 스님이 계셨는데 금강산에서 마애암에서 수도하시다가. 마치 가섭이가 부처님 열반에 드시는 거 보면서. 은사 스님이 범어사에서 돌아가셨으니까 뭐, 3일 주야로 달려 내려와서 금강산에서 범어사까지 와서. 스님 장례식을, 다비식을 치르는 데 와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요. 영원 조사, 멀리 갔던 상좌가 코빼기도 안 뵈다가 스님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옆에 사형사제들이 막, 질투를 합니다. 평소에 안 나타나서 스님 시봉도 안 하더니 뭔가, 스님 돌아가시고 나니까 한 끄트리 있는 가 싶어서 찾아 왔다고··· 마, 유산 가지고 싸우는 거, 절이나 밖이나 똑같은 가봐. 예나 지금이나 고금을 막론하고 동해양서를 막론하고. 시간의 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은 거 같애. 그래도 묵묵부답하고 설거지만 하고.
설거지를 하는데 또, 기똥차게 하시는 거라. 그릇을 얼마나 잘 닦는지. 씻고는 타악, 던지면 제대로 가서 탁탁탁, 꽂힙니다. 주방장을 했나··· 금강산에서.
자, 2부는 한 잔 먹고 하입시다이.
여, 지식(止息)이라는 대목을 제가, 말씀드리고자 해서. 영원 조사 얘기와 명학 동자 얘기를 지금 끄집어 오는데. 우리 불교의 전설에 있는 것은 전부 “사마타”와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길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불교의 하나의 설화거리로, 넘어 가 버리죠. 그렇게 공부를 무궁무진하게 가르치고 있는데. 요새도 노래합니까? 그래, 설거지를 하고. 제가 강의하다가 명학 동자, 얘기한 거, 오늘 처음입니다, 처음. 아마 중[僧] 되고 처음이라. 법문 할 때도 이만큼 자세하게 안 했는데. 그릇 던진 얘기까지는 안 하거든요. 그거, 다른 데 잘 안 나오거든. 여하튼 재주는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사형들한테 구박받고 그릇을 열심히 씻고 스님 다비를 치르고. 그리고 갈마 이전에 온 사람들. 스님 다비 이전에 온 사람들은 우리 불법(佛法)에, 다 나눠 가지게 되고. 갈마 이후에는. 의식 끝난 이후에 오게 되면 더 이상 분(分)이 없거든요. 그래서 의식 전에 온 사람들, 다 이제 나눠 가지는데.
영원 조사는 그, 재물 이런 거, 다 필요 없다고. 근데 다비식을 치르고 초재 지내고 제사 지내고 이제, 49재 지내고 있는데. 구렁이 한 마리가··· 스님 있던 방에. 돈 꾸러미 넣어 놓은 데 있잖아요? 거기 또아리를 틀고 가만~히 있으니까. 사람들, 그 구렁이 너무 커서 쫓아내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고 인제. 그러다가 그 때 섣달인데. 동짓날 다가오니까 팥죽을 타악, 쒀 가지고. 영원 조사 팥죽을 대중들한테 쒀 가지고 팥죽을 함지박에다 하나 가득 담아 가지고. 자기 은사 스님, 평소에 팥죽을 좋아했었어.
따악, 보니까 자기 은사 스님인기라. 죽어서 구렁이 된 거라. 벌써 한 생, 49재 지내자마자··· 그래. “나오이소···” 작대기 하나들고 “좋은 말 할 때 나오이소 일로, 빨리!” 거기서 나온 말이, 우리 항간에 유행하는 말이. “우리, 먹고 죽자!” “먹고 죽으이소. 먹고 죽으이소.” 이래 가지고 돌아가시라고 다시.
그래, 나와 가지고 구렁이가 그 팥죽을 눈물 뚝뚝 흘리면서 먹고 나와 죽은 바위가, 제가 그 방에 오래 살았죠? ***에서 한 2년, 살았죠. 통째로 살았는데. 요즘은 이제 조립식으로 지어 놨어요. 그 전에는 그 방에 있으면 막, 서까래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찌그덕’ ‘찌그덕’ 그랬어요. 밤에 잘 때마다. 근데 뭐, 내가 도(道)가 있으며는 집이 안 무너질 것이고 도(道)가 없으면 무너질 것이다, 라고 맨날 그 방안에서, ‘찌그덕’거리는 방안에서 압사할 지도 모르는데 살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제가 <은해사> 3년, 갔다 오니까 집은 휑하니 다 뜯어져 버리고. 새로 조립식으로 지어 놨데요. 그 옆에 이제, 큰~ 바위에다, 거기다 구렁이가 머리를 박고 피를 흘리고 죽었어요.
그래서 죽을 때 그 때, 구렁이 혼을, 스님이 망태기에다가 채취해 가지고 금강산 가는 길을 떠났는데. 어떤 아이 못 낳는 집에다가 그 혼을 점지해 주고. “내가, 이 아이가 10살이 될 때? 7살이 될 때. 그건 중요하지 않고. 데리러 오마. 그 때 나에게 반드시 줘야 된다.” “아이고 아이 하나··· 이제까지 아이 하나 없었는데 낳기만 하면 준다고. 낳기만 하면 준다.”고 선뜻 약속을 한 거라. 그럴 일이 없지만 한 번 낳아라도 볼라고. 낳아볼라고 했더니. 이런 얘기는 귀에 쏘~옥, 들어오는데 <법화경>은 와 이래 어렵노 <법화경>은 와 이래 어렵노··· (웃음)
그래 가지고 망태기를 들고 금강산까지 가다가 그 집에서 하나, 점지해 주고. 영원 조사는 금강산에서 수도하고. 눈 밝은 정말 청안납자였죠, 스님은. 10살이 되서 약속이 돼서 와 가지고, 그날 와 가지고. 아이 데려간다고 부모는 떼쓰고 야단··· 안 된다··· 이 집에 놔 두면 아이, 죽게 된다, 내일 모레 죽게 된다, 내가 데리고 가야 더 오래 살고, 그래 아이 데리고 가야 된다, 했더니 곧 죽는다, 하니까 그래, 또 이것도 안 놔 줄 수도 없고. 그래 스님을 따라서 이별 아닌 이별을 했습니다. 낳아봤으면 됐지···
그래 스님이 아이를 데리고 가 가지고. 아~무 잡일을 하나도 안 시키고. 문에다가 구멍 하나 뽀옹, 뚫어 놓고. “저 문구멍에 황소가 들어올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마세요.” 극진하게 예를 바치고 밥을 해서 나르게 하고.
아니, 어른 스님이 쬐맨~한 아이 한테다가 매일 아침에 3배 문안 드리고 어디 갔다 오면 갔다 온다, 인사하고. 음식 차려놨다, 하고. 꼼짝달싹도 못 하게 해서 그 아이 하나 앉혀 놓고. 황소가 들어오기만을, 저 바늘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올 때만을 그 쪽에··· 뭡니까, 문구멍을 봐라.
그러다보니까. 그 뒤에 도둑놈 얘기까지 도끼로 내리찍는 얘기까지 더 나오는데 고 까지는, 생략하고 황소 얘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인과(因果)에 얽혔던 얘기. 그리 되면 인과에 얽혔던 얘기까지 넘어 가 버려서 지루해서 안 돼요. 그러다가 아이가 가만~히 집중해서 다른 생각 안 하고 오직, 보다가 어느 날 문구멍 사이로 황소가 한 마리 들어 왔어요.
그리고 깨치고 나서 영원 조사보고 “아이고 영원아, 이 놈아, 네가 내 상좌구나···” 말 놓는 거라, 그 때부터.
자. 그것이 바로 사마타 수행입니다.
다른 잡생각 하지 않고. 황소가 들어오기는 뭘 황소가 들어와요? 황소가 들어온다고 해야, 다른 생각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아이는, 관심이 황소라. 그럼, 황소가 들어올 때까지. 바늘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온다는 거는 상상도? 못 하는, 의심날 얘기잖아요? 저기서 어떻게 들어올까, 저기서 어떻게 들어올까··· 황소 들어온다는 데 생각에 오직 몰입돼 있고 다른 잡것들은 다 끊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보고 듣는 것이 끊어지고 나며는. 이 그림자를 쫓아가서 보고 듣는 것에 집착을 놓고 나며는. 본능적으로 보는 능력은 무한광대하잖아요? 본래 듣는 거는 무한광대하잖아요? 아까 다 그런 얘기들이라.
여기서 일단은 본능적으로 갖추기 위해서 뭘 해야 됩니까? 그친다. 뭘 그치느냐? 그림자를 쫓아가는 생각을 그친다. 이, 선(禪)도리 비슷~~하게 <법화경>을 풀어가니까 여러분들께서 얼마나 지루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명학동자가 지식(止息)을 하고 나니까 자기의 본래면목이 확 트이니까 상대도 알아보고 저도 알아보고. 그리고 그 뒤에 얘기가 조금 더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들, 결석 안 하시는 거 봐 가면서··· (스님! 하이소 그만. ) (웃음) 아! 듣기 위해서 오시는 구나. 저도 1부 끝나면 2부는 항상 있어요. 앞으로 요걸로 미끼를 삼아야 되겠어, 요걸로. 예? 참 아이들보다 더 하시네. (낼 모레 투표일입니데이.) 예, 투표. 저는 럭키세븐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이다도 칠성사이다만 먹습니다. 금정구에는 칠성사이다를 좋아한다, 그래요. 북두칠성도 더 빛나고. 이러다가 또 기호 2번 찍는 사람한테 맞아 죽습니다. 저는 승리의 브이자를 좋아합니다. 요번엔 투표를 함, 해 봐야지. 범어사 주지 선거는 못 했고.
이··· 사마타를 얻어버리면 바로 생각이 어떻게 되느냐?
바로 과거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過去心 不可得 未來心 不可得 現在心 不可得)이라는 말을 체득하면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珷所住 而生其心)이 되면서
생각을 그치게 되니까 일념(一念)이 불생(不生)하니까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만법(萬法)이 구식(俱息)이라. 세상만사 아무 것도 없더라. 내 하나, 흔적, 생각하나 지워버리니까. 고민 되는 것들이 고민을 쫓아가고 쫓아가고 그 위에 꿰잡아 가지고 계속 새끼줄 따라 가듯이 따라 가도 그 고민이? 툭 끊어지니까. 그것을? 한 생각, 끊어졌다. 이렇게 얘기하고.
더 복잡하게 이론적으로 얘기하며는 상속상(相續想)이 끊어졌다. 바깥으로 괴롭고 즐거움을 쫓아가던 의식의 제~일 맏대가리, 6식의 제일 맏이를 갖다가 상속상이라 하잖아요, 상속상. 상속상, 실이 툭 끊어지니까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저절로? 끊어지고.
그러니까 한 생각이 딱 끊어져서 선정에 들어가고 보니까. 어떠냐면.
무부피권(無復疲倦)코는. 피곤하다는 생각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잖아요?
꿈 속에서 꿈 꾼 것들은 전부다 여러분들 그림잡니다. 여러분들, 의식이 의식 잡아간 거지 뭐. “아이고 어제 꿈에서 돼지 봤는데···” 복권을 사기는 뭔 복권을 사. 그 사람은 맨날 복권 꿈 꾸다가 어쩌다 잘못, 돼지꿈 한번 꿔 가지고 복권 산 거지 돼지꿈 안 꾸는 사람은 복권도 안 사는 사람이라. 복권 사는 사람은 오늘은 돼지꿈 꿔야지, 돼지를 많이 생각하니까 돼지가 튀어 나오는 거지 그래 가지고 복권사서 당첨되니까? 당첨되는 거지.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제 꿈을 꾸며는? 복권을 사시면 됩니다. 용꿈이니까.
140.
爾時導師(이시도사)가 知此人衆(지차인중)이 旣得止息(기득지식)하야 無復疲倦(무부피권)코는
무부피권(無復疲倦)코는. 그래서 선정에 떠억, 들고 보니까. 이 때는 이제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그래요, 우리가 흔히. 아주 마음에 희열이 일어나고 그걸로서 음식을 먹게 되고 이렇게 되니까. 우리가 기뻐서 좋고 이래서 팔딱팔딱 뛸 때는 어때요? 되게 피곤하고 아프고 피로에 지친 분도, 반가운 사람을 보면 괜찮잖아요, 그죠? 제가 이렇게 아프고 이럴 때 어릴 때 아프고 누워 있고 이래 보니까. 뭐, 엄마만 봐도 편하고, 그죠? 아버지만 봐도 편하잖아요, 예? 그리고 옆집 여학생이 오면 더? 아픈 게 어딨노, 마, 하나도 안 아프지. 놀러가자 하면 당장 놀러 갈 것처럼 이불을 박차고 예?
요게 이제. 한 생각이 완~전히 끊어지니까 이런 걸 갖다가 6근이 이연하며는. 6근이 뭡니까? 보고 듣고 맛보는 우리의 모든 일상사의 생각을 쫓아가게 만드는? 그 원인. 예?
좋은 쪽으로 가면 바라밀로 갈 수 있지만 나쁜 쪽으로 가면 그림자를 쫓아가게 만들죠. 그래서 우리가 안이비설신의를 흔히 중생들이 쓸 때는 도적이라 하고. 부처님이 쓸 때는? 자비라고 하죠, 그걸.
똑같은 눈코입귄데. 부처님 설법하시는 거 하고 중생이 설법하는 거하고 다르잖아요. 그럼 잠을 화~악, 깨 가지고. 아주 제가 저질스런 말씀을 하나 드릴까요? 남하고 싸울 때 욕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어떤 때 가만히 살펴봅니다. 여러분들, 이런 소리 처음 들으실 겁니다. 누구누구 싸우는 거, 개뭐, 해서 쌍소리를 막 해요. 개새끼 소새끼 막 이래요. ‘야, 나 저 사람 이상하다. 소하고 싸우나 개하고 싸우나···’
그러면 우리 불교인들은 어떻게 싸워야 됩니까? “그래 임마, 니 잘났다.” ‘아, 저 사람은 잘난 사람하고 싸우구나···’ 그래, 니 잘났다, 니 옳다, 이래 버리고. 아, 옳은 사람하고 싸우는 거라. 이렇게 돼야 되는데. 이상하게 저기, 축생하고 싸우는 분들이 더러 계시는 거 같애요.
옆에서 쳐다보면. 이것도? 불교를 공부하다 보니까. 세밀하게 관하다가 보니까 그림자에 사로잡혀 가지고 무슨 소리가 나오는가 싶어가지고 자세~히 보잖아요? 보다 보니까 희한한 게··· 어느 날 보니까. ‘야, 저 사람 신기하다. 개하고 싸운다···’
그러니까 우리는 생각에 생각을 물고 갈 끝에. 저는 제 공부방법 중에 현전일념이라고도 하지마는. 이 현전일념을 공부하기 전에 저는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찰나돈단(刹那頓斷)이라.
찰나만 끊어라, 찰나만 끊어라, 찰나만 끊어라, 찰나만 끊어라
끊기 힘들거든요? 오늘도. 어떠한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한 욕심이 있었는데. 들판에 서서 툭툭. 한 3초, 10초? 모르겠어요. 돌아오면서 ‘이대로 넉넉한데···’ 돌아온 적 있어요. 좋았습니다.
그래 찰나돈단. 1시간 동안 내 참아야지, 이런 게 아니고.
어디 만큼만요? 이 순간만!
그 때는 옛 분들이 이렇게 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게 찰나돈단입니다. 이 뭐꼬. 더 이상 없어요. 그게 공부 아닌 줄 알았죠? 그게 공붑니다.
쌓이고 쌓이고. 그래, “관세음보살~”, 하십시오. 그게 뭐, 사법이나 공부, 그런 거 놔두고. 끊기 힘들면 “관세음보살~”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아니면 용학을 떼는 스님.
그럼 확 떨어져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그림자에 사로잡혀 가지고
제가 농담하면 농담하는 사람인줄로 착각하고.
곡차라도 한 잔하면 곡차 하는 줄 착각하고.
노래하면 노래하는 줄 착각하고.
공부하면 저 스님, 공부만 한다, 착각하고.
그렇지 않아요.
이 마음이라는 것은 하루에도. 찰나지간에도 8만4천, 변화무쌍합니다. 변화무쌍한 걸 따르지 마시고.
여러분들 저를 볼래야 도~저히 볼 수도 없어요. 여러분들은 또 여러분 자신도 볼래야 볼 수가 없어요.
보이는 것은 뭡니까? 그림자. 인제 많이 아시네. 너무 깨 바른 것 아닌가 모르겠네.
보이는 것은 죄다? 그림자.
공부 중에는 아무것도 안 보여야 돼. 어디까지? 지식(止息). 그죠? 지식(止息) 해 버리니까 뭐가 안 보여요? 피곤하고. 게으르고. 해태와 그, 피곤하고 이런 것이 그림자를 쫓아가던 마음이 하나도
사진을 보세요, 지가 말 한마디 하는가. 여기도 부처님의 그림자라. 이 무슨 부처님이야? 아무 영험 없어요. 재미가 없다니까 옛날이야기 또 한번 하고 갑니다.
그 다음에 즉멸화성(卽滅化城)하고. 사람들이 어때요? 완전히 경지에 올라서 사마타가. 이 정도는 그릇이 됐다, 갖춰지니까 인인이 그릇을 한 개씩 받쳐들고 있으니까 거기에? 국을 한 그릇씩 퍼주잖아요.
이게 이제, 비파사나예요. 그게 반야바라밀이라. 이렇게 조용히. 아까 죽비치고 이렇게 앉는 거. 혓바닥 천장에 붙이고 여러분 조용히, 처음에 몇 초지마는. 그렇게 조용히 쉬는 것이 사마타의 흉내가 아니라.
그게 그대로 사마타예요. 거기서 이리 앉아 가지고 ‘아이고 아까 누가 온다 했는데’ 이리 돼 버리면 사마타가 아닌 거라. ‘온다 했는데···’, 잡것에 끄달려 가지고
열차, 기관차 뒤에 차량이 백개 천개 딸려 가지고 가는 거라. 그런데. 오직 객차는 다 떼 버리고.
뭐예요? 기관차만, 기관차만. 예? 아무 영험 없어도 좋아요. 잡것들은 싣지 마세요. 화물차는 더더욱 안 되고. 똥차는 더더욱 안 되고. 그냥 오직.
내가 간다.
그러니까 동산양개화상이 그랬습니다. 그, 뭐라 했죠?
나 지금 홀로 가니[我今獨自往(아금독자왕)]. 예? 그런 대목 있죠? 나 지금 홀로 가니. 그게 사마타거든.
그런데 그림자를 쫓아가고 그림자를 쫓아가면 초초? 여아손[迢迢與我疎(초초여아소)]가ㅡ 뭐 그런 게 있죠? 나와는 점점? 멀어진다.
이런 대목, 기억나시잖아요, 마니주 보살님, 기억나시죠?
그림자에 사로잡히면 나하고는 점점 멀어지는 대목이라.
그럼 왜, 이 <법화경>하다가 <직지>가 떠오르고 <기신론>이 떠오르고
다 한 집안에 한 통속이라. 그래 방 안에. 제가 남의 집에 들어와서 빙빙 돌아댕기는 거라. 이 문도 열어보고 저 문도 열어 보고. 열어보는 게 아니라 그 문들이 그 앞에 가니까 문이 저절로 열어져. 오오! 니 왔나? 으음, 니가? 이렇게 이렇게
그럼 공부를 하다보면 이런 현상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되냐, 이러면. 스님은 좋겠네요, 많이 알아서.
아는 거하고 전~혀 상관없어요. 오래되도록 오래되도록 자기 습기를 익혀 놓으며는.
자기 집에서 어릴 때 먹던 김치 맛을 잊지 못하고 된장찌개맛이라든지. 심지어 우리, 잔인하게 얘기해 가지고 메뚜기 구어 먹던 얘기까지. 개구기 뒷다리까지 구어 먹던 것 까지. 그런 것까지 맛이 입에서 확 묻어서 떠나지 않는 거야. 옛날에 잊은 것같이 생각하지마는 기억이 한번 사로 박히며는. 마치 어릴 때 먹고 시원하게 화채. 우리 어릴 때 먹을 것 없으며는 요즘처럼 조각얼음이라도 있었나요 얼음 큰 거 사 와가지고 깨 가지고 먹었잖아요? 그거 얼려서 화채 먹던 그 맛까지 시원하게 남아 있는데.
거, 어디서 먹다 보면 어때요? 아, 이게 어릴 때 먹던 그 맛이라고··· 불현듯. 안 가르쳐줘도 저절로 알듯이.
공부도. 자기가 참선하고 사마타하고 그 경전을 읽으면서. 그냥 수박 겉핥듯이 해가지고 핥아봤자, 안에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모르잖아요? 딱 쪼개 가지고 짝 적셔서 완전 천착을 해애 되요. 천착을.
경전은 넘어 가지 말고, 마, 개미 다리 하나, 뜯어 가지고 발톱 몇 개? 이렇게 딱 훑어보고. 그렇게··· 몇 번째, 이 개미는 이 발톱사이로 무좀이 생겼다, 여기까지 확실히 뚫어보듯이. 이게 지금 안 넘어가잖아요? 지자[止], 식자[息] 넘어가버리면 어때요?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서 아무 소득이 없는 거라. 차곡차곡 뜯어먹는 거라, 야곰야곰 찐쌀 씹듯이. 예? 뽀독뽀독 해 가지고. 할 수 없어 이리 가는 거라.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에 삼매를 조용~하게 앉을 때 그건 사마타요. 그러면서 뭔가 원맨쇼 하듯이 원숭이 쇼하듯이 제가 떠들고 씨부리는 것이 뭡니까? 이것이 지혭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알아듣고 제가 이렇게 얘기를 하고. 예?
이해를 할려고 하고 그걸 파악을 할려고 하는 것은? 바로 지혜의 능력이라. 그것은 각자··· 어떤 데는 이렇게 가르치죠. 지혜를 먼저 가르쳐 가지고 사마타에 들게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 전통 공부가 이 사마타, 선정을 먼저 가르쳐서 비파사나로 나아가게 한다고 봅니다.
그래 사마타는 저는 이제, 튼튼한 새끼줄 같은 것이고. 실 같다, 이러며는. 비파사나는 그 실로 각양각색, 형형색색의 수를 놓는 거와 같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근데 비파사나도 사람 성질에 따라 먼저 공부해도 돼요. 예를 들어서 바둑의 기교를 배운다, 이거야, 바둑의. 그래, 바둑을 열심히 해서 수가 높아졌어, 살피는 힘이 너무 좋았어. 이렇게 하면 죽고살고 해서 수를 보는 힘이 너무 좋아졌어. 살피는 힘이 보통 사람은. 제가 한 열 수 살피면 이 창호는 오백 수, 천수씩 이렇게 살필 수 있잖아요? 제가 한 수 살피면 그 사람들, 백 수 살피는 거라. 그 사람들은 좍. 똑같은 시간에 살피는 힘이. 그 사람은 비파사나가 내보다 강한 거예요, 저보다. 그럼 그 안에 들면 자기는 삼매에 들어버리는 거라.
그 수를 생각할 때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잖아요.
그게 바로 비파사나를 통해서 사마타로, 또 가는 거라.
독서삼매니, 우리, 선정에 몰입했다, 했잖아요? 뭐, 일삼매든. 그림 그리는 사람도 마찬가지. 자기가 재주를 부리고 요걸 밀며는. 요거 나이프로 캔버스에 한번 밀어보며는 무슨 색깔이 나올까 요거는 무슨 색깔이 나올텐데 색을 착착착착 비비고. 예?
그리고 건반을 두드리다가 여기서 양념을. 화음을 넣어야 되니까. 남 없는 거, 하나 더 띵, 올려 주고 이런 게 그 아~주 살피는, 음을 살피는 힘이 강해지는 순간에 다른 잡생각이 밀려오지 못하잖아요? 사마타가 동시에 이루어는 거라.
사실은 못난 사람한테 뭉치를 줘 가지고 갈래를 치라 그러고 갈래를 줘 가지고 뭉치라 그래요.
비파사나는 갈래를 주고 뭉치는 것이라며는. 사마타는 뭉치를 주고? 금도 만들어라, 반지도 만들어라, 어디 목걸이도 만들어라··· 이렇게 가르치는 거거든. 사실은 금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라.
그래 가지고 나중에 뭉쳐서 갈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갈래를 가지고? 뭉칠 줄도? 잘~ 알게 돼 있어요. 똑같이 가는 거라, 동시다발이라, 동시다발.
이런 걸 “화엄”에서는?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가르칠 때 뭐, 구업(口業)있고 의업(意業)있고 신업(身業)있고. 그런 거 아니라, 거짓말이라.
안에서 의업이 동하고. 먼저 동하고 구업과 신업이 나온다고 저도 그렇게 순차적으로 가르칩니다마는. 제가 경험해보며는
생각이 동하면 즉시에 같이 나와요.
생각하고.
생각하고 뺨 때리는 거하고, 있잖아요. 화가 나잖아요? 똑같이 동시에 되는 거라. 생각하고 탁, 같이 되면서 뭐가 나와요? 욕이? 바로 탁, 튀어나오는 거라.
동십[同時]니다, 동시.
그래, 사마타, 가르치기 위해서 피치 못해 가지고 여기 화성(化城)을 만드는 것처럼. 사마타와 비파사나와 의업이 있고 정견이 있고 정사유가 있고 그렇게 따로따로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그렇지가 않고. 동시에 구족돼 있고 완벽하게 함께 족하고. 상응(相應). 서로서로 딱 붙어가 있고.
제가 지금 했는 말은 어디까지 갔나, 이러며는. 천년만년 뒤에까지 갔습니다. 안 믿죠? 제가 했는 말은 미국까지 갔습니다. 그럼. 요 스피커하고 중계방송만 해 놓으면 동시에 들린다는 걸 압니다. 이것은 인연만 빌리며는. 동시에··· 모든 게 동십니다. 좀 어렵지요?
자, 어느 정도 사마타와 마음을 공부할 태세가 되며는 뭘 가르칩니까? 법문을, 진짜걸 내 놓는 거라, 진짜걸.
그러니까 <금강경> 같은 경우도 세족이 부좌이좌(洗足已 敷座而坐). 세존께서 자리를 펴고 앉았다. 빙빙 돌아댕기지 안했다, 이거라. 앉으셨다 세존께서. 그럼 어때요? 상즉삼매라. 거기서부터 뭘 설합니까? 법문을 설하니까 비파사나. 반야. 지혜를 설하시니.
비파사나나 반야나, 이런 걸 여러분들이 이해가 잘 안 가시는데요. 비파사나라고 하는 것은 우리, <반야심경> 첫 대목에 보면 여러분들, 다 나옵니다. 그 비파사나하는 대목이 나와요.
깊은 반야바라밀에 들어가서 조견오온(照見五蘊). 색수상행식을 관찰하는 거. 그게 비파사나예요. 뭘 가지고? 깊은 반야바라밀이 바로, 사마타가 완전히 갖춰진 상태에서, 비파사나를 하는 상태에서 인연생멸을 바라보니까
조견오온(照見五蘊)하니까. 오온(五蘊)이? 개공(皆空)이라. 전부다 텅 비었더라.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지혜가 있는 사람은. 머물러도 머무름 없이. 얻어도 얻음없이. 증득해도 증득함없이 수행해도 수행함없이 <금강경>에는 첫 대목, 그렇지요. 보시를 해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보시하는 생각이 없이 해라. 왜냐 이러면. 사람들이 욕심이 많으니까 탐욕이 많으니까 중생들 가르칠 때도 일단, 보시부터 먼저 세워놓고 나머지 바라밀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다, 이렇게 하시는 거죠. <금강경>. 예?
이 놈의 거, 화엄경 갔다가 금강경 갔다가 법화경을 하는지 뭘 하는지 모르겄습니다마는. 다 똑같이 돼 있습니다.
卽滅化城(즉멸화성)하고
즉멸(卽滅). 언제 멸했다고요? 즉멸이라고 하는 것은.
같이 붙어있다는 거예요, 즉멸이라고. 쪼매 있다가 사람들 다 그치고 잠시 쉬었다가 하는 게 아니고. 그 순간 어때요? 똑같이 끊어버렸다. 뭐가 같이 돼 있어요? 붙어 있는 거예요, 이게.
상즉상입.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그런 말이죠.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하는 것은. 공(空)이라고 하는 게 바로 이, 지식(止息)이라. 색(色)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환상을 깨 버리고 진짜를? 다시 나타낸 거지. 이, 두 개 똑같은 것이여. 환상이 무너지는 상태가. 화성(化城)이 바로 색(色)이라요, 예?
語衆人言(어중인언)호대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하되.
141.
汝等(여등)은 去來(거래)어다
너희들, 이리 와 봐라.
寶處在近(보처재근)호라
보배 가까운 곳에 와 봐라.
向者大城(향자대성)은 我所化作(아소화작)이니
이 큰 성은 내가 변화해서 만든 것이니
爲止息耳(위지식이)니라
그것은 단지 그대들이. 뭡니까?
오직 번뇌를 그치고 번뇌로부터 헐떡거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쉬도록 하는 것이다. ··· 두려움도 없애고자 해서 내가 일부러 한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제, 우리가 흔히 하는 색수상행식이나 상(想). 우울증도 그런데서 떨어져서 빠지고 조울증도 그런데서 빠지고 의처증도 그런데서 빠지거든요?
상음마(想陰魔)거든요, 그런 게, 상음마. 의부증도 그런데서 빠지고 남 의심하고 이런 데. 전부 상음마에서 빠지는데. 상음마는 어떠냐, 이러며는.
자기의 대충 과거의 기억하고, 배웠던 경험지식들을 추억해 내 가지고 현재를 실황상황으로 만들어 가는 거예요. 왜 조조가, 유명한 애기 뭡니까? 매실, 없는데 이렇게 먹는 것처럼, 예? 지금 여기도. 색수상행식을 전체다 동원해 가지고 색수상행식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죠? 그 색수상행식을 동원해서 뭐가 됐습니까? 지식(止息)을? 얻었잖아요? 예? 아, 보배 있다고 확, 욕심을 내서 달려들었잖아요?
이 욕심이 바로 뭐예요? 그게 바로 사마타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라.
그게 이제 욕심이 바로 원력이고 원력이 바로 욕심이라. 그런데 우리는 늘 이분법적으로 해 가지고 욕심은 완전히 찌끄래기. 처음에는 유치원생들은 그리 가르쳐야 되지마는 이제 <청림회> 수준은 그게 아니지.
지옥이 곧 천당이고. 천당이 곧? 지옥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고 중생이 곧? 부처고.
이 캄캄한 번뇌덩어리가 곧 불성(佛性)이고. 불성이 곧? 번뇌의 무명이고.
이 법신이 곧? 허깨비같은 색신(色身)이고. 색신, 이 육신이 곧? 법신이고.
이 육신 없으면 뭘로 여러분들하고 지금 교섭을 하겠습니까? 여러분들, 육신이 허망하다 해 쌓는데 이게 없으면 어떻게 저하고 교섭이 돼 있어요, 그렇잖아요? 우리, 색수상행식, 정신. 이게 전부다 망상이라고 하는데 여러분들 그거 없이 어떻게 저하고 교섭합니까? 예?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우리 인생생활에서 요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거라. 그거는 원래 없어요. 원래 없는데 사람들이 유생유멸(有生有滅)로 생멸의 인연법에 그림자에 사로잡혀서 너무 넘어가기 때문에. 그림자를 지나가게 하되 그림자를···
빛을 쫓아가라, 이거여. 그림자를 쫓아가면, 추종하면 계속 업식이 계속 쌓이잖아요?
빛을 쫓는 걸 우리는 진여훈습이라 합니다. 진여훈습. 마치 오늘 이렇게 <법화경> 보는 거. 이 시간이 헛된 시간 아닙니다. 귀찮은 시간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만난 것은 정말 가문의 영광이고 개인의 행복이고··· 진짜 눈물나도록 그렇게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저는. 왜? 부처님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저를 쫓지 마시고 부처님을 쫓기 때문에
여러분들 행복하십니다. 또 설사 부처님도 그림자예요. 누구를 쫓아야 돼요? 절~대 제법(諸法)의 무아(無我)인 자기를 쫓아가는 것이라. 그리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가 이래 가지고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안다니'박사라고 받았습니다.
142.
諸比丘(제비구)야 如來(여래)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모든 비구야! 여래께서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今爲汝等(금위여등)하야
지금 너희들을 위하여
作大導師(작대도사)할새
대도사를 지었을 새. 그래. 삼계(三界)? 도사(導師).
143.
知諸生死(지제생사)의 煩惱惡道 險難長遠(번뇌악도 험난장원)하고
모든 생멸법. 인연생멸의 그런, 번뇌한, 번뇌스러운 그런 악한 길. 험난하고도 머나먼 길을. 알게 하고
應去應度(응거응도)호대
마땅히 제거하고 마땅히 제도하되
144.
若衆生(약중생)이 但聞一佛乘者(단문일불승자)면
만약에 중생이 오직 단 한번만이라도. 이, 유행가 가사 있는데 그죠? 이렇게 생각은 빨리 가는 거야. “단 한번만이라도····. 뭐” 하는 그런 노래가 있어요. 우리 생각이 얼마나 신기합니까? 이거 하다가 왜, 중[僧]이 갑자기 유행가가 생각이 나나. 그 노래. 그런 노래 있지요, 마니주 보살님! 몰라요? 저, 우리 노래 잘하는 보살님! 단 한번만이라도. 꼭 한번만이라돈가, 그런 노래가 있어요.
단 한번만이라도. 단문(但聞), 이러면 오직 듣는다, 이 말이라, 오직. 오직 누구를 들어요? 일불승(一佛乘). 이 일불승이라는 것은 앞뒤가 끊어지고 시간에.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 모든 게 다~ 끊어져야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리다가 중간에 말아버렸는데.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그러니까 6근이 이연??하며는 안이비설신의가 편안~하며는. 행주(行住)가 적무??한 거라. 사람이 가도? 즐겁고. 머물러도? 즐겁고. 그런 것을 수처(隨處)에 작주(作主)요, 또 하난 뭡니까? 입처(入處)에 개진(皆眞)이라.
그러니까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요, 멈추는 곳마다 진짜배기다.
그걸 갖다가 선어록에서 신라 대령국사가 그리 해 놨죠.
가는 곳마다 황금국토다. 가지가지마다 보배가지다. 이랬잖아요? 그, 열리는 열매야 오죽하겠어요, 보배나무에. 예? 우리 보고 듣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전~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가 부처의 길이다, 이 말이예요. 그걸 갖다가 우리는 일불승(一佛乘)이라 그래요. 이 <법화경>의 사상이 일불승(一佛乘) 사상 아닙니까? 일불승(一佛乘) 사상. 다른 말로 하며는 너와 내 할 것 없이 모두다? 부처다~. 이런 말이죠. 일불승(一佛乘)으로 가기 전에는 뭐가 있습니까?
각자 자기의 분이 있어가지고 시선만큼 깨치는 걸 뭐라 그래요? 삼승(三乘)이라 그래요, 삼승. 그, 유명한 화택유(火宅喩)에 나오는 거. 양거·녹거·우거(羊車·鹿車·牛車). 이 3개의 수레. 여기서 승(乘)이라고 하는 것은. 1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라고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하나요.
부처라고 하는 것은 완전하게 깨달은 것이고. 구경의 열반이고.
승(乘)이라고 하는 것은 내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승객하고. 자타일시(自他一時)? 성불도(成佛道)다, 이거라. 그러니까 진여의 한결같은 진리의 길로 일체중생을 제도한다. 차별 없이. 그런 걸 가지고 일불승이라 하고. 그 전에는 성문연각보살은 뭡니까? 삼승이라 하지요.
그래서 일불승(一佛乘)은 백우(白牛). ‘흰 백[白]’자(字) ‘소 우[牛]’자(字), 이리 쓰잖아요. 그래서 절[寺]에서 특별한 날[特]은 소고기[牛], 먹는다,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백우(白牛). 그래 법화경에 다 나오는 거라. 우리 교장 선생님 모르시는 거 같으니까 잠시 써 볼께요. 흰 칠판에 쓰니까 더 좋다. 절에 특별한 날? (웃음) 아, 모르시는 분이 많이 계시는 모양이네 흰 칠판에 써 놓으니까 흰 소가 됐어요. 특별한 날에 절을 좀··· 아이고 좀 다리박사.
단 한 번만 불승(佛乘)을 들어버릴 것 같으면 내가 누구예요? 내가 바로 내다, 이 말이죠, 그죠?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 되고 나며는 부처님이 부럽겠습니까 뭐가 부럽겠습니까, 그죠?
더이상 구할 수도 없고 피할 길도 없고 이대로가? 넉넉하다, 이거죠.
그래 법재구족(法財具足). 파제간탐(破除看貪). 법의 재산이 나한테 구족돼 버렸는데 무슨 세속적인 오욕락에, 명예욕에 탐착할 게 어디에 있느냐, 이 말입니다.
부처를 보고자 하지 않는다, 이 말이야. 세상에 부처를 구하는 사람이 부처를 안 본다, 이러면 누가 부처란 말이예요? 한번만 이 일불승(一佛乘)이 돼 버리고 나며는. 이런 대목을 중국 천태산 국청사에 가며는 화단에. 요번에도 확인하고 제가 왔습니다만. 이렇게 써 놨습니다. 3초2목(三草二木)이 구유불성(具有佛性)이라. 모두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왜 그 천태산 국청사에 그렇게 됐냐니까, 이 천태종이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니까. 그 내용을 그리 해 놨어요. 우리, 저 <약초유품(藥草喩品)>에도 우리 배웠잖아요? 이런 대목, 예? 적어 드릴까요? 풀 3개 나무 2개가 아니고 모든 것이다, 이 말이죠. 직유법에 불과합니다. 직유가 아니라 은유죠. 3초2목이 모두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則不欲見佛(즉불욕견불)하고 不欲親近(불욕친근)하며
일불승(一佛乘)이면 곧 부처를 보고자 하지 아니하고 친근하고자 아니하며
便作是念(변작시념)호대 佛道長遠(불도장원)이라 久受勤苦(구수근고)라사 乃可得成(내가득성)이라하나니
또한 이런 생각을 짓되. 그러면서 얘기 합니다. 아이구··· 얘기가 거꾸로 됐어요. 예습을 안 해 와가지고. 불도(佛道)는 너무나 너무나 멀고 험한 길이요, 내하고는? 상관없다. 오래도록 닦고 부지런히 고생을 해야만이 얻을 수 있다, 하니.
145.
佛知是心(불지시심)의 怯弱下劣(겁약하열)하사 以方便力(이방편력)으로 而於中道(이어중도)에 爲止息故(위지식고)로 說二涅槃(설이열반)호니
부처님이 이 마음에 겁약하열한 것을 아시고는. 이 방편력으로 뭐라 했어요? 이 중도에 무여열반, 유여열반 하니.
146.
若衆生(약중생)이 住於二地(주어이지)커든
만약에 중생이 이 두 경지에 머물거든.
如來爾時(여래이시)에 卽便爲說(즉변위설)호대
여래가 그 때에 곧. 즉. 문득. 그들을 위해서 설하거든.
汝等(여등)은 所作未辦(소작미판)이요
그대들은. 지은 바를. 소작(所作)을 아직 판단하지 못했는데.
汝所住地(여소주지)는 近於佛慧(근어불혜)니
그대가 지금 머무르고 지탱하는 바는 부처의 지혜에 가깝다. 이, 부처님 이제 살살 꼬시는 거예요.
當觀察籌量(당관찰주량)호대 所得涅槃(소득열반)이 非眞實也(비진실야)니라
다~만 주량(籌量). 그 숫자를 관찰하되. 그 얻은 바 열반 조차도 진짜 ??가 아니다, 이래서 반야심경 같은 데 이 대목을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이라 해 놨어요, 무득(無得)! 열반도 없다. 그래 반야심경 없다 없다 4성제도 없다 뭐도 없다 무고집멸도 다 나오다가 마지막에 뭐가 나옵니까? 반야도 없다 열반도 없다, 얘기까지 나오죠.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그러니까 얻을 바가 없는 까닭으로.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로 뭘 해요? 보살도 수행하고. 3세제불도 얻을 바가 없는 까닭으로? 고득(故得)·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금강경에서는 무유정법(無有定法). 정해진 법이 없다. 뭐가요? 아라고 그 뭐, 합격하는 그런 법이 없다 여기 똑같은 얘기예요, 지금.
但是如來(단시여래)가 方便之力(방편지력)으로 於一佛乘(어일불승)에 分別說三(분별설삼)이로니
여래의 방편지력으로 일불승(一佛乘)에다가 분별해서 3가지를 설하니.
147.
如彼導師(여피도사)가 爲止息故(위지식고)로
저 도사가 그냥 중생들을 편안~하게, 번뇌를 완전히 식히고자 하는 까닭으로.
化作大城(화작대성)이라가
그래 염주 돌려라 절해라 참선해라 하는 게 전부 뭡니까? 화성(化城)입니다, 화성(化城). 예?
旣知息已(기지식이)에 而告之言(이고지언)호대
이미 푹 쉰 것을 알매
寶處在近(보처재근)이라 此城(차성)은 非實(비실)이니 我化作耳(아화작이)니라
한 번 쉬고 나며는 보배의 장소가 어때요? 가까운 것이다, 이거죠. 이 성은 실다운 것이 아니니
그 성을 통해 가지고 엔간이, 한 반퉁의 사람을. 5분의 3할은? 끌고 갔네요.
오늘은 요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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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너무 재미있습니다 ~~~_()()()_
개와는 싸우지 맙시다. 가을햇살님 대단하시네요 _()_
가을햇살님
아주 재밌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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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_()()()_
가을햇살 님! 수고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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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